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여신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셜록이 정말로 샤론일까요?”
내 질문에 여신님이 대답했다.
[글쎄다. 잘 모르겠구나.]
싱거운 대답에 김이 팍 새고 말았다.
하긴 여신님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단다.]
“어떤 거요?”
[그 탐정 아이와는 앞으로도 자주 엮일 거란 사실 말이다.]
나도 이번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신님의 주접과는 별개로 셜록과는 자주 부딪힐 게 뻔해 보였다.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단 그녀가 일부러 나를 잡으려고 진심을 다하고 있으니까.
“흡수는 언제쯤 끝나나요?”
[글쎄다. 넉넉하게 잡아 내일 밤까지는 걸리겠구나.]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네.
흡수가 끝날 때까진 웬만하면 바로 다음 활동에 나서기보단 잠시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다.
보석의 힘을 흡수하면 능력이 강화되는데 굳이 그걸 기다리지 않고 무리하게 나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일 하루는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휴가는 어떻게 보낼 셈이냐?]
“그야 집에서 빈둥거려야죠.”
쉴 때는 귀찮게 바깥에 나가지 말고 집 안에 콕 들어박혀서 쉬는 게 최고다.
괴도 레이븐의 뉴스랑 반응 같은 거나 구경하면서 킥킥대야지.
크으. 생각만으로 벌써 알차네.
***
해가 저물어가며 만드는 주홍빛 저녁노을.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바빴다.
그 속에서 한 소녀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중년 사내들의 잡담 소리가 소녀의 귓가를 자극했다.
“결국 어제도 못 잡았다더군.”
“이미 경찰 놈들은 틀렸어. 앞으로도 평생 못 잡겠지.”
“그깟 도둑놈 하나로 브리타니아가 들썩이다니. 말세야 말세.”
딱히 특별하지 않은 한탄과 푸념.
근래엔 어딜 가든 비슷한 얘기만이 지겨울 만큼 한가득했다.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신문팔이 소년이 든 기사에도 괴도 레이븐에 관한 얘기만이 잔뜩 실려있었다.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런던의 풍경은 급변해버렸다.
단 한 명의 사내로 인해서.
“······.”
베이지색 사냥 모자와 인버네스케이프를 둘러멘 특이한 옷차림의 소녀.
셜록은 복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불과 어제 범행이 일어났던 사건 현장 미술관 방향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목적지에 도달하니 현장은 의외로 상당한 인파로 북적거리는 상태였다.
이미 사건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혹시 기삿거리가 있을까 어슬렁거리는 기자들과 어떻게서든 조금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발버둥 치는 경찰들의 콜라보였다.
물론 경찰은 기자들을 포함해 일반인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더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경찰의 제지에 셜록은 당황하지 않고 얘기했다.
“가젯 형사님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들어오시지요.”
확인 절차도 없이 수월하게 폴리스라인을 넘어 현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됐다.
만약 자신이 변장한 레이븐이었다면 상당히 허무하게 보안을 뚫린 셈이었다.
이건 나중에 가젯에게 얘기해주기로 생각하며 셜록은 곧장 미술관 안으로 진입했다.
“응?”
그런 소녀의 인기척에 미술관 내부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던 가젯이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어떻게 들어왔어요?”
“형사님의 이름을 대니까 프리패스였어요.”
“윽! 이 망할 놈들이···!”
해이한 일 처리에 분통을 터뜨린 가젯은 이윽고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여기서 할 일은 없습니다. 어제의 도움은 고마우나 지금부턴 경찰의 영역이니까요.”
“저는 탐정이에요.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축객에도 꿋꿋이 버티는 탐정.
그러자 형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어떤 도움말입니까. 당신이 여기 있으면 확실하게 괴도를 체포할 수 있단 겁니까?”
“어제 했던 것처럼 트릭을 알아낼게요.”
“마법으로 말이죠.”
“저는 마법에만 의존하는 멍청이가 아니에요.”
가젯은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봐도 말을 믿는 눈치라고 보긴 힘들었다.
“모두 그렇게들 말하죠. 막상 행동이 받쳐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그녀는 능숙하게 불을 붙여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켰다.
“시민들이 마법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좋게 보진 않죠. 저도 알아요.”
“네. 왜 그런지도 아시겠군요.”
어느 특정한 사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일반인과 마법사 간의 벽을 나누고 있을 뿐.
“신비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마법과 신화가 아니라 철과 인간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법은 언제나 극소수의 선택 받은 존재만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진리가 깨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문명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극소수만의 것이 아니다.
선택받지 않은 절대다수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힘.
도시가 세워져 사람들이 몰리며 철의 문명을 통해 발달하는 산업은 마법이란 신비의 영역을 아래로 추락시켰다.
“브리타니아 전역을 이동하는 증기 열차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이용객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과연 마법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점은 좁혀지지 않고 더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통제하기도 힘들며 극소수만 이용하는 마법이 굳이 필요한가?
“···그게 지금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확실히 셜록 당신의 추리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법에 의지해 얻은 결과라면 당신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죠? 경찰들은 위대한 마법사 탐정 셜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손가락이라도 빨아야 합니까?”
가젯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규격화할 수 없는 마법이란 힘에만 의지해선 괴도를 잡을 수 없다.
“좋아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절대 당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단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셜록은 가젯의 형식적인 사과를 싹둑 자르며 덤덤하게 말했다.
“보여드리면 되나요?”
“예?”
“마법을 쓰지 않고 제 추리만으로 레이븐의 트릭을 밝혀내면 되는 거잖아요.”
기가 막힌 소녀의 대응에 가젯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살짝 흘렸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하긴 이런 면이 있기에 그 괴도 레이븐을 턱밑까지 쫓아 위기로 몰아넣었던 거겠지.
“좋습니다. 그런데 가능하겠습니까?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요.”
게다가 경찰들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증거를 훼손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최대한 현장을 보존하도록 주의했지만 증거인지 아예 모른다면 우연으로 훼손할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괜찮아요.”
셜록은 터벅터벅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역시나 그림이 있던 장소 주변. 현장은 최대한 보존해뒀기에 어제 가젯이 찢었던 가림막마저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언뜻 봤을 땐 특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면 셜록 이전에 경찰들이 먼저 발견했겠지.
뒤이어 괴도가 앉아있던 조각상으로. 또 탈출했던 창문까지 쭉 경로를 따라 꼼꼼히 관찰했다.
“······.”
“뭔가 좀 발견했습니까?”
휙.
자신의 말이 가볍게 무시당하자 가젯은 뻘쭘하게 손을 내렸다.
표정을 보니 의도적으로 무시한 거 같지는 않은데 얼마나 집중했으면 대놓고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 걸까.
창문 바깥 풀숲 주변까지 조사를 마친 셜록은 다시 미술관으로 복귀했다.
가젯은 당연히 실패했으리라 짐작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어제부터 계속 조사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대충 알아냈어요.”
“···예?”
당혹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셜록은 추리를 바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이쪽 그림이 걸린 벽면을 보시면 무언가 끌린 자국이 있죠.”
“음···. 가림막 때문인 거 아닙니까?”
확실히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면 뭐가 있긴 하다.
“아니요. 가림막의 두께를 보면 이렇게 얇게 쓸린 자국은 만들 수 없어요. 이건 줄보다 가는 실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죠.”
“실?”
설명은 멈추지 않고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다음으로 조각상 위쪽 천장. 여기도 보면 무언가를 걸어뒀던 흔적이 있어요. 어제 그림이 레이븐의 품에 들어갈 때도 정확히 이 위치였죠.”
“어 그랬던가요···?”
추리를 들으며 겨우겨우 따라가던 가젯이 반문을 던졌다.
“그 말은 즉 실을 통해 그림을 이동시켰다는 건데 그게 가능합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이 끊어지지도 않게 유지하면서 그림을 허공으로 옮긴다고요?”
“그냥은 힘들겠죠. 아마 마법을 썼을 거예요.”
물론 가젯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젯밤 봤던 그 장면은 마법이 아니고선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마력 센서는요?”
이게 가장 문제다.
정말 마법을 쓴 거라면 마력 센서는 어떻게 피했는가.
“···그건.”
여태껏 계속 이어지던 셜록의 입이 처음으로 멈췄다.
소녀는 결국 가장 핵심적인 트릭에서 막히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탐정은 완벽히 실패한 건 아니었다.
“실이 묶인 흔적은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아마도 마법을 바깥에서 사용했다던가 무슨 방법을 사용했을 거예요.”
“괴도는 처음부터 탈출할 때까지 미술관 안에만 있었습니다.”
“···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썼을 확률이 높아요.”
자신의 추리를 끝까지 관철하는 셜록.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추측이었기에 가젯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조사 보고로 기록해놓죠.”
“고마워요.”
셜록은 그 뒤로도 한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지 현장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그녀와의 약속은 지키겠다는 듯 마법은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팀장님. 저 친구는 대체 누굽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는 부하 경찰.
가젯 역시 그게 너무나 궁금했다.
셜록.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 말이지.
그녀는 탐정 소녀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하면서 부하에게 말했다.
“네가 한번 알아봐. 셜록이란 이름으로 관련된 거 싹 조사해.”
“···제가요?”
“그러면 내가 하리?”
“···넵. 알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연스럽게 부하에게 시키는 가젯양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