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자(2)
내 말에 장익은 눈을 찡그렸다·
[···너 내 기억 속에서 만난 존재와··· 혹시 접촉했던 거냐?]
나는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익은 진중하게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빨리 털어 버려라· 네놈 기억 속에서 만난 존재가 무신이리라고 어찌 확신하느냐·]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에 봤던 그것은····]
나는 몸이 덜덜 떨리는 걸 느끼며 간신히 자세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자세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모든 무공은 마지막에 보았던 그 신성하고도 불길한 원에 비하면 너무나 하잘것없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단련해 온 무공이 쓰레기 같게 느껴져서 이 이상 무공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장익은 내 심상을 읽었는지 침음성을 흘렸다·
[···일단 지금은 좀 휴식이 필요한 것 같군·]
그와 함께 장익은 내 머리통을 잡고 가까운 별로 향했다·
다른 존자들 역시 장익을 따라왔다·
장익이 온 곳은 뇌성해 인근의 별·
함진이 예전 잠시 들렀다가 아내를 수십 명이나 만들었던 그곳이었다·
“쯧· 대화가 안 통할 정도로 심상이 뒤흔들리는 중이군· 뭔가 충격요법이라도 줘서 이놈을 좀 깨워 놓아야 할 텐데····”
대기가 있는 행성에 진입한 그는 육성으로 말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때 진월령이 다가와 말했다·
“그런 거라면 아주 쉽지· 어이 인간족 존자· 나와 교미하자·”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그대로 살포시 후려쳤다·
꽈르르릉!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혀 별의 용암층까지 쑤셔 박혀졌다·
별 곳곳에 지진이 일고 화산이 분화하며 해일이 일어난다·
“흘러 빠진 놈 같으니! 자아 내가 제대로 교육을 해 주마!”
그녀는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으나 장익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저 하늘로 던져 버렸다·
번쩍!
장익의 몸에서 수십 자루의 박도가 튀어나오는 듯하더니 별 곳곳으로 흩어져 재해들을 틀어막았다·
쿠궁!
그 모습을 보던 규월진은 한숨을 쉬며 발을 굴렀다·
지각이 융기하며 나는 다시 용암층에서 빠져나와 지표면에 도달했다·
“미치광이 근육뇌 종족 같으니라고·”
장익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좀 제대로 된 해결책을 가진 놈은 없나?”
그는 주변을 노려보며 말했고 광한계 존자들을 제외한 모든 존자들은 장익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그냥··· 조금 혼자 있고 싶군요·”
“흠····”
장익은 잠시 내 심상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다· 마음대로 하거라· 다만 광한계로는 꼭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며 물었다·
“별의 길에 대해서 방금 전까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만··· 너 말이다· 지난번 이곳을 올 때 별의 길을 이용하지 않았더냐?”
장익의 말에 다른 존자들이 일제히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말이 정말인가 서 존자?”
“그런 말도 안 되는! 도 도대체 어찌 그 길을 이용했단 건가!”
나는 힘없이 품에서 녹색 영패를 꺼내 주며 평운계에서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말해 주었다·
“···그렇군· 우리가 떠난 지도 시간이 지나서 음귀존자가 틀어막아 놓았던 별의 길의 봉인이 약해졌던 게야·”
“봉인과 함께 음귀존자가 품고 있던 기운도 전부 흩어져서··· 이전에는 모두가 힘을 합쳐 뚫으려 했던 그의 몸 역시 쉽게 뚫린 거군·”
“이렇게 되면 별의 길을 통해 돌아갈 수 있겠구려!”
존자들은 모두 함께 환희에 찬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해왕족 소속이라는 위무천은 껄껄 웃으며 내게서 옥패를 받아 든 채 말했다·
“아주 고맙네 서 존자· 서 존자가 아니었다면 중경계로의 귀환이 천 년은 늦어질 뻔했어· 그대는 존자들의 천 년을 단축해 준 셈일세· 차후 그에 대한 배상은 해 주도록 하지· 별의 길을 통하면 고력계로 며칠 안에 갈 수 있으니 자네에게 찍힌 추방령 역시 성사에게 직접 여쭈면 될 테고 말이야·”
장익은 내게 와서 말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다· 그리고 별의 길도 끝자락에서 500년간은 활성화시켜 놓으마· 그리하면 그 기간 동안은 저 옥패가 없어도 별의 길을 이용해 고력계로 올 수 있을 거다· 그 기간 안에 부디 마음의 평정을 찾기를 바라마·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서던 찰나 잠시 멈칫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광한계로 오면 네가 봤다는 그 무의 극한· 내게도 꼭 재현시켜 주길 바라겠다·”
“···예· 그러도록 하지요·”
나는 하늘로 올라가려던 존자들 중 진마계의 흑연존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흑연존자 오무·”
그는 내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왜 그러시오 서 존자?”
“이전에 본 존자를 잡아 뜯었던 것이 귀하였었지·”
그랬다·
흑연존자 오무는 일전 내가 장익과 뇌성해에 방문했을 당시 내 몸을 잔혹하게 잡아 뜯으며 잡아먹었던 존자였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 당시 일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소· 일단··· 우리 흑연족은 본래 혈음계 천마 출신이오· 다만 혈음의 지배를 거부하고 뛰쳐나온 종족일 뿐이지· 어쨌든 본디 천마였었기에 본능적인 흉폭함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그 당시에 서 존자를 보고서 흉폭함을 참지 못했었소· 그때의 일에 대해선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차후 배상도 해 드리겠소·”
“···알겠소· 사과를 받아들이겠소· 그리고··· 탐성존자라 하셨던가·”
나는 탐성존자 요운을 보았다·
“기익족 출신이시라 들었소· 내 진마계 기익족 중에 아는 아이가 있어 그런다만 그 아이를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소· 그리고 그 애의 신랑 되는 각주족 마족도 있는데 기왕이면 그 아이도····”
나는 수인과 홍연에 대해 요운에게 부탁했고 요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이만 가 보겠다· 잘 있어라·”
뇌성해 원정을 온 존자들은 그렇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자리에 남은 것은 함천존자 장익 그리고 도천존자 극광이었다·
“뭘 하시오 함천?”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질척질척한 뭔가가 혼에 들러붙는 느낌인데··· 흐음··· 일단 광한계에 가서 알아보는 게 낫겠어·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지 모르겠군·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정체를 잡을 수 있을 것도 같다만····”
그는 박도를 소환한 채 허공 어딘가를 노려보며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극광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나중에 하시구려· 성사께 혼을 한번 봐 달라고 하는 게 좋겠소·”
“···알겠다· 일단 빨리 가지·”
장익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다른 존자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 있던 극광은 어쩐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삶의 목적이란 게 꺾였을 때의 그 마음은 이해한다· 네놈은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지만 어쩐지 네가 처한 상황은 내가 예전에 처했던 상황과 비슷해서 조언을 안 줄 수가 없군·
삶의 목적이 무의미해졌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라· 상대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단련하며 상대와 같은 시야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라·
그렇게 상대와 같은 시야에 올라서 그와 같은 시선을 공유할 때·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너는 아직 시작도 안 한 놈이니 벌써부터 절망할 것이 없다!”
나는 바위에 몸을 기댄 채 극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좋은 말이군· 위로에 감사드리오· 그대가 말하는 그 ‘상대’는··· 백운 성사인가?”
나는 극광이 백운을 향해 보이는 태도를 생각해 보며 질문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그분과 나 사이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 벌써 수만 년째 노력 중이지· 그분은 나를 쳐다도 보지 않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합체기 대원만일 시절· 쇄성기 승급의식을 할 때도····
나는 진짜 그분의 가족이기도 하니 오히려 다른 장목족들보다도 훨씬 유리한 위치인 것을 생각하며 그 일념과 그 희망으로 내 본원성을 응집했다· 그 결과 나는 쇄성기 존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거지· 너 역시 목적에 의미가 없다 해도 앞을 보고 나아가라· 상대와 같은 시야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 이전에 거절당했던 것들은 전부 의미가 없으니까!”
“····”
분명 멋지고 꽤 위안이 되는 말이었지만 나는 중간에 이상한 말이 섞여 있단 걸 알았다·
“···백운 성사와 ‘진짜 가족이기도 하니’라는 건 무슨 말이오?”
“아 내 어머님의 할머님께서는 젊은 시절 백운 성사가 흘린 꽃가루를 받아 수분하셨다고 했다· 그 결과 내 어머님의 아버님께서는 성사의 맥을 이으신 성사의 자손이 될 수 있으셨지· 그러니까··· 백운 성사님은 내게 있어 너희 인간족의 명칭으로는 ‘외증조부’가 되시겠군·”
“····”
“····”
잠시 나와 그 사이에 아득한 침묵이 맴돌았다·
극광은 내 눈빛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뭐냐! 왜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냐· 너희 인간족 놈들의 항렬로 장목족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아라! 애당초 우리 장목족은 많은 이들이 암수 구분이 없고 너희 포유종족들과 부모 자식 선조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단 말이다!”
“····”
“이런 얘기는 내가 해 주는 놈들도 없건만 특별히 생각해 줘서 위로해 준 것인데 위로를 해 줘도 지랄이군· 성질 더러운 인간족 놈 같으니· 됐다· 난 가 보겠다!”
극광은 내 눈빛을 보며 짜증을 내고는 다른 존자들을 따라 별의 길로 올라갔다·
나는 얼마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얼굴로 극광이 올라간 자리를 올려보다 문득 깨달았다·
“···아·”
극광 놈의 얘기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충격으로 현귀가 보여 준 무의 극한의 충격에서 조금 빠져나온 것 같았다·
“···나도 참 제정신이 아니었군·”
방금 전까지 나와 치고받고 싸우던 존자들이 내게 갑자기 잘해 주며 극광 놈은 안 해 주던 얘기까지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꺼냈다·
강한 힘을 가진 나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나는 음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색유리검을 꺼내 바위에 걸터앉았다·
“근처에 있겠지· 나와라· 별 전체에 아심검을 난사해 버리기 전에·”
꿈틀 꿈틀····
내 앞쪽·
나무 아래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 같더니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흑색 장포·
흑색의 뿔·
그리고 주변으로 자연히 흩뿌려지는 음울한 영기·
“네놈이냐· 존자들이 나를 위로하도록 유도시킨 게·”
흑룡왕 현음의 얼굴을 한 그자는 그저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웃을 뿐이었다·
“후후 서 도우·”
“현음이 괴군에게 죽고 다른 곳으로 몸을 갈아탔다고 했는데··· 그걸 차지하는 데에 성공했나 보군· 서휼·”
“도우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혈음이 예상치 못하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 덕택에··· 분신인 현음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 거지요· 정말···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활약을 해 주신 서 도우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나저나 본존이 네놈 도우냐· 선배라 불러라·”
“····”
나는 유리진화를 뱉어 내서 주변을 둘러쌌다·
언제라도 놈이 헛수작을 부리면 무간성체의 힘으로 지옥의 고통을 맛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서휼을 경계하며 물었다·
“아무리 별을 세뇌시키고 성계 곳곳에 스며들었다 해도··· 어떻게 존자도 되지 못한 네놈 따위가 다른 존자들을 유도한 거지?”
“서란을 이공간에 숨겨 놓으신 걸로 압니다· 잠시 꺼내 주시면 어떻게 그런 짓이 가능했는지 바로 보여 드리지요·”
“그렇군· 현음인가·”
내 눈에 태극(太極)이 떠올랐다·
방금 전 월진이 알려 준 지족의 감각의 극한·
파라라라락!
마치 책장이 뒤로 넘어가듯 태극이 역전하며 서휼이 차지한 혈음의 분혼(分魂)·
현음의 과거가 읽혀져 들어왔다·
“왜 진선의 분체씩이나 되는 존재가 고작해야 합체기 용왕 따위인지 의문이었다만 그런 이유였군·”
나는 현음의 역사를 읽어 들이며 느긋하게 서휼의 앞에서 그의 수작을 파헤쳐 보였다·
“현음(玄陰)이라는 건 애초에 하나의 개체를 말하는 게 아니었어· 기문법재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개념적인 존재가 물질계에 존재의 일부를 화현한 것·”
기문법재가 운명이 재능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면
‘현음’이란 혈음이 선수 흑룡과 증룡의 역사(歷史) 일부를 엮어 만들어 낸 ‘정보의 집합’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집합이 물질계에 나타나 ‘흑룡족’이라는 생령들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개념체의 본 위치는 애당초 성계에 있었던 거로군· 그랬던 거였어·”
나는 서휼이 갑자기 성계로 도망친 이유를 알아챘다·
그리고 성계의 별들을 세뇌한 이유와
혈음이 성계에 있는 개열기 진인들을 계약으로 엮을 수 있던 이유·
공허간에 있던 그가 개열기 진인들에게 순식간에 ‘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던 이유를 알아냈다·
“별자리로군· 혈음은 선수 흑룡과 증룡의 역사를 모아 만든 정보체를 성계에 별자리로 각인시킨 후 그 별자리를 통해 진인들과 연결되어 계약을 한 거야· 그리고 그 별자리의 힘을 성계의 별하늘을 비추는 광한계에 강림시켜 흑룡족을 만들어 내고 그 흑룡족 중 조금 우월한 개체에 적당히 의식을 불어넣어 조종하는 것이 ‘현음’이었던 것이고·”
나는 서휼이 ‘현음’의 육신을 차지한 전말을 이해했다·
“[광명팔선 제 오좌 검극천군]이 자신의 권능으로 우주의 한 귀퉁이를 붕괴시켜 별자리의 힘을 일부 흩어 내고 혈음에게 타격을 입힌 틈에 네놈이 세뇌시켜 놓은 별들을 통해 현음을 삼켜 버린 것이로구나· 서휼·”
“후후··· 조금 무서워지셨군요· 서 도우·”
그는 태극의 문양을 눈에 띄운 나를 마주 보며 웃었다·
아무래도 검극천군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인 듯 크게 충격받는 것 같진 않았다·
“쓰면 쓸수록 익숙해지는군· 이 지족의 감각이란 것····”
나는 지족의 감각을 통해 서휼의 역사를 읽어 들이며 혀를 내둘렀다·
‘지족이 천족처럼 연기기 수준부터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쩌면 천족은 지족에게 크게 열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역사를 읽어 들이는 감각·
이 감각은 원하는 대상의 역사를 일부 읽어 들일 수 있다·
내가 장익에게 한 것처럼 장본인이 허락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서 역사를 관람할 수도 있었고 방금 서휼에게 한 것처럼 순식간에 필요한 정보만을 읽을 수도 있었다·
다만 만능은 아닌 것이 ‘자신이 관여되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는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이제껏 수계 광한계 고력계를 거쳐오며 서휼과 혈음 현음 자혼만천과 탁혼만천 등의 관계에 대해 조사해 왔으며 서휼이 현음을 먹어 치운 것 자체가 내가 벌인 일과 크나큰 연관이 있었기에 바로 숨겨진 전말을 읽어 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서휼 자체에 대한 과거는··· 잘 읽히지 않는군·’
그러나 ‘서휼’ 자체에 대한 과거는 읽히지 않는단 걸 눈치채곤 혀를 찼다·
놈의 탁혼만천 탓인가 검고 탁한 뭔가로 칭칭 둘러싸져 있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이게 아마 오혜서의 권능이었겠지·’
김연이 거대한 의식영역을 얻은 것처럼 그녀는 쇄성기 이상 지족의 감각을 얻은 것인 듯했다·
‘나보다 더 응용력이 높은 걸 봐선 아마··· 쇄성기보다 더 높은 경지 지족의 감각일지도 모르고· 귀혈진해광신인지 뭔지 하는 투귀족 전설의 체질 자체도 애당초 그런 쪽이었던가 보군·’
나는 오혜서의 권능에 대해 추측하며 태극을 띄운 눈으로 서휼을 쳐다보았다·
그는 빙긋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서 도우에겐 역시 못 당하겠습니다· 역시나 다 들켜 버렸군요· 후후···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서 도우라면 제가 현음을 먹어 치우는 데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신 분이시니까요·”
나는 투명한 눈으로 서휼을 바라보며 물었다·
“목적이 뭐냐· 왜 존자들을 유도해서 나를 일깨운 거지·”
그의 목적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네게 해가 되는 존재일 텐데· 오히려 존자들까지 어느 정도 유도할 수 있을 수준이라면 존자들을 이용해서 나를 더 몰아붙여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역사를 읽어 들여 놈의 진의를 알기 위해 놈이 빈틈을 드러내도록 질문을 던져 보았다·
서휼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정정할 게 있군요· 현음을 먹어 치운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아직 진정한 존자분들께 비할 정도는 아니랍니다· 단지 흑룡족과 해룡족 그리고 혈음계 천마들에 한해서만 강력한 권한을 얻었을 뿐이지요· ‘아직은’ 존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답니다· 존자분들이 서 도우를 위로한 건 애당초 존자들에게 서 도우와 관계를 돈독히 하겠다는 의도가 일부나마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이지요·”
“····”
나는 서휼어를 해석하며 동시에 지족의 감각으로 놈이 주는 정보를 통해 놈의 의도를 읽으려 해 보았다·
‘안 읽히는군·’
순 거짓부렁이다·
“그리고··· 서 도우께서는 제게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랍니다·”
“···뭐?”
나는 그의 말에 흠칫 놀랐다·
지족의 감각 심족의 감각을 통해 읽어 들인 결과·
서휼의 이 발언은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서 도우의 입으로 말해 주셨잖습니까· 서 도우께선 저를 지켜 주시는 방패와 같은 분이시니 오히려 서 도우는 제게 해가 되는 분은 아니시지요·”
‘···이건 또 안 읽히는군·’
하지만 미루어 짐작하자면 내가 혈음에게 검극천군을 투하한 것 때문에 이득을 보는 둥·
내 행동을 방패로 삼고 그 뒤에서 본인은 현음을 먹어 치우는 등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듯했다·
“···그럼 네가 나를 도와주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안 될 건 없지요· 제가 보건대 현재 서 도우께 가장 필요한 건 두 가지 같군요· 하나는 서 도우의 동료 중 하나인 귀도성모·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는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뇌성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뇌성해 안에 잡혀 들어가서 말랑한 발로 성 고문을 당하는 중인 서 도우의 동료 전명훈· 두 가지가 아닙니까?”
“···!”
나는 그의 말에 흠칫 놀라 물었다·
“···너 지금 전명훈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거냐?”
“후후 서 도우에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만··· 서 도우의 동료분들 중 저에게 감염되지 않은 분은 없답니다·”
“···[광명팔선 제 칠좌 대해천군]!”
“···! 크으으으윽!”
“끄으으윽···!”
나와 서휼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나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동료에게 함부로 탁혼만천을 심은 벌이다· 원래라면 아심검까지 먹이고 유리진화를 통째로 들이부었겠지만··· 오늘은 아무리 네놈이라도 참아 주지·”
나는 서휼에게 다가가 놈의 어깨를 잡고 짓누르며 물었다·
[말해라· 너는 전명훈을 뇌성해에서 탈출시키는 것을 도울 수 있느냐?]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이젠 그가 이전처럼 무섭고 거대해 보이지 않았다·
‘통제할 수 있다· 이 녀석 정도는····’
그러니 놈의 도움을 받는 것 정도는 괜찮다·
놈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전명훈이 망가지지 않게 최대한 빨리 빼 오도록 하자·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서란 같은 소리를 한다면····]
“귀도성모 전명훈을 구하신 후··· 뇌성해 시련의 탑· 양수진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107층· 그 너머를 확인해 주십시오·”
[뭐라?]
“도우께서 뇌성해 108층에 올라가 주신다면 저는 도우를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알겠다·]
나는 그렇게 전명훈을 구해 내기 위해·
뱀 같은 서휼과 다시 손을 잡았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