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8
[ 마검사냥꾼이 무도회를 노리고 있다· ]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경고문은 완전해졌다·
결코 가볍게 넘겨선 안될 문제다· 이걸 이터니아 관리자에게 알려야 할까? 알리면 무도회는 어떻게 될까·
날 허락해둔 두 명의 소녀에게 결국 실망을 안겨줘야 하는 것일까·
몇가지 의문도 있었다· 이 문제를 왜 나에게만 전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마검을 짊어지는 건 시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나를 콕 찝어서 경고한 이유는 뭘까·
어쨌든 시온도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쳤다·
트리샤를 위한 식사를 마련해놓고 2층에 올라가 그녀의 방 문을 노크했다·
대답은 없고 문은 잠겨 있었다·
“트리샤? 어디 아파?”
내 부름에도 그녀는 답이 없다·
“먼저 나갈 거야· 음식 해놨으니까 나가기 전에 챙겨 먹어·”
***
해가 온전히 뜨기 전에 리그베드에 들려 주문제작을 부탁했던 시온의 옷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생활동 윗드러프관 기숙사로 향했다· 그곳 라운지 벽난로 앞 시온의 지정석 앞에 앉아 잠시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메이드를 통해 시온을 호출했지만 그녀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나를 맞이한 건 루나였다·
그녀는 일전에 사용했던 그 엉성한 가면을 쓰고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
“····”
나는 남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나·”
“···응·”
“어제 일 기억 나?”
“···너한테 업힌 뒤로··· 기억이 안 나·”
“그 뒤로 아무일 없었어·”
“···아이들이 전부 말해줬어·”
그렇게 내 선의의 거짓말은 단번에 간파당했다·
사실 루나는 나한테 업힌 와중에 ‘데미안이 보면 안돼’를 서른 번쯤 중얼거렸다·
루나가 손으로 가면을 잘 착용했는지 확인하려는 듯 만지작거린다·
내가 짐작하건대 그걸 쓰고 온 이유는 아마 낯부끄러워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의 돌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루나에 대한 인상에 금이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 생각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데 그녀가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때마침 내 호출을 받은 시온이 로비 쪽으로 설렁설렁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멀찍이서 우리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나 나중에 봐· 그때는 가면도 손봐줄게·”
“···응·”
그녀도 내게 다른 용무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루나가 떠나는 모습을 시온이 떨떠름하게 보고는 루나가 앉았던 자리에 와서 착석했다·
“둘이 친한가보네· 가면까지 맞춘 걸 봐선·”
나는 반사적으로 차갑게 답했다·
“루나는 건들지 마·”
시온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리고 잠시뒤 뭔가 실망한 듯이 표정이 처졌다·
“···난 아무한테나 덤비지 않아·”
말은 그렇게 해도 믿을 수 있어야지·
그러고는 준비한 것을 그녀에게 건넸다·
시온은 편지 내용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구겼다·
“그 시법잖은 춤판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겠군·”
“너 또한 마검 소유자인데 스승이 네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나?”
시온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게는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게 무슨 소리지?”
“강제로 뺏어봐야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 거기다 괜히 소드마스터의 제자를 건드려 부스럼 만들고 싶어하지 않겠지· 하지만 네 검은····”
“····”
“우리 스승님도 들어본 적 없는 검이야· 못본 동안 어딜 들쑤시고 다닌지 모르겠는데 네가 마검사냥꾼들을 자극한 건 확실해·”
그 말은 즉 모종의 이유로 내 정보가 퍼졌다는 건데 대체 어디서 새어나간 걸까· 공국? 이터니아 내부자? 아니면 나와 가까이 지내는 누군가인가·
“마검사냥꾼은 얼마나 강한 거지?”
“특정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야· 그냥 마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접근하는 이들 전부를 마검사냥꾼이라고 불러· 그리고 마검 또한 한 주인에 정착하지 않아· 대부분의 마검은 제대로 된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쉼없이 인간을 갈아치우지· 마검사냥꾼들은 그걸 노리고·”
꼭 마검에게 자아가 있다는 것처럼 말한다· 난 아직 내 마검의 자아를 느껴본 적은 없다· 뭐 내 목검을 돌이켜보면 그 존재가 그리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시온이 날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 검은 정착했나?”
“그게 무슨 소리지?”
“주인에게 정착하지 않은 마검은 끊임없이 마검사냥꾼들을 불러모을 거야· 이번이 끝이 아니라는 거지”
“내 마검이 날 죽이려 들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검이 정착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지?”
“느낄 수 있어· 정착한 마검은 네 목숨을 살리고 반대는 널 죽음으로 내몰지· 후자라면 사용자를 죽이기 위해 부정한 기운을 뿜어낼거야·”
두루뭉술한 설명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마검을 사용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감각· 그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내 마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있다·
하만에서 떠났을 때부터 바르비시아의 여정까지· 내 마검은 그 모든 죽음의 위기를 함께하고 날 구해냈다·
내 죽음을 원했다면 부름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마검은 마치 몸 속 장기처럼 내 의지와 완전히 결합해 있었다·
오히려 정착했는지 확신이 안 서는 건··· 목검이었다· 그게 마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녀석은 예상 못할 돌발 행동을 해댔으니까 말이다·
“내 검은 조금도 의심할 거 없어·”
나는 미리 챙겨왔던 맞춤 드레스 상자를 시온의 무릎에 올려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드마스터의 경고를 학사 측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시온이 상자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건 뭐지?”
“네 드레스· 곧 무도회니까 너무 빼지 말고 신청 들어오면 적당히 받아줘·”
시온이 질색하는 얼굴로 차갑게 답했다·
“이런 거 부탁한 적 없어·”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안 입는다고 내가 손해보는 것도 없었다·
“싫으면 안 입어도 돼·”
“····”
***
칸디넬라 교수는 소드마스터의 편지를 내게 도로 돌려주며 말했다·
“무도회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제가 무도회를 이탈하는 겁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너 또한 무도회에서 벗어날 일 없을 거야·”
“이 경고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소드마스터의 경고를 그대로 묵살하려는 건 아닐 텐데·
“소드마스터는 널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을 거야·”
“그럼 여기 적힌 경고가 거짓이라는 겁니까?”
“아니 적힌 말은 사실이야· 하지만 네가 나설 일은 없어·”
“····”
혼란스럽다· 대체 어떻게 할 속셈인 걸까· 그녀는 날 안심시키려 들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검사냥꾼에 관한 첩보는 우리도 입수했으니까·”
“····”
그녀는 날 보며 씩 웃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칸디넬라 교수의 태도에는 위기감이 없었다·
“손님이 찾아와서 널 위해 직접 이터니아의 용병이 되어주기로 했어·”
“손님이요?”
“그래· 특히 네 스승과도 연이 어느정도 있는 사람이지· 넌 그보다 트리샤의 상태를 봐주겠어?”
“트리샤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어제부터 갑자기 잠적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리기는 했었다·
“트리샤를 무도회에 참석시키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어· 아무래도··· 무도회에 외부 인사가 많이 참석해서 그런가봐· 그쪽은 결벽증적으로 안전에 신경쓰거든· 많이 실망한 것 같던데·”
이터니아의 내부 결정이 아닌 모양이다·
“····”
그것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구나·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긴 했었다· 내 나름대로 달래주기는 해보겠는데 상심한 마음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 같다·
***
릴리트가 잘 가르치는 건지 아니면 춤이 생각보다 쉬운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젠 리듬에 몸을 움직이고 스텝을 밟는 게 제법 능숙해졌다·
그리고 릴리트 또한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배우는 게 빠르네·”
“이제는 음악을 끼고 더 윗단계로 가도 되지 않아?”
어두운 숲 속에서 나와 몸을 맞대고 함께 춤추던 릴리트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는 몸에 힘을 풀고 내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그래도 춤선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온전히 리드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올라갈 필요는 없어· 여기서 더 잘추면 도리어 여자가 싫어할 거야·”
“왜지?”
“···너무 많은 여자를 거쳐온 것 같으니까· 실력이 너무 빨리 늘었어·”
“····”
“박자감만 기억한다면 어느 음악에나 대입해서 활용할 수 있을 거야· 이정도 습득력이면 음악에 적응하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능숙한 게 문제라면 필요할 때마다 어설픔을 가장하면 되는 일이다· 배우는 데에 있어선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무도회까지 아직 며칠 남았어· 난 가능하면 더 배우고 싶은데·”
“···그럼 내가 마지막 춤을 알려줄게·”
릴리트가 까치발을 세웠다· 그리고는 나와 뺨을 겹쳤다·
얼굴이 서로 붙여놓은 탓에 내 귀에 릴리트의 숨소리가 너무도 잘 들렸다·
평정심을 쉽게 놓지 않는 편인데 이같은 밀접한 접촉은 나조차도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다시 나와 리듬을 맞추져 귓속말과 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트너는 구했어?”
“응·”
“이건··· 단순히 파트너 관계라면 춰선 안 되는 춤이야·”
“···그럼?”
“오직 연인 관계만 허락되는 거야·”
과연 그럴만도 하다·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봤다면 굉장히 낯뜨거운 광경이 됐을 테니까·
“····”
“이것도 배워두면 언젠가 활용할 날이 오겠지·”
릴리트의 호흡이 불규칙했다· 몸을 붙이고 있어서 이건 감출 수 없었다· 그녀 또한 강한 자극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교습을 마친 릴리트는 몇걸음 떨어져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짐을 챙겼다·
“내가 가르쳐 줄 건 다 가르쳐줬어·”
“그럼 여기까지인가?”
릴리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응·”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주먹만한 은상자를 꺼내고는 내게 건넸다·
“이건 뭐지?”
“오르골이야· 음악이 필요하면 이거에 맞춰서 하면 돼·”
“···보답으로 필요한 게 있나?”
“아니· 그냥 무도회 때 한 번 찾아와서 인사해 줘·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
일과를 마치고 조용해진 달밤에 나는 온실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기름등 하나에 의지해 한참을 기다린 끝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얼굴에 걸린 엉성한 가면· 금빛 머리· 루나였다·
“왔어?”
“응·”
루나가 내 옆에 와서 미리 준비해둔 의자에 앉았다·
“그 가면 무도회 때도 쓸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줄 알았다· 어설픈 가공품은 용납이 안 된다· 그게 내 직업병이었다·
가면 때문에 루나가 또 다치는 건 막고 싶었고 말이다·
“가면 나한테 줄래?”
“응····”
그녀는 가면을 벗고 내 손에 얹어주었다·
나는 가면의 상태를 살폈다· 열심히 다듬은 티는 나지만 눈구멍은 비대칭이었고 루나의 작은 얼굴 크기에 안 맞게 크고 두꺼웠다·
곧장 주머니에서 조각칼을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내가 루나를 온실로 부른 이유는 무도회를 위해 가면을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루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내 모습을 가만 지켜보았다·
“심심하면 그림 구경해도 괜찮아·”
“···나는 이러는 것도 좋아·”
밤이 깊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다가오는 무도회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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