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1
리리아와 나는 간단하게 감사 인사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날 수련장에 데려다 준 여선배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녀는 팔짱을 끼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여워·”
“네?”
“보답은 필요없고 그보다 너 특기활동 정했어?”
“아뇨 아직 알아보는 중입니다·”
“정 보답하고 싶다면 미술부에 놀러와· 아 이거 입부 강요 아니다· 그냥 구경하고 가라고·”
“저 선배님 이름은····”
“몰라도 돼· 난 간다· 안녕!”
정체불명의 여선배는 그렇게 바람처럼 떠나갔다·
사탕이라도 하나 드릴 걸 그랬나·
옆에 멍하니 있던 리리아가 할 말이 떠올랐는지 내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저어기···데미안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요?”
리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미안님 표정 안 좋았던 거···· 설마 다른 남자들이 접근했을까봐···화 나셨던 거예요?”
그러고는 은근슬쩍 날 올려다 본다· 날 보는 표정이 내 기분을 걱정한다기 보다는···뭔지 모를 기대감에 찬 것 같다·
“네 걱정 많이 했어요·”
대답을 들은 리리아의 표정이 들뜬 것처럼 상기된다·
“정말요?!”
“그럼요·”
“저···그럼 그럼 혹시···그····”
“뭔데요?”
“으응 지 질투···하신 건가요?”
리리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능청스럽게 못들은 척 대답을 회피했다· 나머지는 그냥 상상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움직여요· 제가 기숙사 구경도 시켜주고 또 캠퍼스도 구경시켜줄게요· 다음에 또 왔을 때 길 잃으면 안 되니까요·”
그럼에도 리리아는 주늑들지 않았다· 나를 조금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기고 그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느꼈는지 해사하게 웃는다·
“너무 좋아요!”
***
윗드러프관에 리리아가 가져온 물품들을 옮기고 생활동 인근을 산책했다·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와 나란히 산책하는 모습이 낯선 모양인지 몇몇 학생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나나 리리아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리리아는 예쁜 옷을 입고오지 않은 걸 못내 아쉬워 했지만 산책을 하며 어느새 잊어버리고 내내 해사한 표정으로 나와 잡담을 나눴다·
그리고 그 산책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리리아 덕에 흑마법사와 싸우고 남은 독기를 빼고 심적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생활동 중앙에 있는 분수대를 지나자 누군가가 뒤에서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데미안!”
귀에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 나는 리리아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색꽃으로 산책로가 조성된 소정원에서 트리샤가 날 보고 활짝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든다· 그런뒤 주변 눈치를 슬쩍 살피고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 리리아가 옆에 바짝 붙어서 내 등줄기의 옷자락을 슬쩍 붙잡는다· 마치 처음 보는 미지의 생물을 보고 겁먹은 것처럼·
리리아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네·”
내 앞에 멈춰선 트리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리아를 바라본다· 이 둘의 시선이 잠깐동안 미묘하게 교차한다· 활기차게 먼저 인사를 건넬 줄만 알았던 트리샤 침묵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서 적막을 깼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음···너 퇴원했다길래 기다렸다가 연극부 구경시켜 주려고? 근데 옆에 누구야?”
“아 이쪽은 교수님 저택에서 같이 지내는 메이드 리리아·”
그런 뒤 트리샤쪽 소개도 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동기····”
내가 트리샤에 대한 설명을 어중간하게 하자 그녀가 끼어들어 직접 덧붙였다·
“친구 데미안이 이터니아에서 처음 사귄 친구·”
“그래요· 이쪽은 트리샤· 입학하고 처음 사귄 친구예요·”
엄밀히 말해서 세실이 먼저긴 한데 뭐 큰 의미는 없으니까·
친구라는 단어에 반응해서 내 등줄기 옷자락을 쥔 리리아의 손아귀가 조금 강해진다·
트리샤가 먼저 리리아에게 말로 새침하게 인사를 건넨다·
“음 반가워·”
그러자 리리아도 목례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데미안 님이랑 친하신가봐요· 서로 말도 놓으시고····”
“응· 어쩌다 그렇게 됐어·”
“저기···데미안 님이랑은 어쩌다 친해지게 되신 거예요?”
갑작스런 질문에 트리샤가 동그란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대답했다·
“같은 병실에 입원했거든· 나는 일찍 퇴원하는데 얘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혼자 누워있었어· 그래서 퇴원할 때까지 내가 챙겨주고 간호하면서 친해졌어·”
리리아가 가만히 그녀의 말을 곱씹다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데미안님을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거의 단짝 친구인데 뭐·”
“혹시나 다음에 또 데미안 님에게 비슷한 일이 생기면 절 불러주시겠어요? 데미안님 돌보는 게 교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제 임무이기도 하고 잘 맞는 약초라던가 포션 민감성 등등 제가 데미안 님의 몸에 대해선 아주 잘 알거든요·”
리리아의 말투가 다소 딱딱하다· 순간 트리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나도 간호 잘 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데미안의 몸은 나도 이젠 잘 알거든· 점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외울 정도야·”
“····”
“····”
나와 리리아 둘 다 말문이 막혀 잠시 침묵했다·
옷깃을 잡은 리리아의 손에 힘이 확 들어가 부르르 떨린다· 그리고는 내가 그 동요를 감지할까 당황했는지 손을 확 떼고 뒤로 감췄다·
트리샤의 태도가 리리아의 신경을 건드리는 모양이다· 이렇게 예민한 모습은 처음인데·
리리아와 트리샤 모두 내가 평소 알던 모습하고는 말투와 분위기가 다르다·
그들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자 내가 끼어들었다·
“소개 끝났어? 난 시간이 없어서 빨리 연극부 구경하고 싶은데· 이제 갈까?”
“앗 그래· 여기 가만 있다가 어떤 무용부 선배가 나 끌고가려 했던 거 알아? 나보고 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어디 다녀온댔어· 빨리 도망치자·”
“뭐 잘못이라도 했니·”
트리샤가 머리카락 끝을 빙빙 꼬면서 리리아를 살짝 흘겨보고 다시 내 쪽으로 돌려서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아니· 무용부 가입하라는 거야· 내가 인기있어서 그런 거지·”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가· 자신감이 넘친다· 은근 즐기는 거 같기도 하고·
“따라와! 안내해줄게·”
그러곤 트리샤가 휙 돌아서서 앞장서 걸어갔다·
트리샤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옆이 허전했다· 리리아는 나를 따라붙지 않았다· 뒤돌아 보니 리리아는 꿍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 서 있었다·
“···리리아?”
“····”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과는 다르게 표정과 분위기로는 무언가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자들의 기분은 왜이리 작은 대화로도 쉽게 오르내리는걸까· 참 복잡한 생물이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그녀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나중에 이야기해요· 일단 같이 구경하죠· 재밌을 거예요·”
***
트리샤가 미리 주의를 주었다·
“여기선 엄청 작게 말해야 해·”
무대 위엔 한창 리허설 중이다· 연극부 홍보 차원으로 한동안 리허설을 참관할 수 있게 일반 학생들에게 극장을 개방한 것이었다·
우리는 무대와 가까운 앞쪽 관객석에 착석했다· 우리들 말고도 또 다른 사람들도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극장 내부엔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다·
그 대신 마석의 강한 빛이 무대를 내리 꽂는다· 그리고 반사된 빛은 은은하게 무대 아래로 뻗어나가 관객석이 있는 지점에서 정확하게 끊긴다·
관객석은 완전히 암전된 상태다· 그 덕에 모든 존재는 지워지고 이 세상에 오직 무대 하나만이 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대에선 리허설을 하는 배우들이 한 손에 대본을 들고 대사를 읊는다·
어떤 장치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는 세세한 것까지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관객석에 전해졌다·
감각이 조금 예민하다면 배우의 숨소리 옷감이 스치는 마찰음 발끝으로 걸어도 그 발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나도 살면서 극장에 오는 건 처음이다· 조금은 과장된 몸짓과 억양이 오히려 몰입하기 좋은 요소로 다가와 신기하다·
그리고 리리아는 나보다 더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그녀는 신문물을 발견한 것처럼 배우의 몸짓하나하나에 몰입하고 있었다·
곧이어 극장 안으로 사람들이 우수수 들어오고 관객석이 점점 채워진다·
“구경하는 사람이 제법 많네·”
내가 흘리듯 내뱉은 말에 반응해 오른쪽에 앉아있는 트리샤가 귓속말을 했다·
“연극부랑 무용부는 인기가 엄청 많아서 입부 경쟁이 제일 치열해·”
그럴만도 하다· 무대를 한 번 보니까 사교계에서 왜 그토록 배우에게 환장하는지 이해가 간다· 마치 세상의 주인공 같이 보인다 해야하나· 리허설만 이정도인데 제대로 하면 얼마나 대단하려나·
트리샤가 머뭇거리다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두곳에서 나한테 입부하라고 난리였어·”
나는 트리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결국 그 자랑하려고 꺼낸 이야기야?”
트리샤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고 볼에는 익숙한 보조개를 띄우며 웃었다· 그러곤 내 턱을 앞으로 돌리고 다시 귀에다 속삭였다·
“네 첫번째 친구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는 듯이 들린다· 얘 인기가 많은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밉지는 않았다·
나는 적당히 받아쳐주었다·
“네 본모습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트리샤가 소리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내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그러곤 들뜬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이뻐서 다 죽어나갈걸·”
“····”
아무것도 모르고 들었으면 심각한 푼수같다 느꼈겠지만 그 자신감의 근거를 나도 직접 확인했기에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잠시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고민하던 중 왼쪽에 있던 리리아가 내 옷깃을 소심하게 잡아당겼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던 리리아는 어느샌가 서운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 편까지 가능할 것 같았는데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남은 분량은 조속히 다듬어서 내일이나 모레 중 업로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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