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자(1)
[···쯧·]
가만히 뇌성해를 내려다보던 백운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던 대해천군의 기운이 움직이며 뇌성해 전체를 뒤덮었다·
쏴아아아아!
염해존자 육증이 사용했던 요술과 같이 뇌성해 전체가 물로 뒤덮였다·
동시에 어마무시한 수압이 뇌성해 전체를 압박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뇌성해는 딱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천상금뢰지체를 사용한 건가· 알뜰하게도 잘 틀어막았군·]
백운 성사는 짜증스레 혀를 차며 말했다·
[존자들은 들어라· 뇌성해 공략은 이제 의미가 없다· 이제 종말을 견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남은 만 년간 다섯 중경계의 성사· 존자· 그리고 다섯 중경계의 힘을 하나로 엮어 종말에서 견딜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일월천역의 모든 존자 수는 스물일곱· 그중 우리와 함께하는 존자는 이번에 새로 등극한 서 존자까지 합해 스물여섯이다· 성사 다섯 존자 스물여섯· 총 서른한 명만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종말 기간에 대피한 후 종말 이후 다시 창세가 이뤄지면 그때에 바깥으로 나와 각자 종족을 다시 번성시키도록·]
그녀의 말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나를 비롯한 몇몇은 발끈했다·
[잠깐 성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만 대피한다니요?]
[종말에서 버틸 수 있는 대피 공간은 다섯 중경계의 힘을 엮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아(亞) 선계(仙界)다· 그 공간에서는 개념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지· 스스로가 별이 되어 개념적인 존재에 반쯤 발을 걸친 너희 존자들이기에 너희라도 대피가 가능한 것이야· 나도 다 같이 종말을 피할 수 있다면 나쁠 건 없지만 대피 공간에선 일반적인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다·]
[그런··· 대피 공간을 조금 더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바꿀 순 없는 겁니까?]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이 정도는 되어야 종말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게다· 솔직히 이 정도조차 너희 존자들이 버틸 수 있게 조건을 완화한 대피 공간이다· 우리 성사들은 크나큰 희생을 치르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중경계를 통해 종말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만 너희를 위해 굳이 이런 배려를 해 주는 것이니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백운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게 있겠느냐· 양수진이 출입구를 틀어막아 놓아서 다른 천역으로 갈 수도 없다· 양수진 덕에 타 천역의 진선의 힘을 빌리기도 힘들다· 개열기 진인들도 자기 생존에 신경 쓰기에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뭘 더 어찌하겠느냐·]
[····]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라· 다섯 중경계와 다섯 성사 그리고 모든 존자들이 힘을 합해 대피 공간을 만들면 그 대피 공간의 외곽에는 각자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넣을 수 있게 해 주마· 물론 그래도 생존율은 1할··· 아니 5푼을 넘지 않겠지만·]
그 암담한 확률에 절로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마· 너희도 하루빨리 돌아오거라·]
백운은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왼쪽 어깨의 검흔을 통해 광한계로 귀환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툭툭 털며 뇌성해를 바라보았다·
‘···전명훈····’
연위의 부탁이 떠올랐다·
전명훈을 비호해 달라던 그녀의 간청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전명훈을 지키지 못했다·
[이보게· 서 존자· 그대도 일단 광한계로 귀환하지 그러는가· 성사님조차 방법이 없다면 뇌성해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네·]
규월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내 옆에 와 말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없네· 성사께서 단언하셨네·]
[규 도우는 증룡진인의 힘을 끌어올 수 있잖습니까?]
[진인의 힘은 물론 성사께서 끌고오신 [위대한 분]의 힘조차 통하지 않았네· 그런데 뭘 더 한단 말인가·]
월진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정 남겠다면 말리지 않겠네· 하지만··· 별의 길을 이용할 수 없는 이상 중경계로 돌아가는 데에만도 최소 1000년은 걸린다네· 그러니 하루빨리 중경계로 돌아가야 해·]
[···별의 길을 이용할 수 없단 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곳으로 오며 별의 길을 통해 왔기에 의아함에 질문했다·
월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별의 길은 결국 고력계와 연결되어 있지· 그리고 그 고력계로 들어가는 길목이 바로 별의 길의 끝자락· 평운대륙이라는 대륙이 있는 부해계라네· 편의상 ‘평운계’라고 부르지·]
[예 어떤 곳인진 압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평운대륙에서 있었던 함천존자와 고력계 음귀존자의 싸움의 잔해는 봤나?]
나는 평운계에 있었던 거대한 거북이의 사체가 변한 그 산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뇌성해 원정을 떠났던 그 당시· 우리는 본래 별의 길을 통해 뇌성해로 가려고 했네· 그 길이 가장 빠르니까· 하지만··· 음귀존자에게 ‘뭔가’가 씌였던 것이 문제였지·]
[예? 뭔가가 씌였다고요?]
[그래· 선수 음귀현무의 진혈을 타고난 음귀존자는 강신이나 빙의에 내성이 상당했으나··· 어째서인지 [그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음귀존자에게 빙의하여 별의 길을 아예 끊어 버리려 했다네· 그리고 종말을 막으려 원정을 나가는 우리를 전부 죽여 버리려 달려들었지·]
[···!]
어느덧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옆으로 다른 존자들도 다가왔다·
그중에는 장익도 있었다
[완전히 다른 놈인 줄 알았다· 쇄성기 초기밖에 안 되는 놈에다가 방어형 신통을 주로 익힌 존자였기에 우리 모두 놈이 미쳐서 달려들었어도 금방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장익은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놈은 괴물이 되었었어· 아니 놈에게 씌인 [뭔가]가 놈을 괴물로 만들었단 게 맞는 표현이겠지· 모든 존자들이 나와 음귀존자를 평운계에 가둔 후 평운계 바깥에서 법칙을 조작해 ‘평운계 안쪽에서는 수선으로 쌓은 힘이 쓰레기나 다름없어지게’ 만들었다· 나야 수선으로 힘을 쌓지 않았으니 전력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놈은 어쨌든 지족 수행으로 쇄성기에 다다랐으니 놈의 수행을 봉인하기 위해 걸어 놓은 수법이었다· 그렇게 내가 놈을 제압하고 나면 명귀계 녀석들이 나서서 음귀존자에게 씌인 존재를 제령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뭔가 설명을 하려던 장익은 문득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전에 네놈이 싸우던 걸 보니 네놈 천지쌍수로 쇄성기에 올랐던데·]
[예 맞습니다만····]
[아니 그럼 내가 왜 입 아프게 설명해 주고 있어야 하는 거냐? 네가 직접 봐라!]
[예?]
내가 당황해하자 월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 존자는··· 쇄성기에 오른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를 수도 있겠군· 안 그래도 보통 천지쌍수 수행자들은 절대다수가 천족의 시야에 더 익숙하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쇄성기에 오른 후 지족의 시야를 최대한도로 발동해 본 적이 있는가?]
[으음 딱히 없습니다만····]
[그럼 잘됐군· 지족의 시야를 효율적으로 보는 법을 알려 주겠네· 자 본존을 따라 해 보게·]
우웅!
월진의 눈에 태극(太極)이 떠올랐다·
나는 그를 따라 지족의 시야를 끌어 올렸다·
[지족의 시야는 보통 천지영기를 보는 눈이라고들 하지· 천지영기의 정확한 흐름을 읽어 인근 공간의 정보를 읽어 들이는 눈··· 솔직히 말해서 이 지족의 눈이란 건 동물의 육감을 한껏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네· 합체기까지는 말이지·]
우우웅!
온 우주가 태극으로 물들었다·
모든 것에 태극이 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합체기까지도 봤던 거지·’
나는 온 우주에 흐르는 태극의 정보를 읽어 들이며 지족의 감각을 더욱더 강화했다·
그리고 그런 내 귓가로 월진의 설명이 더 들어왔다·
[하지만··· 쇄성기부터는 드디어 지족의 눈 역시 천족의 눈처럼 개화(開花)하게 된다네· 천족은 연기기 7성부터 인력을 통해 천기를 읽었듯이··· 지족은 폭발을 통해 태극을 거슬러 갈 수 있게 된다네·]
츠츠츠츠츠!
점차 내 감각이 천지영기의 본질 그 자체에 맞닿는다·
‘이건····’
나는 지족의 감각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기의 계위·
혹은 물질계라고도 불리는 이 세계 전체가 크게 변하는 걸 인식했다·
‘이것이··· 기의 계위의 본질·’
쿠구구구구!
폭발!
끊임없는 폭발이다·
모든 존재들은 이 세계 안에서 끝없이 폭발하며 주변으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동이 미숙한 지족의 감각으론 ‘태극의 형상’으로 보여 왔던 것이었다·
우우우웅!
나는 파동을 통해서 이 우주 전체가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법칙이 성립하는지를 이해했다·
동시에 연기기 3성의 십이지율·
천지영기의 파동 12종류를 각인하며 수련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제서야 이해했다·
‘이것이··· 연기기 3성의 진정한 의미였군····’
내가 파동으로 이뤄진 세계를 감상할 때였다·
익숙한 파동 하나가 내게 전달되어 왔다·
‘이게 월진의 파동인가·’
나는 그 파동에 내 정신을 접했고 동시에 월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들어왔군· 그럼 이제··· 함천존자의 파동을 찾아보게·]
[···찾았소·]
난 장익의 파동을 느꼈다·
[그 파동에 자네 정신을 접속시키게· 자네 자신 역시 일종의 파동임을 알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우우웅!
내 영혼에서 파동이 움직였다·
‘이게 의식영역의 진짜 모습이군·’
영혼의 파동 의식영역을 움직여 장익의 파동에 내 정신을 동화하였다·
[무슨 기분이 드나·]
[마치··· 뭔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에 내 팔을 집어넣은 기분이외다·]
[책이라고 생각해 보게·]
[책?]
[그래··· 책· 책의 한 부분에 자네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해 봐·]
[했소·]
월진의 정신이 나를 이끈다·
나는 그의 인도대로 의식을 움직였다·
[기(氣)란 결국 폭발· 그리고 폭발이란 끊임없는 생명의 흔적 그 자체· 그러므로··· 폭발의 본질에 다가간 자는 생명의 흔적· 역사(歷史)를 열람할 수 있는 권능을 얻게 되는 걸세·]
‘아··· 알겠다·’
사실 월진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쇄성기 존자로서 몇 년쯤 살다 보면 자연히 깨닫게 되었을 권능일 터였다·
그만큼 이 감각은 내게 있어 자연스러웠다·
촤라라라락!
마치 책장을 넘기듯이 나는 파동의 결을 역행해 갔다·
수십 수백 개의 장면과 장면이 내 눈앞을 스쳤다·
나는 이 광경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당시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에 매번 보는 것이니까·
장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나는 장익이 보여 주려던 그 장면에 도달하였다·
‘이것이··· 진짜 지족의 감각···!’
천족이 운명을 읽는다면 지족은 역사를 읽어 내는 존재들인 것이었다!
촤라라락!
나는 장익과 음귀존자라는 존재가 싸우던 그때 그 당시에 도달했다·
과거의 두 존재들이 싸우던 평운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장익이···!’
장익은 피 칠갑을 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눈앞의 검은 존재는 바위 위쪽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음귀존자··· 현무진혈을 타고났다고 들었는데 지족인 주제에 화형한 상태로 장익을 몰아붙였단 말인가?’
과거의 장익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어찌··· 수선의 힘을 억제하는 진 속에 들어오고서도 화형한 채로 나를 밀어붙이는 거요? 그리고 도대체 왜 우리가 뇌성해로 가지 못하게 막는 거요·]
그리고 어둠 속에 쌓인 누군가가 대답했다·
[존재는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뭐요?]
[진선(眞仙)은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었을 때· 선수(仙獸)는 모두에게서 잊혀졌을 때 죽는다고들 하지· 하지만 둘 다 틀렸어· 이 세계에 죽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죽어도 죽어도 다시 명계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서 운명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삶이란 말이지· 결국 우리는 죽고 싶어도 절대 죽을 수 없는 굴레 속에 있는 거란 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군· 그게 음귀현무의 몸을 차지하고 우리를 막는 이유와 무슨 상관이오!]
[진정한 의미의 해방· 종명(終命)에 도달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건 빛이 아니라 저승이다·]
어둠 속의 존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기세에 장익은 뒷걸음질을 쳤다·
불길한 파동이 그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장악했다·
[진정한 마음의 극의는 모두가 얻을 수 있지· 죽음이 곧 마음이기에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면 마음에 극한에 도달할 수 있어· 그렇기에 심족이란 부질없고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란 거다· 하지만 동시에 그놈의 수레바퀴 때문에 진정으로 죽을 순 없으니 원통한 존재이기도 하지·]
쿠우웅!
그가 손을 뻗는다·
아무런 초식도 의미도 깃들어 있지 않는 그냥 손을 뻗는 동작·
그러나 장익은 그 동작을 향해 육선 주선 절선 함선·
네 개의 멸천도를 동시에 휘두르며 겨우겨우 그 자리에서 버텼다·
드드드드드!
‘저건 도대체····’
법력을 쓰지 않았다·
기(氣)도 쓰지 않았다·
선술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저 정체불명의 존재는 그냥 손을 뻗는 것만으로 정체 모를 권능을 써서 장익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부질없고도 원통한 존재여····]
그는 장익을 바라보며 어쩐지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점차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북이었다·
전설상의 음귀현무의 선수진혈을 물려받은 음귀존자가 본체를 꺼냈다·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
푸확!
장익이 음귀존자가 쏘아 낸 불길한 파동을 베어 낸 후 허공으로 뛰어올라 네 자루의 박도를 하나로 합쳤다·
[멸(滅) 천(天)!]
장익이 가진 혼신의 힘을 다한 베기가 음귀존자에게 내리꽂혔다·
음귀존자는 어째서인지 장익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장익에 의해 그대로 껍질이 쪼개져 죽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서도 별의 길의 열쇠로 보이는 녹색 옥패를 장익의 허리춤에서 뜯어내 꿀꺽 삼켰다·
그런 후 그는 별의 길 전송진이 있는 자리를 그대로 덮어 버리며 눈을 감았다·
장익은 피 칠갑을 한 채로 음귀존자의 앞에 떨어져서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네놈은··· 네놈은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도대체 왜 우리의 동료인 음귀의 몸을 빼앗고 우리를 그냥 좀 살아 보고자 하는 우리를 이렇게 방해하는 거란 말이냐!]
그는 느릿하게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리고 네 동료의 몸을 빼앗은 게 아니다· ‘음귀존자’는 결국 처음부터 나의 다른 인격일 뿐이었으니··· 자세히 알 필요 없다· 그리고 죽음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 노예야··· 어차피 일월천역의 존재들은··· 모두가 살아도 산 게 아닌 노예이기 때문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닌 것과··· 죽은 것이··· 무엇이··· 다름···이더···냐····]
나는 어째서인지····
이 정체불명의 존재가 ‘귀찮아한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죽는 걸 귀찮아한다고···? 본인이 음귀존자의 다른 인격이라고 했으면서···?’
그렇게 음귀존자는 죽었고 그 자리에는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하늘을 보며 울부짖는 장익만이 남게 되었다·
장익은 씨근거리며 평운계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여기까지가 장익의 기억이었다·
‘···도대체 음귀존자에겐 어떤 존재가 씌었던····’
그리고 지족의 감각을 해제하려 했던 나는 어째서인지 감각이 풀리지 않는단 걸 인지했다·
[···어?]
왜인지 내 정신은 죽어 버린 음귀존자의 시체 앞에서 붙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때·
꿈뻑·
죽은 줄 알았던 음귀존자가 눈을 떠 나와 눈을 마주쳤다·
[···!]
나는 머리가 하얗게 굳는 것 같은 충격에 헛숨을 들이켰다·
깜빡-
눈앞의 거대한 거북이의 형상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음귀존자의 화형체가 뒷짐을 진 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장익의 앞에 있을 떄와 달리 그는 불길한 기운으로 몸을 덮고 있지 않아서 형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진체에 오히려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의 모습은 흑린어령문 현귀(玄龜)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이번 대의 금신(金神)이겠지 아마· 보통 놈들이나 은람 정도가 무공을 극한으로 익히니 말이야·]
두근 두근 두근····
나는 심장이 없음에도 심장이 떨리는 기분을 느끼며 현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내리깔았다·
불길하다·
불길하고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
나는 여지껏 이 정도로 불길한 존재를 만난 적이 없었다·
[방금 물었었지·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고· 어떠냐 금신·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 부질없고도 원통한··· 찌꺼기야·]
나는 어쩐지 아득한 절망감이 느껴지는 현귀의 앞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귀는 우리의 천적(天敵)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현귀는 나를 보며 가만히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空虛)!
끝없이 존재를 빨아들이는 수렁!
[허억··· 헉··· 헉····]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았다·
‘회 회 회 회귀(回歸)의 권능이··· 뒤흔들리고 있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죽음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쩌면 우리 종명자들의 근원 그 자체와 큰 연관이 있는 존재다·
····
[그렇군· 당신은 우리의 근원과 연관이 있는 존재야· 그렇지?]
나는 그 사실에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현귀를 올려다보았다·
[흠?]
현귀가 눈매를 꿈틀거렸다·
[말을··· 정정하겠다· 당신의 앞에 도달하겠다· 도달하겠어! 도달할 수 있다!]
나는 희열과 안도 극한의 기쁨에 차올라 그를 직시하며 광소를 터트렸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있을 테지!? 그렇지!? 자아 날 죽여 봐라· 지금 당장 날 죽여 보란 말이다!]
현귀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놀랍군· 역대 어떤 금신도 내 앞에선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거늘··· 완벽한 상하관계가 나와 금신이거늘· 너는 조금 특별하구나·]
그는 얼굴을 쓸었다·
그와 동시에 현귀의 모습이 변했다·
그는 검은 무복을 입은 채 꽁지머리를 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빛을 제대로 뛰어넘기 위해 오늘 네놈의 힘을 강탈해 갈 생각이었다만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더 여물 기회를 주지·]
척!
소녀가 자세를 잡았다·
[무(武)의 극한(極限)을 보여 주마· 잘 보고 도달해 봐라·]
한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그녀는 춤을 추었다·
‘저것이····’
세상 모든 것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녀와 그녀가 그려내고 있는 것뿐·
그녀의 모든 동작과 동작이 이어지며 원을 그린다·
동시에 그녀는 춤을 추며 그 원과 녹아들어 갔다·
삼라만상에는 결국 원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원 안에서 더없는 신성함과 불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캉-
마지막에 이르러··· 원이 깨져 버렸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공허(空虛)!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無意味)의 극의!
‘이것이····’
무의 극한·
무극(武極)의 일부이다·
파사사사사사-
그와 동시에 내가 지족의 감각으로 엿보던 장익의 과거 속 평운계가 조각조각 흩어져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마침내 지족의 감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짜악 짜악 짝!
누군가가 강하게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장익이었다·
[서은현 정신이 드느냐! 자는 척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거라!]
[···일어났습니다·]
짜악 짜악 짜악!
[정신 차렸습니다· 그만 때리십시오·]
나는 머리를 부르르 떨며 어쩐지 허무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렇구나····’
혈음은 내가 오각을 깨달았다고 했다·
명계를 느끼는 명각(冥覺)·
원천강을 느끼는 성맥안(星脈眼)·
화계를 느끼는 태동(胎動)·
성계를 인지하는 기초적인 식(識)·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어 온 계위식별 등의 감각 등····
내가 가진 감각은 네 개였다·
계위식별 등의 능력은 식(識)에서 파생된 것이니 사실상 하나였고 나는 어째서 내가 다섯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을 얻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이해했다·
김영훈에게 재능을 내려 주는 감각·
내가 무(武)를 궁구하며 얻어 낸 심족으로서의 극의·
편의상 지각이라 불러 왔던 그것은 사실 공허간에서 내려오는 감각이었다·
지각이 아니라 허각(虛覺)이라고 불러야 옳으리라·
주르륵····
나는 문득 눈물이 나는 걸 느꼈다·
장익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뭐야 왜 우는 거냐 이놈? 뺨을 맞아서 아픈 거냐? 이런 녹소족 계집아이 같은 놈을 봤나!]
[놔두시오 함천존자· 표정을 보아하니 좋아하던 자가 내게는 아무런 관심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표정이군· 나도 그 마음을 알지·]
도천존자 극광은 어쩐지 이해한다는 얼굴을 했고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방금 전 무(武)의 신(神)을 만나고 온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왜 우는 거냐? 그런 존재를 만났으면 좋아해야 하는 게 아니냐?]
장익은 의아해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무의 극한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끔찍한 것인지를 미리 봤기 때문입니다·]
내가 추구해 오던 무(武)·
그 무의 극한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虛無)에 불과하단 걸 알았다·
이 세계의 무신(武神)이란 공허를 관장하는 존재다·
그리고 나는 그 무신에게 직접 무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확언을 받아 버렸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