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2
해가 다 기울어가는 초저녁· 나는 일과를 마치고 쪽지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금지된 숲 미궁과 연결된 곳이라 안개가 자욱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지만 횃불은 필요 없는 곳이었다· 지저의 마력을 머금은 토양과 잔디가 내가 디디는 곳에 반응해 에메랄드빛을 발산했기 때문이다·
묘소라 했을 때 떠오르는 곳은 하나다·
이전에 그 묘비가 놓인 곳에서 엘프귀를 한 여자를 본 적이 있었지·
또다시 찾아간 묘비 앞에는 역시나 어제의 그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묘비를 가만 내려다보다가 내 기척을 감지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더 좋은 걸 줬는데 마음에 안 드나?”
내가 목검을 들고 왔기에 한 말이었다·
“전 이게 더 손에 잘 맞습니다·”
어떤 검을 가져오라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마검이 필요한 것이었으면 그걸 적었겠지·
“프리실라와는 대화해봤나?”
“그게 누구죠?”
“네 새로운 마검 말이네· 그 여자의 이름이 프리실라다·”
“대화는 아직입니다· 그 검 안에 여자의 영혼이라도 갇힌 겁니까?”
칼리오스는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아니 마검의 자아는 인간의 영혼과는 성질이 달라· 그건 스스로 택해서 눈을 뜬 거지·”
무슨 소리지· 스스로 눈을 뜬 건데 어떻게 여성의 인격을 지닌 것일까· 나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칼리오스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고 잘라 말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있게나· 대화하려고 노력은 해 봤나?”
“···아뇨·”
“소통이 안 되는 마검은 같은 편도 죽일 수 있는 폭탄이야· 말했듯이 마검은 애인처럼 대해야 하네· 끊임없이 대화하고 아껴주고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붙어있어야 하지·”
“···”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네 목검을 던져보게·”
그에게 목검을 휙 던지니 단번에 낚아채고는 바람 소리를 내며 휙휙 휘둘렀다·
그리고는 검날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검이로군·”
“····”
냉정하고 잔인한 평가다· 나도 어렴풋이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타인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애정하고 애용하던 검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소모 값에 비해 발현되는 힘은 너무 적군· 이 비효율적인 검을 애용하는 이유라도 있나?”
“전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이 검이 마음에 듭니다·”
이 목검은 오늘 아침 마검 프리실라를 완전히 제압했다· 결코 평범한 검이 아니다·
“그래 노력한다면 같이 성장할 수도 있겠지·”
그러고는 목검을 내게 휙 던졌다·
나는 이를 받고 검집에 넣었다· 그러자 노인이 다른 것을 요구했다·
“다른 검을 줘 보게나·”
“이게 전부입니다·”
“하나 더 있는 거 아네·”
“아무에게나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검을 뺏어갈 것 같으냐?”
“····”
그가 날 유심히 노려보다 말했다·
“아 내 소개를 간략히 하지· 칼리오스라 하네· 황실 직속 고문직을 맡았었지·”
“그렇다면 제국에 제 검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겠군요·”
“아니 그 반대야· 네 정보가 황실로 새 나갈 걸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그리고 난 네 마스터스 클래스 심사를 보기도 했었지”
“····”
그렇다면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마검을 부르자 내 손에 광채가 모여든다· 그렇게 소환된 마검을 휙 던져 지면에 꽂았다·
칼리오스의 눈빛이 호기심을 가득 품었다·
그가 마검의 손잡이에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손가락들이 검을 만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그러고 잠시 고뇌에 잠긴 얼굴로 손을 휙휙 젓는다· 여전히 내 마검을 만지지도 못했다·
“기이하군·”
“어떻습니까?”
“평생 수많은 마검을 봤지만··· 모르겠네· 이런 게 왜 존재하는지도 이해가 안 되는군·”
“····”
“어디 출신이라고 했지?”
“위젤입니다·”
“자네 가짜 이력을 묻는 게 아니네·”
“···하만 출신입니다· 금속 세공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검을 익힌 것인가?”
“아뇨· 제 스승님을 뵙기 전까진 검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흠·”
“···?”
“그래 그러면 검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말해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을 이야기하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리자로 이어질 테니까·
그는 내 속내를 읽은 건지 굳이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 알겠네· 하만 하만이라·”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 고향을 중얼거리며 탄식했다·
“···?”
“검은 다 집어넣어도 좋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마검은 그대로 소멸했다·
“절 부르신 이유는 뭡니까·”
“널 지도하기 위해서지·”
“검술 과목을 가르치시는 겁니까?”
“기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전 준비 됐습니다·”
“아니 오늘은 돌아가게·”
“···예?”
“돌아가서 프리실라를 돌보도록· 상시 몸에 붙이고 식사할 때도 씻을 때도 잘 때도 함께하면서 일심동체가 되게· 그리고 내일 이곳에 와서 보고하게·”
칼리오스는 숙제를 던지고는 인사도 없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잡기를 익히는 것보다 마검과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라는 건가·
***
칼리오스가 말한 대로 새 마검 프리실라를 들고 목욕도 하고 잠자리에 들 때도 몸에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이했다·
이른 아침 트리샤가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와서는 날 주시하며 말했다·
“뭐해?”
나는 묘목을 잡고 계속 흔들어댔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목검이 말을 안 들어·”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자기 전 목검을 문밖에 격리해놨었다· 그러고 아침에 검집에 넣으려고 보니 묘목의 모습에서 전혀 변하질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내 마력조차 흡수하질 않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럴 줄 알았어·”
“뭐?”
“삐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새로운 검이랑만 목욕하고 같이 잠들고 애지중지하니까 그렇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데미안은 친구 서운하게 하는 거 전문이잖아·”
트리샤는 제 할 말만 하고는 다시 쪼르르 제 방으로 올라갔다·
“····”
목검은 여전히 변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트리샤의 말대로 감정이 상한 건가? 정말로?
마검 프리실라와 진전이라도 있었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잘 쓰던 검이 말썽을 부리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마검 통역사 같은 직업은 없나· 정말 왜 이러는 건지 묻고 싶다·
***
일과를 위해 목검 문제는 뒤로 하고 일찍 등교길에 나섰다·
그리고 수호목 앞에서 어제처럼 또 루나와 재회했다·
그녀는 날 보며 어제처럼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루나?”
“데미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와서는 걸음을 맞춘다·
“오늘도 데려다주려고?”
“응·”
루나가 주섬주섬 손가방을 뒤진다· 그러고는 종이로 포장한 작은 무언가를 내게 쓱 내밀었다·
“먹을···래?”
“뭔데?”
“어제 만들어본 거야· 조금 남아서····”
끈을 풀고 열어보니 그 안에는 버터 향이 나는 쿠키가 들어 있었다·
하나 입에 넣으니 부드럽고 달달한 버터의 맛이 진하게 퍼졌다· 꽤나 기분 좋아지는 맛이다·
“맛있다· 원래 이런 거 잘 만들었어?”
루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새로 배운 거야·”
“이런 걸 취미로 할 줄은 몰랐는데·”
“언제부턴가 맛을 더 잘 느끼게 되었어· 그 이후로부터··· 하나씩 배우고 있어·”
“좋은 약초라도 챙겨 먹어?”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언젠가부터··· 멜로디와 선율이 귀에 더 잘 들어와· 또··· 꽃향기도 더 잘 느껴져·”
“····”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어·”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루나의 밝은 모습이다·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뭘 한 건 없지만 조금씩 밝아지고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면 나도 무언가 충족되는 기분이다·
“언제부터 달라진 거야?”
루나가 내게 팔을 뻗는다· 차마 내 손을 잡지 못하고 손가락을 꼭 잡았다·
“···비밀·”
그리고는 어제처럼 앞장서서 나를 이끌었다· 분명 같은 미술부 온실로 향하는 건데 어제와는 경로가 달랐다·
“여기는 다른 길인데?”
“새···로운 길도 나쁘지 않아·”
***
미술부 온실이 보이는 곳에서 루나가 돌연 우뚝 멈추어 섰다·
“····”
그리고는 한곳을 계속 노려보았다·
루나의 시선이 향한 곳· 온실 문 앞에 세실이 팔짱을 끼고 서 있다· 그녀가 우릴 발견하고는 씩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루나의 날 잡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루나 왜 그래?”
“····”
그렇게 온실로 다가가자 세실이 우릴 반겼다·
“데미안 안녕! 그리고··· 루나도 안녕·”
“···안녕·”
“여긴 어쩐 일이야?”
“심부름 때문에 온실에서 재료 좀 얻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데미안 너도 마침 찾고 있었는데 잘됐네!”
“날 찾아?”
세실은 해맑은 얼굴로 루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응· 너무 안 보여서 계획적으로 날 피해 다니는 줄 알았어·”
루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새초롬한 표정으로 세실을 맞응시했다·
세실이 말했다·
“루나 너는 이런 곳까지 왜 온 거야? 연극부는 미술부에 환영받지 못 할 텐데·”
“데미안이 반겨주니까· 그리고 곧 떠날 거야·”
“그래? 나 데미안이랑 따로 할 이야기 있었는데 비켜줄래?”
“···난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해·”
루나는 조곤조곤 세실의 말을 받아쳤다·
“아 둘이서만 할 이야기라· 같이 놀기로 했거든·”
내 손가락을 잡은 루나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
루나가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약속··· 진짜야?”
“···응·”
“이만 들어갈게· 이야기해·”
루나는 그렇게 말해놓고도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떠나갔다·
세실이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데 역시····”
“뭐가?”
“아니 그냥·”
“····”
“아 그리고 데미안 너 어떻게 연락 한 번 안 해줘? 나았으면 나았다 아프면 아프다 그렇게 한마디 해주면 얼마나 좋아· 온종일 걱정했잖아·”
“큰 부상도 아니었는걸·”
“그냥··· 걱정되니까 연락해줘· 내가 스티치도 줬잖아· 모기에 물린 것도 살짝 긁힌 걸로 우는소리 해도 괜찮으니까 나한테 알려줘·”
그러다 갑자기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는 루나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쟤 아직도 안 가고 우리 지켜보는데? 거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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