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이들은 위젤에서 퍼진 데미안과 실베린의 소식을 접하고 미리 준비한 듯 했다·
데미안을 잡기 위해선 실베린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강물을 불게 해 제국의 끄트머리로 방향을 틀게 한 것도 이들이 의도한 것일 확률이 컸다·
제국에 세력을 두고 있다면 그 국경 안에서 일을 벌여야 뒷수습이 쉬워졌을 테니까·
“데미안을 어쩔 셈이지?”
“그 아이는 여기서 죽는다·”
“···무슨 죄를 지은 거야?”
“더 이상 참견하지 마라·”
실베린은 데미안을 동정했다·
참 기구한 운명이다· 대체 얼마나 삶이 꼬였으면 그 어린 나이에 이 마법사들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걸까·
실베린을 만나기 전의 데미안은 나약하고 가난한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고위 귀족하고는 아예 접점조차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미 데미안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실베린은 얼음의 칼날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특별하지 않은 중위 마법에 속하지만 그 수가 괴랄할 정도로 많은 덕에 고위 마법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더군다나 실베린이 주로 다루는 속성 마법과도 상성을 이룬다· 미리 그녀를 상대할 방법을 기획하고 있었다고 밖엔 할 이야기가 없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저 칼날을 버티지 못하고 찢겨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국의 수도는 따뜻한 남쪽에 있어서 매일매일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북부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은 걸까·
아무리 머릿수가 많고 상성 차이가 난다고 한들 실베린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들의 의도가 뭔지 궁금했다·
데미안을 잡기 위해서 기꺼이 멸문의 위험을 감수하겠다 판단한 걸까·
아니면 실베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으로 일을 벌인 걸까·
“대단한 마법이네· 솔직히 놀랐어·”
“····”
“너희들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졌어·”
“네년과는 격이 다른 분이시지·”
“누군데?”
“마법사들의 왕이시다·”
실베린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대답을 듣고 비로소 후자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 스스로를 최고의 마법사라 자처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았다 착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탐하는 멍청이들·
힘의 한계를 마주하고 결국 흑마법에까지 손을 대 파멸하는 부류가 바로 저런 이들이었다·
대화로 끝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난 제자를 버릴 생각은 없어·”
“좋게 끝낼 생각은 없나보군·”
실베린은 오래 끌고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주위에 마력이 응집하기 시작했다·
“응· 이야기는 다 끝나고 들어보도록 할게·”
“네년도 여기서 죽을 거다·”
실베린의 머리카락이 마치 중력이 없어진 것처럼 천천히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톨연 개기일식이 온 것처럼 세상이 전부 암전되었다·
실베린의 발밑에 조금씩 불길이 솟아올라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그녀를 둘러싼 마법사들이 일제히 동요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수준의 마압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는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마력의 밀도였다·
이들 대부분이 중급 마법사였음에도 마압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거품을 물며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은 실베린을 향해있지 않았다·
실베린의 마력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하늘에서 미지의 존재가 현현했다·
그녀와 마주한 곳에 있는 마법사가 소리쳤다·
“하늘 하늘을 향해 쏴라!”
그곳에 압도적인 위압감을 내뿜는 그 존재가 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얼음의 칼날들이 전부 방향을 틀어 시커먼 하늘 속으로 쇄도했다·
“다시!”
마법사들이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주문을 외웠다·
허공에 또다시 수천개의 얼음 칼날이 나타났다·
이것들은 다시금 새카만 공허를 갈랐다·
허나 하늘에 있는 그 미지의 존재에겐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마압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실베린의 앞에 마주한 마법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무릎꿇었다·
마법사들이 마압을 못견디고 쓰러지는 건 좀처럼 드문 진풍경이었다
곧이어 하늘에서 집채만한 두 눈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 눈은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일만큼 맹렬히 불타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초자연적인 존재에겐 지상의 것들에 대한 분노와 악의만이 가득했다·
도망치던 이들마저 마압에 못이겨 푹푹 엎어져 바닥을 기었다·
***
1분이 한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나는 마법사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정면으로 상대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아직 마법사를 상대할 실력은 아니다·
지금으로서 최선은 실베린을 믿고 기다리는 것뿐·
나는 마차 창문을 계속 주시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짐과 동시에 마차로 옆 나무들 사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실베린이 떠난 사이 우리 마차를 노리고 접근했다·
이들이 숲을 빠져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를 걸치고 가면을 쓴 괴한들·
내 꿈에서 봤던 이들과 비슷하다·
이들은 점차 포위망을 만들며 마차들과의 간격을 서서히 좁히고 있었다·
“젠장·”
리리아와 메이드들도 위험하다·
마차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실베린의 말이 떠올랐다·
‘마차 안이 제일 안전해·’
실베린은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걸 다 염두해 두고 있었던 걸까·
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햇빛이 가려진 것처럼 잠시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다·
그렇게 몇 번 어두워지길 반복하다 곧이어 밤처럼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게 무슨····”
실베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곧이어 마차로 양 옆에 일자로 길게 빛이 일더니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콰아아아아
눈 깜짝할 새에 하늘까지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고는 불의 장막이 되어 마차들을 둘러쌌다·
“선생···님?”
불길이 얼마나 사나운지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시커먼 숯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하늘에서는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지상에 내려오고 있었다·
쾅! 쾅!
이것들은 사정없이 지면을 강타하고 폭발음을 냈다·
화염이 이글거리는 소리를 뚫고 장막 너머에서 고통에 절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끄아악 불이 안 꺼져!”
“으아아아아아악!”
“내 내 내몸이!”
“퇴각 퇴각하라!”
조용했던 숲길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모해 있었다·
***
마을엔 살점을 그을린 연기로 가득했다·
그녀를 둘러싸던 마법사 무리는 모두 죽었다·
신에게 경배하듯 무릎꿇고 엎어진 자세로 모두 시커먼 숯더미가 되었다·
실베린은 수장격으로 보이는 이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쪽 벽돌 담장에 그 여자를 기대게 한 뒤 가면을 벗겨 버렸다·
긴 은발 머리 얼굴에 팔자주름이 있는 30대 인상의 여자였다·
데미안의 꿈에 나왔을 걸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실베린이 감정을 뺀 어조로 말했다·
“진짜 왕을 마주한 기분이 어때·”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
“말로는 안통하겠군·”
“나 날 고문할 셈이냐·”
“····”
“네년은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굉장히 용의주도했다· 실베린이 직접 확인하기로는 이 여자가 대동한 마법사들 모두 고용된 용병이었다·
직접적으로 연관될 거라 추정되는 사람은 이 여자뿐이었고 분명 아무것도 불지 않도록 혹독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었다·
실베린도 심문이 쉽지 않으리란 걸 처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난 그런 구닥다리 방법 안 써·”
실베린은 품 안에서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다·
니엘그라의 눈·
대상의 정신을 지배해 내면 깊은 곳에서 진실을 캐낼 수 있는 최고위 아티팩트였다·
일전에 데미안에게 사용할까 잠시 고민했던 그 아티팩트·
무한정 사용할 수 없는 소모품에 가까웠지만 데미안에 대한 진실을 캐내기 위해 기꺼이 사용할 생각이었다·
“···!”
여자가 아티팩트의 정체를 알아보고 혀를 깨물려 하자 실베린은 곧장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그녀의 반지가 마력에 반응해 녹색 광채를 뿜었다·
곧이어 니엘그라의 눈에 지배된 여자의 눈이 뒤집혀 흰자위를 드러냈다·
“으그그 그그극·”
헌데 여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지 여자의 몸이 부들거리며 이를 갈았다·
이를 본 실베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법사 가문이 틀림없어·’
마법사 가문만이 가신과 혈족들에게 이런 심리 조종 마법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도록 장치를 심어둔다·
이런 상황이면 원하는 답을 얻는 건 불가능했다· 빠르게 심문을 끝내지 않으면 이 여자는 거부반응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실베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는 고용된 마법사야?”
“그극 아니다·”
“네 이름은 뭐지?”
“엘드 리스· 프 픗 으그극”
그녀는 성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실베린이 바로 질문을 바꿨다·
“네놈이 섬기는 주인의 이름은 뭐지?”
“마· 마법사들의 와 왕이시다·”
‘역시나·’
예상대로 가문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도록 트리거를 걸어두었다·
“왜 데미안을 죽이려 했지?”
“으그극 위험요소 그극 에게 접 접근 모두 거 짓말 이니까·”
“뭐가 거짓말인데?”
“···마스 스터스 통제 그극·”
실베린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마스터스 클래스를 말하는 건가?
데미안을 통제하기 힘들다?
“데미안이랑 너희들은 무슨 관계지?”
“그극 위 위험 요소·”
“위험 요소?”
데미안은 그들에게 위험 요소고 마스터스 클래스에 들어가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나?
실베린은 잠시 고뇌했다·
“이터니아에 너희 가문의 사람이 있나?”
“그그극 으그극 그극·”
여자의 몸에서 거부반응이 극심해졌다· 입에서 거품이 나오고 팔다리가 점점 뒤틀리고 있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리고 실베린의 머릿속에서 한 의문이 스쳐갔다·
바로 마법사 가문 그리고 마력 전이였다·
이 둘은 데미안의 비정상적인 마력 회복력에 매우 큰 연관성이 있었다·
데미안을 찾는 마법사 가문·
강력한 유대·
그리고 이터니아에 있는 누군가·
퍼즐이 점차 짜맞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베린은 이 사태의 전말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실베린은 천천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데미안이랑···아카데미에 있는 그 아이랑 무슨 관계지?”
여자는 거부 반응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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