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그 망나니는 저만큼 싸움을 잘 합니까?”
“그 자는 약골이지만 대신 싸움을 잘하는 부하를 거느리죠·”
“절 겁먹게 하려면 부하들 실력이 많이 좋아야 할 겁니다·”
바스티안 부인이 픽 웃었다·
“그 약쟁이를 혼낸 건 저도 통쾌해요·”
“약쟁이요?”
“늘 술과 약에 취해 있으니까요· 레이디비스 클라리디움의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환각제의 이름이에요· 그 약쟁이들이 환각제로 평민 귀족 구분할 거 없이 도시를 어지럽히고 있죠·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배후를 두고 있어서 온갖 만행을 저질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해요·”
“배후에 시장이 있습니까?”
“····”
위험한 질문이었는지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망나니의 이름은 프레이저에요· 프레이저 레인피스트· 잘나신 시의원의 외동 아들이죠·”
“전 이터니아 소속이니 이곳 시의원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했던 대답이에요· 프레이저는 육 년 전에 이터니아 전투부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는군요· 돈으로라도 들어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발각되는 바람에 이터니아엔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죠· 그것 때문에 이터니아 출신들에게 유독 짓궂게 구는 것 같아요·”
“이터니아 출신도 안무서운 마당에 번번히 탈락한 이가 무서울 리 없습니다·”
“···과연 대마법사의 제자다운 배짱이군요·”
“그럼 이제 절 찾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잠시 흠칫 놀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운을 뗐다·
“당신 같은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
그 차분한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제 아들을 찾아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또 사람을 찾는 의뢰인가·
“이 도시에 저보다 훌륭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까·”
“이 도시에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니 믿어선 안 되죠· 당신도 느끼고 있잖아요· 안 그런가요? 유능한 인물들은 전부 귀신한테 홀린 것처럼 떠나버렸어요·”
광장에서 보았던 웨스트우드 노인과 사연도 하는 말도 비슷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확히 기억해요· 행정구를 지나던 수송 마차가 사고로 파손되고 그 안에 있던 마수가 탈출해서 가디언들이 거리에 진을 치고 있었죠· 그날 제 아들은 무도회에 참석했던지라 발을 구르며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아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귀가했죠·”
“····”
연구소 견학 중에 언급된 적 있는 사건이다· 연구원의 말로는 목격자도 희생자도 없다고 그랬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의 모습이 이상했어요·”
“약에 취해 있었습니까?”
“아뇨· 겉모습은 아들과 똑같았는데 영혼만 다른 걸로 바꿔치기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맥락이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억양도 이질적이었어요· 부적처럼 차고 다니던 팔찌는 사라져 있었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대화를 해댔어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처음엔 연극이라도 준비하나 했는데 아니었어요· 거울에 있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 거였어요· 꼭 개나 닭처럼 멍청해져 있었죠·”
“····”
“그리고 분명히 알아요· 그 팔찌는 죽은 친구에게 받은 것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빼지 않아요· 어깨에는 그 친구의 이니셜인 R·B가 새겨져 있죠· 한데 그날 돌아온 아들의 어깨엔 그 이니셜이 없었어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됐습니까?”
“다음날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전 분명히 알아요· 그건 제 아들이 아니었어요· 아들의 모습을 가장한 다른 존재였죠· 부탁이에요· 제 아들을 찾아주세요·”
“여력이 되는 대로 돕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십쇼· 저는 그저 1학년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쾅!
그러던 중 발코니의 문이 거세게 열렸다·
바스티안 부인이 갑자기 들이닥친 이를 보고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프레이저에요· ···일단은 무조건 엎드려요· 안 그러면 크게 다칠 거예요·”
갈색 머리를 길게 묶은 젊은 미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들어선다·
그 뒤에는 가디언과 개인 호위기사로 보이는 덩치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헤일리의 양 팔을 붙잡고 강제로 끌고왔다·
“이거 놔! 전부 쳐 죽여버리기 전에!”
그녀는 팔꿈치로 자기를 붙잡은 덩치의 얼굴을 가격하고는 내 옆에 달려와 옆에 섰다·
프레이저가 건들거리며 내쪽으로 걸어왔다·
“이야 귀인이 오셨다길래 왔는데 벌써부터 여자를 꼬시고 있었어?”
그러고는 한 손에 쥔 술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중요한 때에 찾아왔나보네? 아니 내 친구를 건드렸다길래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단 말이지·”
그가 다가오니 술냄새가 코를 찌른다· 인상을 구긴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얼굴도 반반하니 새끼치는 거 하난 기똥차겠네·”
그가 손으로 내 가슴팍을 툭툭 쳐댄다·
“내가 괜찮은 애들 좀 불러줄까? 숙성된 애들도 많은데·”
“····”
“이터니아엔 뭘로 들어갔어? 딸꾹 아 이걸로 들어갔구나?”
그가 프리실라에 손을 대려하자 그를 거칠게 밀어버렸다·
“손 대지 마라·”
그가 쭉 밀려나자 호위 기사들이 동시에 칼을 뽑고 날 겨누었다·
프레이저가 어깨를 빙빙 돌라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왜 네 보물을 뺏어갈까봐 겁나나?”
“함부로 만졌다간 골로 갈 거다·”
저 놈이 몸을 비틀거린다· 무슨 약에 취한 건지는 몰라도 부작용으로 몇 초마다 턱을 흔들어댔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겠다· 그 마검이 널 이터니아로 입학시켜줬나보군· 맞지? 그 망할 인맥 아카데미는 그런 걸 다루면 손쉽게 들여보내 주거든·”
“····”
녀석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다·
그러고는 삿대질한 손을 흔들며 익살스럽게 소리친다·
“야아 틀켰네· 그치? 여러분! 이터니아가 이렇습니다· 중요한 건 혈통! 운! 인맥! 이겁니다· 실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본인 자리는 꼭 노력으로 올라간 것처럼 말하는군·”
자기는 부모 잘 만나서 그렇게 패악질을 해대는 놈이·
“이 새끼 말 다 했어? 아 기다려 내가 재밌는 걸 보여줄테니·”
놈이 마수의 케이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러곤 베일을 휙 벗겨버렸다·
거기엔 다리가 장대처럼 긴 거대 거미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실내에서 멀찍이 구경하던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는 게 여기까지 들려왔다·
중대형 마수종· 강철같이 단단하고 긴 다리로 먹잇감의 몸을 구멍내는 마수 ‘렉틴’이었다·
프레이저가 손에 든 와인을 마수에게 확확 뿌려댔다·
“일어나· 이 버러지야·”
마수가 점점 반응을 보인다· 근처에 있던 부하들이 놀라서 그를 말렸다·
“아직 결계사들이 도착하지 않았습····”
“다 꺼져 이 새끼들아!”
그가 부하를 뿌리치고는 말했다·
“너 딸꾹 이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그 대단한 명문 이터니아 출신인데 이거 하나 못 잡겠어?”
“잡으면 뭘 얻을 수 있지?”
“못 잡을 거 같은데?”
“너는 이거 못 잡는다에 그래 천 크라운 건다·”
“고작?”
그가 몸을 비틀대며 실실 웃었다·
“니가 이거 못 잡는다에 천 크라운에다 대대로 물려받은 아티팩트 인어의 눈물을 걸겠다· 넌 뭐 걸래?”
천 크라운이면 집회소에서 받은 포상금의 열 배다·
그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파란 보석이 달린 반지를 빼보인다·
뒤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경악한 듯이 입을 떡 벌리고 만류하려 했지만 전부 뿌리쳤다· 귀한 물건이긴 한 모양이다·
“난 내 마검을 걸지·”
“이거 못 잡아서 사람 다치면 임마 니 책임이야· 딸꾹·”
“····”
프레이저가 마수의 화를 돋구려는 듯이 와인을 거칠게 뿌려댄다· 진한 알콜 향에 잔뜩 자극받은 마수가 케이지가 크게 흔들린 정도로 몸을 부딪쳤다·
쾅!
그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야 이거 화가 나서 하나 걸리면 냅다 사지를 다 갈라놓겠는데· 큭큭·”
그러고는 또 신나서 술을 벌컥 들이킨다·
“비켜·”
나는 프리실라를 빼들었다·
“아 내가 조건 하나를 빼먹었네· 그걸로 하면 누가 못 잡냐· 안 그래?”
그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들고 내 앞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약올리듯이 중얼거린다·
“미안해서 어쩌나· 이걸로 잡는 게 조건이야· 이래도 할 거야? 큭큭”
프레이저가 웃어대자 뒤에 있던 부하들도 따라서 실실 웃었다·
난 프리실라를 옆에다 던졌다· 그리고 단검을 집어들었다· 곧이어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식이 이어진다·
“아마 진짜로 하네?”
“저 긴 다리를 어떻게 단검으로 막나·”
“큰일이네·”
“못 잡고 여기까지 오는 거 아니야?”
구경꾼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헤일리가 내 어깨를 잡는다·
“신입 이런 도발에 일일이 반응해줄 필요 없어·”
“···괜찮습니다·”
“데미안· 이건 바보짓이야·”
“마침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 됐습니다·”
“그래 알았어·”
헤일리가 크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난다·
프레이저가 걸쇠를 풀고 케이지의 문을 줄로 엮은 다음에 시종에게 맡기고는 멀리 떨어졌다·
“발코니를 봉쇄하라!”
가디언과 기사들이 칼을 뽑고 문쪽에서 경계태세를 갖췄다·
나는 시종에게 말했다·
“문 여세요·”
“····”
시종이 겁에 질린 얼굴로 노끈을 쥐고 머뭇거린다·
“여세요·”
시종이 눈을 질끈 감고 줄을 휙 잡아 당긴다· 곧이어 줄과 연결된 케이지의 문이 휙 젖혀지고 마수가 긴 다리를 뻗어 밖으로 걸어나온다·
오래 걸릴 싸움이 아니다· 나는 감각이 인도하는대로 곧장 팔을 휘둘렀다·
푸쉭!
내가 던진 단검은 정확히 마수의 미간에 꽂혀버렸다·
주황 빛의 체액이 검 손잡이를 타고 줄줄 흐른다· 마수는 나오자마자 바로 급소를 맞고는 몸을 비틀거린다· 그러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우와아아!”
“뭐 한거야?”
“하늘범선 때부터 알아봤어· 괜히 이터니아가 아니라니깐?”
“저런 건 처음 봐·”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린다·
“이건 말도 안 돼·”
프레이저가 인정하지 않고 도주하려 들자 나는 곧바로 프리실라를 들고 휘둘렀다· 냉기가 바닥을 타고 쇄도해 그의 두 발을 꽁꽁 얼려버렸다·
도주가 막히자 그는 두 팔을 들었다가 포기한 듯이 도로 내렸다·
나는 마수에게 다가가서 단검을 뽑아냈다· 신경절이 살아있는지 검을 빼자 다리가 꿈틀거린다· 그대로 프레이저에게 다가가 그의 옷에 체액을 슥슥 닦고 검집에 넣어주었다·
그는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이제야 깨달았는지 넋나간 얼굴로 초점없는 눈을 굴렸다·
“내 가보 가보는····”
희미하게 떨리는 그의 손에서 반지를 빼냈다·
“이게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라면 내 손에 있는 게 세상에 이로울 거다·”
승리의 쾌감 같은 건 없다· 난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그런 것에 취할 겨를이 없었다·
이 망가진 도시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고 내 몸과 미술부원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거면 돈이든 뭐든 있는대로 챙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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