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9
보름달이 뜬 어두운 밤·
모닥불 앞에서 세 명의 남녀가 모여 앉아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육포만 줄창 되새김질 하던 트리샤가 한탄했다·
“맛없어·”
합동수업에 돌입하고 고작 이틀이 지났는데 음식이 물려버린 것이다· 트리샤는 반복과 지루함에 내성이 거의 없었다·
베르탕이 짐짓 어른스러운 어조로 트리샤에게 말했다·
“원대한 목표를 이루려면 때론 버틸 줄도 알아야지·”
그러자 트리샤는 정색하며 말했다·
“난 버티는 게 제일 싫어·”
“····”
그러던 중 그 대화를 지켜보던 마르타에게 스티치가 하나 날아왔다·
거기에 편지가 물려있자 모두의 시선이 마르타에게 쏠렸다·
그녀는 편지를 펼쳐서 쭉 읽어내고는 말했다·
“세실의 편지네·”
트리샤가 갑자기 흥미가 돋아난 듯이 말했다·
“언니는 뭐하고 있대?”
“우릴 도와줄 애들을 찾았대· 엄청 강하고 그 그룹이랑 맛있는 고기도 구워 먹고 엄청 편안하게 있다네·”
“누구길래 그래?”
“사탕이네 그룹이라는데· 입학시험 때 한 번 봤잖아· 기억해?”
그러자 갑자기 트리샤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언니가 왜 걔네 그룹에 있어??”
마르타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트리샤에게 답했다·
“왜 그래? 걔한테 악감정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소문으로는 걔도 시온만큼이나 쎄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고· 뭐 변태짓을 해서 징계로 성적이 낮아졌다는 말도 있고· 근데 세실이랑은 제법 친한가봐· 몇 번 따로 만나기도 했고·”
그러자 트리샤는 더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몇 번 만나????”
“···?”
트리샤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베르탕이 은근슬쩍 사탕이에 대한 거부감을 표했다·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거 봐선 좋은 성적을 받을 생각은 없는 것 같네· 난 걔에 관한 소문은 대부분 과장 섞인 것 같아서 별로야·”
베르탕이 신호를 주듯 트리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는 본 채도 하지 않았다·
“그럼 빨리 결정해야 돼· 시온이 여섯 그룹을 약탈하고 우리 쪽으로 온다는 첩보가 들어왔거든·”
“사탕이인지 뭔지 걔는 그룹원이 누구 있는데? 어중간하면 차라리 엘리아스네 그룹에 요청하는 게 낫지 않아? 걔네도 위험지대 쪽으로 거쳐간다는데· 거기엔 빅터도 있고 마법부 차석도 있잖아·”
“사탕이는 2인조 그룹이라고 적혀있네·”
“게임이 안 되네· 소수로 짜는 건 성적 생각이 없는 거 아니야?”
“야 근데 그 그룹원 한 명이 루나야·”
마르타가 세실의 편지를 뒤집어서 보라는 듯이 살랑살랑 흔들었다·
“···잠깐 뭐? 크흡!”
베르탕은 먹던 게 기도로 넘어갈 뻔했다·
루나는 이번 합동수업에서 가장 몸값이 높고 영입 경쟁도 가장 치열했던 인물이었다· 원한다면 사실상 누구와도 그룹을 맺을 수 있던 위치였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 사탕이인지 뭔지 하는 놈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2인조로·
“응· 루나를 어떻게 꼬신건지 능력도 좋아· 아예 작정하고 둘이서····”
마르타의 말을 자르고 트리샤가 소리쳤다·
“세실 언니랑 합류해!!”
“···?”
“···?”
“안 그럼 나 혼자라도 갈 거야·”
그러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육포를 와구와구 입에 집어넣었다·
볼이 빵빵해진 트리샤를 보며 마르타는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세실과 루나는 먼저 떠날 채비를 끝낸 상태였다·
동굴이 그리 넓지는 않아서 여자애들과 거리를 두고 잠에 들었는데 혼자 있는 게 추워 보였는지 내 옆엔 새 모닥불이 피어나 있었다·
루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연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머리를 빗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마법이라도 쓴 건지 루나의 옷은 꽃무늬가 들어간 노란 원피스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한 건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키자 루나가 내쪽을 돌아보았다·
“잘···잤어?”
“응· 일단 아침식사부터 하고···움직이자·”
“응·”
어제 갈무리하고 커다란 나뭇잎으로 포장해둔 고기에 시선을 돌렸다·
그 위엔 못보던 게 하나 놓여 있었다· 세실의 마법 폭탄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뚜껑이 팽이처럼 돌면서 그 아래에 국부적으로 새하얀 서리를 뿌려댔다·
그 덕분에 고기는 신선한 상태로 얼어붙어 있었다· 세실이 간밤에 손을 본 모양이다·
그리고 전날밤 만들었던 간이 바베큐 렉 인근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꼬치가 널부러져 있었다·
지금도 김이 모락모락나는 걸 봐선 조금 전까지 불에 올라갔던 모양인데·
“근데···먼저 식사를 한 거야?”
루나가 돌연 내게서 시선을 휙 돌리고는 말했다·
“···아니·”
“···?”
나는 밖으로 나와서 몸을 풀고 입구 옆에다 심어둔 묘목과 말라디루트를 회수했다· 한껏 비를 맞아서 그런지 잎사귀가 평소보다 더욱 생기 있었다·
돌아가면서 세실과 마주쳤다·
그녀는 동굴 입구 옆쪽 열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쪼그려서 피곤한 얼굴로 연초를 피우고 있었다·
“사탕이 일어났네?”
세실은 입에 물던걸 바닥에 버리고 새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넌지시 말했다·
“···하나 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보이네·”
“응 아주 상쾌해· 네 목검 몰래 살펴봤는데 신기하더라· 어디서 난 거야?”
“옆집 화분에서 훔쳤어·”
“나중에 연구해봐도 돼?”
“안될 거 없지·”
“그래· 나중에 꼭 빌려줘·”
“근데 모닥불에 저 꼬치 네가 한 거야?”
그러자 세실이 주변 눈치를 살피고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루나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소근거렸다·
“루나가 아침 식사 준비하려다 다 태워먹은 거야·”
“····”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고기야 뭐 남아돌기도 하니 그냥 모른 체 해야겠다·
“아 그리고 아침에 연락이 왔어· 우리 그룹 애들이 합류하겠대· 집결지도 정해놨고··· 천천히 움직여도 정오가 되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트리샤와 동행하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조금 껄끄러워지겠는데·
부디 연극부에서 수련한 성과를 유감없이 발휘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곧장 집결지로 향했다·
바람은 물기를 머금고 있어 차가웠지만 햇볕은 적당히 따스해서 좋았다· 가볍게 소풍을 나가는 기분이랄까·
세실과 루나는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세실은 입이 심심했는지 몇번씩 내 옆으로 와서 잡다한 질문을 해댔다·
“루나랑은 어떻게 친해진 거야?”
“제작 기술 같은 건 어디서 배웠어?”
“혹시 시온이랑도 친해?”
세실의 흥미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는 게 내게는 최선이었다·
우리는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집결지에 도달했다· 세실은 몇 번씩 스티치를 주고받으며 정황을 살폈다·
한참을 기다리고 멀찍이서 트리샤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언니!”
“트리샤!”
그리고 그 뒤로 낯선 얼굴 두어 명이 따라 붙었다·
여자애 하나는 서점에서 자주 보일 것 같은 범생이 같은 인상이고 남자애는 귀족가 늦둥이 아들 같은 후덕한 인상이었다·
트리샤와 세실은 제법 반가웠는지 서로 껴안았다·
나와 루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표면적으론 ‘사탕이’ 신분과 트리샤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트리샤의 얼굴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루나는 내 옆에서 귓속말을 전했다·
“저기···아는 사람이야?”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세실의 어깨 너머로 트리샤의 눈동자가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탓이었다·
“내 정체를 아는 친구야· 다만 친구인 건 쟤네들한테는 비밀로 해야 돼·”
“···응·”
루나는 살벌하게 눈을 치켜 뜬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 부분은 설명해 줄 수 없다· 나도 모르니까·
세실이 그룹원들을 우리쪽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씩 소개했다·
“여기는 트리샤· 얘는 조장 베르탕 얘는 마르타야·”
트리샤가 좀 전의 살벌한 눈빛이 무색하게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사탕이라고 했지? 이야기 많이 들었어·”
“····”
“인사 안 해줘?”
“반갑다·”
짧게 한마디 던지고 휙 돌아섰다· 우리는 감정 줄다리기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위험지대가 위험지대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 마수에 범접할 정도로 난폭한 야생 동물· 그리고 순환계 최상위 포식자 또한 이 곳에 서식한다·
짐이 될만한 이들은 빨리 보내는 게 좋다· 이들을 보낸 뒤 위험지대를 더 탐색해서 최상위 포식자 소위 ‘날개없는 용’을 사냥하는 게 내 목표였다·
시온도 나와 같은 타겟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그녀보다 한 발 앞서고 싶었다· 내 사냥감을 내줄 생각은 없으니까·
움직이자는 신호를 주자 베르탕이 발을 굳히고 의심스럽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저기 시온이 우리쪽으로 오고 있다는 건 알아? 난 솔직히 지금도 불안한데· 우릴 보호해줄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시온이 오면 내가 나서서 싸우고 그틈에 너희들은 도망가· 그게 계획이야·”
“꼭 시온이 약탈이 아니라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세실이 충분히 설명했을 텐데 왜 물고 늘어지는 걸까· 감정 줄다리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트리샤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세실이 끼어들어서 일축했다·
“관심 있는 거 맞으니까 좀 닥쳐·”
트리샤도 거들었다·
“맞아 좀 닥쳐!”
“····”
베르탕은 충격을 받았는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내 옆에 있던 루나도 남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조곤조곤하게 거들었다·
“···닥쳐·”
나는 루나에게 귓속말했다·
“이런 건···따라하지 마·”
그러자 루나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