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
“이제 일주일 동안 못 보는데···한 번 안아줄까?”
데미안은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목검을 챙기고 마차에서 내렸다·
“다녀올게요·”
실베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서운하다는 신호를 잔뜩 줘도 데미안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는 마차 문을 닫고 입학 시험장으로 나아갔다·
실베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로서도 큰맘 먹고 한 말인데 데미안의 반응이 저러니 너무 앞서나갔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하기도 하고 입학시험을 앞두고 생각이 많을 법도 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십 걸음 앞으로 나아가던 데미안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돌연 뒤돌아서 마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응?”
실베린은 마차 내부를 살폈다·
“두고 간 물건은 없는데?”
데미안이 마차로 다가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가 다시 마차로 올라오자 실베린이 입을 열었다·
“뭐 잊은 거라도 있····”
데미안이 아무말 없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그녀의 몸이 좌석에 눕다시피 할 정도로 기울었다·
“어머····”
실베린 조차도 조금 당황할 정도였다· 데미안이 이런 돌발 행동을 한 건 함께 지낸 이후로 처음이었다·
맞닿은 몸을 타고 그의 빠른 맥박이 실베린에게로 전해졌다·
티는 안내도 속으로는 시험을 앞두고 제법 긴장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실베린은 입꼬리를 올리고는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잘하고 오렴 제자야·”
요동치던 데미안의 맥박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잠시후 데미안이 구속을 풀고 실베린을 좌석에 가볍게 눕혔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다시 입학 시험장으로 홀연히 떠나갔다·
“····”
실베린은 마차문이 활짝 열려 내부가 훤히 드러났음에도 미처 닫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데미안은 진정시켰지만 이상하게도 실베린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 누워서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덥네·”
***
이터니아의 성채 외곽 그레이스 산 기슭과 이어지는 넓은 잔디밭이 입학시험 장소였다·
그리고 그레이스산과 입학시험장의 경계에는 거대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관계자 외의 출입을 막아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잔디밭 경계에서 동행자들과 작별한 지원자들이 하나둘씩 시험장 내부로 들어왔다·
그녀가 아는 얼굴도 종종 보였다·
‘이번 시험엔 신성들이 많이 참여할 거라는데 그 말이 맞았어·’
루나 세실 빅터 나이아스 이리스 등등· 입학하기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명문가 자제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점차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얼마 후 지원자들이 한곳을 보고는 시끄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험장 입구에서 누군가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릴리트는 그 모습을 보고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드디어 보네·’
대륙의 북단 최전방에서 마수 방어선을 수호하는 바리안느 변경백·
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바리안느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를 이을 바리안느 가문의 장남 게일·
이미 그 어린나이에 대형 마수들을 토벌하고 북부인들로부터 ‘웨펀마스터’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 각진 턱과 호전적으로 보이는 눈매· 등에는 사람만한 도끼를 지고 있었다·
외형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는데 무슨 짓을 한건지 몸이 피범벅이었다·
그 덕에 더욱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원자들이 게일의 기세에 눌려 지나가는 곳에 길을 터주었다·
게일까지 왔으니 추천서를 통해 입학하는 지원자들은 절반은 파악했다·
추천서 명단이 더 많을 수도 있었지만 정보가 알려진 이들 중 남은 건 ‘시온’과 ‘데미안’이었다·
위젤 기사단으로부터 소문은 들었지만 데미안은 아무래도 비교되는 이들에 비해 활약도 미미하고 급도 현저히 낮았다·
뒷배를 이용해서 추천서를 받은 것 아닌가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그 정도는 어느정도 감안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이터니아라 한들 이같은 뒤가 구린 입학생은 매년 있었다·
릴리트는 데미안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게일이 지나가고 몇분 뒤 입학시험장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릴리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야 주인공 납셨네·’
마침내 시온 이자렐이 시험장 내부로 걸어왔다·
풀밟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많은 인원이 침묵했다·
전 대륙에 오직 열 명 뿐인 소드마스터·
그 중 드래곤의 목을 베어 ‘용살자’라고 불리는 검사 게신 그리그의 애제자였다·
시온이 자신을 대적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 도장깨기를 한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빅터나 게일을 비롯한 입학 지원자 중 손꼽힐만한 강자 대부분이 시온에게 무참히 깨졌다·
그녀는 이곳에선 최강자나 다름 없었다·
2학년 3학년을 찾아가 몇몇을 박살냈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니 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 입학 시험에서의 수석은 명실상부 시온의 것이었다·
사실상 경쟁이 제일 치열한 건 차석 자리다·
‘응?’
그리고 시온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한 남자가 시험장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그녀의 눈살이 구겨졌다·
릴리트에겐 굉장히 안 좋게 각인된 실루엣이다·
‘저놈도 입학 지원자였어? 참내 이거 반가워 해야 하나?’
허리춤에 찬 목검에 한 손을 올리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그토록 찾아도 안 보였던 바로 그 가면의 남자였다·
***
지원자들이 전부 모이니 그 수는 천명에 육박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이터니아의 심사관 열 명과 조교 서른 명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왔다·
심사관이 결계 앞에 일렬로 섰다· 곧이어 조교들이 지원자들에게 각각 지도를 한부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심사관들의 대열 중앙에서 가엘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입학시험을 담당하게 된 전투부 부교수 가엘이다· 이번 시험의 진행 방식과 목표를 알려줄 테니 잘 듣도록!”
플린은 지원자들 뒤에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었다· 그는 가엘을 도와 부정 출입자를 막는 경비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도는 그레이스 산의 지리를 표시했다· 안전 지역을 넘어가 마수를 만나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너희의 목표는 단순하다· 바로 그레이스 산 정상에 올라가 마법의 석판에 손도장을 찍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었다· 길목 중간중간엔 지원자를 가로막는 방해꾼들이 존재했다·
“그 길목에는 플랜테라들이 버티며 너희들을 죽기 전까지 방해할 것이다·”
지도에는 정상으로 가는 루트가 A부터 F까지 총 6개 표시되어 있다·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A B루트였지만 이 두 곳은 플랜테라의 수비가 상상 이상으로 촘촘했다· 이는 최상위권을 변별해내기 위한 경로였다·
대부분은 빙 돌아가는 C~F 루트를 타야 한다·
“정상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는 하나 우리는 팀플레이를 권장하고 협동과 협력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 반드시 유념하도록·”
플린은 자신이 입학시험을 치를 때을 회상했다· 그도 연금부 지원자 두 명과 팀을 맺어 함께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가산점을 받았다·
“그리고 각 학부마다 추가 과제가 있다· 이는 지도 뒷면에 명시되어 있으니 필히 확인토록·”
지원자들이 지도를 뒤집어보기 시작했다·
추가 과제는 이러했다·
연금부는 식생을 파악해 명시한 약초를 채집해 제출할 것· 그걸로 특수 포션을 제작하면 추가 점수 부여·
마도학부는 그레이스 산에서 얻은 재료들로 자유로이 도구를 제작하고 시험 종료 후 심사관에게 전부 제출할 것·
마법부엔 과제는 없지만 다른 지원자를 치유해주면 가산점 부여·
전투부는 없다· 이들에겐 오직 정상까지 돌파하는 것만이 최우선 목표였다·
“그 외 세부적인 룰 또한 지도 뒷면에 명시되어 있으니 참고토록· 이만 설명은 끝내겠다·”
이번 입학시험은 플린도 직접 참가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신성 시온 이자렐 게일 바리안느 그리고 무엇보다 데미안의 존재 때문이었다·
대부분 시온이 수석을 차지할 거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린만은 달랐다·
한 달 전 대련을 생각하면 아직도 털이 곤두섰다·
저 지원자들 속에 시온에 필적할 괴물 같은 놈이 가만히 숨어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놈이 과연 어떤 이변을 일으킬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빨리 시작해라····’
심사관들이 결계를 유지하는 마법 수정구들을 하나씩 회수해갔다·
“이제 입학시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 그대들의 무운을 빌겠다·”
곧이어 앞을 막던 거대한 결계가 사라졌다·
쿠웅- 쿠웅-
그에 이어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레이스 산 기슭에서 그 수가 천 단위에 육박하는 플랜테라 군단이 숲을 비집고 친히 마중을 나왔다·
이것이 첫 관문이었다·
지원자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플랜테라와 지원자들이 격돌하고 전쟁을 방불케하는 대규모 전투가 이어졌다·
그곳에선 게일이 자연스레 선봉대장이 되어 최전방에서 도끼로 플랜테라를 쓸어냈다·
한 쪽에선 은빛 늑대 십여마리가 나타나 플랜테라를 날려버렸다· 루나가 바람의 정령을 현현시킨 것이었다·
이리스를 비롯한 연금부 지원자 몇몇은 포션을 던졌다· 그 포션이 떨어진 곳엔 덩쿨이 무성하게 자라 플랜테라를 구속했다·
곳곳에선 화염구들과 전격으로 인한 스파크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플린은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일부는 ‘협동’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심사관들의 말에 혹해서·
다른 일부는 수많은 지원자들 틈에서 능력을 뽐내고 두각을 보이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저마다 이유를 품고 전력을 다해 플랜테라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게 함정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로·
***
릴리트는 후방에서 달려 나가다 가면의 남자를 보고는 잠시 멈춰 섰다·
‘저 인간 뭐하는 거야?’
다들 죽을힘을 다해 싸우러 달려간 마당에 남자는 싸울 생각이 없는지 설렁설렁 걸어가고 있었다·
‘저 인간은 모두와 협력해서 점수딸 생각이 없나보군·’
후방에 진입한 몇몇 플랜테라가 가면의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몸을 빼서 다른 사람과 싸우게 하고는 도망쳐 버렸다·
한 번이 아니라 그짓거리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릴리트는 황당해서 입이 벌어졌다·
“뭐 저런 비열한 놈이 다 있어?”
보고 있자니 화가 솟구쳐 올랐다·
겁쟁이에다 명예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놈이군·
상종할 가치를 못 느낀 릴리트는 남자에게서 관심을 떼고는 최전방으로 달려갔다·
전투는 몇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해가 기울고 저녁노을이 질 때쯤에야 릴리트는 뭔가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다·
그렇게 싸웠지만 아직 수십 구의 플랜테라가 남아 있었다·
플랜테라는 공격해 오지는 않았지만 그레이스 산의 진입로를 굳건히 막아서고 있다·
남은 지원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전부 부상과 탈진으로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말도 안 돼·’
전체 지원자 중 칠할에 달하는 인원이 시험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실의에 빠진 지원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이들 전부 온 힘을 쏟아 플랜테라와 싸운 이들이엇다·
가면의 남자는 이 꼴이 날걸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레이스 산에 진입한 모양이었다·
‘그놈은 대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겁하고 교활했지만 그는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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