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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不許)(4)
그 찰나· 구명법기가 작동하며 막리가의 장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더욱 더 위쪽으로 솟구쳤으며·
내 검강은 그의 목이 아닌 가슴을 스칠 수밖에 없었다·
촤아악!
물론 그만으로도 그의 늑골을 자르고 간을 절반으로 만들며 폐 하나를 완전히 잘라버릴 수 있었으나·
막리가의 장로는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살아있었다·
“커헉! 꺼헉··· 끄르륵··”
입에서 피거품을 마구 뿜으면서도 흘러내리는 내장 조각을 법력으로 간신히 잡아두면서도·
그는 살아있었다·
“끄륵 끅··· 그 복장··· 청문세가···! 이 빌어먹을··· 청문세가와 손을 잡았구나 진가 놈들···!”
폐 한쪽이 완전히 으스러졌을텐데도 그는 법력으로 망가진 장기들의 역할을 강제로 대체하며 숨을 붙잡고 있었다·
가공할 생명력·
그러나 저대로 두면 법력을 완전히 소진해서 죽어버릴 터·
“끄륵··· 끄윽·· 청문가의 식솔이여 나를 살려주시오· 보 본가 차원에서 엄청난 보상을 드리겠소·
답천사막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현재 수많은 수도가문의 다수의 결단기 수도자들의 심기가 날카로워져있소···!
이백년 후 있을 대전쟁에 모두가 대비해야 하오··! 이런 상황에선 축기기 수도자 하나라도 중하외다··!”
“······”
난 말없이 검을 잡고 검강을 불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막리가 축기기 수도자가 이를 갈았다·
“이··· 멍청한! 뭐가 중한지도 모르고···! 벽라국 국경을 넘은 것은 본가 차원에서 제대로 배상할 것이오!
그 그러니 제발···”
부웅!
“이이익!”
그는 내가 날려보낸 검강을 회피하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대화가 통할 대상이 아닌 듯 싶자 막리가의 장로는 수결을 맺으며 가슴팍에서 빛을 뿜었던 구명법기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진원···! 생명력을 들이붓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일순간 파랗게 변하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결계의 어귀에 도달해 있었다·
‘저건 결단기 수도자의 비둔술!’
저 구명법기는 아무래도 결단기 수도자들이 허공을 날 때 사용하는 비둔술을 아래 단계 수도자가 흉내내게 해주는 듯 했다·
“빌어쳐먹을··! 이 내가 내가 이대로 죽어줄 것 같으냐! 어림없는 소리다!!”
콰아앙!
막리가 장로가 온 힘을 다하여 법술을 쏘아내자 결계가 유릿장처럼 박살나며 그가 나갈 틈이 생겨났다·
그 반동에 수도진을 만들었던 진가 연기기 수도자들이 모두 한 움큼씩 피를 토한다·
“도망 못 간다!”
“하 잡을 테면 잡아봐라!”
막리가 장로가 가슴팍의 구명법기를 움켜잡으며 다시 한번 비둔술을 사용했다·
그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10장 바깥으로 이동해 있었다·
“잡아라!”
“예!”
나는 빠르게 허공을 박차며 강기를 쏘아댔다·
“흐 빌어먹을 놈들···! 절대 절대 네놈들의 계교에 쉬이 죽지 않을 것이다!”
번쩍!
그가 다시 한번 비둔술 구명법기를 사용했고 푸른 둔광과 함께 그의 신형이 또 다시 저 멀리 이동해 있었다·
‘저 방향은···!’
나와 김영훈 그리고 진씨세가의 다른 연기기 수도자들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저 자는 지금 연국 국경에 있는 막리세가의 연락소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막아! 저 자가 연락소로 향해 가문의 축기기 수도자들에게 지원받게 하면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나와 김영훈이 미친듯이 막리세가의 장로를 쫓아갔고 그렇게 국경 지역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부웅!
나는 검을 휘둘러 검강을 쏘아내며 빠르게 수결을 맺어 지수성(地囚星)에 대응하는 지수진언을 외워 법술을 사용했다·
“지수(地囚)!”
쿠구구!
법력이 쏘아지며 대지에서 기둥들이 뻗어나와 막리세가 장로를 가두기 위해 쏟아져 간다·
그러나 막리세가 장로가 법결을 맺자 음풍(陰風)이 불어오며 그대로 대지의 창살을 갈갈이 찢어발긴다·
내가 뻗어난 대지의 창살이 음풍에 밀려 다시금 내게로 떨어진다·
파앗!
내 시야가 공간을 살피며 내게 쏟아지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틈이 보인다·
타닷!
나는 빠르게 산군월악비를 펼쳐 돌의 잔해들을 밟고 잔해의 폭풍에서 벗어나 하늘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월악의 초식과 함께 강하게 검을 휘둘러 검강을 쏘아내었다·
반원형의 백색 강기가 축기기 장로를 향해 쏘아졌다·
“하압!”
그가 수결을 맺자 음기가 먹장구름의 형태로 뭉치며 그를 감싸안았고 내 강기가 튕겨나간다·
동시에 그를 감쌌던 먹장구름이 다시금 운룡의 형태로 변하며 내게 쏘아진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그를 향해 쇄도해갔다·
막지 않는다·
파아앗!
등 뒤로 가공할 의념의 파동이 울리며 파공성이 들려온다·
콰아아앙!
주먹만한 빛의 환(丸)이 나를 지나쳐 운룡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운룡을 터트려버리고 막리가 장로에게 쇄도하였다·
“죽을 수 없다!”
번쩍!
그가 다시금 진원을 불어넣으며 구명법기를 발동하였고 그는 비둔술과 함께 사라졌다·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에서 강환이 폭발한다·
빛의 폭풍!
수많은 광류(光流)의 도흔(刀痕)이 눈 앞의 공간을 메우는 듯 했다·
그 폭발이 잦아들 무렵 나는 빛의 폭발을 뚫고 나가 그 너머에서 도망치는 막리가 장로를 향해 크게 일참을 뻗어내었다!
단악검법
기산심천!
검강이 강화되며 크게 늘어난다·
그 범위가 넓어지며 나의 검강이 그를 향해 쭈욱 뻗어나간다·
피융-
콰아앙!
길게 늘어난 나의 검강이 막리세가 장로를 후려치며 저 아래로 내려꽂는다·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수결을 맺어 흙의 감옥을 형성했다·
‘검강에 닿는 느낌이 둔탁했다·’
베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베이는 것이 아닌 맞는 것으로 그친 것이었다·
“지수(地囚)!”
쿠구구!
대지의 창살이 자라나며 막리세가의 장로를 가둔다·
그러나 흙의 감옥 속에서 기합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한 번의 기세에 내 법술은 통채로 박살나서 터져버렸다·
‘역시 축기기 수도자는 체급 자체가 다르군·’
검강이고 법술이고 제대로 된 유효타를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발목을 잡아두는 데엔 성공했으니까·
어느새 다시 김영훈이 도착하여 강환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홉 개의 강환들이 막리세가 장로를 향해 쏟아져내린다·
번쩍 번쩍 번쩍!
빛의 폭풍이 수없이 밀어닥친다·
그와 동시에 빛의 폭풍 사이로 푸른 빛살이 번뜩였다·
“죽을 수 없다 이리 죽을 수 없어··!”
막리세가의 장로는 진원을 퍼부어가며 구명법기를 사용하였고 그는 비둔술을 사용하며 김영훈의 강환세례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도 있었는지 그의 배는 완전히 갈라졌고 한쪽 팔은 소멸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쪽 팔을 정순지력으로 억지로 생성해내서 법결을 맺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나는 그 생명력에 혀를 내두르며 막리세가 장로를 쫓아갔다·
저게 무슨 인간이란 말인가?
‘축기기 수도자는 머리 심장 단전 중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결코 쉬이 죽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축기기 수도자는 체내에 생성한 정순지력과 연기기 때에 완성한 영맥이 상부상조하며 장기 몇 개가 없어져도 정순지력이 얼마간 해당 장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물론 과다출혈이나 내장이 저렇게 파괴당한 상태에서 법력이 다 떨어지면 죽은 목숨이겠지만·
법력이 허락하는 한 저 상태더라도 안 죽는 것이었다·
나와 김영훈은 빠르게 막리세가의 축기기 장로를 쫓았다·
내가 그를 방해하며 발목을 잡으면 김영훈이 따라와 치명상을 입힐 공격을 퍼부어대고·
막리가의 장로는 그때마다 구명법기를 마구잡이로 써 가며 비둔술을 사용해 공격을 빠져나왔다·
끊임없이 그런 양상이 반복되었고 막리세가의 장로는 반 시체가 된 상태에서도 저물대에서 약 같은 것을 꺼내 마구잡이로 삼키며 어찌어찌 버티는 듯 했다·
‘한번에 끝내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저 자가 월수궁무록의 인식을 베어내어 은밀히 접근하는 방식에·
상당히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으로 막리황신보다 지닌 법기가 많고 강력한 수도자인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김영훈이 특히 막리세가와 많이 대적하였기에 그의 특기들이 많이 상대들에게 알려진 탓 같았다·
‘거기다가··· 지닌 단약이 상당히 많은 자다·’
지금도 무슨 튀밥을 쥐어서 먹듯이 단약들을 저물대에서 한 움큼씩 쥐어서 입에 쳐넣고 있지 않은가·
‘시간을 끌면 곤란하다···’
벌써 날이 슬슬 저물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어검(馭劍)을 허공으로 날리며 막리세가 장로의 뒤를 쫓았다·
검끝이 축기기 수도자를 추격한다·
본래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행동·
축기기 수도자에겐 검강을 쏘든 몇 번이고 검을 내리치든 그들이 가진 호신강기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하지만 막리세가의 장로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어검을 피했다·
다 죽어가는 그에겐 내 어검조차도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스팟!
내 어검이 막리세가의 장로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난전(亂戰)에서는 정밀하게 어검을 조종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발판이 있어야 한다·
나는 허공에서 내려가 땅을 짚었다·
“천속(天速)!”
나는 천속성(天速星)에 대응하는 천강법결을 외며 법술을 사용했다·
쿠그극!
대지가 뭉치며 내 발 아래에 둥그런 원판을 형성했다·
내가 수결을 바꿔맺자 원판이 대지를 미끄러지듯이 흘러나갔다·
쿠구구구구!
지반(地盤)이 내 탈것이 된다·
수많은 나무와 바위가 내 뒤로 스쳐지나간다·
저 위쪽으로 이제는 속도마저 느려진 막리가 장로가 보인다·
지상에선 내가 천공에선 김영훈이 그를 위아래로 포위하고 각자 강환과 검강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원판 위에서 기수식을 잡고 검을 그러쥐었다·
‘끝을 내주마··!’
이번엔 발밑이 튼튼하다·
안 놓친다!
우우우웅!
납검(納劍)을 한 상태에서 기를 끌어모았다·
쿠구구구구!
빠득 빠드드득···!
검집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덜걱거리며 쪼개져 간다·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삶의 끝은 얼마나 처절한가·
죽음의 순간은 얼마나 힘겨웠는가·
하나 이번 생의 죽음은·
상당히 의미있게 끝날 것 같았다·
해가 떨어졌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전·
내 수명이 다할 것이다·
‘자 간다·’
단악검법
11초 단애(斷崖)!
콰자작!
발검하지 않는다·
검집에 들어있는 상태로 검집 자체를 베어버리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검강을 올려베었다·
가공할 속도로 내 검강이 하늘로 쏘아졌고 하늘에선 아홉 개의 빛무리가 떨어진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막리세가의 장로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결인을 맺었다·
“···흐 그래· 너희가 이겼다·”
빛살이 천지간을 메웠다·
빛의 폭풍 속에서 나는 막리세가의 장로의 전신이 난도질되며 결국 모든 호신강기가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커헉··!”
하늘을 날던 수도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철퍽!
가까스로 숨이 붙어있었다·
그에게 남은 법력은 이젠 연기기 1 2성 정도였고·
그마저도 흩어질 듯 미약하였다·
그의 생명력은 꺼질 듯 흔들리고 있었고 이젠 심장 소리도 작아지고 있었다·
“네가 숨을 끊거라·”
“알겠습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죽어가는 막리세가의 장로를 바라보았다·
비참하게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하늘을 날던 수도자·
나는 지난 삶을 떠올렸다·
먹장구름을 불러와 비를 부르고·
시커매진 하늘을 등진 채 오연하게 우리를 내려다보았던 그 자·
그때의 축기기 수도자는 이젠 이런 꼴이 되어있었다·
“···죽기 전이 되니 당신들 축기기 수도자도 그토록 무시했던 범인들과 다를 바가 없구려·”
나는 담담하게 검을 들어올렸다·
그 때였다·
“···내가 범인들과 다를 게 없다고··?”
막리세가의 장로가 잔뜩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웃기지 마라··· 나는 막리운련! 대막리세가의 장로이며··· 위대한 수도일족이다···!”
파아아앗!
“···!”
“범인들 따위와 비교하지 말아라···!”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푸른 빛과 동시에 시체 썩는 냄새가 그에게서 강력하게 뿜어나온다·
그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영력흐름에 나는 그가 무얼 하려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폭(自爆)···!’
타앗!
내가 황급히 몸을 피했고 시퍼런 폭광이 주변을 뒤덮는다·
‘뭐지 이건···?’
그러나 나는 폭광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발의 빛은 거대했지만 파괴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힘이 약했다·
‘이건 폭발이라기보단 차라리··· 섬광탄(閃光彈)··?’
흠칫!
나는 그의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김 형! 도망쳐야 합니다! 이 근처에···”
쿠구구구!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오며 저 멀리서 시독(屍毒)이 잔뜩 섞인 녹수(綠水)가 강물처럼 이곳으로 들이닥친다·
키르르륵 크르르륵··
크웨에엑!
크에에에엑!
나는 황급히 허공을 박차고 녹류를 피했으나 녹류 안쪽에서 강시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며 허공으로 뛰어올라 손톱을 휘둘렀다·
‘제길 이건···’
촤아아아!
녹류가 회오리치며 용솟음친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청포를 입은 중년의 수도자가 한 자루의 섭선을 들고 걸어나왔다·
그 거대한 의식의 크기·
이 영력의 압박!
‘축기기 수도자가··· 한명 더···!’
거기에 이 영기의 압박·
평범한 축기 수도자가 아니다·
축기 후기!
막리황신 급의 강자였다!
“갑자기 구조섬광이 터지길래 누군가 했더니 운련 노야가 보낸 구조신호였군···”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던 청포 수도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녹수들이 흐르며 막리운련이 남기고 간 옷가지와 저물대를 그에게 가져갔다·
“···훌륭한 연단사셨거늘· 그의 손에서 탄생한 품질 좋은 단약만 해도 수만개가 넘었건만···”
그가 이를 갈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청문세가의 수도자 그리고 진씨세가의 결전병기··· 네놈들이 똑똑하게 진가와 막리가의 조약을 파고들어 운련 노야를 죽인 게로군···”
그는 대충 상황이 파악이 되는지 나와 김영훈을 번갈아보며 영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 놈들··· 편히 죽을 생각은 마라···!”
그러나 김영훈은 피식 웃으며 강환을 다시 뿜어냈다·
“뭘 근거로 그리 자신감이 넘치시는지 모르겠군··· 축기기 네 번째 단계에 이른 막리운련 그 자도 몰아간 내가 세 번째 단계에 불과한 당신에게 겁먹을 것 같소?”
“하하하 운련 노야를 상대하느라 썩 지친 건 이미 알고 있다· 진가 연기기 떨거지들이 보조해봤자겠지· 그나마도 그 떨거지들 법력도 거의 떨어진 것 같은데··· 네놈은 충분하지·”
“흐··· 나 혼자라면 그랬겠지만· 나와 함께하는 청문세가의 동생은 연기기 14성 이상 축기기 미만의 전력을 가지고 있소· 그가 합세한다면···”
“합세?”
그가 픽 웃으며 되물었다·
“아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내가 언제 혼자 왔다고 했지?”
쿠우우우!
어두운 밤하늘·
시커먼 먹장구름이 또 다시 몰려오고 있었다·
방금 죽은 막리운련과 비슷한 수도공법을 익혔는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천기현상은 그와 똑 닮아있었다·
먹장구름의 크기는 막리운련의 반의 반 정도로 작았으나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음기(陰氣)로 뒤덮이는 듯 하다·
“본 가문의 후기지수 중 하나와 근처에서 마침 같이 재료 채집을 하던 중이라 같이 왔다네·”
“막리군 숙부! 너무 빨리 가십니다·”
도착한 것은 청포를 입은 젊은 사내였다·
오연하게 생긴 그는 영기를 갈무리하며 자연스레 그 기세를 드러내었다·
축기기 중기!
‘그것도 중기 후반··· 후기로 곧 있으면 넘어갈 정도···’
막리세가의 직계!
후기지수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었다·
“네가 너무 느린 게 아니더냐 준아야· 뭐 여하튼 잘 와주었다· 네가 진씨세가 떨거지들과 저 청문세가 놈을 맡거라· 나는 진가의 외당장로인 무림인 놈을 죽일테니·”
“예 그나저나 누가 섬광신호를 보낸 것입니까?”
“···운련 노야가 돌아가셨다·”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운련 노야가요···? 그 그 무슨··· 노야 같은 대연단사가···?”
“진가와 청문가가 손을 잡고 벌인 일 같구나· 놈들이 막리가와 진가 사이에 맺어진 조약의 틈을 파고들었어·
저 청문가 놈의 손을 빌려 벽라국 국경을 넘은 것을 명분으로 운련 노야를 참살한 것 같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막리가의 사내가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놈들이 누굴 죽인 건 줄 아느냐··· 막리세가에서 결단기 원로분들 아래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연단사를 죽인 거다···
많은 자제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잃고 네놈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귀한 단약들을 제련할 기회가··· 그대로 날아간 거란 말이다···!”
나는 개소리를 하는 청년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기수식을 잡았다·
“잘 됐군· 내 손에 저 쓰레기가 죽어서 앞으로 수백 수천의 생명이 보전되겠구나·”
어차피 오늘이 곧 내가 죽을 날·
이 자리를 무덤으로 정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마음이 쓰이는 것은···
“···김 형! 최대한 도망치십시오!”
김영훈이 이 자리에서 의를 펼치지 못한 채 죽는 것·
이제 곧 죽을 나는 괜찮았지만 그는 조금 더 살았으면 하였다·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끌겠습니다·”
산외산부진의 초식을 끌어올리며 나는 둘 중 약해보이는 축기 중기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하 가소롭다 못해 짜증이 나는군·”‘
쿠우우우우!
음풍이 불어닥친다·
음풍의 너머로 음기의 환(環)이 내게 날아온다·
단악검법을 펼치며 축기기 수준의 법술을 베어넘기고 때때로 나도 수결을 맺으며 법술로 대항한다·
‘모든 것을 짜낸다!’
수많은 법술을 베어넘기고 흘려넘기고 되치고 그 틈새를 파고든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일말의 틈을 발견하여 틈새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벤다!’
내 일검이 축기기 중기의 청년을 향해 쇄도했다·
단악검법 22초 단악!
스물 한개의 모든 초식이 한번에 펼쳐지며 내 검을 통해 터져나갔다·
‘통해라!’
단악(斷岳)!
산조차 베어버리겠다는 기개의 이름을 가진 최후의 초식이 축기 중기의 사내를 향해 쇄도한다·
그리고·
카앙!
내 검은 부러져 버렸다·
단순히 검이 부러진 것을 넘어 검에 씌워진 검강마저 그대로 산산이 부스러진다·
방어법술을 펼쳤는가?
아니었다·
공격법술로 되쳤는가?
아니었다·
법기를 사용했는가?
아니었다·
축기 중기의 청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정순지력을 이용한 호신강기를 내뿜으며 나를 우습다는 듯 바라보고만 있을 뿐·
그것만으로도 오기조원의 무인이 펼치는 검강의 세례는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게 축기기 수도자인가···’
축기기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라면 월수궁무록과 기타 무공을 사용해서 어찌어찌 목숨을 걸고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축기기에 진입해 제대로 경험을 쌓고 축기 중기에 오른 이는 오기조원으로선 결코 쉬이 상대가 불가능하다·
김영훈에게 강환세례를 한참 두들겨맞아 죽기 직전이었던 막리운련과는 달랐다·
그보다 경지는 낮을지언정 법력과 체력은 팔팔한 축기기 중기!
‘아 그렇군·’
나는 이 자에게 절대 이빨조차 박을 수 없다·
지난 삶에서 막리황신을 상대했던 것조차 그의 실력이 축기기 네 번째 단계에서 연기기 13성 정도로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
그 이상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끝인게냐? 이 벌레 놈·”
콰아아앙!
막리가의 청년의 손에 가공할 음기(陰氣)가 몰려들더니 하나의 용조(龍爪)를 형성해냈다·
그 용조가 나를 그대로 후려쳤다·
나는 파공성을 내며 그대로 저 아래쪽의 숲으로 쳐박혔다·
“크헉···!”
순간 힘을 흘리며 방어법술을 펼치지 않았다면 일격에 절명할 뻔했다·
말 그대로 체급이 다르다·
“컥···커헉···”
나는 피를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쿨럭 쿨럭··
피가 섞인 기침과 함께 내장 조각이 섞여 나왔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았다·
“커··커헉···커··카···카하···카하학··”
난 피를 뿜으면서 시커먼 먹장구름에 가려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녹수를 다루는 수도자는 어느새 김영훈과 대치하며 그를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군·’
도망치긴 뭘 도망치란 말인가·
뭘 시간을 끈다는 말인가·
이렇게 바로 당해버려서 기식이 엄엄해졌건만·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부끄럽기만 한 인생·
이룬 것도 없으며 나 자신이 하늘에게 거절당했다는 것만을 확인한 삶이었다·
오기조원의 너머는 커녕 그 중반에는 간신히 왔을까 싶었고·
연기기 7성 이후는 이론만 빠삭히 공부했을 뿐 정작 하늘이 허해주지 않아 도달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조금 명예롭게 죽는가 했으나 그조차 이리 비참하게 벌레취급 당하며 죽을 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이었다·
“쯧 쓰레기같군· 청문세가에 있다는 오기조원의 무인이 네놈인가 본데··· 어딜 철쪼가리나 들고 설치는 무림인 주제에 감히 수도자와 대적을 한 것이냐·
수도자의 선술을 조금 익힌 것조차 연기기 7성··· 허섭스레기같고 쓸모가 없구나···”
막리가의 후기지수가 혀를 차며 결인을 맺었다·
“네놈이 본가의 장로를 감히 국경을 침입했단 명분으로 죽였으니··· 나도 네놈을 똑같은 명분으로 죽여주마···”
내 몸이 그의 법술에 들어올려지며 벽라국과 연국의 국경 사이를 슬쩍 넘어가 버렸다·
“벌레같은 네놈의 운명으로 감히 본가의 대연단사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죽어라·”
그가 결인을 맺었다·
나는 자조적인 미소가 맺히는 것을 느꼈다·
‘벌레같은 운명이라···’
맞는 말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하늘이 나를 거부한다는 데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코 닿을 수 없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눈을 감으며 내게 찾아올 죽음을 기다렸다·
이룬 것 없는 인생·
질기고 질긴 인생의 끝이 그렇게 찾아왔다·
그것이 나의 일곱 번째 회귀인 줄 알았다·
콰아앙!
폭음이 울리며 나를 동여매던 막리가 후기지수의 법력이 흩어져 버렸다·
나는 눈을 뜨고 나를 풀어준 인물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익숙한 등이다·
“···스승님···?”
내 스승 청문령(淸汶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 어찌 여기까지···”
나는 당황하여 그에게 물었으나 스승님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짧게 답하였다·
“서신을 보내지 않았더냐·”
“예···? 그건··· 사흘은 있어야 도착할 텐데···”
“흥! 사흘은 무슨· 평소에도 느려터진 네놈인데 스승에게 보낼 서한까지 늦어서야 되겠느냐· 네놈이 출발하기 전 내가 훨씬 품질이 좋은 전송부를 네놈 저물탁에 넣어뒀다·”
스승님은 한숨을 쉬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는 잔뜩 구겨진 내 서한이 들려있었다·
“내가 모를 것 같았느냐? 이 놈··· 네놈 서체만 봐도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글을 썼다 생각했건만·
스승의 눈은 속일 수 없던 모양이었다·
“···제자야· 너는 왜 그리 끝까지 답답하느냐? 이 내가 그렇게 너와 함께 제의를 치루며 천문을 읽고 또 읽었건만· 너에 관한 천기를 몇백번이고 읽었는데 네 수명이 다할 날이 다가왔다는 걸 모를 줄 알았느냐?”
“······”
“네놈도 제 수명의 끝이 다가온다는 걸 아는 것 같았길래 한번 보내줬다만··· 이게 뭐냐· 넌 지금 명예롭게 죽고 싶어 온 거냐? 네가 감히 배은망덕하게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싸우다 죽으려 했던 게냐?”
스승님은 노한 기색으로 내게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의 의념은 짙은 검푸른 빛이었다·
슬픔(哀)의 의념·
하늘에 드리운 먹장구름처럼 당신의 의념도 그리 물들어 있었다·
“···미안하구나·”
그리고 나는 내가 스승님으로부터 가장 듣고싶어하지 않았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못나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어···”
“···아닙니다·”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스승이 보는 앞에서 작별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
스승님은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중이었다·
어째선지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승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으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그때였다·
막리세가의 후기지수 막리준이 피식 웃으며 스승님에게 소리쳤다·
“하 당신 제자는 연국의 국경으로 함부로 넘어와서 내가 직접 참해야 하오· 썩 비키시지··”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군· 각 국의 국경을 허락없이 넘지 못하는 것은 연기기 수도자가 아니라 각 가문의 주요전력인 축기기 수도자다· 그러므로 내 제자는 네게 심판받을 이유가 없다·”
“흐 그것 참 재밌군· 그렇다면 벽라국 축기기 수도자인 당신 역시 지금 연국 땅을 밟고 있으니 당신은 심판대상에 들어간다는 건데?”
“···연국 땅?”
쿠구구구-
스승님의 주변으로 녹빛의 영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
“어린 녀석이 착각하는 것 같군· 수도가문들 사이에서의 영역은 범인들의 척관법으로 명확히 정해진 게 아니다· 연국 땅이니 벽라국 땅이니 그런 범인들의 국경이 아닌· 각 대지에 흐르는 용맥(龍脈)을 기반으로 하여·
어떤 수도가문들에게 적합한 영기가 흐르는 대지를 각 가문의 영역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 아래에서 범인들의 국가가 성립된 것이지· 범인들의 국경이 수도가문의 영역이 아니란 것이다···”
쿠구구구!
스승님의 진도(陣圖)가 주변으로 펼쳐졌다·
동시에 주변의 기질(氣質)이 바뀌었다·
쿠구구구!
‘이건···’
용맥(龍脈)의 기운이 바뀐다!
원래 이 대지에 존재하던 영기가 벽라국에서 자주 접했던 기질의 영기에 밀려 몰려나기 시작했다!
“즉슨 용맥이 곧 수도가문의 영역증명이기에· 이제 이 땅은 내가 용맥을 유지하는 동안은 우리 영역이라는 소리이지· 이젠 반대로 네놈이 청문 벽씨 공묘· 삼가(三家)의 땅을 침범했구나·
썩 꺼져라! 나와 내 제자의 마지막을 방해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익 이이익···!”
막리준이 수결을 맺으며 스승님이 진도를 펼쳐 불러모은 용맥을 몰아내려는 듯 했으나·
법술을 다루는 기교와 경험의 차이인지 법술을 시도하는 번번이 전부 파훼되었다·
“내 제자에게 손대는 것을··· 불허(不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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