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6
비비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벌어졌다· 일전에 홀로 동굴에서 마수의 목을 베어냈을 때도 증언으로는 빛이 번쩍하더니 모든 게 끝나 있었다고 했었다·
그 빛은 데미안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빛이 너무 강해서 번개가 친 것처럼 그 일대가 순간적으로 환해졌다·
마법 신성력 어느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매서운 폭발음이 뒤늦게 도달하며 충격파가 그 일대를 전부 흔들었다·
“···!”
지금껏 전력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정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남길 자처한 것일까· 비비는 그게 맞기를 간절히 빌었다·
비비의 눈은 데미안이 있는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해가 완전히 사라진 검은 대낮· 불타는 나무들의 매캐한 연기·
그리고 환수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에선 시체 썩은내가 진동했다·
마침내 눈앞에 맞이한 환수는 대가리를 높이 들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압감을 뽐냈다· 송곳니에 찍히면 생존은 커녕 시체를 보전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 환수의 몸에선 검은 아지랑이가 끊임없이 피어 올랐다·
데미안은 천천히 상대를 탐색했다·
몸집이 큰 짐승은 그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식사량을 채운다· 저 녀석은 그리 몸집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을 집어삼켜댔을까·
환수는 데미안보다는 다른 목표물에 관심을 보였다· 사슴을 타고 떠나는 비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가이낙스··· 가이낙스····”
땅에서 끊임없이 기어나오는 시체들이 비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치 환수의 입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데미안이 앞에 버티고 서 있던 탓에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데미안은 생각했다·
이들이 비비를 그 여신의 피를 탐내는 이유는 뭘까· 마법사의 영혼들을 가둬둔 건 무엇을 위해서일까·
대화가 통하는 이들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답답할 따름이었다·
데미안은 더는 기다리지 않고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순간 강렬한 빛이 뿜어나오더니 검파가 환수에게 쇄도했다·
검파가 뱀의 머리를 완전히 터트려버렸다·
콰앙!
산산조각이 난 살점들이 피와 함께 사방에 튀었다·
데미안은 여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환수는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여전히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수의 뒤쪽 검은 호수의 물이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이는 점차 소용돌이 치더니 환수의 몸을 타고 올라가 응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가 재생성되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의 능력이 재생이면 불리한 건 데미안이었다· 검을 소환하는데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호락호락하게 끝날 상대가 아니었다·
움직이는 유골들이 데미안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환수에게 총력을 쏟아야 했기에 해골들은 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두기엔 영 신경이 거슬렸다·
그 무리는 비비의 이름을 제창함과 동시에 한때 사람이었던 시절의 말을 이따금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제 오나요?”
“완성하지 못한 책이 있어·”
“늙고 병든 어머니를 두고 왔어·”
전부 바르비시아에서 떠나질 못하고 환수의 노예가 된 영혼들이었다·
데미안은 몸을 붙잡은 해골들을 쳐내고 다시 검파를 환수에게 쏘아냈다·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환수의 몸이 두동강이 나버렸다· 그리고 호수의 물이 다시 끌어당겨져 환수의 몸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하고는 늪지에 잠수하듯이 몸을 밀어넣었다·
“···젠장·”
환수가 미꾸라지처럼 늪지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사라진 탓에 언제 어디서 기습을 할지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직접적인 타격을 먹일 수도 없었다·
그는 해골들을 정리해가며 바닥의 진동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다 어떻게 대처할 틈도 없이 돌연 꼬리가 늪지에서 튀어나와 데미안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의 몸은 붕 떠올라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곤두박쳤다·
그리고 데미안이 몸을 일으키자 발 아래에서 거대한 뱀의 주둥이가 튀어나와 그를 통째로 집어 삼키려 들었다· 그는 온몸을 비틀어 몸을 옆으로 빼내고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머리를 잘라냈다·
이번에도 역시나 호수의 물이 빨려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몸을 수복했다·
수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긴 몸을 이용해 또다시 예측이 불가능한 공격을 해댔고 데미안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공략법이 묘연했다·
데미안은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고는 서둘러 지면이 단단한 곳으로 이동한 뒤에 귀를 땅에다 붙이고 직접 환수가 이동하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뱀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닌 난데없는 남자의 비명소리였다· 급박한 상황이라 착각한 것일까· 다시 귀를 가져다대도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산채로 몸이 불타는 사람처럼 처절한 비명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어떻게 땅에 저런 진동이 퍼지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차없는 환수의 기습이 날아들었다· 데미안은 제빨리 반응해 환수의 상반신에 검파를 쏘아내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데미안이 곧장 검은 호수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골들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고 날렵해져서 데미안을 붙잡으려 들었다·
땅밑에서 튀어나오는 환수의 기습도 그 주기가 급격히 짧아졌다·
달려나가는 데미안의 발치에 함정처럼 뱀꼬리가 튀어나와 데미안에게 몽둥이길하듯 후려쳤다·
이를 얻어맞은 데미안은 옆으로 날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서리바람 폭탄을 전부 꺼내 일직선으로 터트렸다·
폭탄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호수로 향하는 길을 바위처럼 단단히 얼려버렸다· 데미안은 그 위를 즉시 달리기 시작했다·
환수가 지상으로 나와 꽁꽁 얼은 길을 부수려 들었다· 하지만 동작을 크게 가져가야 했던 탓에 데미안의 검파를 직격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차례 환수를 죽이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호수 앞에 도달하자 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그 안에 다이빙했다·
그 안에 몸을 담그니 남자의 비명을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데미안의 예상대로였다·
눈 앞에 이상한 것들이 스친다· 호수 안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령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호수 자체가 영혼을 농축시킨 액기스 같았다·
호수 바닥엔 수십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비명은 그 항아리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무언가가 데미안의 발목을 잡는다· 살아움직이는 해골의 소행이었다·
저항이 거세지는 걸 보니 저 항아리에 담긴 영혼이 중요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데미안은 곧바로 검파를 날렸다·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호수 바닥이 완전히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데미안은 해골들과 함께 물살에 쓸려 호수 밖으로 밀려나왔다·
“크와아아악!”
지상에선 환수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선 검은 영혼 덩어리가 쑥쑥 빠져나와 하늘로 증발하고 있었다·
녀석은 영혼을 소모해 신체를 계속 재생하던 건지도 몰랐다·
데미안은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파를 날려 환수의 몸통 중앙을 터트려버렸다·
살점과 뼈가 잘개 쪼개져 사방으로 튄다· 그리고 녀석은 두동강 난 몸을 가지고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엔 잠잠해졌다·
끝났다·
환수의 죽음과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해골들은 도로 아무런 의미 없는 뼛조각으로 돌아갔다·
데미안은 물가에서 몸을 완전히 빼내고 땅에 주저 앉았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앞으로 뱀고기는 못 먹겠네·”
***
검게 물은 하늘이 점점 맑게 개기 시작했다· 마치 공국의 휴양지에서 볼 법한 청명하고 푸른 하늘이었다· 산뜻한 바람· 그리고 어딘가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차원의 문이라도 넘어온 것일까· 이땅을 덮은 불길한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바위 아래서 몸을 숨기고 있던 비비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혼자 두고온 데미안이 불현듯 떠올랐다·
“데미안 데미안!”
푸른 사슴 또한 비비의 말을 알아들은 듯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비비가 서둘러 등에 올라타 뿔을 잡았다·
사슴이 빠른 속도로 데미안이 있던 호수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로 짜낸 새끼줄을 꼭 쥐고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제발····”
그 남자가 무사하기를·
일전에 보았던 그 검은 호숫가는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났던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던 나무들은 남김없이 쓸려나갔고 땅도 움푹움푹 패여 있었다·
주변엔 유골 수십 구가 마치 짐승이 먹다 버린 것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실리스크의 시체가 길게 늘어져 장벽처럼 길을 막은 상태였다· 싸움은 끝났다·
처절했던 전투의 현장을 보니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사슴은 천천히 길을 돌아 움직였다· 비비는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음이 급했던지 사슴의 등에서 내렸다·
“데미안 데미안!”
체면은 다 잊어버리고 가족을 찾는 것처럼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거대한 뱀의 주둥이 앞에 가서 있는 힘껏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뱃속에서 살아 있으면···!”
그를 찾기 위해서라면 바실리스크의 위장 속이라도 기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푸른 사슴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이 비비를 앞질러 어딘가로 달려갔다·
사슴이 나아가는 방면 너머에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누군가 윗동이 뜯겨나간 나무 그루터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비비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혹여나 죽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숨은 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온갖 썩은내가 진동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비가 서둘러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얼굴에 묻은 얼룩들을 닦아냈다· 그리고 데미안이 달콤한 단잠에서 깬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는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대는··· 내 일생동안 맞이한 기사들 중 가장 용맹하구나·”
그는 졸린 것처럼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는 말했다·
“소풍 가기 좋은 날씨 아닙니까·”
비비는 데미안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몇몇 눈에 띄는 상처는 있었지만 팔다리는 멀쩡했다·
데미안이 실없는 소리를 해대니 비비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더할 나위 없이 맑구나·”
“다 끝났으니 이제는 조용하고 깨끗한 호수가에서 좀 쉬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공국으로 돌아간다면··· 함께 하자꾸나·”
“돗자리도 피고요·”
“궁전의 비단 카펫을 가져다 써도 뭐라 하지 않겠다· 그게 안 되면 내 드레스를 잘라서라도 마련할 것이다·”
“산크로티스식 애플파이도 있어야 합니다·”
“그건 나도 좋아하는 것이다·”
“···공녀님과 저의 유일한 공통점이군요·”
“난 이미 여러 개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대는 이제 하나를 찾다니 유감이구나·”
그러고는 비비가 데미안의 왼손을 잡아당기고 주섬주섬 새끼줄을 엮기 시작했다·
이를 본 데미안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환각을 일으키는 원흉이 제거되었으니 더는 묶어둘 필요는 없었다·
“···그대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불안하다·”
“이 몸상태로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모를일이지· 그냥 내 눈에··· 닿는 곳에 있거라·”
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내자 비비가 민망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반대쪽 줄을 자기의 손목에 엮었다·
환수를 잡았지만 거기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바르비시아의 영역은 지독히도 넓었기에 데미안과 비비는 사흘을 더 표류해야 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호위대의 연락이 끊기자 대거 파견된 공국의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고 마침내 공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근 이사 문제로 다소 경황이 없었고 급하게 쓰자니 만족할 만한 글이 나오지 않아 최근 연재가 다소 늘어진 감이 있었습니다· 이사는 이제 끝났으니 다시 정상 주기로 돌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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