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
우리는 삭막해 보이는 연구소의 회색 담장 옆길을 걸었다·
헤일리가 우릴 안내하는 연구원에게 물었다·
“예산을 따로 삭감한 이유가 뭘까요?”
“몇 달 전에 중앙 연구소를 경유하던 마수 십여 마리가 광장 부근에서 탈출한 사고로 도시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도시에 마수를 수용하는 것에 불안감이 커졌는지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탈출한 마수는 무슨 종이죠?”
“기밀 사항이라 시의회 측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굶주린 마수 십수마리가 탈출했다는데 목격자와 희생자도 없고 거리는 깨끗하고 조용했다는군요· 그냥 마수 연구소가 이전부터 눈엣가시였고 여론을 뒤집기 위한 술수를 부린 거라 생각합니다·”
“연구소가 왜 눈엣가시죠? 클라리디움의 연구가 북부전선에 기여한 게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클라리디움의 직접적인 이득을 주지는 않죠· 마수 연구는 사명감 때문에 하던 사업입니다· 돈은 돈대로 나가고 시민들은 집안에 마수를 들여서 불안해하죠· 이 도시엔 마수가 들이닥칠 일도 없는데 연구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래도····”
연구원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유능한 마도학자와 마법사들은 일찍이 떠났습니다· 도시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북부와 이터니아 제국과의 연구 협력도 이제는 없습니다· 클라리디움은 이제 더는 진보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의 유산으로 명맥을 이어가면서 자기들만의 안락한 공간을 꾸미고 싶어할 뿐이죠·”
“안타깝군요·”
헤일리의 다소 어두워졌다·
연구원이 말했다·
“하지만 교류전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그건 돈이 되고 지지기반을 늘리는 데 유용하니까요· 가시죠·”
***
복도를 따라 수용소처럼 철창이 길게 늘어져 있다· 뒤에는 일꾼 두 명이 카트를 끌고 우리를 따라온다· 카트는 천을 덮어 내용물을 가렸는데도 비린내가 진동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연구원이 말했다·
“큰 소리를 내거나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마수들은 그런 것들에 쉽게 자극받으니까요·”
내 옆에 따라오던 제니아가 창백해진 얼굴로 은근슬쩍 날 앞세웠다·
“아··· 신입 먼저 가·”
“겁나십니까?”
“아니 전혀·”
크르르!
그러던 중 한 마수의 울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메아리친다· 제니아가 곡소리를 내며 내 등에 머리를 박았다·
“아 아아 으으으 신입····”
“····”
“마수가 탈출하면 네가 먼저 먹혀줘···· 난 도망칠게·”
“마수 입장에서 선배는 딱히 먹을 부위도 없습니다·”
“···뭐?”
“가시죠·”
제니아는 그렇게 내 옷을 꽉 붙잡고 경직된 몸을 움직였다·
맨 앞에 연구원과 함께 걷던 헤일리가 물었다·
“여기 있는 모든 마수가 교류전에 나오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공격성 체구 원소 저항 등등 적절한 심사를 거쳐서 엄선된 마수를 선별해 내보냅니다·”
“···생각보다 더 꼼꼼하군요·”
철창 안에는 짐마차 크기의 거대한 파충류가 몸을 꼬고 잠들어 있었다· 기다란 꼬리의 끝은 화살표처럼 뾰족하고 박쥐같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오····”
헤일리가 작게 감탄을 내뱉는다·
“와이번입니다· 힘이 워낙에 강력해서 황소도 발톱으로 집고 날아다닐 수 있죠·”
“데이른 지역에 비극을 불러온 그 종이군요·”
“그렇습니다· 마법사가 없으면 와이번에게 대항하기 힘들죠· 더군다나 와이번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니 데이른 지역처럼 마법사의 씨가 마른 곳은 몰살당할 수밖에 없죠·”
그러고는 카트의 덮게를 열고 그 안에 담아둔 숙성한 생선을 집어 철창 안으로 던졌다·
“저렇게 몸집이 큰데 생선으로 배가 부를까요?”
“당연히 부족합니다· 영양가가 풍부한 인간이나 소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만성적인 영양결핍 상태입니다· 염소나 돼지를 지속적으로 수급해 왔는데 이젠 관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서 항구에서 버리는 물고기를 가져다 줍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스트레스도 심하고요· 그래서 먹이 안에 안정제를 섞어줍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살처분 말고는 다른 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와이번은 한 마리가 아니다· 복도를 쭉 이동하면서 보니 대략 열댓 마리는 되는 것 같다· 이 안에 수용된 마수들도 클라리디움의 멸망과도 연관이 있을까?
불의의 사고로 전부 방사된다면··· 멸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올 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와이번보다 더 작은 비행종 트롤 반가운 마수종인 구울도 수용되어 있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다 헤일리는 빈 사육장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저건··· 뭐죠? 저것도 마수를 위한 공간인가요?”
부원들이 전부 그 앞에서 멈춰섰다· 마수의 분비물과 오물에 범벅이 된 이전의 케이지들과는 다른 굉장히 이질적인 광경에 주의가 쏠렸다·
철창 안에는 마수가 없었다· 그 대신 침대와 먼지가 자욱한 의자와 책상 그리고 책과 거울이 놓여 있었다· 그 케이지 내부는 마수가 아닌 인간을 위한 공간처럼 꾸며져 있었다·
연구원이 말했다·
“인간형 마수를 수용하던 공간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오기 전부터 비어 있던 곳이니까요·”
“안에 있던 놈은 어디로 갔습니까?”
“오래 전에 탈출했다고 합니다·”
“····”
헤일리가 나를 슬쩍 보며 시선 교환을 한다·
나도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혹시 관련 자료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외부인에게는 공개해선 안되는 겁니까?”
“아뇨· 저도 곧 떠날 입장에서 그런 걸 지킬만한 충성심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저 남아있는 자료가 없을 뿐입니다· 당시 이 사육장을 관리하던 연구원은 이 마수가 탈출한지 열흘 뒤에 실종되었습니다· 관련 자료는 전부 유실되었고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럼 당시 근무했던 동료 연구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애석하게도 전부 도시를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전부 물갈이가 된 건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떠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건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마수였다는 거 하나 뿐입니다·”
헤일리의 눈이 나와 다시 마주친다· 그녀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내 등에 붙어있던 제니아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말했다·
“그럼 책상에 올려진 책은 뭐죠?”
“제 기억으로는··· 대륙 여행가였던 제른 디어의 ‘대륙 인물 사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대형종을 보러 이동하시죠·”
***
연구원은 제1 연구동에서 나와 외부로 이동했다· 그는 멀리 보이는 돔 형태의 거대한 건축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 부원들이 이상한 걸 감지하곤 잠시 동요했다·
드르르르르·
약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울리고 있었다·
연구원이 곧장 설명을 해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아 코고는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헤일리가 물었다·
“코를 곤다니요?”
연구원이 가볍게 씩 웃는다·
거대한 돔 근처에 가까워지자 저주파의 진동음이 귀가 아플 정도로 두드러졌다·
“코고는 소리에 귀가 많이 아플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쇼·”
연구원이 두터운 철문을 열어젖힌다·
뭔가 거대한 게 나올 줄 알았지만 눈 앞에는 그저 빈 공간만 보일 뿐이다·
돔 아래에는 성 하나를 통째로 집어 넣어도 공간이 남을 법한 거대한 우물이 뚫려 있었다·
그 내부에 들어서고는 모두가 경악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커다란 안에는 거인 둘이 쇠사슬에 사지가 구속된 채로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 뿔이 솟아 있고 풀뿌리 같은 머리카락 하나 뿐인 눈 썩어가는 시체처럼 푸르스름한 피부· 내가 알기로 이 마수는····
“···싸이클롭스잖아·”
헤일리가 나보다 빠르게 그 이름을 말했다·
몸집이 너무 커서 저것들에게 인간은 한 손으로 가지고 노는 병정인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물었다·
“이 우물은 대형종을 길들이기 위해 만든 겁니까?”
“아뇨 고대부터 남아있던 용도를 모를 구조물을 보수하고 개조한 겁니다·”
“···이런 건 어떻게 데려온 겁니까?”
“마차 하나로 나를 수 있는 크기일 때 데려와서 성장시킨 겁니다·”
“왜 이런 걸 키우는 거죠?”
“교류전 참가자들의 용맹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죠· 몸집과 호전성을 기르기 위해 특수한 먹이를 공급하고 팔뚝에는 마법을 방어하는 아티팩트도 채워져 있습니다· 저급 원석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 크기가 막대해서 무식할 정도로 뛰어난 방어 능력을 자랑합니다·”
“···시험 치고 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초거대 마수종은 문명이 시작한 이래로 언제나 인간에게 큰 재난과도 같았습니다· 이들과의 싸움은 문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죠· 마법과 검술이 발전한 것도 이같은 거대 마수종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
“대륙 최고의 재능을 가리는 가리는 대회입니다· 초거대 마수종을 상대하지 않고선 능력을 증명했다고 할 수 없죠·”
싸이클롭스의 코골이 진동음이 몸을 타고 전해진다· 소리만으로 몸이 덜덜 떨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다른 건 모르겠는데 클라리디움을 폐허로 만들 체급은 된다· 저 정도면 돌진하는 하늘범선은 애들 장난으로 느껴질 거다· 내가 교류전 대표로 선발되었단 소리는 없으니까 일단 안심이지만 이 녀석은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 적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다·
“저것들이 사고로 풀려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싸이클롭스가 자력으로 탈출할 방법은 없습니다· 단단한 암반으로 둘러 싸여서 벽을 깨지도 못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나 마찬가지죠·”
***
견학을 마치고 부원들은 전부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탄 마차는 시장이 주최한 저녁 연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책자를 보던 헤일리에게 물었다·
“선배·”
“응·”
“그 인간형 마수··· 뱀파이어가 맞다고 보십니까?”
헤일리가 책자를 덮은 뒤 크게 숨을 고른다·
“···그 정도의 지성을 가진 마수라고 하면··· 뱀파이어 밖에 없지·”
“····”
헤일리는 마차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문제는 그걸로 이 도시의 기이함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거야·”
우리는 지금 막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분수대 앞에는 어제와 똑같이 한 남자가 사과 상자에 올라서서 행인들에게 설교를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옆쪽에 아이의 초상화를 들고 사람을 찾는 애달픈 여인도 똑같이 서 있다·
한가지 다른 건 그 손에 들린 초상화는 어제 본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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