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인챈트 소드가 박살났던 과거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식겁한 나머지 이불을 걷어차고 곧바로 달려갔다·
그렇게 묘목을 붙잡으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목검의 형태로 돌아왔다·
마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금이 간다거나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트리샤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서는 같이 구경했다·
“새로 들어온 애는 뭐야?”
“어쩌다 얻은 마검·”
“왜 둘이 싸워?”
“나도 알고 싶다·”
마검은 아파서 신음하는 것처럼 희푸른 빛을 연하게 점멸했다· 어제의 포악한 모습은 어디가고 불쌍해 보이는 모습만 남아 있다·
“나도 만져봐도 돼?”
“위험해서 안 돼· 여기 있어·”
마검이 단단해서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간 써보지도 못하고 이별한 인챈트 소드 꼴이 날 뻔했다·
이 목검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마력이 담긴 물건이면 모조리 빨아들이고 보는 건가· 이 마검도 성질머리 좀 있는 것 같은데 순순히 당하고 있는 것도 참 이상하다·
나는 목검만 들고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안개가 자욱한 앞뜰로 내려와서는 땅에다 목검을 꽂았다·
트리샤가 대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구경했다·
“뭐해?”
“거기 있어·”
스스스스-
안개가 나를 중심으로 점차 낮게 깔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내 오른손에 눈부신 광채와 함께 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마검과 목검을 딱 붙여서 꽂고는 다시 기숙사 계단을 올라갔다·
트리샤가 흥미를 보이며 소리쳤다·
“나 저거 만져보고 싶어!”
“절대 안 돼· 잘못 만지면 백치된다·”
트리샤의 무시무시한 마법력은 이전에 목격한 적 있기에 문제 없을 가능성이 컸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싶었다·
“백치가 뭐야?”
“····”
나는 트리샤를 안에다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트리샤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아니! 나도 알아! 장난친거야!”
잠시 그녀를 무시하고 목검과 마검을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목검이 묘목의 형태로 변하더니 줄기로 땅을 짚고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옆에 붙은 마검을 기피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그렇게 마검과 거리를 벌리고는 다시 목검의 형태로 돌아갔다·
“허·”
내가 뭘 본 거지·
트리샤가 다시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뭔데 뭔데· 뭐하려는 건데?”
“저기 봐·”
“응? 새싹검 네가 옮겼어?”
“아니 혼자 움직였어·”
목검이 단순히 마력이 있는 건 모조리 빨아먹는 식물에 불과했다면 저 마검의 마력도 빨아들이려 시도했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해가 될 걸 구분하고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건··· 사뭇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단순히 마력이란 자극에 반응하는 일차원적인 도구가 아니라 의지를 갖고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만만한 애만 괴롭히나보다· 그럴 줄 알았어· 난 반딧불 검이 제일 믿음직스러워서 좋아· 목검도 싫고 네가 가져온 새 검도 싫어·”
“검은 그냥 검이야·”
더군다나 이 마검이나 저 마검이나 만만한 상대도 아니다·
“저 목검 나 엄청 싫어해·”
“그걸 어떻게 알아?”
“여자의 감!”
“····”
“저 목검 어디 출신이야?”
“나도 몰라·”
“바보야· 아는 게 없어·”
이제는 나도 좀 알고 싶다· 대체 정체가 뭘까· 누구한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걸까·
전 주인이 대가도 받지 않고 목검을 처분한 이유는 이젠 확실히 알겠다· 내게는 애착도 있고 여러모로 유용한 검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마력만 포식하는 말썽덩어리였을 것이다·
***
결국 목검과 새로 들어온 검은 완전히 격리시켜 보관했다·
그런 뒤 트리샤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첫수업을 위해 문을 나섰다·
“이따 봐!”
트리샤는 아침 수업이 없다며 문 앞에서 얼굴만 내밀고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아 데미안!”
떠나는 도중에 트리샤가 날 불러세웠다· 그러고는 맨발과 잠옷차림으로 현관 계단을 내려와서는 쪽지를 건네주었다·
“깜빡했다· 어제 너 옮겨준 사서가 이거 전해주라고 했어·”
“고마워·”
“이따 점심 나랑 같이 먹어!”
그러고 트리샤는 기숙사로 달려갔다·
쪽지의 내용은 짧막했다·
[일과를 마친 후 검을 챙기고 금지된 숲의 묘소로 올 것·]
누가 작성한 건지는 안 나와 있다만 작성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어제 만난 노교수 이외엔 딱히 날 부를 사람도 없으니까·
검을 들고 오라는 걸 보면 수업일 것 같은데· 뭔가 제대로 된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실 조금 기대된다·
미궁 밖에 나오니 또 다른 친구가 나를 반겼다·
수호목 앞에 서 있던 루나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루나?”
“안···녕·”
그녀는 자연스럽게 합류해 나와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나 기다린 거야?”
“응·”
“할 말이 있어?”
“아니··· 그냥 같이 등교하고 싶어서·”
사실 수호목에서 캠퍼스까지 이동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따로 용건이 있는 게 아니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동행할 이유는 없었다·
뭐 여자는 또 친구들과 노는 방식이 다를 테니 굳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어제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세실이나··· 마검사냥꾼이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 그냥 데미안이 안전하고··· 세실이 안전한 미래만 본 거야·”
“···그래도 조언해준 게 도움이 됐어· 다음에도 종종 부탁할게·”
루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젠 빈도도 적어지고··· 정확도도 떨어지는걸····”
“궁금하네· 환상 같은 걸로 보이는 건가?”
“응· 엄청 흐릿해· 나와 연관된 것만 보이는 거라 도움은 안 될거야·”
“···그렇구나· 아 루나 무슨 수업이야? 데려다줄게·”
그러자 루나가 날 보고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몸이 불편할 테니까 내가 미술부까지 데려다줄게·”
“···음?”
“우리 데미안··· 수업 잘 받고 딴 길로 빠지면 안 돼·”
루나가 내 소매를 붙잡고 먼저 앞장서서 날 이끌었다·
“····”
루나의 태도가 묘하게 어린애를 챙겨주는 선생님같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왜 이러는 거지·
정말 루나는 날 미술부 온실까지 데려다주고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온실로 들어가 내 이젤 앞에 다시 앉으니 그때서야 비로소 일상이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사람이 없는 온실 한 구석에서 릴리트가 화초에 물을 주다가 날 보고는 어정쩡한 포즈로 손을 살짝 흔들며 인사한다·
“····”
친구가 하나씩 늘어간다· 내가 타인을 챙겨주는 만큼 나를 챙겨주는 타인도 점점 많아진다·
릴리트가 내게 뭔가 할말이 있는 모양인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데 돌연 누군가가 거칠게 온실 문을 거칠게 차고 들어섰다· 릴리트는 화들짝 놀라 휙 몸을 돌렸다·
“야 신입!”
“신입이 이리 와!”
미술부의 간부 헤일리와 제니아가 무슨 빈민가 건달들처럼 사납게 들이닥쳤다·
제니아가 내 쪽으로 그리고 헤일리는 릴리트 쪽으로 우악스럽게 다가갔다·
제니아가 냅다 양팔로 내 등허리를 끌어안았다·
“···?”
“아이고 내 새끼!”
그러고는 어린애 놀아주듯 들쳐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키가 작고 힘도 부족했던 탓에 들지는 못했다·
헤일리는 비교적 키도 크고 전투부였던 덕에 릴리트를 쉽게 안아들고 빙빙 돌고 있었다·
“꺅!”
“어디서 이런 복덩이들이 굴러왔을까!”
제니아는 혼자 끙끙대다 결국 포기했다·
“아 왜이리 무거워· 그냥 볼 대·”
“····”
제니아가 내 멱살을 붙잡고 실랑이하는 와중에 헤일리는 이미 릴리트의 볼에 진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어휴 이뻐 이뻐!”
“으이이···잇”
릴리트는 수치스러웠는지 얼굴을 가리고 반쯤 우는 소리를 냈다·
“선배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볼 볼··· 대라고·”
그리고 헤일리가 릴리트를 안아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클라리디움 간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나 궁금했는데 결국 미술부가 가는구나·
“신입들이 연극부 꼰대놈들 다 쥐어팼다며?”
“네 어쩌다보니 연극부는 이겼죠· 선배들은 어떻게 된거죠?”
1 2학년과 3 4학년은 임무를 따로 진행했었다· 내 기억엔 그 둘의 점수를 합산해 가장 높은 특기부가 우승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우리? 우리도 다 작살내줬지· 4학년은 다 바빠서 임무에 빠졌거든· 그 덕에 우리 세상이었지· 난 우승한 것도 좋지만 돼지년들 울상된 게 더 좋아! 꺅!”
헤일리는 릴리트의 팔을 붙잡고 춤추듯 폴짝폴짝 뛰었다· 이럴 땐 선배가 아니라 그냥 산골 소녀 같다·
제니아는 아직도 내 옷을 툭툭 당기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볼··· 볼····”
헤일리가 이터니아의 공문서를 내게 내밀었다·
“신입이가 진짜 큰일 했어·”
공문을 확인해보니 거기엔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복귀 명령을 위반한 것에는 엄중 경고를 내렸내지만 따로 징계는 없었다· 미술부가 신태그머 지역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의 악행 계획이 담긴 노트를 제출했으므로 최고점을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걸 본 게일과 빅터의 생각은 어떠려나· 내부적으로 전부 합의가 끝났으니까 이런 공문을 낸 거겠지· 그 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딱히 이의를 제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나 혼자 보상을 받게 되는 건 마음에 걸린다· 빅터 게일 둘 다 보상받을 자격이 있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클라리디움인지 뭔지에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새로운 초빙 교수에게서 빨리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뿐이다· 멀리 떠난다면 그 기간만큼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공문을 다시 돌려받고서 헤일리가 말했다·
“자 잘했으니까 뽀뽀!”
헤일리가 날 붙들고 기습적으로 볼뽀뽀를 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
제니아가 냅다 소리쳤다·
“이럴거면 가위바위보는 왜 했냐?”
***
세실은 이른 아침부터 생활동 분수대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손에는 예술가 연회 초대장을 쥐고 같은 자리를 계속 서성거렸다·
그러다 윗드러프관에서 사람이 나올 때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세실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언제 나와····”
아침 수업을 위해 기숙사를 나서는 학생들은 점차 많아졌지만 세실이 기다리던 사람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데미안··· 아직 몸이 아픈가?”
그러다 혼자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항상 이 근방을 지나던데 혹시 나 피하는 건··· 아니 아니지 그때 분위기 좋았는데··· 그럴 수가 없지····”
저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지쳐 결국 분수대에 걸터앉고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러곤 고개를 푹 숙이곤 작게 혼잣말을 했다·
“보고싶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