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마녀.
말 그대로 마법을 다루는 여자.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신화나 전설 속의 존재. 겉모습은 평범한 사람과 똑같으나 긴 수명과 아름다운 외모 등 마녀가 지닌 고유한 특징도 있다.
그중 제일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길함이다. 당장 마녀사냥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만 떠올려도 알 수 있듯 일반인은 마녀를 두려워하며 꺼림칙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의 마을’이란 장소가 어떤 느낌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평범한 사람은 아예 접근할 수조차 없는 신비스러운 공간.
특별한 방법을 이용해 마을 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즉시 저주와 강령술에 능한 수십의 마녀들에게 단단히 찍히게 된다.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도 내가 굳이 마녀의 마을에 향하려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저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건가요···. 수많은 마녀를 모두 무릎 꿇려 지배하겠다는 거군요···.”
“일단 그건 절대 아니네요.”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여자도 여신님이랑 비슷한 과였구나.
[아무리 너라도 그 이상 나를 모욕한다면 참지 않겠다.]
여신님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분명 저번에도 유독 마녀를 보곤 질색하셨었지. 마녀와 상성이 안 좋은 건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우는 척하던 마녀는 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얘기했다.
“저희 마을에 대해 어떻게 아시는진 모르겠지만···. 거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랍니다.”
“알고 있어요.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니까요.”
이미 원작을 읽은 나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마녀의 이름을 아는 것.”
“···흠.”
내 대답에 마녀는 처음으로 여유롭던 태도를 버리고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보통 사람들은 불길한 여자들을 보며 ‘마녀’라고만 부를 뿐이다.
왜냐하면 마녀들 본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역린.
그녀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과도 같다.
“설마 그것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원래 괴도는 귀가 밝아야 하는 법이거든요.”
다만 아쉽게도 눈앞에 있는 마녀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른다.
원작에서 이 내용이 등장하는 건 지금보다 훨씬 후반부에 주인공과 가까워진 별종 마녀가 스스로 밝히기 때문이니까.
애초에 마녀의 상점을 운영하는 이 마녀 씨는 원작에선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다.
마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요. 저희의 이름을 알면 마을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져요. 그래서 이름을 아는 마녀가 있나요?”
물론 있다. 아까 말했던 별종 마녀의 이름을 원작 만화에서 봤으니까.
하지만 그걸 지금 무턱대고 밝혔다간 미래가 단단히 꼬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어떻게 알았냐를 설명할 방법도 없고.
“아니요. 모릅니다.”
“하긴 그렇겠죠. 안타깝지만 마녀의 이름을 대지 않으면 마을엔 들어갈 수 없답니다.”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젓는 마녀.
확실히 이름에 관한 얘기를 꺼낸 뒤부턴 눈에 띄게 태도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마을의 존재 자체야 크게 상관없지만 입장 조건은 훨씬 민감한 문제란 뜻이겠지.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네? 뭐를요?”
“당신의 이름 말이에요.”
잠깐의 딜레이 이후 튀어나온 마녀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까 내게 조건을 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동요하는 그녀. 그 신선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할 정도였다.
“지 지 지···.”
“지?”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계신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쉽게 말할 내용이 아니에요!”
마녀의 이름을 듣는 사람은 ‘마녀의 친구’가 된다.
그녀들이 사는 마을에 초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친구가 됐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흔히 인간들이 사용하는 친구라는 단어와는 의미가 살짝 다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무겁고 진지한 관계를 뜻한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소울메이트. 즉 영혼의 짝과 같은 느낌이랄까.
따라서 마녀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이름을 알려준다.
평범한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긴 수명을 살면서 단 한 명에게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숨긴 채 죽는 마녀도 허다하다.
“알아요.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거잖아요.”
내 대답에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맞추던 마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알면서 이름을 알려달라 한 거예요?”
“네.”
“···괴도 씨는 제 생각보다 정신이 나간 남자였군요.”
여태까진 그렇게 저돌적으로 유혹했으면서 막상 지금은 발을 빼다니.
하긴 나 같아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냥 최근 좀 마주친 가게 손님이 난데없이 같은 날 같이 죽자고 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겠지.
“제가 당신의 뭘 믿고 이름을 알려주겠어요?”
“그렇네요. 저는 마녀 씨를 배신할 생각이 없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곧바로 믿을 순 없겠죠.”
너무나 당연한 얘기여서 그런지 그녀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체 왜 저희 마을에 들어가려는 건데요? 어차피 평범한 인간이 거기 가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고요. 어디서 전설이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모양인데 그냥 빨리 포기하는 게 편할 거예요.”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와 버렸네.
그래. 내가 이런 어려움을 뚫고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마녀 마을에 가려는 이유.
“알겠어요. 마을에 들어가는 건 포기할게요.”
“네. 다시는 꿈도 꾸지 마세요. 괜히 다른 사람한테 퍼트리지도 마시고요.”
“대신 예언의 마녀를 만나고 싶어요.”
“···세상에. 그 친구는 또 어떻게 아셨대?”
이제는 마냥 내 정보력이 놀랍다는 듯 손뼉을 치는 마녀.
짝짝짝.
“괴도 씨. 이참에 괴도 일은 접고 저랑 동업하지 않으실래요? 저는 만물상이고 괴도 씨는 정보상이 되는 거죠. 오순도순 애도 낳고 같이 잘살면서 단란하게 가게를 꾸려나가요.”
“그러면 이름도 알려주실 건가요?”
“음···. 괴도 씨가 머리 희끗희끗한 80살 호호 할아버지가 되면 생각해 볼게요.”
아니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데 내가 늙어 죽기 직전에야 겨우 알려주겠다고?
친구가 되는 것을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예언의 마녀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표현이네요. 그 친구는 왜 찾으시나요? 괴도 일에 사용하시려고요?”
“아니요.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친구를 위해서죠.”
“친구···. 그 말은 저희 마녀들이 생각하는 ‘친구’인가요?”
레이첼이랑 그 정도의 사이냐고?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냥 친구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거예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마녀와 엮여서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마녀는 언제나 불길함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단순한 속설이나 편견에 불과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이 세상에 절반만 걸쳐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확실히 마녀와 엮이는 게 위험한 건 사실이다. 당장 눈앞의 마녀도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라.
잠시 고민하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글쎄요. 딱히 이유는 없는데요.”
“···이젠 더 놀랄 기력도 없네요.”
“그냥 제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원래 인생이란 게 그렇잖아요?”
레이첼의 의도를 밝히지 못하면 원작이 무너진다느니 이 기회에 마녀와 인연을 쌓으면 나중에 이용할 수 있다느니.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다.
내 대답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마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랄까. 조금은 괴도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네요.”
“그래요?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아주 매력적이에요. 홀딱 반해버릴 만큼.”
역시 마녀는 짓궂은 면이 있다. 저렇게 말해봤자 어차피 농담에 불과하다는 거 전부 아는데.
[에휴. 너도 참···.]
‘응?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좋아요. 예언의 마녀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소개장도 써줄 수 있어요.”
오.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물론 이것도 저희 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이니 대가는 받을 거지만요.”
하긴 그럼 그렇지.
그나저나 내가 찾은 여자는 마녀의 마을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다.
“값은 이 정도로?”
“생각보다 싸네요.”
“정보를 알려주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그 정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아니겠어요?”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여지가 없군.
예언의 마녀를 찾아간다고 끝이 아니라 또 그녀에게 부탁해야 하니까. 따지자면 아직 시작도 안 한 셈이었다.
“그래서 어디에 있나요?”
“후후. 꽤 멀리 있답니다.”
“···런던 밖이요?”
마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에펠탑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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