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거기에 연금술사 살아요·”
“연금술사요?”
“네 위젤이 약초가 많아서 연금술사들이 자주 오거든요· 그 사람은 여기 아예 자리를 잡았고·”
“혼자 사는 건가요?”
“몇 달에 한 번 나오는 사람이라 뭔지 나도 잘 몰라요· 가끔 찾아가면 집을 비어 있을 때도 많고· 안보인지 반년은 더 된 거 같은데·”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꿈에서 본 그 저택엔 사람의 왕래가 없었다고 했다·
폐인 몰골의 연금술사 하나가 몇 달에 한번 출입한다는 소문 뿐·
나는 그 저택 대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사람 자체를 안 반기는지 초인종조차 안 달려 있었다·
저택의 외형은 꿈에서 나온 것이랑 똑같았다· 이 저택이 도대체 왜 내 꿈에 나타난 건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꿈이야 그렇다 치고 이 저택에 들어가볼 만한 그럴듯한 명분도 없었다· 생면부지의 인간이 난대없이 연금술사의 집에 찾아오는 일 만큼 수상한 것도 없으리라· 그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연금술사가 날 잘도 반기겠다·
나는 어떤 명분을 들이밀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에라 구울 문제로 찾아왔다고 둘러대면 대충 넘어갈 수 있겠지·
초인종이 없으니 대문이라도 잡고 흔들 작정이었다·
나는 대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얼마나 관리를 안했는지 녹이 슬어 손에 녹가루의 감촉이 느껴졌다·
대문을 흔드니 슥 밀려 나온다·
“어?”
대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문을 살짝 밀고 머리를 반쯤 들이밀었다·
“계십니까?”
마당 바닥엔 디딤돌이 촘촘하게 깔려 있었는데 그 자갈 틈들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저택 창문들은 하나같이 뿌옇게 먼지가 껴 있고 심지어 한 곳은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단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에 가까웠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갔다·
심지어 현관문마저 잠겨 있지 않고 틈이 살짝 벌리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수색대가 먼저 다녀간 것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부근을 전담한 건 내가 있던 수색대였고 이 집은 그냥 지나쳤었다·
혹시 모르니 칼을 뽑아 들었다·
나는 현관으로 천천히 걸어가 손끝으로 문을 잡고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곧장 내부로 들어섰다·
그렇게 내 시야에 들어온 저택 내부는 내가 꿈에서 봤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조금 더 어질러진 것만 빼면·
구조는 완벽하게 동일한데· 헌데 바닥에 액자와 물이 바싹 마른 화분이 나뒹굴고 있었다· 도둑이 들었던 건가?
연금술사의 집이면 연구 기록을 훔치려 도둑이 드나들 수도 있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검을 도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나는 평범한 검으로는 구울을 상대할 수 없었다·
나는 눈과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꿈에서 보았던 서재를 향해 나아갔다·
마룻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고 나는 서재의 문 앞에서 섰다· 그리곤 심호흡을 하곤 문고리를 잡아 밀어냈다·
문이 열리는 작은 움직임에도 먼지들이 훅 피어올랐다·
바닥엔 먼지가 자욱하게 드리워 있었다· 발자국이 없는 걸 봐선 사람이 적어도 몇 년은 드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즐비하게 늘어선 책장들 사이로 다가갔다·
뭐야 이것들은·
책들은 대부분 내가 듣도보도 못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언어가 한 종류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언어가 이렇게나 많았나·
나는 아무 책을 집어서 휙휙 넘겨보았다· 페이지 마다 필기와 메모들로 빼곡하다· 다른 책을 무작위로 잡아서 펼쳐보니 똑같이 필기로 빼곡했다· 이 집의 주인인 연금술사는 그 모든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았던 책상 위의 종이 뭉치들을 떠올렸다·
책장들 사이를 헤쳐 나오자 꿈에서 봤던 그 이미지가 그대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먼지가 낀 창문· 그리고 기다란 책상·
믿기 힘든 풍경에 나는 눈을 감고 지압하듯 눈 주변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똑같은 풍경이다·
나는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자는 동안 유체 이탈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확실히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양피지 묶음·
먼지가 자욱하게 덮여 있지만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이렇게 오래 방치하면 쥐들이 파먹기 마련인데 다행히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두께로 봐서는 족히 300페이지는 되어 보였다·
나는 종이 묶음을 집어들고 표지에 쌓인 먼지를 후 불어냈다·
[ 연구 기록문 ]
즈베레프 브룬셀로스·
연금술사의 연구가 담긴 책이었다· 즈베레프는 아마도 이 집의 주인일 것이다·
내 꿈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바로 이거다·
나는 왜 이 연구문을 꿈에서 보게 된 것일까· 이게 나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표지를 넘겨보니 다행히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적혀 있었다·
기록문의 목차를 살펴보니 380장이나 되는 페이지가 고작 단 4개의 포션 제조법만을 담고 있었다·
페이지를 뭉텅이로 집어서 휙휙 넘겨보니 중반부 이후부터는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바뀌어서 집필되어 있었다·
이런·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앞부분 2개의 포션 제조법이었다· 읽을 수 있다는 게 언어가 통하는 것일 뿐· 재료의 가공법이나 성분의 조합식 각종 연금술 기호들 등등 내가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했다·
단순 조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효능과 부작용 연구 임상 실험 이 모든 작업 절차와 시행착오가 낱낱이 기록된 것이었다·
나는 앞부분 1번 포션의 레시피 제작 과정을 대강 넘겨보다가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미완성 포션의 인체 반응을 실험하는 부분이었다·
인체 실험하는 대상의 모습이 그림으로 낱낱이 묘사되어 있다· 인체의 생김새 머리카락· 주름· 체모까지 그려놓아 묘하게 불쾌하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그림 속 실험체는 팔다리가 쇠사슬로 둘러져 있다·
이렇게 구속할 정도면 실험체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겠지·
“젠장·”
다음 페이지에는 포션 투여 후 신체 변화를 건조한 문체로 기술해 두었다·
[ 동체 시력이 향상했다· ]
[ 반응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
[ 시각과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
[ 홍채에 형광 물질이 응집· 야간 투시 능력이 생겼다· ]
효능만 봐서는 대체 무슨 물약을 만드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페이지를 계속 넘겨보았다·
실험체의 털들이 전부 떨어져 나가고 피부가 화상을 입었다가 회복한 것처럼 엉겨 붙는다· 이가 새로 자라나고 근질이 점점 두터워진다·
갈비뼈가 점점 자라나고 변형되어 등을 뚫고 나온다·
연금술사의 담담한 기술과는 다르게 실험체의 몸 상태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헌데 다른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건 생김새가 흡사···구울이잖아?
나는 연구 기록문의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눈으로 빠르게 글들을 훑어갔다·
찾았다·
나는 초장에 실험 여건에 대해 기술한 한줄기 문장을 읽어내렸다·
[ ···안정적인 실험체 수급이 어려운 관계로 나는 포션 초기 임상 실험체를 인체와 반응이 유사한 ‘구울화가 진행 중인 인간의 사체’로 대체하였다· ]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 미치광이 연금술사는 구울로 자신의 포션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마을의 중심부에서 구울을 데려다 쓰다니 이 연금술사는 제정신이 아니다·
마저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기록문을 덮고 품 안에 넣었다·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지·
실험실을 찾아내야 한다·
구울은 햇빛을 싫어하니 창문이 달린 곳은 제외다· 아니 생각이 있다면 들여다볼 틈 자체가 없는 곳에다 실험실을 차려놨겠지·
그렇다면 지하실 밖에 없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서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 끝에는 창문이 없다· 복도 끝에 지하로 그림자가 진 곳이 보인다·
심장이 강하게 요동친다· 복도에 소리가 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서 심호흡했다·
계단 아래는 빛이 닿지 않아 어두웠다·
나는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개의 층을 건너 내려간 것같이 계단이 깊게 이어졌다·
계단의 끝에는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의 천장엔 마석으로 옅게 불이 밝혀져 있다· 마석의 수명이 거의 다 했는지 밝기가 촛불 보다도 더 희미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미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 기울였다·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는 듯한 소리·
분명히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복도의 끝에는 마저 닫히지 않은 두터운 철문이 보인다·
나는 철문에 다가가 천천히 열어젖혔다·
그 내부도 다 죽어가는 마석들로 희미하게 밝혀져 있다·
그곳에는 양 옆 벽에 감옥처럼 철창이 쳐진 공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천장에는 크게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한쪽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일부가 소실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의 딱딱한 침상·
그리고 그 옆에서 구울 하나가 다른 구울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식사에 열중해 있다·
내 정면에 있는 벽에는 벽돌들이 무너져 있고 거기엔 토사를 파내어 말이 드나들어도 될법한 거대한 굴이 끝을 알 수 없게 이어져 있었다·
“····”
나는 주머니에서 실베린이 준 스티치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두고 툭툭 건드리니 숨겨져 있던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곧이서 스티치는 말벌처럼 붕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해댔다·
스티치를 뒤쪽으로 던지자 곧장 복도를 타고 계단 위로 쇄도하며 날갔다·
요란한 날개소리에 구울이 식사를 중단하고 휙 뒤돌아본다·
구울이 한동안 나를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쳐들고 사람과 호랑이가 반반 섞인 듯한 음성으로 하울링을 해댔다·
크오오오오오—
잠깐의 정적·
천장에서 먼지가 투둑 떨어진다·
곧이어 발밑으로 전해지는 진동·
드드드드드드
무수한 발소리가 대지를 진동시킨다·
이곳에 점점 가까워진다· 곧이어 정면에 있는 굴에서 구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하 실험실의 절반을 구울들이 가득 채워버렸다·
구울들은 입맛을 다시며 내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는 심장이 정신없이 요동쳤는데 잔뜩 긴장해야 할 지금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다·
나는 오른손을 허공에 쭉 뻗고 눈을 감았다·
굳이 보거나 부르지 않아도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육감인지 뭔지 모를 영혼을 두드리는 감각· 내 몸 어딘가에서 잔잔히 호흡하던 그 존재·
그 존재의 울림이 여느 때보다 강해져 있었다· 마치 어미 뱃속을 나오려는 태아처럼 계속 내 영혼을 비집고 나오려고 한다·
나는 그 존재를 해방시켰다·
눈을 뜨자 내 손에는 빛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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