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
노파의 관절이 뚝뚝 꺾인다· 꼭두각시 인형 같은 기이한 움직임이었다·
데미안은 비비를 자신의 등 뒤로 슬쩍 감췄다·
그러다 노파가 데미안의 목을 조르려는 듯이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데미안은 몸을 틀어 비비의 허리를 붙잡고 왼쪽으로 피하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서걱!
노파의 썩움 몸이 두동강 나면서 관성이 따라 사선으로 날아갔다·
데미안이 몸을 돌려 노파를 마주보며 자세를 잡았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노파의 몸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노파 몸은 알 수 없는 마법의 힘이 지배하고 있었다·
노파는 데미안을 조롱하듯이 박수를 치며 혀를 날름거렸다·
“우우···· 여기서 죽이기 참 아깝군· 저 탐스런 입술을 보게·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직접 젖을 먹이며 길렀을 텐데·”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서 올라오는군·”
“아아 겁먹지 말려무나 아가야·”
데미안은 포션병을 꺼내 단번에 들이켰다·
그는 공포스런 광경에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비비는 데미안의 등과 몸이 맞닿아서 알 수 있었다· 조금도 떨림이 없다·
“조심···하거라·”
“제게서 떨어지십쇼·”
데미안은 가차없이 새끼줄을 자르고는 손끝으로 비비를 살짝 밀어냈다·
이 상황에서 비비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순순히 뒤로 빠졌다·
까마귀 한 무리가 노파에게 날아든다· 그것들의 발에 해골 장식이 달린 지팡이가 달려 있었다·
노파가 지팡이를 받아들고 기이한 주문을 왼다· 해골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구체 형태로 회전하며 노파를 감싸더니 점차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주변을 살폈다·
노파의 뒤편 잡목숲에서 구울들까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노파를 따라 검은 연기의 구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구체가 점점 크기를 키운다· 그 일대가 점차 침식당하고 있었다·
“여기다 아가야·”
그러던 중 돌연 비비의 뒤쪽에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느틈에 노파가 비비에게 접근해서 몸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비비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꺅!”
“···!”
데미안이 황급히 비비를 잡아당기고는 노파를 검으로 베어냈다· 헌데 그 몸이 날에 닿자마자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노파의 웃음이 울려퍼진다·
“아하하하하!”
그리고 돌연 옆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우우 아름다운 한 쌍이야·”
데미안이 몸을 돌려 확인했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저런 왕자님이 지켜주다니 저리도 복에 겨울 수가 있을까?”
이번엔 뒤쪽이다·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가야 착각해선 안 된단다· 여자는 본래 교활한 종이지·”
“킬킬 네가 목숨을 바쳐 구한다고 계집년이 네게 순결을 바칠 거 같아?”
“저 계집년 하나를 위해 죽어난 기사들로 산을 쌓을 수 있을 정도지· 네 시체 하나 정도는 티도 안 날 게야·”
“네 희생을 기억하는 건 잠깐일 뿐· 금방 잊고 이웃 나라의 왕자님한테 몸을 바칠 것이다· 그게 계집들에게 깊게 박힌 더러운 본성이지·”
비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가 망가진 몸과 군인 연금으로 간신히 연명할 때 저 계집년은 왕자님과 파티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비비가 소리쳤다·
“닥쳐라!”
“우우···· 본성이 탄로나니 발끈하는 모습을 보라지·”
검은 연기는 점점 커져서 서서히 데미안과 비비를 집어삼켰다· 다시금 검은 밀실에 갇히게 되었다·
“이제는 저와 붙어 계십쇼·”
“···알았다·”
노파의 도발이 이어졌다·
“내 삶을 망가뜨린 건 공국의 기사였다· 나는 길을 잃고 쓰러진 기사를 보살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내 가엾은 남동생의 머리를 찌그러진 냄비처럼 박살내고는 날 겁탈했지·”
“····”
사실 여부를 떠나서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이야기였다·
“공국의 족속들은 이 일을 당해도 족해· 저 계집년은 널 버릴 거야· 믿어도 된단다 아가야·”
저 도발에 크게 흔들린 건 데미안이 아닌 비비였다·
지금껏 데미안은 공녀를 향한 믿음을 행동으로 완전히 증명했지만 비비는 데미안에게 어떤것도 증명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노파는 이들의 행적을 지켜보았던 덕에 그 관계의 틈을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그녀는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말로만 중얼댈 뿐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데미안을 버리지 않겠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비가 떨리는 마음으로 데미안의 왼손에 자기의 손을 겹치려 들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갑작스럽게 움직인 탓에 제대로 맞닿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데미안이 돌연 몸을 틀어 검을 휘둘렀다·
푸슉!
연기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구울이 그의 검에 두동강이 나버렸다·
“아하하하! 겁먹은 쥐새끼처럼 움츠러든 꼴이 사랑스럽구나·”
데미안이 빠르게 비비를 옆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그녀가 서 있던 곳에 또다른 구울이 덮쳐들어왔다·
이는 데미안의 검에 주둥이가 뚫린 채로 옆에 던져졌다·
“난 이 숨바꼭질을 밤새도록 할 수 있단다·”
노파가 조롱하듯 낄낄 웃었다·
그리고는 비비의 옆에 갑자기 나타나선 몸을 할퀴려 들었다·
데미안이 재빨리 반응해 한 손을 잘라냈지만 다른 한 손을 막지 못해 팔뚝에 깊은 손톱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
데미안에 칼을 복부에 꽂아넣자 노파는 다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완전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부류의 마법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이 땅의 주인께선 이미 눈을 뜨셨다·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고 최후도 예정되었다·”
그러던 중 데미안이 비비에게 속삭였다·
“뭐 느껴지는 거 없습니까?”
“느껴진다니?”
“분명 불사신은 아닐 겁니다· 본체가 숨어서 노파의 시체와 구울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렇겠지· 하지만 뭘 감지하라는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수상한 거라면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또다시 구울이 불시의 기습을 강행했지만 데미안의 검에 의해 쳐내졌다·
비비는 데미안을 믿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에 집중했다·
본체라고 할 만한 마력의 근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 있다·”
“뭐 말입니까?”
“갑자기··· 그게 또 나타났다· 우리 앞에서 아른거린다는 실체 없는 마력의 덩어리 말이다·”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근처에 있는데···이동하고 있다· 아주 천천히····”
비비가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고는 이동하는 방향으로 팔을 움직였다·
데미안의 시선도 그 손을 따라 이동했다·
“따라가야겠습니다·”
“그 그래·”
데미안이 그 방면으로 나아가자 구울의 기습 빈도가 더 잦아졌다· 마치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노파가 갑자기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심심하면 손뼉을 치며 조롱하고도 남을 시간이이었다·
이제는 급기야 푸른 사슴의 모습이 데미안의 눈에도 잡히기 시작했다·
데미안도 저 푸른 사슴이 갑자기 나타나 적잖이 의문인 듯한 모양새였다·
검은 연기 너머에서 푸른 빛깔이 희미하게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돌연 우뚝 멈춰섰다· 뭔가를 지목하는 것처럼·
검은 연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곳이 있었다· 데미안은 그리폰 포션 덕에 이를 예민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차없이 목검을 던져버렸다·
곧이어 무언가를 관통했다·
“끼아아아아아악!”
동시에 한 노인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데미안이 비비의 손목을 잡고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검은 연기가 구심점을 잃고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간 곳에는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얼마나 잘 먹어댔는지 뱃살이 출렁이는 노파가 가슴팍을 부여잡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생김새는 분명 그들이 보았던 제사장의 얼굴과 일치했고 바닥엔 해골 지팡이가 떨어져 있다·
굶주리고 불쌍해 보이는 외관 또한 속임수였다· 노파는 바르비시아의 정착민 중 가장 떼깔이 좋았다·
그 가슴엔 데미안의 목검이 정확히 관통했다· 노파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어 어떻게····”
데미안이 놀리듯이 한마디 던졌다·
“속일 거면 숨쉬는 것도 참았어야지·”
“이 이제 곧 이 땅의 주인께서··· 머지 않았···”
노파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연기는 이제 거의 다 흩어졌다· 데미안은 아직 구울을 경계하는지 폭탄을 넣어둔 주머니에 손을 올리고 주변을 살폈다·
구울들은 달아나고 주변엔 아무런 적도 남지 않았다·
비비는 서둘러 상황파악을 마치고 데미안의 상처를 살폈다·
“피가 나온다· 괜찮겠느냐?”
“피는 항상 보던 것이라 익숙합니다· 다만····”
데미안이 말하다 말고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였다·
비비가 화들짝 놀라서 온몸으로 그를 끌어안고 지탱했다·
“무 무슨 일이더냐!”
그리고 맞닿은 데미안의 몸이 불처럼 뜨거웠다·
“손톱에 독이 있던 것 같습니다·”
“해독하는 방법은 알고 있느냐?”
“무슨 독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회복 포션은 외상에만 효과가 있고··· 해독 작용은 없습니다·”
비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 내 호위대 중 연금술사도 있었으니 그 놈을 사로잡아서····”
“너무 위험합니다·”
“····”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이곳은 주변이 너무 트여 있습니다·”
***
늪지에서 다행히 사람의 발로 다져진 단단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비비와 데미안은 우선 그 길을 따라 이동했다· 괜히 늪지로 이동했다가 재감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이다! 이 앞에 마을이 있구나·”
버려진 지 십수년은 지난 것 같은 마을이 보였다· 당장에 마음이 급한 상황이라 누울 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데미안을 이끌고 그나마 지붕이 멀쩡한 집에 들어가서 그를 눕혔다·
“잠시 쓸만한 물건을 찾아오겠다·”
데미안은 지쳤는지 대답이 없었다·
비비는 빈 집을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들을 찾았다· 그나마 상태가 좋아 보이는 냄비와 그릇을 챙겼다· 그리고 땔감으로 쓰기 위해 책들을 수거하는 중에 민간 약제 제조법이 적힌 노트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노트의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기며 레시피를 확인했다· 그리고 데미안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독약을 탐색했다·
환부가 초록색으로 물들고 고열 증상 발현·
고론디스 화살독과 해독에 관하여····
그리고 이에 맞는 해독제 레시피를 보자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늘이 도와주는구나·”
서둘러 필요한 재료들을 머릿속에 담고는 데미안에게 달려갔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비비는 도로 힘으로 눌러버렸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금방 약초를 따오겠다·”
그러자 데미안이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 답했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그러자 비비가 고집을 부렸다·
“그대가 죽으면 어차피 나도 죽는다· 지금 상황에선 그런 걸 가릴게 아니다· 위험한 게 무슨 상관이더냐·”
“···안 됩니다·”
한계에 다다랐는지 데미안은 그러곤 의식을 놓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쓰라렸다·
그녀는 벽에 비스듬히 몸을 걸친 채로 기절한 데미안을 똑바로 눕혔다·
비비는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다 약초를 따고 돌아왔을 땐 해는 이미 거의 다 기울어진 뒤였다·
그녀의 다리와 팔뚝은 진흙과 벌레물린 흔적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급해 몸가짐을 정돈할 겨를이 없었다·
데미안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탕약 제조를 위해 불을 피우고 물을 올렸다· 그리고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했고 약초를 우려내는 동안 병간호를 했다·
데미안은 가만 있었는데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을에 버려진 헝겊을 가져와 삶고는 땀을 닦아주기 위해 데미안의 상의를 벗겼다·
“····”
그리고 그의 몸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을 보곤 잠시 숙연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십대 소년의 몸이란 말인가·
그녀는 손가락으로 복부를 쓸었다· 우둘투둘한 감각· 진짜 흉터였다·
그토록 단단해지기까지 상상하기도 힘든 고통의 시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데미안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지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내가 내가 지켜줄게····”
비비는 데미안의 볼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쓸었다· 헛것이라도 보는 걸까· 울컥하고 무언가 속에서 치고 올라온다· 그토록 강인하고 흔들림 없던 남자가 이제는 너무도 가엾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데미안이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내가 지켜줄게··· 리자····”
“···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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