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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gone Academy Chapt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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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남자·

그리고 낯선 사람이 남자라는 걸 확인하자 기분 좋은 감각은 불안감으로 희석되었다·

루나는 가슴에 주먹을 올리고 꾹 눌렀다· 남자의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처음엔 수호목의 힘이 검은 형체를 물러나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면의 남자를 보자 그게 착각이었단 걸 깨달았다·

정령 그리고 온갖 사념체들에게 원초적 공포를 안겨주는 존재· 루나는 일평생 그런 기이한 사람을 단 한 명 경험했었다· 바로 실베린의 제자 데미안이었다· 모습을 바꿔도 루나는 예민한 영적 감각으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는 데미안이다·

그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자 루나는 반사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루나의 내면 속 남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자신의 몸을 더럽힐 수 있는 존재·

루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아버지가 시녀를 겁탈하는 모습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시녀가 어떤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유년시절부터 뿌리내린 기억 덕에 루나는 남성들에 대한 마음의 문을 전부 닫았다·

이건 용기나 의지같은 걸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혼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영원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흉터였다·

루나는 괴리를 느꼈다· 낯선 남자에게서 안식과 두려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남자가 한 발짝 더 다가가자 그녀는 손을 부르르 떨며 두 걸음 크게 물러났다· 

가면의 남자가 공포에 질린 루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그는 미련없이 뒤돌아서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가지 말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루나는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남자가 사라지고 다시 밀물처럼 검은 형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그것들이 루나에게 속삭였다· 그 말소리가 그녀의 심부를 찔렀다·

[알고 있었어· 결국엔 아무것도 못 할 걸·]

[멀리 갈 필요 없어· 우리가 안식을 가져다 줄게·]

 

***

 

나는 윗드러프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자고 일어나니 문틈에 편지 한장· 그리고 창문턱에 실베린의 편지가 한장 날아와 있었다· 나는 스티치를 회수하고 실베린의 편지를 먼저 읽었다·

거기엔 간단하게 입학 축하문 그리고 학교 빠져봐야 정학처분 말고 더 있겠냐면서 성도에 날 데려가지 못한 걸 후회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리고 추신으로는 답장이 오는데 대략 37시간 걸렸으니 앞으로는 더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실베린답다고 할만한 편지였다·

그녀의 편지를 읽으니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그리워졌다·

내가 지내던 신전에서도 이터니아의 입학식과 비슷한 큰 행사가 매년 있었다·

아카테스 신전에서 자란 고아들은 그처럼 큰 행사에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다· 

청년의 날 부모의 날 아카테스의 탄신일 등등 매년 기념일이 되면 평민 귀족 가리지 않고 가족 단위로 신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고아들은 그들의 세례식에 쓸 꽃잎을 하루종일 따거나 목이 쉬도록 찬트를 불러야 했다·

아카테스 신전의 고아들에게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화목하고 웃음꽃이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일이었다·

들러리의 삶을 오래전에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매사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축제일이 코 앞에 다가오면 먹구름이 끼는 날 무릎이 쑤시는 노인내처럼 내 마음 한구석도 시큰거리는 건 어쩔수가 없다·

실베린이랑 같이 입학식을 보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편지만으로 충분히 위안이 된다·

두번째 편지는 마스터스 클래스의 입학식 안내문이었다·

정오를 넘기 전 금지된 숲의 회당으로 찾아오라는 지시가 적혀 있었다·

나는 침구를 정리하고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생활동을 지나치는 학생들을 통해 우연히 루나의 소식을 들었다·

“루나 걔 병 때문에 기숙사 앞에서 쓰러졌대·”

“왜 왜? 무슨 병인데?”

“몰라 걔 마법부 수석 아니야?”

“그럴걸· 재수도 없네 어떻게 입학식 앞두고 쓰러지냐?”

 

***

 

입학식의 풍경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가슴이 설렌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축제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캠퍼스 어디를 가도 하늘에서는 눈처럼 빛의 가루가 내린다· 별무리가 쏟아지는 것 같이 아름다워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플랜테라들이 화단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심으면 교직원들이 그 위에다 포션을 뿌린다·

그리고 정원을 한바퀴 돌고 오면 그 자리엔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면 발이 닿는 곳마다 꽃잎이 밟힐 정도로 온 캠퍼스가 오색찬란해진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릴리트는 설레는 마음을 품고 캠퍼스를 거닐었다· 꿈에 그리던 그 순간을 현실에서 만끽하고 있었다·

릴리트는 이따금 습관적으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혹여나 ‘그 자식’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인사나 악수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 정도는 나눌 수 있을만한 사이니까·

그 넓은 이터니아가 전부 인파로 북적인다·

저마다 제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환상적인 마법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혹은 친족의 이터니아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서 제국과 주변의 공국들 그리고 도시연합의 명문가들이 입학식에 맞춰 이터니아에 찾아온다·

입학식에는 사병의 출입을 금하고 있음에도 입학생 한 명에 딸려오는 방문객은 평균적으로 서른 명이 훌쩍 넘었다· 

아무런 연고 없이 구경거리를 위해 찾아온 방문객까지 합쳐 대략적으로 추산하면 사천 명에 달한다고 했다·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저술가이자 여행가인 고리우스는 이터니아의 입학식을 세상에서 가장 큰 사교회라고 칭했었다· 직접 눈 앞에서 마주하니 그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다만 이터니아 아카데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교수진들의 등장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금년도 입학식은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칸디넬라 실베린 에르제베트 모르구스 알퀘이드 라캄 등등 이터니아의 중역들은 어딘가로 파견을 나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거물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이터니아의 주력인 학문과 마법과는 거리가 먼 정치권력에 얽매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굳이 꼽자면 율리시아 공국의 후계서열 1순위의 가이낙스 공녀였고 그 다음으로는 제국의 4황자 프란츠였다· 황권 계승 서열은 낮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을 다스리고 있었다·

금년도 입학생들과 연고가 없었음에도 최고위 지배층들이 입학식을 찾아온 이유는 명실공히 대륙 최고의 재능이라 할 수 있는 수석 입학생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재능· 릴리트의 머릿속엔 계속 누군가가 아른거렸다· 모든 입학생을 일일이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에겐 ‘그 자식’이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 자식’은 수석 또는 못해도 차석이다· 1등 2등이 전투부에서 나왔으니 잘하면 학년 대표로 못해도 전투부 대표로 단상에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공녀나 황자에게 눈도장을 찍으면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그 영광을 마다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미친 게 아니고서야 그 약속된 출세길을 버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자식은 성격상 영광이니 명예니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자퇴한 건 아니겠지?’

그러던 중 릴리트의 시종이 황급히 그녀 앞으로 뛰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왜 혼자 이러고 계십니까!”

릴리트는 혼자만 딴길로 빠져나온 걸 들키자 조금 민망해서져 볼을 긁적였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냥 구경하다가 그만···혹시 아버님이 찾으시나요?” 

“네 아니· 그렇긴 한데  더 큰 일입니다·”

시종은 숨을 헐떡이면서 그녀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이터니아의 학장님께서···아가씨를 찾으십니다·”

 

***

 

“제가 마법부 대표로 단상에 올라간다고요···?”

학장 듄켈이 차를 한잔 홀짝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마법부 수석인가요?”

듄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마법부 수석은 루나양일세· 다만 그 학생은 단상에 올라설만한 상황이 아니야· 그러니 차석인 자네가 올라설 걸세·”

“제가 차석이라고요?”

릴리트는 머리가 멍해졌다· 입학시험에서 그녀가 한 거라곤 ‘그 자식’을 졸졸 따라다닌 것뿐이다·  

“저는 그 정도의 실력이 아닌 걸요·”

상위권의 성적을 기대하긴 했지만 차석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마법부에는 그녀보다 실력 좋고 재능있는 학생들이 많았고 릴리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우리도 잘 알고 있다네· 다만 우리가 단순히 마법 실력만 평가할 것이었으면 토너먼트를 시키고 성적대로 줄을 세웠겠지· 자네는 종합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고 우리는 그에 따라 평가를 내린 것뿐일세· 우연히 찍은 답이 다 맞았다고 해서 점수를 깎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차석 입학을 한다고 해도 언제나 좋은 건 아니었다· 그 성적을 유지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학부 대표로 단상에 올라가는 건 엄청난 일이다·

“····”

“문제가 생긴다 해도 그건 이터니아의 문제지· 자네의 선택이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걸세·”

릴리트는 점잖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듄켈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래· 마법부 차석 입학을 축하하네·”

그녀는 두 주먹으로 허벅지를 꾹 눌렀다· 날아갈 듯이 좋았지만 학장 앞에서 호들갑을 떨 수는 없었다·

 

***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학식장· 그리고 단상까지 이어지는 중앙 통로에는 백걸음쯤 되는 길이의 황금빛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 양옆으로 고위 인사들과 입학생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위한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상에 오를 학생들은 뒤쪽 특별석에 배정된다· 진행자가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면 황금 카펫을 지나며 기립박수를 받는다·

학부 수석들은 그 특별석에 모여 앉는 덕에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개식에 앞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별석에 앉을 학부 수석들도 한 명씩 모였다·

가장 먼저 자리에 앉은 건 세실이었고 릴리트가 두 번째로 와서 마법부 지정석에 앉았다·

세실은 눈곱만큼도 긴장이 안 되는지 여유로운 몸짓으로 거울을 보며 입술을 칠하고 있었다·

릴리트가 세실의 맞은편에 앉자 세실이 잠시 적대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왜 혼자와?”

“···뭐?”

릴리트가 반문하자 세실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실수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적대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입학시험 때 한 번 스친 적은 있다만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직접 대면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 이외엔 아무말도 없었다· 심지어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묘한 불쾌감이 밀려왔지만 이내 치워 버렸다· 세실의 기가 너무 세서 감정적으로 굴면 그대로 짓눌릴 것 같았다·

다행히도 연금부 지정석에 이리스가 앉으며 경직된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이리스는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인 덕에 세실과 릴리트 두 명 모두와 안면이 있었고 밝게 인사를 건넸다·

마도학부 연금부 마법부 대표는 모두 착석했고 남은 건 전투부였다·

그리고 특별석에 전투부 자리 두 개만이 남아 있었다·

릴리트는 전투부 지정석만 두 개인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가슴이 뛰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그 자식’의 자리였다· 

곧이어 남은 한 자리가 채워졌다· 시온이 소리없이 다가와서는 냉큼 자리에 착석했다·

이리스가 시온에게 넉살좋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이리스를 한 번 흘겨보고는 무시해 버렸다·

이리스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중 동기들과 잘 지내려하는 사람은 오직 이리스 하나 뿐이었다·

세실은 마지막 한 자리만 남은 걸 확인하고는 손으로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러고는 그 남은 한 자리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서 옆자리에다 눈을 흘긴 채로 멈춰 있었다·

릴리트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남몰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 자리를 주시했다·

입학생 대표로 모인 세 여자들의 기이한 모습을 지켜보던 이리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누구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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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gone Academy [Damn Academy]

Doggone Academy [Damn Academy]

Damn Academy, 망할 놈의 아카데미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My childhood friend went to the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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