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0
“···탄광?”
내 얘기를 들은 남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여동생인 스텔라는 아예 대놓고 눈살을 찌푸릴 만큼 언짢은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인즈 영지 근처에 꽤 괜찮은 탄광이 있는 걸로 들었네만.”
“있기야 하죠. 당연히 영주민들이 이미 채광 중인 상태고요.”
“그걸로는 부족하네. 단순히 광부 몇 명이 투입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문 자체의 주력 사업으로 삼으라는 뜻일세.”
스테판 역시 동생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 딱히 솔깃한 눈치라고 보긴 힘들었다.
“고작 그걸로 돈이 되긴 할까요?”
“물론이지. 장담할 수 있다네.”
시대적 배경이 막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인 만큼 석탄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껑충 뛰어오를 것이다. 이미 눈치가 재빠른 몇몇 부호들은 헐값에 탄광을 사들이고 있을 정도였으니.
물론 현실 지구와는 차이점이 있긴 하다. 마법이라는 존재 덕분에 앞으로의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확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막말로 마도공학이 주류인 시대가 도래한다면 석탄은 쓸모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기술 개발자인 닥터 프랑켄이 다시 등장할 때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한발 앞서 시장을 선점하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미 산업혁명은 시작되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런던을 중심으로 많은 것이 뒤바뀌게 되리라.
하지만 아무리 어리다 해도 콧대 높은 귀족을 설득시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고고한 프라이드로 가득 찬 스텔라가 문제였다.
“석탄은 평민들이 캐야 하는 돌멩이지 저희 같은 귀족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누가 탄광에 들어가서 직접 캐라던가? 그냥 지금 하는 사업을 확장해보라는 것뿐일세.”
“저희가 탄광을 개발한 건 어디까지나 영주민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차원에 불과해요. 말하자면 자선 사업 같은 거죠.”
자선 사업은 개뿔. 지금 시대에 탄광 개발만큼 돈 빨아들이는 사업 아이템이 어디 있다고.
“흠. 이렇게 솔루션을 거절해버리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네.”
“혹시 탄광 말고 다른 사업 모델은 없나요? 금융업이라든가 군수 사업도 괜찮을 거 같고···.”
웃기고 있네.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그럴싸한 분야를 툭툭 던지는 스테판.
하지만 언급된 사업들은 하나같이 초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면서도 단기간에 변화는 거의 없어 오랫동안 투자를 해야 겨우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떡상이 보장된 비트코인을 놔두고 은행 예금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아무리 설득해도 도저히 말을 들어 먹을 느낌이 아니다. 아직 내 신용이 부족해서 벌어진 문제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인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도 받아들일 만한 절충안을 제안하기로 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사업 시작 초기 비용을 내 쪽에서 전부 부담하겠네. 그 대신 탄광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의 절반을 나눠주게나. 자네들은 탄광을 빌려주기만 하면 된다네.”
“흠···.”
수익보다도 귀족으로서의 체면을 더 중요시하는 스텔라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으나 스테판은 꽤 흥미가 가는지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그리고 만약 사업이 실패한다면 내 이름을 대게. 반대로 사업이 성공한다면 하인즈의 이름을 내걸어 명성을 드높이면 되겠지.”
“그건 나쁘지 않네요.”
그제야 여동생 쪽도 어느 정도 만족한 듯했다.
“그런데 이러면 뤼팽 님이 너무 손해 보는 구조 아닌가요?”
“나는 탄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는 관심 없네. 어디까지나 귀족 컨설팅이 목적일 뿐이니.”
어차피 돈은 길버트가 넘치도록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딱히 욕심도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업의 성공을 통해 귀족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게다가 절반의 수익을 떼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흑자가 나지 않을까.
“그래서 어떻게 하겠는가?”
“음···.”
두 사람은 서로 속닥거리며 귓속말로 얘기를 나눈 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특별히 받아들이죠.”
다행히 첫 단추는 무사히 끼운 것 같네.
이건 어디까지나 그레이스를 상대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니 여유 부릴 틈도 없이 최대한 빨리 진행해가야겠지.
“그런데 저희가 사업은 경험이 없어서···.”
“영주민들을 강제 징집해서 탄광에 쑤셔 넣으면 되나요?”
대답을 듣자마자 절로 밀려드는 막막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비용만 대는 걸 넘어서 탄광 개발까지 내가 일일이 케어해줘야 하는 그림인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앞날을 걱정하다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줄리엣이 알아서 해주겠지.’
적당히 일을 벌여 놓으면 유능한 부하 직원이 알아서 수습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역시 나는 괴도가 천직에 맞아.
***
“···그래서 이걸 저보고 처리하라는 겁니까?”
“자네만 믿고 있겠네.”
사무실로 향해 줄리엣에게 ‘귀족 컨설팅’에 관해 알려주었다.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피로를 호소하는 모습에 왠지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만큼 봉급은 두둑하게 챙겨주고 있으니까 문제는 없겠지···?
“자선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 아이템이 잘만 정착한다면 그 이후로 돈 걱정은 없을 걸세.”
귀족을 손님으로 하는 서비스. 이렇게만 놓고 봐도 거금을 쓸어 담을 황금알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알겠으니까 이거나 결재해주시죠.”
그녀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고 꼼꼼히 확인해보았다.
“오호. 벌써 준비가 다 됐나?”
“기본적인 건요. 이제 면접으로 골라내기만 하면 될 것 같네요.”
벌써 이전할 새 사무실을 정한 걸로 모자라 절실했던 인력까지 1차 서류 심사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말씀해주신 대로 웬만한 건 제가 알아서 처리하고 최대한 굵직한 것만 남긴 겁니다.”
“아주 훌륭해. 역시 줄리엣 양의 일솜씨는 언제 봐도 놀랍군.”
“참고로 현재까지 지출 금액은 대략 이 정도입니다.”
“···음?”
서류 제일 뒷장에 있던 정산서에 찍힌 액수를 확인하고는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액수 단위가 이게 맞나?
0이 하나 더 찍힌 거 아니야?
물론 모아둔 돈이야 아직 제법 남아있다. 단순 괴도 활동뿐만 아니라 원작 지식을 활용해 마녀한테 팔아넘기고 쌓아뒀던 재산이 상당했던 덕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로 가파르게 깎여나가면 나도 감당하기가 힘들다.
잘못하다간 그레이스한테 한 방 먹여주기 전에 파산해버릴지도.
그래선 안 되지. 아무래도 귀족 컨설팅에 더 사력을 다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다시 집중 모드에 들어가 서류를 처리 중인 줄리엣을 힐끔 바라보았다.
설마 일부러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 건 아니겠지? 산업 스파이로서 나를 경제적으로 몰락시키려는 속셈인 게 아닐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정산서를 뜯어보니 자금 사용처를 아주 세세하게 기록해둔 덕분에 뭐라 탓할 수도 없었으니까.
좋게 표현하자면 실행력이 남다르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 화끈하게 질러버린 느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예산을 제한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게 어지간한 업무를 전부 일임한 상태라 정확히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유일한 해결법은 줄리엣을 완전히 내 편으로 꼬시는 것뿐이다.
단순 회사의 상사 부하 관계를 넘어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조수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 회식 어떤가? 생각해보니 고생만 시키고 그동안 식사 한번 대접을 못 한 것 같아서 말이야.”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서류가 많아서요. 아무래도 저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오는 거절의 답.
그에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다른 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저 저는 괜찮아요! 이사님이랑 같이 둘이서 오붓하게···. 흐헤헤.”
“크흠. 이왕이면 직원들 다 같이 먹는 편이 좋지 않겠나. 오늘 하루는 쉬는 날이라 생각하고 업무는 잠시 내려놓게.”
레아의 변태 같은 웃음을 애써 외면하며 집요하게 부탁하자 줄리엣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에서 눈을 뗐다.
“어떤 걸 드시려고요?”
좋아. 여기서 맛있는 음식으로 호감도를 올려보자.
“흠. 스테이크는 어떤가?”
“고기를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요.”
“그럼 랍스터는 좋아하나?”
“해산물은 비려서 못 먹어요.”
“···피자도 싫어하나?”
“외국 음식은 입맛에 안 맞더라고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피시 앤드 치프스 로스트 커틀릿 샌드위치 미트파이 등등···.
하지만 대체 평소에 뭘 먹고 사나 궁금해질 만큼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줄리엣은 모든 메뉴를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뇌를 거치지 않은 채 내뱉었다.
“디저트 카페에 가서 민트초코 케이크나 먹지.”
“그러죠.”
···어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뮹뮹은 민초를 좋아할까용? 싫어할까용?
정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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