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이터니아 아카데미 마법부 교수·
이터니아 하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말이 있다·
나는 리자에 대한 소식을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애써 억눌렀다· 잘 지내든 못 지내든 소식을 들으면 내 마음은 심난해질 뿐이다·
실베린은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묻는다·
“표정이 왜 그래?”
“별거 아닙니다·”
“뭔데 물어봐·”
“···이터니아는 아직 학기 중 아닙니까?”
이터니아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리지 않을까·
한창 바빠야 할 교수라는 사람이 오고 가기엔 여긴 너무도 먼 거리다·
“맞아· 난 사정상 일 년 정도 휴식 중이고·”
“복직은 언제 하시죠?”
“다음 학기에·”
그렇다면 지금 1학년 2학기 중에 있는 리자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사제의 연이란 건 절 아카데미로 데려가겠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그편이 네 안전을 위해서 좋겠지· 내가 널 평생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안전···이라뇨?”
실베린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검 말이야·”
“···?”
실베린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네 검은 너무 위험해· 타인한테 위협인 게 아니라 너 자신한테 말이야· 네 검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걸 노리고 달려드는 놈이 많을 거야· 그놈들이 기사도를 지키며 결투를 신청할 거란 기대는 넣어둬· 대부분 미친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넌 지금 죽기 딱 좋은 위치라고·”
이 검 때문에 오히려 내 목숨이 위험하다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살면서 힘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나는 이 힘이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안전한 도시에서 살았고 도시 밖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들이 많은지 잊고 있었다·
“····”
“적어도 네 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을 정도로는 훈련 시켜야겠지· 아카데미는 그 뒤의 이야기고·”
“알겠습니다·”
나를 가르쳐 준다는데 마다 할 이유는 없었다·
“별의 조각을 찾고 난 뒤에 어디로 갈 생각이었어?”
“공방이 있던 하만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포기하고 잊어· 편지도 보내지 마· 하만에 네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 네 손으로 전부 지킬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가· 안그럼 다 널 끌어내기 위한 인질로 전락할 테니까·”
그 말은 즉 신분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는 하만과는 오랜 기간 이별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네·”
“그리고 그 검· 죽을 위기가 아니면 꺼내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됐지? 가자· 곧 있으면 구울들이 또 몰려올 거야·”
실베린이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자 크레이터 너머에서 말 한 마리가 달려왔다· 말은 우리 앞에 멈춰 서고는 콧김을 뿜어댔다· 구울 시체로 아수라장인 크레이터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실베린이 손으로 말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어서 타·”
“잠시만요·
나는 배낭을 들고 운석으로 향했다· 실베린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설마 베네마릴 찾으려고?”
“네?”
“대현자 루타비스 책에 적힌 거 말이야·”
실베린도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약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운석이라고 다 베네마릴의 종자가 있는 게 아니야· 그건 그냥 평범한 운석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그럼 운철을 좀 긁어내도 되겠습니까?”
날 가르치던 세공 장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운철은 아직 연구가 되지 않아 인간들에겐 크게 인기가 없지만 드워프들에겐 금보다 더 귀하게 취급 된다고· 인간과 드워프의 교류는 수백 년 전에 끊긴 지 오래라 실질적으로 판매는 불가능 했지만 구하기 워낙에 힘드니만큼 가능할 때 미리 챙겨두고 싶었다·
“그래· 너무 시간 끌지는 말고·”
운석에서 직접 떼내기엔 내가 가진 장비가 다소 빈약했다· 다행히도 운석이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주변에 주먹만한 운철 파편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 쓸 만한 걸 골라내 챙겼다·
순식간에 주괴 서너 개는 만들 분량을 가방에 가득 채웠다·
실베린은 운철이 든 가방을 건네받아 말 뒤쪽 안장에 고정하고는 말했다·
“타·”
내가 말에 올라타자 실베린도 곧장 내 뒤로 올라탔다·
내 키가 또래에 비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실베인이 성인 남자와 엇비슷한 신장인 탓에 그녀가 고삐를 잡으니 나는 그녀의 품에 푹 안긴 꼴이 되었다·
내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자 이상한 걸 느낀 실베린이 말했다·
“너 뭐하니· 힘 빼·”
“저···그냥 걸어갈 수는 없습니까·”
“그냥 버리고 간다·”
“····”
그녀가 고삐를 흔들자 말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말의 움직임에 따라 실베린의 몸이 흔들렸고 나는 양쪽 어깨에 닿는 물컹한 감촉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
듄켈은 그동안 전해 받은 서류를 하나씩 집무실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이는 전부 명예 교수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 마법 학회 의장 등등 자격을 인정받은 이들로부터 전해진 ‘추천서’였다· 거기엔 추가적으로 입학 후보자들의 특이사항이 적혀 있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들의 분석인 만큼 과장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듄켈 학장은 서류들을 눈으로 흘겨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새 학기에는 풍년이라 할 만큼 천거된 입학 후보자의 수가 많았고 각각의 재능과 개성 또한 뚜렷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는 천년의 재능이며 여신의 현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성녀 후보자 아젤리스·
자이온 대륙을 평정한 소드 마스터의 제자 시온·
평범한 돌도 마석으로 만들어 낸다는 천재 인챈터 세실·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정령사 루나·
제국의 최북단 방어선을 수호하는 바리안느 변경백의 아들이자 어린 나이에 마수를 수차례 토벌해 공적을 세운 웨펀 마스터 게일·
이렇게 다섯이었다·
추천서에 천거된 이들 대부분은 어린 나이일 때부터 두각을 보여 이름과 능력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굳이 서류를 세세하게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쿵쿵쿵
흐뭇하게 수염을 쓸던 듄켈은 문득 찾아온 불청객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쿵쿵쿵
그의 집무실 창문에 스티치 하나가 요란스럽게 박치기를 해대고 있었다·
실베린의 스티치였다· 실베린의 것 말고는 저런 식으로 날아오는 건 없었다·
듄켈이 창문을 올리자 스티치는 날갯짓으로 바람을 내며 서류를 헤집어놓았다· 그러고 책상에 올려 둔 팬꽂이를 들이박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서야 잠잠해졌다·
눈을 질끈 감은 듄켈이 작게 탄식했다·
스티치 전용 서신함이 있었지만 실베린은 이를 항상 무시하고 집무실 안의 무언가를 꼭 박살내도록 설정해두었다·
자기 편지는 다 제치고 1순위로 읽어보라는 의도에서였다·
반대로 듄켈이 보낸 스티치는 실베린이 서신함을 본인 저택 벽난로로 지정해 곧장 불길로 뛰어들게 했다·
듄켈은 과거 실베린을 아카데미로 데려왔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천덕꾸러기 놈을 내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어리석었어·”
스티치의 발에는 서신이 쥐어져 있었다·
듄켈이 서신을 확 낚아채자 스티치가 다시 날갯짓하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
이런 안하무인인 제자를 내칠 수 없는 이유는 순전히 그녀의 능력 때문이었다· 게으르고 남들을 업신여기지만 맡은 일에 한해선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두차례 심호흡하고 서신을 펼쳤다·
실베린의 추천서였다·
“흐음·”
그것도 고대 문자로 적힌·
이번 건 좀 과격하긴 했어도 나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그녀가 권한을 얻고 처음으로 써낸 추천서였으니·
그녀의 추천서를 읽은 듄켈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고대 문자로 적힌 추천서는 평범한 추천서와는 달랐다·
천거하는 아이의 잠재력이 국가나 어느 집단의 존망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혹은 아이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면 아이나 아카데미에 큰 위협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을 때 보안상 고대 문자를 이용했다·
거기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입학했을 시 그 학생의 능력이나 본래의 신분은 학장을 비롯한 몇 교수들 외엔 철저히 비밀로 부쳐지며 이목을 끄는 걸 막기 위해 성적 또한 수석을 한들 공표 시 늘 중위권 성적으로 처분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겐 ‘마스터스 클래스’라는 특수 능력 개발을 위한 집중 수업이 진행된다·
다만 마스터스 클래스는 아카데미의 여러 자원을 쏟는 특수 제도이니만큼 자격 요건이 제법 까다로웠다·
아무리 온 대륙의 천재들이 모이는 이터니아라 한들 마스터스 클래스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자는 극소수였다· 현 3 4학년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2학년에는 에이미 폰타르 1학년 중에는 리자 파스칼 뿐이었다·
다음 학기에 입학하는 성녀 후보자 아젤리스 또한 마스터스 클래스를 위한 논의가 교단과 한창 진행 중이었다·
마스터스 클래스는 단순히 실베린이 요청한다고 해서 들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실베린이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고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고 한들 이번 일은 아카데미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심사를 거쳐야 했다·
더군다나 실베린은 반골 기질이 강하고 아카데미의 절차와 관습을 필요에 따라 무시했던 이력이 있으니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햇다·
듄켈은 양피지에 호출용 메시지를 적고 스티치로 전서를 보냈다·
잠시 뒤 누군가 집무실을 노크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매끄럽고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막 수련을 마치고 왔는지 땀에 젖어 있었다·
“학장님 부르셨습니까?”
실베린의 아카데미 동기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전투부 부교수 가엘이었다· 지금이야 실베린이 아득하게 앞서 있고 가엘 또한 자신이 실베린에게 뒤진다는 걸 인정하고 있지만 가엘은 아직도 실베린에 대한 일이라면 경쟁의식이 불타올랐다·
천성이 늘 올곧고 원칙주의자인 가엘이라면 실베린이 고른 아이를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듄켈이 손짓으로 집무실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나·”
가엘이 의자에 덜썩 앉아서 난장판이 된 집무실을 보고는 말했다·
“또 실베린입니까?”
듄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번엔 좀 특별하네· 실베린이 추천서에 마스터스 클래스를 요청했다네·”
가엘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커졌다·
“그 실베린이 말입니까?”
듄켈은 덤덤하게 다시 고개를 끄덕엿다·
“자네가 심사관 자격으로 실베린의 아이를 검증해줬으면 하네·”
가엘은 고개를 저었다·
“실베린이 고른 아이면 마법에 재능을 가졌을 텐데 전투부인 저는 심사에 적합한 인물이 아닙니다·”
“실베린의 추천서에 그 아이는 검을 다룬다고 했네·”
검을 다룬다는 말에 가엘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알겠습니다·”
“파견 업무이니만큼 시간이 제법 걸릴 걸세· 다음 달은 일정 전부 비워두게나· 필요한 업무는 내가 다 처리해주겠네·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학장님·”
“말해 보게나·”
“제 제자를 심사에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가엘의 경쟁의식이 다시금 발동한 걸 눈치챈 듄켈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마스터스 클래스 심사라는 것만 알리지 않으면 된다네·”
“···감사합니다·”
듄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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