뱀이 찾을 수 없는 곳(4)
세계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고?
그리고··· 봉래도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진실에 혼란스러워했다·
이리 놀라는 이유는 단순했다·
‘수계와 모든 것이 똑같다·’
나는 그 이유가 명(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氣)가 희박하고 혼의 계위가 존재하지 않을지언정 운명 자체는 인력의 형태로써 존재하기에 천색성과 천음성의 골목 구조 하나까지 전부 똑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이 세계는 수계의 운명과 똑같거나 최소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세계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지구평평론이니 지구구체론이니 하는 토론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력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세계가 평평한 것과 세계가 구체인 것은 그 중력의 작용이 완전히 다르다·
운명은 곧 인력이니 이 세상의 운명은 수계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
하지만 천색성 골목에서 확인했고 성제 벽라 연국에 와서도 확인한 것·
이 세계의 집단과 장소는 절대다수가 수계와 동일했다·
그런 것은 이 세계에 운명이란 절대적인 게 있고 그 운명의 형태가 수계와 비슷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이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명을 조작할 수 있는 존재가 주관하는 곳이란 의미다·’
물론 그냥 소금산의 주인이 이 세계를 남기며 설정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 등선향에서 모닥불 근처에서 내게 말을 걸었었던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누군가는 이 세계에 뱀을 들여오면 용서치 않는다 했다·’
한마디로 이 세계에는 ‘관리자’ 비슷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관리자’는 지금 실시간으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단 의미였다·
물론 단순히 이 세계가 우리 기억을 토대로 만든 꿈이라서 그렇다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단순한 꿈은 아니야·’
최근 나는 이 세계가 단순한 꿈이 아니란 증거를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이 세계는 어쩌면 고력계의 차원 더미와 비슷한 또 다른 차원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세계가 단순한 꿈이 아닌 ‘다른 차원’이라는 가정하에 이 세계에는 ‘관리자’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부디 이 세계를 관리하는 자가 우리에게 악의가 없어야 할 터인데····’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 세계의 관리자가 부디 우리에게 악의를 보내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을 정리하는 새 다시금 붕대 괴인의 공격이 날아온다·
투쾅!
다시금 물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나는 죽은 선원들을 본 후 붕대 괴인을 노려보았다·
“저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니 됐다·”
저런 놈들의 성정은 잘 알고 있다·
한없이 악에 가까운 성정을 가진 마두(魔頭) 놈들의 성정이다·
내가 이해할 필요도 없다·
키릭 키리리릭!
내 몸에 감긴 붕대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댄다·
파앙!
나는 허공을 박차고 올라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웅!
단도부터 시작해서 수십 자루의 기형병기들이 붕대 괴인에게 날아들었다·
그를 향해 처음 날아든 건 단검·
피싯!
단검은 붕대 괴인의 호신강기 위를 긁고 지나갔고 아무 타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투입된 것은 장창!
콰앙!
벽력탄 같은 소리가 울리며 장창이 그대로 붕대 괴인의 호신강기에 꽂혔다·
붕대 괴인이 조금 밀려났다·
‘다음 공격으로 놈을 더더욱 먼 해역으로 밀어낸다· 일단 나머지 선원들이 죽지 않도록 전투 장소를 바꿔야····’
바로 그때 붕대 괴인은 피식 웃으며 숨을 들이쉬더니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우오오오오오!!”
쿠구구구구!
대해 전체가 진동한다!
아무런 내공이나 법력이 들어가지 않은 소리 그 자체만으로 뇌가 떨려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자의 등 뒤에서 법술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그것은 피였다·
그의 피가 바다로 줄줄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나머지 선원들이 터져 죽기 시작했다·
“놈!”
내가 일갈할 때였다·
척!
붕대 괴인이 수결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계 법술을 주로 익힌 자인가? 제길 이 세계에서는 영기 감응이 잘되지 않으니 무슨 속성을 다루는지는 일단 보고 판단해야 하는군·’
혈해가 사방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나를 덮쳐 온다·
파앙!
나는 일단 허공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갔다·
촤아아아!
사방에서 나를 가두려던 혈해의 파도는 서로를 먹어 치우고 으스러지더니 그 자리에 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저건···?’
촤락 촤라라락!
파도가 잦아든 곳에 붉은 꽃이 피어나며 하늘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라라라라락!
소금·
그것은 피로 물든 붉은 소금이었다·
소금이 온 대해를 덮으며 거대한 결정을 이룬다· 그 결정은 산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들의 팔다리와 얼굴 몸통이 기괴하게 섞여 있는 듯한 산호·
그러한 형태의 소금결정이 순식간에 산호섬을 만들었다·
촤아아악!
붕대 괴인이 산호섬 위에 떨어지자 산호섬 위에 있는 물기들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가 수결을 맺는다·
쿠구구구구!
산호섬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붕대 괴인은 산호섬에서 마치 공중요새를 다루듯 산호섬을 조작했다·
번쩍 번쩍!
소금결정으로 이뤄진 기괴한 붉은 산호섬에서 광선이 뿜어졌다·
‘미친!’
타닷!
나는 산호섬의 광선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영기 감응이 잘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광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흉험했다·
‘맞으면 그대로 죽는다·’
키릭 키리리릭!
나는 붕대들을 움직이며 허공을 밟았다·
스릉-
동시에 나는 품에서 검을 꺼냈다·
사막 부족의 보검·
절규영롱검(絶叫玲瓏劍)이라 불리는 보검으로 만리국의 장인이 사막에 있던 흑색 돌을 주워다가 수천 년 동안 대를 이어 제련해 만든 검이라 했다·
‘흑색성 조각으로 만든 검인가 보군·’
양수진의 사당 조각인 셈이었다·
어쨌든 이 절규영롱검의 능력은 하나였다·
절망을 먹을수록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예리해지며 단단해진다·
그것은 상대의 절망이어도 주인의 절망이어도 좋았다·
우드득····
나는 내 심상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절규영롱검에 불어넣었다·
위이잉-
절규영롱검이 혼탁한 자색 빛을 내뿜으며 강화되기 시작했다·
‘혼의 계위는 느껴지지 않는데 대놓고 혼의 계위의 힘을 이용하는 법구도 있고··· 이 세계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난 잠시 절규영롱검의 구조를 분석해 본 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눈앞의 괴인을 향해 휘둘렀다·
부웅!
붉은 소금산호섬의 광선이 절규영롱검에 닿자 그대로 갈라져 나간다·
나는 소금산호섬의 광선을 뚫고 붕대 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라라락!
기형 병기들이 춤을 추며 내 주변에서 휘몰아친다·
기형병기들의 위력이 일점 집중되며 괴인의 공격을 튕겨 내기도 가끔 소금산호섬을 향해 반격을 하기도 했다·
파아아앗!
점차 우리의 공방이 빨라졌다·
피이이이—-
어느 순간 나는 근방이 고요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음속을 돌파한 것이었다·
내 움직임에 공기가 밀려 나가며 충격파가 터진다·
하지만 충격파가 터지는 그 순간조차도 내게는 느리게 보인다·
부웅 붕 붕!
나는 소금산호섬 주변을 빠르게 돌며 빈틈을 살폈다·
‘빈틈이 없다·’
음속을 돌파하면서 움직여도 붕대 괴인은 절대 틈을 보여 주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건 아니다·’
저자가 익힌 건 무(武)가 아니었다·
그냥 남을 살육하고 도살하고 짓밟기 위한 몸짓일 뿐·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닌 본인이 실컷 도살을 행해 오며 체득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나를 상대로 어떤 빈틈도 보여 주지 않아·’
그렇다면 한 가지였다·
저자의 전투 경험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것!
‘···그럴 수가 있나? 허공분쇄에 이른 나를 상대로 빈틈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전투 경험을··· 고작해야 축기기 따위가 쌓는다고?’
도대체 이자는 무슨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나는 잠시 그자의 주변을 돌다 빈틈이 없으면 만들어 내서라도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타앗!
장창이 그의 호신강기에 닿았다·
파앗!
괴인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장창을 잡으려 했으나 나는 그 짧은 찰나 장창과 대낫을 교환했다·
낫의 날이 괴인의 팔에 걸렸다·
나는 괴인의 팔에 걸린 낫을 지지대로 삼고 붕대를 늘어뜨렸다·
촤라락!
동시에 순식간에 괴인의 뒤쪽으로 돌아간 나는 붕대를 통해 괴인을 한 차례 묶었다·
“같잖··· 헛!”
괴인이 붕대를 끊어 버리려 할 때 다시금 내가 회수한 장창이 괴인의 옆구리에 박혔다·
물론 축기기 수사인 그의 전신에는 호신강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피해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이다·
그의 호신강기에 창이 박힌 것이 세 번·
그리고 나는 앞선 두 번의 투창을 통해 창에 묶여 있는 붕대를 통해 괴인의 정순지력의 진동수를 알아냈다·
천지영기는 물질계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을 지녔지만 축기기 수사의 몸에 들어와 정순지력이 되어 물질계의 것과 섞이면 물질계의 법칙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된다·
물질에만 존재하는 진동수 역시 정순지력에는 존재하게 된다·
나는 절규영롱검을 들어 올렸다·
붕대 괴인은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를 눈치챘는지 붉은 산호섬의 기운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단악검법
산명곡응!
티잉!
절규영롱검에서 절규와도 같은 검명이 뿜어졌다·
검기가 검파의 형태로 놈의 전신 영맥에 흐르는 정순지력 전체를 흔들기 시작한다·
“크아아아악!”
붕대 괴인이 고통에 겨워하며 더더욱 소금산호섬의 힘을 끌어 올린다·
일순간·
파앗!
소금산호섬이 일제히 빛을 내뿜더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한 광선이 내게 날아왔다·
나는 그 광선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염해귀로옥?’
나는 천잠조귀술을 통해 기형병기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락 촤라라락!
기형병기들이 내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병기들은 내 주변을 회전하며 일제히 각기 다른 초식을 내뿜는다·
단악검법의 초식을 각 병기에 맞게 개조한 초식들·
일순간 22개의 초식이 모이고 나는 단악검법의 오의를 응축했다가 터트렸다·
“단(斷)!”
콰드드득!
수십 개의 기형병기들이 빛을 발하며 광선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악(岳)!”
드드드득!
단악의 초식은 그대로 광선을 갈라내고 소금산호섬을 전부 소모시킨 붕대 괴인에게 향했다·
번쩍!
찰나 단악의 힘은 붕대 괴인에게 적중했고 나는 절규영롱검을 마지막으로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죽이게 되어서·
‘청문령의 제자는 죽이고 싶지 않았거····’
그리고·
콰드드득!
빛무리 속에서 붕대를 감은 손이 튀어나와 내 얼굴을 움켜쥐었다·
“···읇!!?”
치이이이이-
단악의 초식의 여파가 잦아들고 보이는 것은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붕대 괴인이었다·
‘어 어찌! 산명곡응을 통해 정순지력을 전부 공명시켜 터트려서 영맥이 멀쩡치 않을 텐데··· 거기다가 죽이려고 날린 초식이거늘···!’
방금 초식은 정말로 산도 가를 수준의 초식이었다!
그런데 붕대 괴인은 축기기 수사 주제에 죽지 않은 것이었다·
붕대 괴인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볼만했다만··· 거만한 이름이구나· 단악? 산을 쪼갠다고? 하 하하 으하하하하!!!”
그는 미친 듯이 폭소했다·
“그깟 이쑤시개를 들고 백날 날뛰어 봐라! 그딴 걸로 산이나 쪼개겠나? 모래성은 으스러지긴 하겠군· 이름을 바꿔라· 산을 쪼갠다 같은 게 아니라 모래성부수기 뭐 그런 걸로 말이지! 넌! 절대로! 산을 가를 수 없다!”
그는 단악검법을 비웃으며 내 얼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머리를 터트려 죽이려는 모양·
‘도 독을 써야····’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끼며 투괴암기술을 준비했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해진다·
마지막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내 몸이 투괴암기술을 사용하는 걸 느끼며 기절했다·
의식이 침잠하기 전 나는 어째 청문령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만···어라· 죽···수 있다· ···치료··· 또 사람을 죽였····”
‘스승님····’
나는 청문령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깜빡!
의식을 차리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머리에 올려진 물수건과 몸 곳곳에 감긴 붕대 그리고 약 냄새였다·
“여기는····”
“좀 누워 계세요· 아직 몸이 다 안 나았습니다·”
“엇····”
나를 치료하고 있던 듯한 의녀(醫女)가 탕약 같은 걸 들고 왔다·
그러나 난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의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북향화였다·
“왜··· 당신이 여기에····”
“예? 의원이니까 사람 치료하러 왔죠· 무슨 말이신가요?”
“ 아니 내 말은 어떻게····”
내가 당황할 때였다·
“내가 데려왔다·”
내가 누워 있던 방의 입구에서 거한이 삐딱하게 서서 내게 말했다·
“넌···!”
붕대 괴인이었다·
“스승님께서 명하셨다· 네놈을 치료하라고· 그래서 적당히 네게 필요한 사람을 데려왔으니 치료나 받아라·”
“잠깐 네놈····”
“닥쳐라· 무슨 말 하고 싶은지는 안다· 나도 널 죽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만 스승님께서 손수 너를 죽이지 말라 하셨고 넌 스승님의 명에 따라 이번 제자 모집 시험에 참가하게 됐으니 그리 알아라· 적당히 나으면 나와라·”
자기 할 말만 한 붕대 괴인은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고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북향화와 한 방에 남게 되었다·
* * *
청하현의 한 장원 안쪽·
그곳의 한 건물 위쪽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청문령은 그의 뒤로 다가온 붕대 괴인에게 말했다·
“의원은 잘 구해 줬느냐?”
“놈에게 필요한 사람을 붙여 줬습니다·”
“잘했다· 하지만··· 내 함부로 살생을 저지르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함부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술법을 쓸 수 있게 해 준 해양 생물들과 선원들에겐 깊은 감사를 하는 중입니다·”
“후··· 암아· 내 너를 어찌해야 할까·”
“제자를 벌하소서·”
“····”
청문령은 잠시 그의 제자 ‘각암’을 돌아본 후 한숨을 쉬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되었다· 뉘우치고 있거라·”
“예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스승님····”
각암은 청문령의 뒤쪽에서 물러갔고 청문령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번에 구해 온 아이는 과연 내 의발을 이어받을 수 있을런지····”
휘이이이-
그리고 그런 청문령을 건물 아래로 내려와 올려다보던 각암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애틋하면서 모멸감이 서린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