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9
이 냄새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어디서 뭐가 그을린 걸까· 여지껏 그을린 거라곤 쥐꼬리 말고는 없었거늘· 그것도 몇 시간 전의 일이다·
헤일리가 옷을 입은 상태로 현관에서 달려나왔다·
“신입! 찾은 거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멀리서 순찰중이던 가디언 둘이 우릴 발견하곤 급하게 달려온다·
그들은 가볍게 우리에게 경계를 한 후 물었다·
“검을 넣어주십쇼· 잠시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프리실라가 또다시 부르르 떤다· 나는 시선이 집중될까봐 검을 등 뒤로 돌렸다·
“저희는 이터니아 파견단 일원입니다· 대마도학자 에르제베트 교수님이 저희 신원을 보증하고 시에서 체류를 허가했습니다·”
가디언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실베린의 저택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는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파견단 분들이시군요· 저희는 근방에서 비명이 들렸다는 제보를 받고 왔는데 무슨 일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 앞에 수상한 인물이 저택을 훔쳐봤다는데 한 번도 못 보셨습니까? 방금까지 있었는데 금방 도주했습니다·”
“저희가 몇 시간 전에 이 근방을 순찰하긴 했는데 그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보고가 들어온 적도 없고요·”
“····”
“도주 방향은 아십니까?”
“아뇨 그냥 증발했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단서가 없다면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혹시 최근에 다른 저택을 몰래 훔쳐보다 적발된 이가 있습니까?”
가디언 한 명이 턱을 짚고 생각에 잠긴다·
“음··· 그거라면 있습니다· 이 앞 건너편 블록에 게러윌드 부인댁 첫째아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죠· 불과 보름 전 일입니다·”
“그 집 아들이 무슨 일을 일으켰죠?”
“밤사이 귀족 저택을 염탐하다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주 타깃은 여성 젊은 여성이었죠· 죄질이 안 좋았지만 재판 공방 끝에 결국 풀려났습니다·”
“왜죠?”
“정신적으로 미숙한 것을 참작한 듯합니다· 덩치는 무슨 산더미만한데 정신은 열 살 아이랑 비슷하답니다· 그 녀석은 게러윌드 부인께서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약조를 한 뒤에 풀려났습니다·”
“···그 남자를 조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헤일리가 말했다·
“순찰 인력을 더 보강하거나 저택에 경비를 세워주실 수 있나요?”
“거기까지는 저희 권한이 아닙니다· 귀하의 의견을 상부에 전달 해보겠습니다만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헤일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떠나는 가디언들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가디언만 믿고 불침번 안 세워뒀으면··· 끔찍하네· 이 상황에 애들이 어떻게 마음 편히 자겠냐구· 바다 위에 있을 때가 더 마음 편했던 것 같아·”
“동감합니다·”
“하아 어딜 가나 미친놈은 존재하지· 인구 중 일퍼센트가 미친놈이라 해도 대도시는 수십 수백은 될 테고··· 머리아프다·”
“아 맞다 선배· 한가지 단서가 있는데 탄 냄새가 남아 있었습니다·”
“···음 무슨 탄 냄새?”
“방화라도 할 셈이었던지도 모르죠·”
“탈만한 건··· 글쎄 쥐새끼가 몰래 들어오다가 만 건가?”
도시는 미친놈의 수 만큼이나 쥐도 많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우리는 짐짝에 말린 과일과 육포 와인을 가득 싣고 왔으니· 멀리서 냄새를 맡고 어슬렁거렸을 수도 있겠지·
헤일리가 뭔가를 떠올린 듯이 허벅지를 탁 치고는 묻는다·
“신입아 교수님의 고대 마법진 말이야· 정말 쥐만 태우는 거야?”
“···?”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을 다 쫓아내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쥐 말고 다른 생물체가 점거한 적이 없어서····”
실베린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확실한데 여기서 스티치를 보내면 성도까지 가는데 이틀 오는데 이틀이다· 그러면 복귀일이 되어서야 답을 받는 거니 사실상 도움은 안 된다·
“만일 그 마법진이 인간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쫓아내는 거라면··· 인간형 마수도 가능성 있잖아? 구울 늑대인간일수도 있고·”
“····”
“클라리디움은 마수학에 있어선 북부와 이터니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곳이야· 마수만 연구하는 기관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성과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야· 마수를 연구한다면 배를 타고 들이는 살아있는 마수도 많을 거야· 불의의 사고로 한 두 마리쯤 탈출하는 건 일도 아니지·”
“충분히 일리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방금 떠올랐는데 실베린 교수님의 저택 중 하나는 뱀파이어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헤일리의 눈이 커진다·
“어? 그럼 퍼즐이 맞춰지는데? 고위 뱀파이어 중 일부는 박쥐로 변할 수도 있다고 들었어! 박쥐라면 저택에 숨어들어오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러다 마법진에 걸려 쫓겨났을 수도 있고·”
헤일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황상 우리에게 저주를 보낸 이는 뱀파이어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뱀파이어와 묘하게 접점이 많은 실베린과의 원한 관계를 짐작해 볼 수도 있고· 물론 확신할 만한 증거는 없으니 폭넓게 조사하는 게 맞겠지만·
헤일리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을 정리한다·
“좋아· 내일 나랑 제니아는 가디언 집회소에서 게러윌드 부인의 아들 놈을 조사할게· 그리고 모레 교류전 경기장 견학 일정이 있어· 탐방이 끈나고 겸사겸사 대학 연구소로 이동해서 교류전 경기를 위해 사육 중인 마수들도 보여줄 거야· 그때 우릴 위협할 만한 종이 있는지 알아보자구·”
“저는 오늘 해가 뜨면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뱀파이어를 수소문해보겠습니다·”
“좋아 근데 신입 인간 집단에 녹아든 뱀파이어를 구별할 방법은 거의 없을 거야·”
“···마도학의 도시이니 무슨 아티팩트라도 있지 않을까요?”
헤일리는 고개를 젓는다·
“수십 수백년을 살아온 뱀파이어가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 걸리지는 않겠지· 전통적으로 늘 통했던 건··· 십수년 간 얼굴이 늙지 않은 사람을 찾는 거 하나 뿐이야·”
그렇다면 클라리디움에서 오래 살고 발이 넓은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데미안·”
헤일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만약 우리 적이 지성을 가진 존재라면 우리가 뒤를 캐고 있단 걸 대놓고 알게 해선 안 돼·”
***
릴리트가 회색 머리를 곱게 빗고 평소와는 다르게 반묶음머리를 하고 왔다· 꽃을 수놓은 푸른 빛의 우아한 드레스에다 보석이 달린 귀걸이와 머리핀도 꽂았다· 입술은 분홍 화장품을 칠해서 창백하고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 오늘따라 두드러진다·
마차 안에서도 몸에 배인 것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유지한다· 누가 봐도 귀족 아가씨다운 몸가짐이다·
한편으로 참 안어울리게도 그녀는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전에 말했잖아· 진보의 광장으로 간다고·”
“그래 그렇지·”
그러고는 긴장한 듯이 손을 쥐었다 편다· 뱀파이어를 탐색한다는 계획은 이미 아침에 일러두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행객이 되어 움직인다· 속내를 숨기고 여유롭게 쇼핑을 즐길 것이다·
“이랴!”
마부가 신나게 고삐를 흔든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아가씨!”
마부는 몇 분마다 한 번씩 뒤돌아서 릴리트를 바라본다· 나한테는 한마디도 걸지 않고 노골적으로 릴리트만 상대해준다· 흑심이 눈에 대놓고 드러나 있어서 웃길 지경이었다·
“····”
“진보의 광장은 처음이죠?”
“···어제도 와봤어요·”
“광장도 아가씨 같이 아리따운 분은 처음일 겁니다·”
“····”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아가씨·”
“····”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마부는 일생에 한 번 오는 기회라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릴리트에게 찝쩍댄다·
마차가 좁은 길을 뚫고 나온다· 곧이어 탁 트인 넓은 광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한 눈에 봐도 광장에는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섞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아이의 초상화가 그려진 피켓을 들고 실종자를 찾는 한 여자· 사과 상자에 올라서서 종교와 신 그리고 종말에 대해 설교하는 미치광이· 시꺼먼 마차를 끌고 달려나가는 빈테라· 분수대에 앉은 아리따운 여인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 혼자 상가의 유리창을 보고 실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정신나간 여인·
이 광장 어딘가에 뱀파이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팔뚝의 털이 곤두선다· 그리고 프리실라도 덩달아 전율한다·
릴리트도 그 광경을 보고 홀로 중얼거렸다·
“멸망의 전조 중 하나가 거리의 광인이 많아지는 거랬는데····”
우리는 광장 한가운데서 내렸다·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씨·”
마부가 릴리트에게 악수를 건넨다· 그러자 릴리트는 내게 팔짱을 끼는 것으로 본인 의사를 전달한다·
마부는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고는 서둘러 떠났다· 그러자 릴리트도 팔짱을 풀었다·
“예쁘단 소리 들으니까 어때?”
“···솔직히 말해도 돼?”
“응·”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서 감흥이 없어·”
“····”
“저 마부 내 이름까지 알았으면 아마 수소문해서 편지도 보냈을 거야·”
“경험해본 것처럼 말하네·”
“수도 없이·”
“····”
“그보다 우리 이제 오래된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뭐한다 그랬었지?”
“우리는 표면적으로 뱀파이어를 찾는 게 아니라· 실베린 교수님에게 빚을 진 마법사를 찾는 거야· 얼굴이 늙지 않는 은둔 마법사 말이야·”
“알았어· 쇼핑은··· 마음껏 하는 거지?”
릴리트의 손에 금화 주머니는 안 보인다· 돈이 없는데 쇼핑을 어떻게 할지는 의문이다·
“가진 만큼만 하면 문제될 거 없어·”
***
이번이 세 번째로 들른 가게였다· 릴리트는 향수병의 모양과 이름만 확인하고는 바로 집어서 바구니에 넣는다· 그렇게 열댓 병의 향수가 릴리트의 바구니에 들어간다·
정말 충격적인 건 가격표를 확인도 안 한다는 거다· 그녀는 원하는대로 담고는 점원에게 수표를 건넨다·
진열장 앞에서 서성이는 내게 다가오고는 말한다·
“데미안도··· 향수 사려고?”
“응?”
“음···· 그냥 내 생각인데 향수 안 뿌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나한테서 냄새 난다며?”
“냄새가 겹치면···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질 거야·”
“선물용으로 하나 사도 나쁠 거 없지·”
나는 눈에 보이는 향수병을 하나 들어올렸다가 가격표를 보고 도로 내려놓았다·
“음··· 선물용이면 나도 봐줄게· 데미안이 한 번 골라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초록색 액체가 담긴 병을 집어들었다· 유리병엔 ‘슬라임 향수’라고 적혀 있다·
슬라임 향수는 대체 무슨 향이 날까· 슬라임 같은 희귀한 생물로 만든다는 게 향수라니· 흥미롭다·
릴리트가 이를 보곤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다른 이쁜 향수도 많은데 하필 그거야···? 혹시 받는 사람을 맥이려는 거야?”
“아니·”
난 진지하게 고른 건데 맥인다니· 말이 좀 심한 것 아닌가·
점원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설명했다·
“그건··· 저희 가게 조향사의 실험 정신이 적극 반영된 향수에요·”
“무슨 실험을 한 거죠?”
“슬라임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죠·”
“사람들이 슬라임을 싫어하나요?”
점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슬라임은 귀여운 생물이 아니에요· 슬라임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기생체의 군집이에요· 꼭 새떼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슬라임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죠· 기구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점액질 안에 입이 달린 수많은 벌레들을 볼 수 있어요·”
“····”
“그리고 슬라임 점액은 매우 강력한 에너지와 접촉하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요· 검으로는 베어지지 않고 마법을 쓰면 폭발해버려서 마수 사냥꾼은 거대 슬라임을 보면 피하는 게 다반사에요·”
“그럼 어떻게 사냥하죠?”
“약한 마법으로 상대해줘야 해요· 미지근한 물로 고기를 익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이죠· 강한 마법사들은 사실 수가 극히 적어서 폭발을 마주할 일은 없겠지만 중요한 건····”
릴리트가 점원과 생각이 통한 것처럼 말을 대신한다·
“···죽은 벌레가 가득하고 터질 수도 있는 슬라임 향수를 선물받고 싶은 여자는 없을 거야·”
점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
릴리트가 눈썹을 치켜뜨고 슬쩍 캐묻는다·
“누구한테 주려고 한 건데?”
“세실···이라고· 알아?”
릴리트의 눈동자가 일순 커진다·
“···마도학부?”
“응·”
릴리트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또 다를수도 있어· 마도학부는 모험심이 강하잖아· 그러니 슬라임 향수는 특별한 거니까··· 오히려 좋아할지도 몰라·”
내 생각도 비슷하다· 세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선물로 달라고 했는데 이거면 조건이 맞지 않을까· 더군다나 세실은 폭탄도 좋아하니까····
“얼마죠?”
그러자 릴리트가 내 질문을 가로막았다·
“내가 수표를 냈으니까 그냥 가져가도 돼· 나중에 은행원이 와서 알아서 정산하고 우리 숙소로 옮겨줄 거야·”
릴리트가 어떤 세계에서 살았는지 이제 체감이 된다· 클라리디움은 릴리트의 출신지와는 상관도 없는 곳인데 예금이 얼마나 많으면 낯선 도시의 은행원이 수발을 들어줄까·
“···빚을 질 생각은 없어·”
릴리트는 고개를 젓고는 싱긋 웃는다·
“그동안 너한테 받기만 했던 걸 보답할 수 있어서 기뻐· 그냥··· 세실한테 내가 돈을 조금 보탰다고만 전해줘·”
***
점원에게 물어보아도 이렇다할 단서는 찾지 못했다· 클라리디움은 인구가 워낙 많은지라 부락처럼 이웃에 누가 사는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광장에 나와 네 번째 가게를 찾던 중 한 가게 앞에서 한 노인이 우리에게 팔을 흔들며 부른다·
“거기! 맞지! 하늘범선! 클라리디움의 영웅!”
낯부끄러운 수식어 덕에 길가의 행인들이 날 흘겨본다·
“들어오게! 차를 대접해주겠네!”
릴리트가 날 올려다보며 말한다·
“왜 안 가?”
“눈빛을 보니 부탁할 게 있는 것 같아·”
“그런 게 보여?”
“어딘가 절박해 보이거든·”
“···가볼까? 뭔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정말 차를 대접하려는 걸수도 있잖아·”
“····”
릴리트가 나를 붙잡고 노인이 손을 흔드는 가게로 끌고갔다· 나는 하는수 없이 그대로 가게안으로 들어섰다· 그 내부는 오래된 서점처럼 책장이 가득했다·
노인은 우리가 내부로 들어서자 바깥을 한 번 살피고는 문을 닫는다· 그런 뒤 비밀 집회라고 하는 것처럼 블라인드를 전부 내리고는 깜깜한 내부에 촛불을 피웠다·
하는 행동이 하나하나 수상쩍다·
“자네들 이터니아에서 온 거 맞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내 자네들 도움이 절실하네·”
그러자 릴리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하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 본다·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저희는 의뢰소 직원이 아닙니다·”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하네· 우리 가게에서 원하는 걸 하나 주겠네· 희귀한 레시피 북도 있고 금지된 마도서도 있고··· 또 또 무사히 데려와주기만 한다면 대대로 내려온 가보도 내주겠네!”
릴리트가 흥미를 보이며 되묻는다·
“데려오다니요?”
“바람난 내 와이프 좀 잡아와주게!”
“아·”
그녀는 흥미를 보인 것을 후회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나는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런 건 저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의뢰 사무소에서 돈을 주고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 도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다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들만 있지· 이터니아에서 온 그대들이 딱 적격이야·”
의처증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아내분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생겼던 겁니까?”
“언제부턴가 가정에 소홀해진 게 눈에 보였지· 떠나기 두어 달 쯤 전부터 사람이 달라졌어· 늘 하던 집안일도 내버려두고 여기저기 놀러다녔지 이따금 꽃단장을 하고 거울을 보면서 혼자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사를 중얼거렸어· 난 그때 느꼈다네· 맨날 친구들이랑 연극을 보러 다녀오더니 어디 부잣집 나부랭이와 바람이 났구나· 자네도 애인이 많았을 테니 잘 알지 않나· 언제 여자의 마음이 떠나간 걸 직감하는지·”
릴리트가 그게 진짜냐고 묻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
“그러고 지난 달에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네· 아예 작정을 하고 꽁꽁 숨어버린 모양이야· 이젠 외간 남자와 손잡고 이 도시를 떠나버린 게 아닌가 겁이 난다네· 조금 서운하게 한 점은 있겠지만 손찌검을 한 적도 없고 밥을 굶긴 적도 없어· 떠나기 전엔 몰랐지만 이제 알겠어· 난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네· 진심으로 말이야·”
“가디언에게 수색을 의뢰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는 발작적으로 열변을 토했다·
“멍청이들만 가디언을 신뢰해! 그 놈들은 윗대가리와 돈을 대주는 가문을 위해 움직이는 똥개들이지! 시민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저희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아내분의 얼굴도 모르고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희에게 시간도 많지 않고요·”
그가 급하게 서랍을 뒤지더니 도장이 찍힌 계약서 한 장을 꺼내서 건넨다·
“로툴렉· 로툴렉을 찾아가게· 이 도시 최고의 화가에게 반 년 전에 그림을 부탁한 적이 있네· 지금쯤 거의 다 완성되었을 거야· 가서 웨스트우드 부부의 초상화를 찾아왔다고 말하게· 내가 의뢰서를 줄테니 흔쾌히 보여줄 걸세·”
“찾아는 가보겠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도와드리긴 어렵습니다·”
노인이 수긍한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이 이상 밀어붙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알겠네· 정 안된다면 예언자 프록시마를 찾아가주겠나? 이 도시 최고의 예언자이니 그 여자라면 내 아내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줄걸세· 난 겁이나서 못 가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릴리트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녀를 따라 나가려던 찰나 문득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잔잔했던 내 머릿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질문 하나·
나는 나가려다 말고 몸을 돌려 말했다·
“혹시 부인이 사라지기 전에 거울이 현관 앞에 놓였던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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