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삼악은 실로 기묘하다·
하나하나는 고약스러운 향이거늘 셋이 하나되었을 때의 결합향은 달콤하고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지만 후공이 혼향을 퍼뜨린 건 단지 기분 전환을 위함이 아니었다·
“이 향은 뭐지?”
“와아 엄청 좋은 냄새····”
“어···· 몸이····”
“몸이 움직여!”
마비의 해제·
원래 독양충의 진향이면 충분했지만 후공은 굳이 그 끔찍한 악취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예 독양충의 악취가 내포된 혼향을 날린 터·
그 결과
풍열에 당한 모두가 마비에서 풀려났다·
대연무장뿐 아니라 향이 퍼져간 곳의 어디든 누구든 심지어 색황조까지 본래의 움직임을 되찾았다·
모두 놀라 두리번거렸다가 손을 들어올려 보고 일어나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의문이 일었지만 짧았다· 무언가를 복용한 것도 누가 몸을 만진 것도 아니다· 특이점은 오직 향뿐이었다·
어떤 원리로 이 향이 마비를 풀어낸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향의 근원지가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경이로움을 느꼈다·
대공자는 풍열이라는 벌레를 우습게 소멸한 것뿐 아니라 향을 운용할 수 있는 존재· 또 이 향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달콤함과 청량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만약 천화서고 대공자가 초빙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했을까· 역용자가 침투한 시작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눈 뜨고 당했으리라· 정녕 상상으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게 천향삼주의 발현으로 모두가 깨어난 결과 각 처소며 뜨락에서 쓰러졌던 남궁세가의 고수며 일원들 수백 명도 대연무장 쪽으로 뛰어왔고 외곽을 둘러쌓았다·
후공은 남궁가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주었다·
남궁학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고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
말이 필요없었다·
후공은 자신이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지만 양보했고 그 배려에 남궁학은 고마워했다·
다른 이들도 그 의미를 이해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향을 발현해 마비를 해소한 건 수모를 겪은 당사자들이 직접 원통함을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려는 뜻인 것이다·
요희와 귀령주등이 연신 뒷걸음질쳤다·
그들로서는 최후의 결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가 매혹적인 향의 발산과 함께 모두가 풍열의 마비에서 풀려나는 광경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이곳에 고수 아닌 자가 드물다·
성난 파도처럼 진정한 대군처럼 밀려들자 십이귀살이 방패가 되어 막아섰다· 하지만 숨 한 번 쉬어보지 못하고 찢겨나갔다·
뒤를 이어 귀일령과 귀령주의 참담한 비명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악!”
백리가주는 달아나보려 절룩거리면서 움직였지만 이내 쏟아져오는 장력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커억 컥컥····”
머리가 으깨어진 채 널브러져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며 숨이 끊어져갔다·
혈주요희도 그 뒤를 이었다·
그녀는 나름 저항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 상대가 모용가주였다· 급기야 모용가주의 웅혼한 장력에 가슴이 뻥 뚫렸고 덕분에 몸에 원래 없던 또 없어야 마땅한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머리통만 했다·
“····”
요희는 몸에 생긴 엄청난 구멍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가슴을 보았을 뿐인데 등 뒤가 보였기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뒤돌아보지 않고도 뒤쪽을 볼 수 있는 기묘한 능력자가 되었지만 그 능력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털썩·
생애 마지막 순간의 기억·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해괴하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끝으로 사마가주의 머리가 높이 떠올랐다· 귀살이 떨군 검을 집어든 남궁학이 사마유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다· 단번에 죽음에 이르렀으니 선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공은 그렇게 정리되어 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몽연몽에 시선이 이르러선 입꼬리를 올렸다·
‘녀석 무림맹 지부장이 맞긴 맞구나·’
분노에 차 죽여버릴 만도 한데 몽연몽은 도충상인이라 불린 늙은이를 포획하고 있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사황천의 명맥 유지가 혈음곡만이 아닐 수도 있고 또 혈음곡의 잔재를 처리하려면 한 놈 정도는 살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후의 일은 무림맹이 나서면 될 터·
*잠시 후·
후공은 포위되듯 에워싸였다·
대연무장에 집결한 모두에게 빙 둘러싸였다·
연무장 너머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세가에 몸담은 모두가 함께하니 그 숫자가 거의 천 명에 가까웠다·
후공은 모두의 눈동자에 자신이 담겨 있음을 보았고 또 그 안에 감사함이 담겨있음도 볼 수 있었다·
맞았다·
후공이 보고 느낀 대로였다·
이 밤
모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피로 물들었을 것임을·
목숨보다 소중한 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채로 죽음을 맞았을 테고 또 그 끔찍한 기억을 간직한 채 아침이건 밤이건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일제히 예를 갖췄다·
한마디 말도 없다·
극단적인 침묵의 예로
은인을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말로는 형용하려 해도 감사를 다 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순간 마음에 품은 의미가 옅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공도 마주 예를 취했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모두는 여전히 머리를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와중 어린 소천개가 몸을 일으켰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다· 후공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니 소천개가 헤헤헤 입모양만으로 웃고는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후후 녀석····’
천천히 모두를 돌아보는 후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라보고 있자니 흡족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원했던 모습이었다·
이런 광경이야말로 바라던 모습이었다·
귀삼령을 통해 요희가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떠오른 건 피와 참혹함·
하지만 만약 자신이 늦지 않게 도착한다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흡족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이 죽었다면
이들 중 몇을 잃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광경일 테니·
감사를 받아서가 아닌
그저 모두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광경이어서
후공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모두의 머리가 숙여져 있는 사이 후공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다·
이 밤이 다 지나기 전
피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기 시작하면 이 밤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다들 잠깐 악몽을 꾼 것 같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후공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은 늘 같을진대 이 밤은 길었다·
가족들이 동료들이 각각 한자리에 모였고 간밤의 소회를 떠올리고 또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꿈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아찔했음에 고개를 절레거렸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점점 웃음을 찾아갔다·
“아버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소자 천공단에 들고 싶습니다·”
“천공단? 대공자의?”
“네 대공자 곁에서 더 배우고 싶습니다·”
“흠 그래?”
“네·”
“거길 들어갈 수는 있고?”
“아····”
그 점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남궁연이 멍해졌다· 그러고 보니 너무 쉽게 여겼다· 아버지의 말인즉 천공단이 너 같은 걸 받겠냐는 뜻이 아닌가·
곁에서 어머니와 소예 그리고 우까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뒤따라 남궁연도 머쓱하니 웃음지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허락은 얻은 것이다· 자신이 재주껏 청하는 것만 남았다 싶으니 희망을 걸어볼 일이었다·
한편 남궁세가의 호법들 사이에서는
“혹시 천화서고 대공자를 누가 모시고 왔는지 아나?”
“글쎄···· 누구였더라·”
“누군지 몰라도 참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이 아니겠나· 그가 모시고 오지 않았다면···· 후우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칠비단혼이 한껏 으스댔다·
생매장 당했던 주제에 모가지에 들어간 힘이 장난 아니었다·
곁에 있던 비류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누가 모시고 왔는지 심히 궁금하네· 소문에 의하면 그자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고 그 이유가 대공자에게 처맞아서라던데 자넨 아나? 도대체 얼마나 호되게 맞았는지?”
“하·하·하·하· 난 모르네·”
칠비단혼의 모가지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또 다른 한편에선
천공단이 언제 질질 짰었냐는 듯 깔깔거리고 있었다·
“사형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는 걸 잘 봐!”
“야 그 손 모양은 동냥하는 거잖아·”
“어휴 거지새끼들 진짜 못봐 주겠네· 꼭 본녀가 나서게 만들지·”
“하하하하 누나! 손이 너무 통통해서 풍열이 다 튕겨나가겠어!”
“닥쳐! 이 거지야·”
천공단은 단주가 풍열을 향해 손을 내뻗는 동작을 흉내내면서 아침을 맞아갔다·
**
그리고
그 아침 후공은 연공에 한창이었다·
넘쳐나는 풍열의 기운을 삼악에 융화시켜나갔다·
그 결과 경지는 사성 중기를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약왕문에서 독양충을 취해 삼악에 이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도대체 몇 년을 앞당긴 것인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자 후공은 칠비단혼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만약 칠비단혼이 차분한 성격에 고분고분하게 나왔다면 천룡대전에 참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뒤늦게 참사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했으리라·
물론 풍열을 취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녀석을 파묻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연공 과정 속에서 얻은 건 비단 경지의 상승만은 아니었다· 삼악에 관하여 새로운 방향을 자각하게 되었다·
삼악에 수만 마리의 풍열이 전부 융화된 건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였기에 마음 쓰지 않았다· 과한 식사가 모두 영양분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풍열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기경팔맥을 휘도는 삼악을 면밀히 들여다보던 중 뜻하지 않는 길을 찾았다· 삼악의 형태를 지그시 바라보자니 풍열과 독양충의 상승작용은 일부에 불과했다·
삼분의 일·
즉 육각망과 영악초도 같은 원리로 작용함을 엿보았다· 독양충이 풍열이라는 양분을 통해 성장한 것처럼 육각망과 영악초의 양분도 같은 효과를 낸다·
그렇게 삼악에는 그 두 개의 틈이 남아있었다·
육각망과 영악초의 양분으로 그 틈이 메워지면 삼악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무엇일까?
육각망의 양분은 영악초의 기반은·
그렇다·
이제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냐일 뿐이다·
한낱 잡초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영초요 영물이 될 터·
“하하하하하!”
취하게 된다면 오성의 경지를 거뜬히 넘어설 거라서 기쁜 나머지 후공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송화가 곁에 다가와 무어라 말을 꺼냈음에도 당장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럼에도 송화는 그게 또 좋아보였나 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따라서 배시시 웃는다·
후공은 웃음을 거두고 뚱하니 바라봤다·
“송화 너는 왜 웃느냐?”
“공자님께서 웃으시니까요·”
“크흠 물어보고 웃어야지·”
“아 맞다· 왜 웃으신 거예요?”
“몰라도 된다·”
그 말에 또 송화가 헤실헤실 웃어댔다·
송화는 마냥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