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7
헤일리에게 고아원에 간다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나와 고아들과의 연관성에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걸 유추해낼지 모른다·
나는 내 과거에 대한 단서들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밤 늦게 마차를 얻어타서 클라리디움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위치한 자유 개발 구역에 도착했다· 아무런 계획성도 없이 무작위로 난립한 판자집들· 번영한 도시라 해도 빈민의 삶은 어디든 대체로 다 비슷하다· 이곳 또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난한 이들의 군락에 불과하다·
[사랑의 집]
기울어진 간판 아래로 낯익은 마차가 보인다· 이런 데에서 보히 힘든 귀족의 호위병들이 쓸 법한 고급 마차가 있고 뒤에는 짐마차가 따라붙었다· 판자촌에 안 어울리는 귀족이 이곳에 왜 있는 걸까·
기사복을 입은 한 남자가 짐마차에서 무언가를 나른다· 깜깜한 밤이라 잘 안보였는데 한참을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전부 음식이었다· 음식을 사랑의 집에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자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어김없이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누구냐!”
그가 마차에 걸어둔 횃불을 가져와서는 내 얼굴을 비춘다·
환한 불빛 덕에 나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숙한 생김새· 얼마 전에 신전 앞에서 만났던 지구대장이었다· 그가 제지하던 경비를 혼내고 우릴 신전 내부로 들여보내 주었었다·
“데미안님 아니십니까?”
“가디언 지구대장께서 이런 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그건 제가 여쭙고 싶군요· 이터니아의 파견단이 왜 이런 곳에서 나타납니까?”
그제야 내 등장이 상대방에게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질 것을 자각했다· 천 크라운이 담긴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단 걸 알면 더더욱 이상하게 보이겠지·
“고아들에게 기증하고 싶은 게 있어 왔습니다· 그러는 지구대장께선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
지구대장은 도둑질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당당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손짓하더니 짐짝을 가려둔 헝겊을 휙 걷어냈다· 그 안에는 음식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도 조리된지 얼마 안 된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스튜와 육류 과일이 가득했다·
“시에서 주최한 연회에서 남은 음식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통은 버려지는 것들이기는 하나···· 손도 안 댄 식재료나 과일들은 버리기 아까우니 필요한 사람한테 주는 게 맞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냅다 횡령한 듯한 그림이다· 뭐 이래도 신경 문제 삼을 귀족은 없을 거다· 다들 자기들 노는 데 바쁘니까·
허름한 가옥 문을 열고 꼬마 아이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맛있는 냄새!”
“안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배고파요!”
“어서·”
지구대장이 타이르자 아이는 다시 쪼르르 들어갔다·
“한두 번이 아닌가 봅니다·”
“귀족들이 파티를 열면 이 빈민가의 아이들도 같이 좋아하죠·”
“저도 좀 돕겠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음식들을 들고 가옥 내부로 들어섰다·
허름한 내부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 두 개가 있고 거기에 어린아이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화덕에서는 전에 본 적 있는 눈이 먼 노파가 차를 우리고 있었다·
“우와아·”
“피피랑 같이 왔던 사람이야!”
“가디언인가봐!”
짐짝에 실은 음식들을 다 나르니 두 개의 테이블이 꽉 채워졌다·
“성대한 파티였던지라 남은 게 많습니다·”
음식을 다 옮기자 노파가 우리에게 차를 건넸다·
“항상 고마워요·”
노파가 지구대장의 손을 잡고 손등을 툭툭 두드린다· 허옇게 색이 바랜 눈을 하고 초점도 없지만 앞이 보이는 사람과 행동가지가 똑같다·
지구대장이 머쓱해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번에 또 오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를 따라 사랑의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마차에 올라타고는 말했다·
“제가 태워다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뇨·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말고삐를 흔들었다· 마차는 이내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멋쩍은 시간이긴 했지만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좋았다· 북적북적한 소리를 들으니 아카테스 신전에서 지내던 내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가난하고 궁상맞았지만 가끔씩 그렇게 모여 만찬회를 열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도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노파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으련?”
“애들이 많지 않습니까· 음식이 부족할 겁니다·”
“내 눈엔 너도 아이란다·”
“···가보겠습니다· 걱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상자를 두고 갔더구나·”
“그것도 드리는 겁니다·”
“그냥 두고 가기엔 너무 큰 거 아니니?”
“도박으로 딴 거라 그리 아쉬운 돈이 아닙니다· 입이 많은데 저보다 더 좋은 데에 쓰시리라 생각합니다·”
“내게서 예언을 들으러 온 것 아니었니?”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본인이 직접 언급할 줄은 몰랐다· 이 노인은 성녀의 힘으로 미래를 보는 프록시마 사제였다·
“네 아닙니다·”
여기서 예언을 듣는다면 돈을 두고가는 내 선의가 퇴색된다· 정말 뛰어난 예언자이고 클라리디움의 멸망을 봤다면 그 돈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노인이 서글픈 표정을 하고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꼭 맞잡는다·
“가엾은 것·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 하나 뿐이구나·”
“····”
“모든 게 끝나면····”
노인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곧장 만류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예언이다· 예언자의 저주를 인지한 이상 미래를 보는 걸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을이 지는 서쪽 항구에서 스승님을 기다리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은 기분이다·
“이런 말을 해줘도 괜찮은 겁니까?”
마지막 순간을 위해 은거하면서 이렇게 쉽게 예언을 내어줘도 되는 걸까·
노인은 다 내려놓은 표정으로 인자한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내 손등을 툭툭 두드린다·
나는 이 노인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무얼 위해서· 나는 타인의 삶과 운명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예언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노인은 날 동정했다· 당신도 막대한 불운을 감내하면서 타인에게 연민을 품는 모습이 서글펐다·
“전 괜찮습니다·”
그러던 중 문을 열고 한 소녀가 밖으로 나온다· 하늘범선이 추락하던 날 우리가 잠시 맡아주었던 피피라는 소녀였다·
소녀는 조용히 내 앞으로 와서는 무언가를 건넨다·
새하얀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였다·
“이거요·”
“···이건 뭐니?”
“제가 만든 거예요· 마도학 기초 아티팩트에요·”
“나 주는 거야?”
“네· 또 오세요· 언니들이랑 같이·”
빈말이라도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이번에 떠나면 다시 클라리디움에 올 일은 없을 테니까·
그저 멸망의 화살이 이들을 빗겨가길 바랄 뿐이다·
“다음엔 너희가 오렴· 이터니아로·”
***
나는 해가 뜨자마자 바로 시장의 의뢰를 위해 가디언 집회소로 향했다·
사무관이 부스스한 머리로 서류들을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무게가 상당했던지라 책상이 살짝 기우뚱했다·
“하수도 정비 사업부요?”
“네 그쪽에 일이 좀 많다네요?”
“시장님이 직접 배정하신 겁니까?”
사무관이 서류를 무심하게 넘겨보며 말한다·
“아뇨· 시장님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관할하진 않으시고요· 위에선 그냥 일손이 급한 쪽으로 배정하라고 해서 그대로 한 거예요· 원한다면 다른 사업부로 옮겨드릴 수 있어요·”
“어디가 있습니까?”
“징수 관리부랑 무역통상보안소 쪽도 있어요· 일감이 쌓인 건 하수도 정비 사업부가 많고요·”
“하수도 사업부는 무슨 문제입니까?”
“그건 그쪽 담당자를 만나서 직접 들어보셔야 해요· 근데 문제 제기 건수가 좀 비정상적으로 많네요· 이거 언제 이렇게 늘었지?”
“어떻길래 그렇습니까?”
사무관이 서류를 넘겨보며 자기도 놀란 건지 인상을 구기고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가디언 파견 요청 건수가 지난 세 달간 예순 건이 넘네요· 이게 왜 이렇게 됐지?”
“다른 부처는 평균적으로 어떻길래 그렇습니까?”
“두어 달에 한두 건이면 많은 거예요· 아무래도 하수도 사업부가 비정상적으로 징징거리니까 적당히 묵살한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일손이 가장 급한 곳이긴 하네요·”
“하수도에 가디언을 파견할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 알기로 몇차례 파견을 보냈는데 성과가 없었대요· 흔히들 하수도를 ‘도시의 던전’이라고도 하잖아요· 사실상 제 2의 도시나 마찬가지에요· 워낙에 방대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길을 잃기도 쉽고 악취가 오물이 가득한 하수도를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도 없고요·”
“····”
등골이 서늘해진다· 도시의 던전이라고? 하수도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수가 도시 한가운데서 탈출했는데 목격자도 희생자도 없었고 갑자기 증발했다면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준 게 아니라면 하수도 말고 없다·
“하수도 일 제가 하겠습니다·”
“아 그러시게요? 잠시만요·”
사무관이 양피지를 가져와 무언가를 적고는 도장을 쾅 찍고 내게 건넸다· 클라리디움 시의회의 정식 의뢰서였다·
“이거 하수도 사업부 관리소장에게 보여주면 안내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
하수도 사업부 관리소장은 떡진 머리와 때가 탄 덥수룩한 수염의 노인이었다· 내가 의뢰서를 들이밀자 그는 가지고 노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에라이! 염병할! 내가 사람 없다· 사람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고작 한 명을 보내?”
“진정하십쇼·”
하수도 사업부 건물은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그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관리소장을 포함해서 다섯 밖에 없었다· 대도시의 하수도 전체를 관리하는 것 치고는 머릿수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 애 하나 보내놓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전부 다 방치해 놓고!”
“저는 단순히 조사차 온 겁니다· 하수도 사업부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 일이야 뭐만 하려하고 하면 터지지· 하수도에 일꾼이 들어가면 실종되고 죽고 다치고 난리도 아니야· 다 무섭다고 관두고 일손을 구하겠다 하면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일꾼 다 키워두면 뭐하냐고· 사람이 다 갈려나가는데· 염병·”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고요?”
“아니 하수도에 유령이 있다고 다들 난리였어· 일꾼들이 열이면 열 들어갔다가 얼굴이 시퍼래져서 나오고는 그만두겠다고 옷벗고 나갔어· 거기다 시체가 나와서 상부에 보고해도 아무런 대응이 없어· 윗놈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요?”
“내가 말해 뭐해· 배수로에 쓰레기가 쌓이고 오물이 통로에 고이는데 긁어낼 사람이 없어· 이거 그냥 두면 악취가 도시에 퍼진다고 읍소를 해도 들어먹지를 않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건 작정하고 문제를 완전히 방치한 수준이다·
상류층과 지도층이 방탕하고 무책임하게 쾌락을 탐하는 동안 도시는 밑바닥부터 썩어서 곪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리디움에 드리운 멸망의 그림자가 코 앞까지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유령이 나온다는 구역이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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