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5
율리시아 공국의 동북부 국경지대에는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은 마을이 있었다· 일리시알 협곡·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하고 이끼가 가득한 협곡에 판자를 쌓아 만든 기이한 곳이었다·
살인마 부랑아 탈옥수 밀수꾼 암살자 등등 그 어느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이들이 모인 무법지대였다· 그곳에서 룰은 있지만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힘이 있다면 그 곳의 룰 따위는 얼마든지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그 중심가를 로브를 푹 눌러 쓴 한 장신의 여자가 가로질렀다· 아무런 호위도 없이 여자가 혼자 그곳을 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구둣발에 사람의 정강이 뼈가 걸리자 그녀는 툭 차내고는 다시 나아갔다·
그런 모습은 무법자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그녀가 더러운 길가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었다·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뒤를 슬금슬금 미행하는 이도 있었다· 이 곳에 홀로 발을 들인 여자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헤헤 헤헤·”
앞니가 다 나간 한 부랑자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그녀와 간격을 두고 따라붙었다·
여자는 어느 무너져가는 한 판자 건물 앞에 서서 쪽지를 꺼내 확인했다·
[학자는 대갈못의 휴익에게 의탁했음·]
그리고 그 건물의 판자에는 사람인지 짐승의 것인지 모를 피로 무식하게’휴익’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주변엔 방문자를 반기듯 사람의 시체를 장대에 대못으로 박아 내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점유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것처럼·
“····”
여자는 등뒤에 자신을 노리는 무법자들을 별로 신경쓰지도 않고 쓰러져가는 판자집에 들어섰다·
그 내부에선 술과 땀과 음식 썩은 내가 섞인 악취가 훅 밀려왔다·
마법 쇠사슬을 손질하는 무법자 무리가 노크 없는 침입에 일제히 돌아보았다·
그 낯선 손님이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실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이야·”
그녀는 그 무리들의 중앙으로 걸어나서서 말했다·
“여기 책임자를 만나야겠어·”
무리 중 한 놈이 말했다·
“야야 이 년이 우리 책임자를 만나보셔야겠단다!”
:”크흐흐 책임자? 우릴 누가 책임진다고?”
그녀는 들은 척도 안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로베르 페이스를 만나야겠으니까 당장 책임자를 불러·”
그녀의 곱고 차분한 목소리는 한참을 굶주린 무법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무법자들이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서고는 그녀를 둘러싸며 킬킬 웃어대기 시작했다·
찰칵·
건물 바깥쪽에서 출구의 자물쇠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들은 출구 쪽에 서서 퇴로를 막았다· 그럼 그렇지· 여자는 속으로 웃었다· 이들의 아지트에 순순히 들어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스스로 쉽게 포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기 때문이었다· 제발로 들어오는 먹잇감을 마다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두 발로 걷는 여자는 대장을 볼 수 없는데 말이야·”
무리 중 다른 한 놈이 소리쳤다·
“네 발로 걸어야지·”
여자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가까이 있는 잡배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덥석 잡았다·
얼굴을 잡힌 이가 갑자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살점이 타는 냄새와 함께 얼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으 으악· 아아아아악!”
여자가 손을 놓자 얼굴이 타버린 송장이 되어 바닥에 툭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차분하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자를 불러·”
시체를 본 어느 무법자가 곧장 소리쳤다·
“저 년을 포박해!”
그러자 매복해 있던 무리들이 튀어나와 그녀에게 발광하는 쇠사슬을 던졌다· 이는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다섯 가닥의 쇠사슬이 일제히 날아들어 여자를 단번에 구속해버렸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묶은 쇠사슬을 잠잠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력 억제 효과가 있는 합성 광석이 분명했다· 이들은 마법사 같은 예측불능의 존재들도 이것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장난감으로 무력화가 된다면 마법사는 지금과 같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를 흔들어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생기있는 검붉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녀는 조금 피곤해진 듯한 얼굴로 말했다·
“책임자 부를 때까지··· 이제 하나씩 타죽을 거야·”
***
실베린은 탄내가 가득한 실내에서 얼굴에 대고 손부채질을 했다· 그 곳에서 실베린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러한 쓰레기 청소 작업에 회의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증인을 남겨둘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오두막의 안쪽 공간에 무리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이가 있었는데 이미 상반신이 새까맣게 타버려 발견한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시체를 뒤쳐 열쇠를 빼내고는 지하 계단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 아래의 지하 감옥에는 나체의 여성들이 갇혀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빛 때문에 그들은 눈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실베린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안경을 쓴 어느 중년의 남성이 있는 철창 앞에 걸어갔다·
바로 그녀가 찾던 탈옥수 로베르 페이스였다·
그는 위층에서의 소란을 다 들었는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또··· 뵙는군요·”
그와 실베린은 이미 구면이었다·
“공국에서 얌전히 있었으면 더 편안하게 지냈을 텐데·”
스스로 몸을 의탁했다기엔 몰골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더 확실한 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공국을 버리고 찾은 게 이거야?”
“공국은 이 빠진 늑대입니다· 평화의 시대를 누린 탓에 금고는 터질 지경이지만 병기는 전부 녹슬고 과거의 영웅들은 이제 다 죽거나 늙었죠·”
로베르 페이스는 학자 중에서 특히 위험한 지식들을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학자적인 열정과 고위 뱀파이어 특유의 긴 수명이 맞물려 축적된 지식의 양이 상당했다· 그는 대외적으론 수감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신변 안전을 위해 공국에 몸을 의탁한 것이었다·
어느날 그는 공국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공국을 떠났다·
“그래서 이곳이 안전하다 판단한 거야?”
“이곳에서 구르면 제 행적은 추적하기 더 어려줘질 테니까요· 전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추적한 걸 보면 종적을 감추는 데엔 재주가 없나봐·”
“···아직 계획한대로 다 행한 건 아닙니다·”
실베린이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뭘 하려던 작정이었지?”
“···이곳 우두머리 놈한테 마검 ‘이길리온의 혓바닥’이 숨겨진 곳에 안내할 예정이었습니다·”
로베르 페이스가 위험한 존재인 이유는 그가 특이 광물학자이면서 마검에 관해선 최고의 권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드마스터의 마검을 꿰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마검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안내해서 어쩌려고?”
“어차피 마검은 커녕 그 무법자들은 던전에서 다 목숨을 잃었겠죠· 저는 그 뒤로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는 게 계획이었습니다·”
실베린은 의문이 들었다· 마검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으니 노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는 고위 뱀파이어였다· 전투 능력에 있어서는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 존재였다·
“치밀하네 대체 누구한테서 도망치려고 이러는 거지? 마검 컬렉터들을 상대하는 건 이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공국의 보호도 마다할 정도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존재는 무엇일까·
“사라지지 않으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겁니다·”
실베린이 조금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자세하게 설명해·”
“···비명검· 비명검 때문이죠·”
실베린이 잠시 숨을 죽였다· 역사책에서만 듣던 검의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횄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마검이 맞나? 영혼으로 담금질해서 만들었다는· 수십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죠· 그 검은 돌고 돌아 결국 인간과 교류과 완전히 단절된 드워프 종족의 손에 들어갔으니까요·”
더러운 것들은 모두 땅 밑으로 흐른다· 사체 구더기 분뇨 빗물은 온갖 오물들을 쓸고 지저로 끌고간다· 그리고 육신을 잃고 쓸모가 없어진 인간의 영혼 또한 지하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어떤 인간도 도달한 적 없는 오직 드워프만이 알고 있는 지저 깊은 곳에는 죽은 인간의 원혼이 모여 형성된 검은 호수가 있다고 했다·
전란의 시기를 맞이한 드워프들이 영혼의 강철로 수도없이 검은 호수에 담금질해서 탄생한 죽음의 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영혼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하여 붙여진 것이 비명검이었다· 그 검이 탄생하기까지 수백에 달하는 드워프 대장장이가 희생되었다고 했다·
“비명검을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널 잡아들이려는 건가?”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아뇨· 틀렸습니다· 비명검의 행방은 이미 다 발설한지 오래니까요·”
“···뭐?”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느날 의문의 여성이 ‘비명검’이라는 마검의 행방을 캐물었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제 연구실에 나타나서 제게 그 마검의 위치를 물었죠· 그 여자가 나타났을 땐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졌습니다· 기름등도 샹들리에도 그 모든 빛들이 어둠에 잠겼습니다· 절 위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덜덜 떨렸습니다· 제 영혼이 땅 속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죠· 제 본능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건 분명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그 위치를 알려줬지요·”
“인간이 아니면 뭐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런 존재는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마도 흑마법사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야 비명검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방비가 강력한 곳에 감춰져 있습니다· 만에하나 그 곳을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 검을 쥐면 이전 소유자들 같이 죽은것도 산건도 아닌 저주받은 존재로 변모할 테니까요· 하물며 흉악한 흑마법사라 한들····”
“그렇다면 왜 도망치는 거지? 네게 용건은 없을 텐데·”
“제가 비명검의 약점 그리고 대적할 수 있는 또다른 마검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마검을 탐하는 자들은 항상 그랬습니다· 목적을 이루면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는 절 죽이러 오죠·”
“그 말은····”
“···네 공국에서 첩보를 들었습니다· 비명검은 칸셀로 산맥의 드워프들이 지옥보다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죠· 드워프 왕국 중에서 세번째로 세력이 강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안개가 자욱한 길·
마치 가시정원 기숙사로 향하는 길처럼 안개낀 평지를 걷고 있었다·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감각·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어디를 걷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참을 나아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내 눈 앞에는 검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컵 안에 담긴 것처럼 호수는 물결 하나 없이 잠잠했다·
마치 바르비시아에서 마주했던 그 악취나는 호수 같았다·
나는 그 호수 앞에서 몸을 쪼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물 속을 바라보았다·
검게 물든 호수에서 그 속이 보일리 없었다· 그 대신 나는 물결에 비친 형상을 보았다·
그 표면에는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비추고 있었다· 한쪽 팔이 없고 얼굴의 살점 일부가 썩어서 검회색 빛을 띠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 앞에 비친 건 내 모습인가? 나는 팔을 움직여 얼굴을 꼬집었다· 살점도 멀쩡히 잡히고 두 팔도 멀쩡하다· 다시 호수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 비친 남자는 얼굴 생김새가 나와는 달랐다· 그럼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 물결에 비친 그 형상은 입을 뻥긋거리며 내게 무언가를 말했다·
‘너는 누구지?’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은 끝났다· 얕은 수면에서 의식이 돌아온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
치유실에서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눈이 건조해 시야가 흐렸지만 해가 다 넘어간 늦은 시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눈을 몇 번 더 깜빡이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숨결이 닿을 듯한 가까운 곳에 말이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코 앞에 있는 건··· 루나의 얼굴이었다·
나와 눈동자를 마주한 그녀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루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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