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실베린은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어 던졌다·
메이드가 그녀를 뒤따라가 바닥에 널브러진 로브를 챙겼다· 또 다른 메이드가 은 쟁반을 들고 실베린의 옆에 따라 붙었다·
실베린은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와 반지를 하나씩 빼내 은쟁반 위에 올렸다· 각각의 장신구마다 보석의 색이 제각각이었고 액세서리 수만 따지면 열개가 넘었다·
일부는 최고위 마법 인챈트가 되어 있었고 이 중 하나만 팔아도 웬만한 집 한 채는 사고도 남길 수 있었다·
워낙 마력에 민감한 탓에 아티팩트의 담긴 티끌만한 마력이라 한들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모든 걸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야 했다·
실베린은 그런 잡다한 치장과 옷가지를 전부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중앙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고 그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이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욕조에 들어갔다·
이 순간이 실베린이 진정으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베린은 욕조에 몸을 늘어뜨렸다·
헌데 모처럼 휴식이지만 모든 걸 놓고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엉킨 매듭이 그녀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마스터스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데미안은 처음엔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데미안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실베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 할 수 있어요·’
구울 토벌 마스터스 클래스 심사 아무렴 좋았다·
데미안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한들 그녀에게 있어서 크게 실망할 문제가 아니었다·
데미안의 삶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심사에서 탈락해야 아카데미 생활이 순탄해질 것이다· 마스터스 클래스는 혹독한 과정을 수반하니까·
심사 탈락이 입학 취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지도 하에 아카데미 입학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설령 꼴등을 하더라도 이터니아의 졸업장만 딴다면 앞날은 창창했다· 이터니아 졸업장은 귀족 작위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가치를 지녔으니까·
문제는 데미안 내면에 있었다·
배우는 데 있어 성실하고 습득력도 좋다 실베린의 말도 곧잘 따랐다· 부채질만 해 줘도 저혼자 돛을 펴고 멀리까지 나아가는 아이다·
성격에 모난 것도 없고 반항도 하지 않는다·
아직 서투르긴 하지만 자기 이익은 곧잘 챙기기도한다·
하나씩 가르치는 맛이 좀 덜했지만 혼자 해내려는 모습이 제법 기특하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모난 게 없고 건강한 인격은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귀족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지 고아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
고아들은 대부분 내면에는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부 부모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라 어린 나이에 생계를 꾸리고 살던 데미안의 내면도 여러가지로 망가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데미안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문제를 숨기고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언젠가 버림 받을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아득바득 능력을 키우고 있거나·
둘 중 어느 쪽이든 안쓰러운 건 똑같다·
‘데미안에게 친구가 있다고 했었나····’
혼자 먼 타지에 왔는데 친구를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아 보인다·
과거에 대해서도 잘 이야기하려 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꽁꽁 감추고 있는 것만 같다·
필요한 게 있으면 조금은 의지하고 기대도 되는데 데미안은 가능하면 기를 써서라도 혼자 해내려고만 했다·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작은 실패 하나로 버티고 있던 게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실베린은 힘이 풀린 눈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자신의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꼬았다·
‘조금은 어린애처럼 굴어도 괜찮으련만·’
***
수련은 이튿날 바로 이어졌다·
마스터스 클래스 심사를 앞두고 있다고 훈련법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었다·
평소같은 기초 체력과 근력 그리고 풋워크 훈련이 오전동안 이어졌다·
계속되는 고강도 반복 훈련에 지칠만도 한데 데미안은 군소리 없이 따라주었다· 구울 토벌 이후 느낀게 있었는지 도리어 열성적이었다·
이렇게 쌓아둔 기초 체력과 근력은 이터니아 입학시험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데미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추천서를 받은 학생은 입학시험에 참가만 해도 입학은 무조건 확정이었다· 데미안은 추가 점수를 받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동기 부여를 위해 그냥 놔둘 생각이었다·
다만 시험 성적에 따라 제공받을 생활 및 학습 시설의 수준이 달라지므로 높은 성적을 받는 게 좋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짧은 시간에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훈련에 집중해야 했다·
‘당장은 검술에 집중할 상황이 아니야·’
검을 맞대고 교전하는 법도 언젠가 익혀야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큰 효용이 없었다·
데미안이 다루는 마검의 존재 덕분이었다·
검기를 잔뜩 두르지 않으면 마검을 받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훈련에 매진하고 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실베린과 데미안은 다시 수련장으로 왔다·
그리고 수련장에는 메이드 하나가 모래시계를 들고 서 있었다·
데미안이 의문을 표하자 실베린이 말했다·
“이제부터 시간을 잴 거야·”
“무슨 시간이요?”
“네 검을 유지하는 시간·”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면 단연 마검의 유지 시간을 늘리는 거였다· 마검은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지만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메이드에게 멀리 떨어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데미안에게 말했다·
“가만있어·”
메이드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 실베린은 데미안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실베린은 데미안의 신체 속 마력의 흐름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이제 검을 소환해 봐·”
데미안은 상황 파악이 됐는지 실베린을 한 번 봤다가 눈을 감았다·
곧이어 데미안의 손에 빛이 발하고 찬란한 광채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베린이 메이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메이드가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데미안 가슴에 얹은 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검을 소환한 이후 데미안은 초월적인 마압에 짓눌리고 있었다·
검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더라도 이 정도 마압은 쉽게 견딜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마압이 너무 강한데?’
그 말은 마검에 응축된 마력이 그녀의 예상치를 훨씬 상회한다는 걸 의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이런 마압을 견뎌내는게 기이할 정도다·
1분 2분·
그렇게 숨을 죽이고 데미안의 상태를 점검했다·
데미안 체내에 있는 마력이 점차 줄어든다·
‘거기다 쥐꼬리만큼 있는 마력 마저도 끌어가네·’
예상대로 이 마검은 데미안의 마력을 빨아당기고 있었다·
다만 의문이 가는 점은 끌어가는 마력의 양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이다·
데미안이 담아낼 수 있는 마력의 총량은 일반인 평균치보다 낮았다· 그릇을 따지면 기초적인 마법을 구사하는데만 6~7년은 걸릴 수준이었다·
데미안의 마력 총량을 고려해볼 때 사실상 마검이 끌어당기는 마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상해·’
검의 마압은 점점 강해지는데 그에 비해 데미안의 마력이 감소한 양은 적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마력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말인데·’
그 마력의 출처는 실베린 조차도 감지해낼 수 없었다·
마력이 점점 줄어들고 바닥을 드러냈다·
데미안의 심장이 쥐어짜는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검의 빛이 흔들렸다·
데미안의 신체에 부하가 가해지고 있었다·
“이제 됐어· 소환을 해제해·”
데미안의 검이 사라지고 몸을 휘청거렸다· 실베린이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메이드가 흙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압이 멀리 떨어진 메이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데미안이 실베린의 부축하던 팔을 떼고는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잠깐 있어 봐·”
실베린이 직접 메이드에게 다가가 모래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메이드가 남은 모래의 눈금을 표시해 두었다·
실베린이 데미안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고 바위에 앉혔다·
그녀는 모래시계의 눈금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너와 검에 대해 알아낸 게 몇가지 있어· 대답하지 말고 들어·”
“네·”
“대답하지 말고· 넌 지금 마력이 고갈난 상태야· 내일까지 기력이 없을 거니까 오늘 훈련은 여기서 끝낼 거야·”
“더 할 수 있어요·”
“네가 안정적으로 그 검을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7분 30초 정도야·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까지 감안하면 6분이고 검파를 쏴대면 더 줄어들겠지·”
“체감한 거랑 다르게 좀 짧네요·”
실베린이 데미안의 한쪽 볼을 꼬집었다·
“대답하지 말랬지· 이게 네가 검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이유야· 6분 안에 결판내지 않으면 네가 죽어· 검은 항상 마지막에 꺼내·”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마검을 오래 유지하는 훈련을 할 거야·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중요해·”
실베린이 꼬집은 볼을 풀어주고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데미안의 상태라면 걷는 것도 무리가 갈 수도 있었다·
지금껏 검을 쓰고 어떻게 버틴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 부를테니까 잠깐 기다려·”
“전 괜찮아요·”
데미안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베린의 우려와는 다르게 데미안은 몸을 툭툭 털고 일어서서 몸을 풀었다·
마력이 고갈난 사람치고는 몸놀림이 가벼웠다·
그런 데미안을 바라보는 실베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이 고갈되면 신체에 무리가 간다· 마법을 수련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완전히 회복하는데 사나흘은 걸렸다·
“뭐야 너···마력 다 고갈났는데 어떻게 된 거야?”
데미안도 실베린의 반응에 당황한 듯 말을 흐렸다·
“원래 금방 좋아지던데····”
“잠깐 기다려 봐·”
실베린이 데미안의 가슴에 다시 손을 댔다·
그리고 잠시 몸 안에 있는 마력을 측정했다·
실베린이 의문스러운 듯 머리를 기울였다·
고갈되어 있어야 할 마력이 전부 복구되어 있었다·
“···?”
‘전부 회복한 거야?’
마력을 담아내는 총량은 평균 이하였지만 마력 회복 속도가 웬만한 고위 마법사 못지 않게 좋았다·
‘설마 이게?’
실베린의 머릿속에 있던 퍼즐이 점점 짜맞춰지고 있었다·
마검이 흡수해내던 막대한 마력의 비밀은 바로 데미안의 가공할 만한 마력 재생 능력에 있었다· 마검이 빨아들이는 만큼 곧장 마력을 생산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력을 담아내는 그릇의 총량과 재생 능력은 비례하고 동시에 성장한다· 이 둘은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릇이 작은데 재생 능력이 좋은 건 극히 드물게 후천적으로 무언가가 개입해 능력에 영향을 준 것이었다·
데미안을 바라보는 실베린의 눈이 좁혀졌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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