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8
사탕이는 나무를 깎아 즉석으로 바베큐 렉을 만들었다· 칼질에만 재주가 있는 게 아니라 공예와 잡기에도 나름의 조예가 있었다·
그는 꼬치에 꿰어둔 고기에 향신료와 소금을 듬뿍 바르고 구워냈다·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동굴을 가득 채운다·
모두들 순환계를 존중하는 방법으로 불살을 택했지만 사탕이는 거리낌 없이 살생과 포식의 길을 나아갔다·
연금부 학생이 봤다면 기겁할 만한 일이다·
순환계에 거부당한다면 외곽으로 밀려나고 결국엔 최하점을 거두게 될 텐데· 다른 이들과 격리된 상태로 준비한 탓에 순환계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더군다나 루나도 이 같은 방식에 크게 문제 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세실이 착잡한 어조로 물었다·
“사탕아· 이거 먹어도 괜찮은 거야?”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응·”
신기한 건 남들이 모두 식량을 한가득 들고올 때 그는 소금과 향신료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세실이 잠시 망설이자 그는 루나에게 먼저 바베큐 꼬치를 건넸다·
루나는 이를 두 손으로 쥐고 손톱만큼 베어물었다· 어설픈 행동거지를 봐서는 먹는 법을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세실은 혼란스러웠다·
루나는 귀하게 자란 것 같은 아가씨다· 그런데 날것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사탕이에게 맞춰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마법부의 수석이 욕심을 버리고 사탕이에게 모든 걸 맡긴 것이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정도의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일까·
세실을 눈을 꾹 감고 고심했다·
사실 그녀도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배는 고프고 나머지 그룹원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
좀 전에 날아온 베르탕의 편지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베르탕은 범람한 하천을 어찌저찌 건넜다고 했지만 추가로 사탕이 쪽에 합류하자는 세실의 제안에는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사탕이를 믿을 수 없고 약탈조를 피해 위험지대로 가는 건 비 피하겠다고 곰굴에 들어가는 꼴이라면서·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베르탕이냐 사탕이냐 하면 답이 쉽게 나왔다· 마음의 나침반은 이미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는 결국 손을 내밀고 말했다·
“나도 줘·”
하루종일 굶은데다 다음날에 움직이려면 뭐든 먹어야 했다·
그리고 일전에 사탕이가 번역을 의뢰했을 때 연금술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구절들도 기억했다· 그걸 생각해보면 분명 포식 행위에 나름의 이론적 근거가 갖춰진 것일수도 있었다·
곧이어 사탕이가 잘 구워진 꼬치를 하나 건넸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식을 시작한 그녀는 의외로 맛이 좋아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야생 동물의 고기는 대체로 잡내가 심한데 이건 독특한 향신료 덕에 맛과 향에 거부감이 없었다·
아예 사냥을 할 목적으로 이번 수업에 임한 것일까·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향신료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세실이 잘 먹는 걸 확인한 그는 꼬치를 몇 개 더 불에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아서 먹고 있어· 멧돼지 피 좀 씻고 올게·”
그의 몸은 고기를 손질하다 묻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사탕이가 밖으로 나가자 동굴 내부엔 다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세실은 쥐고 있던 꼬치를 마저 다 먹고 루나에게 물었다·
“잠깐 사탕이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나도 나가봐도 될까?”
루나는 세실의 옷차람을 유심히 보았다· 어딘가 못마땅한 게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응··· 다만 조건이 있어·”
“뭔데?”
“이 망토 입고 가·”
그러곤 잘 말려서 고이 접어둔 망토를 그녀에게 건넸다·
“응? 어 고마···워·”
망토로 비를 막을 수 있어서 좋긴 하다만 그걸 정말 호의로 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
세실은 사탕이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러던 중 무언가 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한 늑대 생김새의 정령이 보였다· 루나가 다루는 정령이었다·
“···?”
그것은 세실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혹시 모를 위급 사태를 대비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걸까·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멀리 가지 않아서 사탕이를 발견했다· 그는 절벽 앞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빗물에 몸을 씻고 있었다·
그냥 가볍게 손발을 닦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그는 상체를 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예상 외의 수확에 세실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 기척을 죽였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자세히 확인하니 갑자기 머리가 하얘져서 움직이지 못 했다·
“···!”
그의 상체는 무언가에 할퀸 듯한 흉터가 가득했고· 심지어 복부엔 흉측하게 일그러진 관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전장을 쏘다니는 백전 노장이라 해도 저 정도의 상처는 없을 터였다·
많아봐야 고작 열일곱 살이다· 대체 그 기간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생각치도 못했던 사탕이의 어두운 일면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러던 중 사탕이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나무에 반쯤 몸을 숨긴 세실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쳐다보면 가면을 못 벗잖아·”
“····”
“세수도 하고 싶은데·”
염탐이 발각되자 장난기가 돋았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고는 망토 끈을 툭 풀어내며 말했다·
“음···그럼 같이 씻는 건 어때?”
“····”
“서로 숨긴 걸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러자 뒤에 있던 늑대 정령이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컹! 컹!
세실은 미간을 구기고 방해꾼을 바라보았다·
늑대 정령이 어금니를 드러냈다· 망토를 입는다는 조건을 어기자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사탕이마저 별 반응을 안 보이자 세실은 한숨을 쉬고 다시 망토 끈을 묶었다·
“에휴··· 농담이야·”
단추를 풀어도 눈길도 안 주고 도발을 해도 반응이 없다· 인내심으로 버티는 건지 아니면 충성하는 사람이 있는 건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똥개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으면 시시해지긴 했겠지만 반대로 너무 반응이 없으니 그거대로 또 조금 약이 올랐다·
“추울텐데 어서 들어가·”
세실은 헛짓거리는 관두고 바로 본론으로 돌아갔다·
“사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그는 검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내고는 말했다·
“···뭔데?”
“네 도움이 필요해· 우리 그룹원들이 위험지대를 통과할 때까지 너희랑 동행하게 해줘·”
“····”
이것이 사탕이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그룹에는 싸울 줄 아는 애가 없어· 루나는 널 그룹장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너한테 물어봤어·”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
“어렵게 부탁할 거 없어· 나랑 루나는 네게 빚을 지고 있으니까·”
“허락해주는 거야?”
“응· 하지만 각오 단단히 해· 힘든 여정이 될 테니까·”
***
“위험지대에 간다고?”
순환계 진입에 선두로 나서고 있는 약탈조의 그룹장이 제이슨이 말했다·
“그렇다니깐· 난 좀 이해가 안 가더라·”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이들과 몇몇과 약탈조에게서 도망친 일부가 위험지대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행하던 약탈조의 한 그룹원이 위험지대로 간 이들을 냉소적으로 조롱했다·
“사리분별이 잘 안되는 모양이지· 싸움에 미쳐 있거나 약탈조보다 더 위험한 게 뭔지 모르거나·”
약탈조라고 해봐야 고작 식량과 물자를 뺏어가는 게 전부다· 규정상 이들은 제압하는 것 말고는 추가적인 위해를 가하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위험지대로 가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쪽으로 도망치는 판단이 멍청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뭐 그덕에 우리가 이렇게 앞서나가고 있는 거지만·”
그들은 약탈 행위로 이주치에 달하는 식량을 챙겼다· 그덕에 궁상 떨 거 없이 풍족하게 식생활을 즐기며 순환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순환계의 초입부에 이들은 자기들을 포함해 서너 그룹에 불과했다· 이들은 최상위권이 예상되던 애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울창한 숲을 나아가다가 그룹장 제이슨이 갑자기 동료들을 멈춰 세웠다·
“야 잠깐 잠깐만·”
그러자 다른 그룹원들이 멈춰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야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뭔 소리야?”
동료 한 명이 나침반을 꺼내서 방향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북쪽으로 잘 가고 있었는데?”
그룹장 제이슨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아니 야 나 여기 오면서 한 번 봤던 거 같은데 확실해?”
“···?”
다른 한 명이 그 상황에 농담을 던졌다·
“왜 그렇게 얼이 빠졌어· 너 이새끼 수통에 몰래 술 넣고 홀짝홀짝 들이켰지· 그 짓거리 하지 말라니까·”
그러자 그룹장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야 야! 이 새끼들아 난 장난치는 거 아니야· 이리 와봐·”
그는 한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그룹원들을 불렀다·
제이슨의 얼굴이 심각한 듯 일그러지자 다들 뭔가 심각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는 웃음기가 쭉 빠졌다·
“뭐야?”
그들이 나아가려던 북쪽 방향으로 네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먼저 앞서간 다른 그룹의 흔적이라고 보기엔···너무 익숙했다·
“잘 봐·”
그룹장이 한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맞췄다·
신발의 크기도 밑창의 모양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
다들 충격에 빠져서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간다 생각했지만 실상은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종일 움직였지만 그게 전부 헛수고로 돌아간 것이었다·
“여긴 나침반을 믿어선 안 돼·”
제이슨은 단검을 꺼내서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크게 x표식을 남겼다·
“무언가가 우릴 교란하고 있어·”
그들은 북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다들 농담 한마디 던지지 못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 가량을 움직이다가 그룹장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에 크게 x표시가 있었다· 바로 제이슨이 표시해둔 것이었다·
제이슨은 분노한 듯이 단검으로 근처에 있는 나무를 찍어대며 소리쳤다·
“젠장!”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인건지 직감한 그룹원들의 얼굴에 서서히 공포가 깃들기 시작했다· 어디를 향해 움직여도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었다·
“대체···이게····”
그리고 망연자실한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숲 속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숲속에 메아리쳤다·
-까르르륵!
그들은 화들짝 놀라서 검을 뽑고 경계태세를 갖췄다·
“뭐야· 어떤 자식이야!”
웃음 소리가 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바람도 없고 나뭇잎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까륵 까르르륵!
해맑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였지만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숲속에서 들으니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곧이어 웃음소리가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한 둘이 아니었다·
나무 위에서 발 밑에서 바위 뒤에서 그것들은 온 사방에서 이들을 보고 조롱하고 있었다·
“우린 아무것도 안 죽였잖아! 들여보내 줘!”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분명 불살의 원칙을 지켰지만 순환계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아아····”
한 그룹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다가 검을 떨어트렸다· 실체가 없는 무언가에 포위되어 이윽고 공황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꼈다·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을 손아귀에 두고 농락하고 있었다·
순환계를 너무도 얕보고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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