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2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소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계획을 구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특히 일반적인 학교에서처럼 단순히 지식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새하얀 도화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전부 다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교사보다도 부모에 가까운 수준 아닌가?
당연하게도 나는 자식을 가져본 적 또한 없었기에 막막한 건 매한가지였다.
일단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는 수밖에.
가장 먼저 소녀에게 학습 능력이 있는지부터 파악해보기로 했다. 만약 이 첫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소녀를 사람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다못해 강아지나 앵무새도 기초적인 학습은 가능한데 그마저도 못한다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자 그러면 학습 능력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단순히 말로 명령을 내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소녀는 말뜻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따라 말하는 것밖에 못 하는 상태이니.
고민을 거듭하다 떠오른 방법 한 가지.
이게 과연 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리라.
나는 손거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 준비물을 챙겨 다시 거울 세계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두 세계를 오갈 때는 마지막에 있던 장소와 시간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내가 한쪽에 있는 동안 다른 세계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잘만 활용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무한히 훈련해 강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에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하던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다시 거울 세계로 돌아와 챙겨온 준비물을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자.”
내 손바닥에 올려진 초콜릿을 빤히 쳐다보는 소녀.
그러고 보니까 초월자는 음식을 먹긴 하나? 적어도 시계탑 내부에 음식이나 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초콜릿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소녀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다 먼저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초콜릿을 입에 넣고 과장되게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
그런 다음에 다시 초콜릿을 내미니 조심스레 받아들여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한다.
우물우물.
뭔가 감정 표현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특별한 반응 없이 우물거리고만 있으니 잘 먹혀든 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혹시 초콜릿을 싫어하는 건가?
긴가민가해 슬쩍 하나 더 줘보니 덥썩 집어서 입에 넣는다. 그렇게 두세 번 반복하고 나니 겉으로 표현하진 않아도 초콜릿이 마음에 든 모양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볼까.
솔직히 강아지한테나 하는 간식 훈련을 소녀한테 한다는 것이 좀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으로선 이보다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초콜릿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내밀었다가 소녀가 집어 들려는 타이밍에 맞춰 뒤로 슥 빼버렸다. 그걸 몇 차례 반복하자 내 얼굴을 노려보는 눈빛이 불만을 표출하는 듯했다.
다음 단계를 위해 손을 슬쩍 뻗다가 잠시 주춤했다. 혹시 신체 접촉을 꺼리려나? 내가 해치려는 줄 알고 적대하면 어떡하지?
다행히 조심스레 팔목을 터치해도 딱히 반감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이 내 손 위에 올라오도록 배치한 다음 말했다.
“손.”
“손.”
그렇게 몇 번 반복해 손이라는 키워드를 주입하고서 초콜릿을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잘했어.”
훈련을 위해서는 간식이라는 보상과 더불어 칭찬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강아지한테나 해당하는 말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결국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소녀는 우려했던 것보다 훈련에 잘 따라왔다. 두어 번만 반복했을 뿐인데도 성과는 곧장 드러났다.
“손.”
“손.”
내가 명령하자마자 손을 올리고 그럼 보상의 의미로 초콜릿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해준다.
이것으로 일단 소녀가 학습 능력이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아직 이것만으로 소녀를 사람이라 결론짓기엔 한참 모자란 상태지만.
그렇게 ‘손’ 외에도 ‘기다려’나 ‘앉아’와 같은 명령도 가르쳐주던 시점에서 나는 중요한 것 하나를 깜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을 정해줘야 할 텐데.”
본래 훈련에서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강아지는 주인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 즉 이름에 반응하여 이어지는 명령에 더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흠···.”
어떤 이름이 좋을까.
어차피 소녀의 이름은 오직 나만 부르게 될 테니 내가 부르기 편한 대로 지으면 되겠지.
아무래도 이미지에 어울리게 짓는 편이 좋으려나.
소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니 생각보다 큰 고민 없이 금방 정할 수 있었다.
“하양이로 하자.”
머리 색 피부색 눈동자 색 심지어 입고 있는 원피스 색까지.
속눈썹마저 새하얀 소녀의 이름으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 또 어디 있을까.
[···참 센스 없는 작명이구나.]
‘어? 여신님? 이제야 온 거예요? 제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미안하구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마음 같아서는 뭐라고 한바탕 쏘아내고 싶지만 여신님도 본인 나름대로 생각이 복잡했던 것 같은데다 지금은 하양이를 교육하는 게 우선이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하양이야. 알겠지?”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하양이야. 알겠지?”
···일단 말을 따라 하는 것부터 그만두도록 가르쳐야겠네.
아무래도 생각보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울 세계에서 하양이와 있는 동안에는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시간에 쫓길 필요는 없다는 거려나.
손이랑 기다려에 앉아도 했으니까 이제는 어떤 명령이 좋을까.
배변 훈련은···.
“아.”
순간 하양이를 진짜 강아지라고 착각할 뻔했다.
아니지. 위험해.
***
잠시 쉬는 시간.
나는 시계탑 최상층의 바깥으로 나가 야경을 구경하였다.
거울 세계 속 런던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세상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겠지. 사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거대한 세트장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내 옆에 따라 걸터앉은 하양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내가 나타난 이후로 한시도 쉬지 않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하양이는 뭘 하고 지냈을까.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처럼 그냥 하염없이 이곳의 풍경만을 감상하고 있던 걸까.
거울 세계에선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애초에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공간이란 뜻이리라.
그렇다면 하양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거울 세계에 갇혀 지내왔을까.
오퍼레이터는 소녀를 죽여달라고만 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았다.
시간 가속이라는 초월자의 능력을 통해 구동하는 마도공학.
프랑켄 박사는 어떻게 하양이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던 건지 하양이를 죽이는 게 내 운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여신님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오퍼레이터는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가 과연 혼자서 모든 의문을 해결하고 정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응?”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불쑥 느껴지는 감촉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대뜸 내 손바닥 위에 손을 올려놓은 하양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혹시 하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손?”
“초콜릿.”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게 만든 대답.
초콜릿. 그 세 글자는 하양이가 나를 따라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직접 내뱉은 첫 단어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양이에게 확실한 자유 의지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내가 손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본인이 초콜릿을 원했기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니까.
나는 초콜릿을 건네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했어.”
그와 동시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한 가지 방법이 더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하양이에게 직접 물어보면 된다. 누구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점의 중심에 선 존재.
비록 지금은 초콜릿 말고는 할 수 없는 말도 없지만 차근차근 가르쳐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그녀에게 직접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양이를 가르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자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말을 가르쳐 볼까.”
그런데 너무 초콜릿을 많이 주는 건가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설마 이가 썩는다든가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그래도 명색에 초월자인데 괜찮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초콜릿 말고 다른 보상을 생각해봐야 하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아지 키우고 싶어용..
고양이도 키우고 싶어용..
뮹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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