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4)
나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며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어떻게 설명해도 더는 믿지 않겠군·’
완전히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내가 그녀를 잔혹하게 고문하면서 ‘내가 진선이 아니라 서은현이라 말해라!’라고 해도·
그녀를 차근차근히 상냥하게 설득하며 ‘나는 진선이 아닙니다’라고 말해도·
그녀는 겉으로는 납득할지언정 속으로는 나를 진선이라 확정하며 대할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서은현이다·
나는 진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서은현이다·
내가 나 자신을 증명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난 내 발을 핥기라도 할 듯한 연위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서은현입니다· 진선이 아닙니다·”
“····”
연위는 아주 공손하게 내 말을 경청하였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음 솔직히 말해서 저에 대해 모른다면 절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인정합니다· 제가 진선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는 진선이 아닙니다·”
“하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강하게 말했다·
“당신께서 저를 진선이라 믿으신다면··· 그리 생각하십시오· 저 역시 진선이 되는 것이 목표이니 ‘언젠가 진선이 된다면’ 금신천뢰문은 잊지 않을 것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내 말에 그녀의 눈빛이 환해졌다·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대로 엎드려 내 발에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막을 수 없어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그만하십시오· 그리고··· 그냥 예전처럼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명에 따르겠습니다!”
쿠웅!
그녀는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찍으며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나는 그런 연위의 모습을 보며 잠시간 전명훈의 처소에서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치직 치지직····
점차 느껴진다·
다시금 의식이 뇌성해로 역류하며 이 짧은 강신의 순간이 풀릴 터였다·
나는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보고 있나 전명훈?”
그리고 바로 답이 들려왔다·
-그래·
“언제부터 깨어난 거냐·”
-처음부터· 다만 지금까지 네 안에서 반응을 못 했던 이유는 네 영혼이 가진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깔려 있었다 해야 하나· 그런 거다· 네가 성사의 일격을 막으려고 내 몸을 동원해서 의식을 선역으로 끌어 올릴 때· 자극이 너무 강해서 억지로라도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네 덕에 선역도 미리 경험하고··· 나쁘진 않았어·
“···연위의 저런 태도 어떻게 생각하냐·”
-뭘 어떻긴 어때· 받아들여라· 어차피 우리 선조님은 헛다리 짚을 때가 굉장히 많긴 해도 나름 노력하시는 분이야·
“헛다리를 너무 많이 짚으니 문제지·”
-그건 그렇긴 하지·
난 몸 안쪽에서 깨어난 전명훈이 괜찮나 살펴보았고 녀석은 의외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애초부터 적뢰천겁공을 익힌 사람은 강신되어도 의식을 유지하고 대항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내 의식이 너무 막강해서 전명훈의 의식이 대항할 틈새도 없이 깔려 버린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뭐가 문제인 거냐· 연위는 널 잘 따르겠다고 맹세한 거잖냐·
“그냥··· 나를 나로서 대해 줬으면 하는 거다·”
전명훈은 그 말에 내 안쪽에서 폭소했다·
-하하하하! 웃기는군· 너를 너로서 대하는 게 대체 뭔데?
“그거야····”
-한 명의 ‘인간 서은현’ 취급해 달라는 거냐? 포기해라· 그런 건 불가능해· 인간 취급 같은 건··· 솔직히 축기기 정도만 되어도 반쯤 벗어나는 게 정상이다· 수선의 길에 들어서서 축기기를 넘어선 순간부터·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닮은 수도자라는 별개의 생명체’라는 거다·
“···그래도 동문으로서····”
-뭘 말하고 싶은진 알겠다만 그 역시 불가능해· 이건 수도자나 경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이 너라서’ 그런 거다·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는 거냐·”
-까놓고 얘기해 볼까?
파지직!
전명훈은 내 존재감이 뇌성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몸의 기력을 찾는 듯·
이 몸 앞에 뇌전으로 분신을 만들어 그 분신에 깃들어 말했다·
[너 말이야· 최근에 많이 이상해·]
“···그건 쇄성기의 경지 때문이다· 쇄성기에서는 마음이 인력으로 변해 가면서····”
나는 쇄성기의 경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고 다 들은 전명훈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군· 내가 얘기하려는 건 네가 하려는 그런 쇄성기 인력 같은 거랑 아무 상관 없어· 그냥 서은현· 네 본질적인 상태에 대한 거다·]
“본질적인 상태?”
[그래· 너 말이야··· 솔직히 날이 갈수록 어깨에 신경 쓰는 거·]
“····”
[그건 네 어깨가 네 성감대고 네 스스로 성감대가 예민해지는 공법 같은 걸 익혀서 그런 건 아니잖아· 그렇지?]
“···당연하지·”
[네 어깨가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네가 어깨에 대해 신경 쓰는 이유··· 그건 내가 볼 때 네 어깨에 걸린 게 많아서다·]
“뭐?”
[···널 보면 말이다·]
녀석은 내 가슴팍으로 손을 뻗어 가슴 안쪽에 있는 소해의 손을 꺼내 쓰다듬었다·
[가끔 보면 과하게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가 등에 짊어진 것 때문에 그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 죽어 가는 것 같기도 했었지·]
“····”
[다행히도··· 그 봉래도의 세계· 수계를 닮은 그 세계에서 네가 북향화의 환생과 얘기를 좀 나누며 스스로를 자학한 건 멈춘 것 같더군·]
“그렇긴 하지·”
나는 백란으로부터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들었다·
동시에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학대하던 자책의 불길을 스스로 꺼 버리며 선술의 단초를 잡고 파려도해성을 완성했었다·
“그때··· 나 자신을 많이 용서해 줬다·”
[그래· 그때 이후로 네 얼굴색도 많이 좋아진 거 같긴 해· 하지만····]
그는 소해의 손을 쓰다듬다 나를 보았다·
[스스로를 용서했을지언정 자신을 채찍질하는 건 여전한 것 같아 보인다·]
“···뭐?”
[말 그대로야· 네 어깨에는 너무 많은 게 걸려 있어· 너 혼자만이 모든 걸 책임지려 한다는 말이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솔직히 네가 말한 그 종명자? 우리 종명자 중에서 네가 제일 능력적으론 뛰어나니까· 좋은 태도지· 하지만 스스로의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워 채찍질하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의 의견과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군·]
“····”
[연위 선조님의 태도도 그 일환이다· 네가 오직 네 시선에서 그분을 판단한 것이 아니냐·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우리의 운명의 대다수는 네 어깨에 걸려 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너보다 약한 자의 시선과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다오· 약자를 신경 써 주고 배려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금소해의 손을 잠시 자리에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굳이 뿌리치지 않았다·
[약자를 신경 쓰란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좀 더 믿어다오· 나는 너를 언제든 믿고 따를 거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역시 나름대로의 시선과 의견 그리고 네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단 걸 기억해 줘라· 그분 역시 나름대로 본인이 판단해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생각해 보겠다·”
파치직!
강신의 유지 시간이 다 지난 듯·
내 의식은 그대로 전명훈의 몸 안에서 흩어졌다·
파사사사사!
웅성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이건····’
나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목소리였다·
그것은 ‘뇌도공법을 익힌 자들’의 목소리·
파직 파지지직····
나는 뇌전이 머리속에서 휘몰아치는 느낌을 만끽하며 이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렇군· 이들은··· 모두 양수진에게 사사한 존재들이다!’
양수진에게 번개의 지혜를 배우고 전승받은 자들·
그러나 느껴지는 절대다수는 축기기 이하였다·
‘그렇군· 그때····’
천벌의 주인이 정려를 찾고 금신천뢰문을 지웠던 날·
천벌의 주인은 금신천뢰문 말고도 ‘양수진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이들’을 거의 다 갈아 버린 것이었다·
이들 중 살아남은 건 극단적인 이들이었다·
가진 바 자질이 가장 높은 전명훈·
혹은 너무 강력해서 천벌의 주인의 힘에 영향받지않은거대하고또거대한윗세계의존재몇몇·
‘크윽····’
아무래도 양수진의 제자 중 진선으로 추정되는 몇몇도 살아남은 듯했다·
나는 그들의 존재감을 머리에서 지우며 다른 이들을 살폈다·
진선들 외에 나머지는 대다수가 축기기 이하였다·
아마 천벌의 주인이 직접 죽일 가치조차 못 느낀 이들 같았다·
즉····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양수진의 제자 중 절대다수는 축기기거나 진선·
‘수계의 금신천뢰문이 특이한 거지·’
연위에게 가끔 보고를 받기론 수계 금신천뢰문에선 원영기 수도자가 몇몇 탄생해서 대륙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단다·
금신천뢰문이 수계를 장악했으니 아마 수년 내로 대륙의 자원을 끌어모아 천인기에 도달하는 이도 충분히 나올 터였다·
‘그렇군· 뇌성해에 금신천뢰문· 즉 양수진의 의발을 이었다 생각되는 자가 들어오면 뇌성해에서 양수진의 인연을 지켜볼 기회가 주어지는 거구나·’
나는 의식을 완전히 응집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어둠 속이었다·
나는 주변의 인력이 변화하며 어떤 현상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 현상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며 나는 전명훈과의 대담을 생각해 보았다·
등선향 첫 시점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진 녀석이었다·
‘···그래 확실히 최근 너무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긴 했다·’
너무 단기간에 죽음을 많이 겪어서일까·
간혹 동료들과 내 죽음을 헷갈리기도 하고 나는 진선의 이름을 버티는데 개열기 진인 역시 당연히 버틸 거라 생각해서 내게 은혜를 준 진루곡에게 진선의 이름과 칭호를 폭탄마냥 투하한 적도 있었다·
아(我)와 타(他)의 기준이 너무나 많은 죽음을 통해 희미해졌다·
그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에 대한 시선의 혼동이 왔던 것 같았다·
나는 나를 그냥 나라고 생각했지만 연위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의 나는 어쩌면 감당 못 할 괴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단 것을 간과했다·
츠츠츳-
나는 우천대성을 압축해 화신체 속으로 넣어 인간형을 취했다·
꾸욱····
나는 머리를 짚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싫은 건데 말이지·’
연위는 나와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깊은 수준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진 않았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은 청문령 때와 같았다·
이전 생에는 스승이었던 이가 이후 생부터 나를 보고 도우나 선배라고 부르는 일·
북향화 청문령부터 시작해서 내 소중한 이들은 얼마나 많이 나를 선배 혹은 어르신이라고 칭해 왔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자연스럽게 강해지지만 다른 이들은 늘상 내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얼굴을 손에 푹 묻었다·
회귀는 분명 강력한 권능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끔찍한 저주이기도 했다·
이 능력이 있는 이상 나는 언제나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너무 높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내 가장 강력한 바람은 곧 삶·’
수계 초회차 시절부터 줄곧 생각해 왔던 것·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삶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내가 죽어도 시간이 돌아가지 않아 인연이 사라지지 않는단 걸 알게 될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삶’·
내 삶이 만약에 욕망으로 되어 있다 치면 언젠가 내 입에서는 아마 ‘삶은 곧 삶’ 같은 채 웃지 못할 소리가 튀어나오리라·
그만큼····
시간의 역류에 따라 매번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나에게 있어 삶이란 그만큼 간절한 것이었다·
간절히 삶을 갈구하면서 매 삶에 온 힘을 다해 의미를 부여해야 할 만큼·
그렇기에 나는 내 동료들만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었으면 했다·
시간이 역류해도 그들만큼은 내 곁에 남으니까·
하지만 청문령 북향화부터 시작해서 무수한 인연들·
그리고 연위까지··· 내 곁에 있던 이들이 나를 공포스럽에 쳐다보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는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까·
-약자를 신경 쓰란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좀 더 믿어다오· 나는 너를 언제든 믿고 따를 거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역시 나름대로의 시선과 의견 그리고 네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단 걸 기억해 줘라· 그분 역시 나름대로 본인이 판단해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믿어 달라는 거냐 전명훈·”
나는 전명훈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시간의 역류 속에서도 늘 내 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떠올리며 음울한 심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어쩔 순 없겠지·”
내 곁에 있는 이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싫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그들을 세뇌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내가 강해져 감에 따라 당연히 그들의 생각과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나는 전명훈에게 늘 나를 믿고 따르라 했다·
생각해 보면 늘 ‘이번에도’를 들먹이며 그들을 끌고 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들을 잘 믿어 줘야 했던 게 아닐까·
나는 못마땅할지언정 그들이 가진 나에 대한 시선과 생각·
나에 대한 태도를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를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믿고 있는 것이니까·
쿠릉 쿠르르릉!
뇌성이 울리더니 눈앞에 거대한 벌새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온몸이 번개로 이뤄진 달만 한 크기의 벌새·
“···!”
나는 그 존재를 보자마자 내 본체가 터질 듯 뒤흔들리고 본체의 대기 곳곳에 벼락이 내리치는 걸 느꼈다·
[귀 귀하는 누구십니까·]
위이이이잉!
벌새는 번개를 초월한 속도로 날개를 휘저으며 얼마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벌새는 내 손바닥만큼 작게 변하더니 내 앞에 서서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난 벌새를 따라 어둠의 공간을 가르고 나갔다·
얼마 후·
나는 어둠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마치 무릉도원 같은 곳에 도달했다·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곳곳에는 선주가 물처럼 샘솟아 나며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내뿜는 세계·
벌새는 그 세계의 중심에 있는 정자로 도달했다·
정자의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는 깨알 같은 조각이 즐비한 100층짜리 석탑이 있었다·
그 석탑은 층수는 많았으나 크기 자체는 성인 남성의 키 정도 크기였다·
‘뭐지 저 탑은?’
나는 탑 속에서 기묘한 흐름이 느껴지는 걸 느끼며 벌새를 따라 정자 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 주었던 벌새는 백금발의 작은 인간 소녀와도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황금빛 번개로 된 궁장을 입고 있었으며 새하얗고 깨끗한 맨발로 정자 위쪽에서 내게 인사를 올렸다·
스륵-
그녀는 내 앞에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목소리는 내지 않은 채 입술만 벙긋거렸다·
난 독순술을 할 줄 알았기에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그녀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뇌성해 심처· 관리 공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공자·
“···귀하는 누구시요?”
-저는 금신자의 시첩 겸 애완동물· 선수(仙獸) 금진조(金振鳥)· 본명이나 칭호에 대해서는··· 공자께서 제 격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릴 수 있기에 현시점에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소리나 진체 역시 공자께서 들으시면 미쳐 버릴 수 있으시기에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난 금진조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소?”
-그것은 공자께서 금신자의 유의를 정당하게 이으셨기 때문입니다· 금신자께서는 훗날 멸신겁천을 완성한 이가 나타나면 그분께 뇌성해 관리 공간을 선물로 드리라 하셨지요·
나는 그 말에 희색을 띠며 말했다·
“오··· 그렇다면 온 김에 뇌성해에 있다는 [다섯 중경계의 상징]을 받아 가고 싶은데····”
그러나 내 말에 금진조는 키득 웃더니 입을 가렸다·
-실례했습니다· 하오나 죄송합니다만··· 그건 여기서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
“뭐? 어째서요?”
-그야··· 뇌성해는 [다섯 중경계의 상징]이 있는 공간으로 향하는 [길목]일 뿐· 그것들이 있는 공간이 아니랍니다· 금신자의 보물 창고는 따로 있지요· 애당초 뇌성해의 존재 의의는 언젠가 공자와 같은 존재가 오면 그런 존재들이 [수미산] 안에서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는 길목을 마련해 주는 것일 뿐이랍니다·
“수미산?”
-선격에 오른 이는 많은 이가 삼천대천세계를 수미산이라 부르지요· 지금은 알 필요 없습니다·
“음 알겠다· 여하튼··· 뇌성해의 진짜 힘은 비상시 통로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란 거냐?”
-그런 셈이지요·
“좋다· 그럼 그 능력을 통해 일월천역에 종말이 일어날 때 일월천역의 생령들을 타 천역으로 옮기고 싶다만?”
키득
그리고 금진조는 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불가합니다· 뇌성해는 금신자께서 천벌상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만든 미궁이니만큼 그를 이용할 수 있는 건 금신자의 인정을 받아 멸신겁천을 사용하실 수 있는 공자밖에 없습니다·
“뭐라···?”
-물론 금신자께서 살아나 적뢰천겁공을 충분히 익히고 돌아온다면 이런 사용 조건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그녀는 어쩐지 씁쓸하고 그리운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양수진을 꽤나 그리워하는 듯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전명훈을 데리고 돌아오면 되겠어·’
만약 그라면 충분히 금진조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터였다·
‘뭐 그럼 일단 뇌성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했고··· 나머지 일을 처리해야겠지·’
일월천역 성계의 생령들이야 타 천역으로 보낸다 쳐도 다섯 중경계의 상징들은 어쨌든 찾아야 할 터였다·
나는 금진조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그 양수진의 보물창고로 가는 길을 좀 열어 봐라· 다섯 중경계의 신물을 얻어 가야겠다·”
그리고 금진조는 살짝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 역시 불가합니다·
“···뭐 그리 안 되는 게 많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금신자의 보물창고는··· 선좌에 오른 자가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천뢰번 꼴이 되어서 불길한 곳에 처박히기 때문에··· 건드리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
-그러니 제가 문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닌 공자께서··· 직접 시련을 이기시고 보물창고에 들어가시는 것이 적합하리라 사료됩니다·
“···알겠다· 그럼 그 ‘시련’이란 건 어찌해야 받을 수 있지?”
내 질문에 금진조는 정자 밖 연못을 가리켰다·
-저 연못에 있는 석탑· 저 석탑은 시련의 탑이라 불리우며 연기기 수준부터 개열기 수준에까지 이르는 시련들이 존재합니다· 석탑을 뚫고 올라가 최상층에 도달하시면 자연히 금신자의 보물창고로 가실 수 있게 되심은 물론 뇌성해를 더더욱 강력하게 장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흠··· 알겠다· 그리하도록 하지·”
나는 잠시 금진조를 살펴보고 악의는 없는 것 같았기에 그녀의 말을 따랐다·
-시련의 탑은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모든 공략 상황이 초기화됩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오셨으니 제가 특별히 힘을 써 이제부턴 초기화가 아닌 공략했던 층부터 그대로 공략할 수 있게 해 드리지요·
“좋구나· 그럼 시련의 탑으로 들어가게 문을 열어 보거라·”
나는 연못 앞으로 가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금진조는 내 뒤에서 새하얀 발로 내 허리를 세게 밀쳐 버렸다·
-그냥 입장하시면 된답니다·
풍덩!
저항할 틈도 없이 나는 금진조의 발에 밀려 연못에 빠져 버렸다·
‘으읍!’
난 방금 금진조의 발이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며 문득 생각했다·
‘양수진이 정려를 잡아 온 건··· 발이 말랑거려서 그랬던 걸까·’
어째 발이 깨끗한 진선격 존재들만 양수진 주변에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촤아아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 * *
푸확!
나는 물속에서 빠져나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지난번 왔던 온천 같은 세상이었다·
“흠!”
우드드득!
나는 인력을 다뤄 세계에 구멍을 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온천의 세계 다음의 세계로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세계는 빛이 굉장히 희미해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이다시피 한 곳이었는데 쇄성기의 의식으로 쓸어 보자 단백질로 된 열매와 꽃이 열리는 세상이었다·
아무래도 장익이 고기사과 같은 걸 따 왔던 게 여기인 모양이었다·
동시에 이 세상에 들어오자 내 인력의 영향권에 어떤 표식이 들어왔다·
[제일층·]
‘그 온천의 세계는 대기실 같은 곳이고 여기서부터가 시련의 탑인가 보군·’
그러나 딱히 시련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쇄성기 원정대가 이 시련은 이미 끝내고 갔겠지·’
아마 원정대는 상층에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쿠르르릉!
나는 다시금 인력을 움직여 층을 뚫고 나아갔다·
이 층 삼 층 사 층····
이십칠 층 이십팔 층 이십구 층 삼십 층····
사십 층 오십 층 육십 층 팔십 층···!
그리고 마침내 95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나는 마치 우주공간 같은 곳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력으로 공간을 뚫으려 하자 반발력이 생기며 공간이 수복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공략이 진행이 안 된 층인가· 그렇다면 이곳에 원정대가 있겠군·’
나는 의식영역을 뻗쳐 머나먼 곳까지 탐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저 우주 건너편에서 거대한 존재 한 마리가 여러 명의 존재들에게 쫓기고 있는 게 보였다·
콰지지지직!
그것은 위성만큼의 크기를 가진 딱정벌레였다·
황금빛 뇌전을 뿌리는 딱정벌레는 내 방향으로 날아오며 나를 향해 턱을 들이밀었다·
그대로 쪼개고 가려는 모양·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등 뒤로 삼태극이 떠올랐다·
위이이잉!
삼태극이 회전을 시작했고 나는 번개의 딱정벌레에게 손을 뻗었다·
콰지직!
딱정벌레의 턱이 내 손에 잡혔다·
나는 딱정벌레를 쥔 손에 힘을 주었고 얼마 후 딱정벌레는 그대로 터져 죽어 버렸다·
콰아앙!
딱정벌레가 터져 죽은 자리에선 자그마한 금색 조각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금색 조각을 잡았다·
동시에 나는 인력을 통해 ‘다음 층으로 나갈 수 있게 됐음을’ 인지했다·
아무래도 이놈이 이 층의 주인 같은 존재였던 모양·
그리고 내가 층의 주인을 잡았을 때였다·
파바바바밧!
내 주변으로 광대한 존재감을 지닌 존자들이 늘어섰다·
그들은 총 21명·
나는 그중에 있는 녹색빛의 존재를 보며 살짝 웃어 보인 후 나머지 존자들을 둘러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불초 후배 최근 광한계에서 탄생한 인간족 출신 쇄성기 존자 서은현이라 하옵니다· 성사께 말씀드리고 이곳까지 뇌성해 공략을 위해 왔사오니 부디 도움을 드릴 수 있게 해 주시지요·]
그리고 내 정중한 인사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이 추잡한 놈· 네가 그 인간족 미치광이냐!?]
[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장목족으로 보이는 쇄성기 존자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상태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잘 왔다! 이 잡놈의 자식! 네가 감히 나의 성사님을 범했다는 놈이렷다! 본체를 발기발기 찢어 온 천지에 흩뿌려 버릴 것이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도우· 아니 그리고 백운 성사가 왜 ‘당신의’ 성사입니까?]
[닥쳐라! 너 같은 치한에게 알려 줄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 광한계의 존자들이여 모두 저 악종 놈을 공격하시오!]
그 말에 광한계의 여러 존자들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이보시오 도우들 왜 저 장목족 도우의 말에 따르는 것이오? 나와 척지며 여기서 정력 소모를 해 봤자 의미가 없소· 빨리 다음 층을 공략이나 하는 건 어떻소?]
그러나 황룡족 존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발뺌할 것 없네 악종이여· 그대가 성사를 고문하고 혈음계의 주인이 광한계에 강림할 빌미를 제공했단 것쯤· 이미 모두가 진즉에 전해 들었다네· 그대는 광한계의 배신자나 다름없어!]
그의 옆에 있던 투귀족의 존자 역시 근육을 부풀리며 웃었다·
[성사를 고문했다니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거기다 심족이라니!!! 벌써부터 싸웠을 때 얼마나 흥분될지 기대가 되는걸····]
아무래도 나와 그냥 싸워 보고 싶어 하는 자·
그리고 내가 성사를 고문하고 혈음이 강림할 빌미를 제공한 것에 불만을 품는 자들로 나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흐흐 광한계 놈들과 손잡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인간족 놈을 합법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동참하지····]
진마계의 존자들 역시 합류해 나를 둘러싼다·
[우리 고력계도 놈에게 볼일이 있다· 놈에게 왜 해린 성사의 [추방령]이 붙어 있는지 알아봐야겠군· 제압을 도운 후 녀석의 심문은 우리 측에서 맡지·]
그리고 고력계의 존자들도 어이없는 이유로 나를 둘러쌌다·
거기에 더해 광한계 존자들은 멀뚱히 보고만 있던 나머지 존자들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자금계 도우들 그리고 산수 도우들! 지금 이 존재를 추포하는 데에 협력하신다면 대가를 지불하겠소! 우리를 도와주시오!]
자금계 존자들과 산수 출신 존자들 역시 나를 둘러싼다·
나는 주변을 둘러싼 존자들을 둘러보았다·
광한계 존자 5인·
진마계 존자 3인·
고력계 존자 4인·
자금계 존자 4인·
성계에서 돌아다니는 산수 출신 존자 4인·
총 20명의 존자들이 나를 둘러싼 꼴이 되었다·
나는 존자들을 둘러보던 도중 합공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유일한 존자·
함천존자 장익을 보며 물었다·
[스승님 제자 서은현이 스승님을 뵙습니다·]
[오냐·]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합공하시지 않으십니까?]
존자들은 내가 장익을 스승이라 부르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모두 장익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익은 관심 없다는 듯 우주공간에서 드러누우며 눈을 감았다·
[안 그래도 네가 내 수제자들을 싸그리 죽이거나 가사 상태로 만들었다 전달은 받았다·]
[····]
[일단 기다려라· 지금은 이번 층을 공략하느라 기운이 빠져서 나와는 만전의 상태로 겨룰 거니까 그리 알고· 난 좀 자고 있으마· 모두들 내가 일어나기 전까진 알아서들 하고 있어라·]
장익은 그렇게 말한 후 주변의 환경을 조율해서 그의 주변으론 누구도 범접치 못하게 한 후 그대로 잠들었다·
존자들은 다행이라는 눈빛으로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함천이 배신하지 않아 다행이군·]
[그도 네 편을 들지 않는구나 인간 놈아·]
[네 운명을 원망해라·]
그들이 점차 포위망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히죽 웃었다·
[저런 오답이다·]
[오답?]
나는 저들의 대표 격인 듯한 황룡족 존자에게 말했다·
[장익이 너희를 배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희와 합공해서 나를 압박하게 했어야지·]
[하 네놈 스승이라고 뭔가 믿는 수가 있는 모양인데····]
[자 됐다 됐어· 잡담은 이제 그만하고··· 한번 덤벼나 봐라·]
나도 지금까지 내 실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좀 궁금했다·
내가 쇄성기에 오르고 상대한 상대는 전부 혈음 검극천군 광한계와 동화한 백운 성사 개열기 준선 진루곡 같은 나보다 한참은 위의 존재들이었다·
‘내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겠어·’
그런 의미에서 20인의 쇄성기 존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잘 나타나 주었다·
그리고 내 선언에 어이없어하던 존자들 중 자금계의 한 존자가 노갈성을 지르며 내게 덤벼들었다·
[건방진 놈!]
무색유리검이 내 체내에서 튀어나왔다·
우드득!
파려도해성에 의해 무색유리검을 쥔 오른손이 유리진화로 변화하며 무색유리검과 오른손이 동화되었다·
삼태극이 나타났고 나는 검과 동화된 채 그대로 검을 올려 베었다·
단악검법
등맥
투쾅!
삼태극의 기운이 검에 실리며 자금계 존자는 허공을 찢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콰앙 콰앙 콰앙!
자금계 존자는 다음 층을 뚫고도 계속해서 다음 층들을 뚫고 올라갔다·
96층 97층 98층 99층이 한 번에 뚫려 버렸다·
총 4개 층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들이 95층으로 내리쬐었다·
그 존재감의 주인들은 모두 함부로 층에 구멍을 낸 내게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나는 유리진화를 몸에 두르며 본체를 꺼내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파려도해성(玻瓈蹈海成)
전개(全開)
본원성(本源星) 투법형(鬪法形) 개방
본원성이 싸우기 적합한 형태로 변화한다·
유리진화가 본원성 전체를 뒤덮었다·
나는 인력을 뒤틀어 본원성에 있던 홍범과 서란을 적당한 이공간에 넣어 준 후 몸을 변형시켰다·
화르르륵!
유리진화가 본원성 전체를 불태우며 형태를 다시 잡기 시작했다·
본원성이 압축되며 ‘인간 서은현’의 모습으로 변했다·
유리진화는 내 몸 전부를 덮으며 마치 신선의 의복처럼 변했고 불꽃의 일부는 등 뒤로 걸쳐져 날개옷이 되었다·
: : 덤 벼 라 : :
의식이 가속하며 의식 일부가 선역에 도달했다·
유리의 불꽃 속에서 나는 존자들을 광오하게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