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끝나거든 연락하라·
“하하하하하하하!”
목령자의 웃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어쩌면 이대로 밤새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후공은 그대로 두었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웃음이 어디 웃음인가·
후회요 눈물이다·
지난날의 회한을 날려보내고 있음이다·
또한 제약에서 벗어나고 있는 와중이다·
월령자의 제약 따위가 아니다·
그동안 스스로가 걸어둔 자신의 제약을 부서뜨리고 있는 순간이다·
껍질이 깨지는가·
웃음소리가 조금씩 바뀌어간다·
억눌린 듯하던 것이 점차 가벼워졌고 급기야 통쾌함이 깃들어갔다·
이제 다 되어가나 보다·
이윽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하하하하하하하 시발 아주 좆같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욕을 거하게 내뱉고는 이내 잠잠해졌다·
목령자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제야 후공은 몸을 일으켰다·
고고한 학이 좆같다면야·
후공이 일어나자 모두 따라 일어났다·
[주인님 어디로 가시게요?]
색관조가 날아와 어깨에 앉으며 물었다·
물은 건 색관조였지만 후공은 숲 너머 한 지점을 명확히 응시했다· 이내 저 멀리 숲의 어느 풀에게 말하듯 입을 열었다·
“진주언가로 간다·”
[이 사람은요?]
“알아서 하겠지·”
[네?]
모두 산을 내려갔다·
까르르르 색관조의 웃음소리도 빠르게 멀어져 갔다·
목령자는 그렇게 버려졌다·
의식을 잃은 채로 덩그런히 혼자 남겨졌다· 목령자 곁에는 모닥불만이 그를 돌보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닥불 앞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화령자였다·
화령자는 목령자가 깨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저 물끄러미 모닥불만을 바라봤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이십 년 전 방황하던 목령자 곁에 머물렀을 때처럼 이 밤도 목령자 곁을 지켜주었다·
목령자는 아침이 되어 깨어났다·
운신이 가능해졌다·
그는 곁에 천공단 대신 화령자가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곧 화령자의 말에 상황을 이해했다·
소식이 없자 찾아나섰다고 했다·
온 산과 마을을 다 뒤졌다고 말했다·
“···찾아 헤매던 중 지난 밤 사형의 웃음소리를 듣고 이 부근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상황을 몰라 잠시 은신하여 멀리서 지켜보는 중에 천산신녀가 알아차렸고 그도 저를 보았습니다·”
“그?”
“네 천화서고 대공자가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곤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저를 응시하며 진주언가로 가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연락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자인 듯하다며 화령자가 말을 맺은 후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흐음····”
목령자는 하나하나 있었던 일이며 알게 된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화령자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탄성을 터뜨렸다가 분노했다가 눈을 부릅떴다가 손에 땀을 쥐었다가 월령자의 청부에 이르러서는 차분한 눈에 진득하게 살기를 머금기도 했다· 결국 이야기가 끝나갈 쯤에는 크게 탄식을 토해냈다·
그런 후 하나의 진실과 마주했다·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처음부터 사형이 목표였던 거군요·”
“그렇지·”
목령자도 수긍했다·
돌이켜보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처음 염화평을 죽이고 도발한 것이 무극살부 부주를 처리하기 위함이라 여겼으나 전체를 돌아보니 그림이 전혀 다르다·
또 월령자의 만행을 밝히는 것도 목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 수고롭기만 할 뿐이다·
목적이 월령자를 끌어내리는 것이라면 애초에 말하는 새가 있고 무리 중에 중재자로 합당한 천산신녀와 산동악가 가주도 있으니 쉽게 갈 수 있는 문제였다·
정녕 그 지점들을 훌쩍 넘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말·
‘너의 짓이다·’
이 말을 되새길수록 최종 지점이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천공단의 빈정거림은 달리 생각해보면 충고·
제약에 대해서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제약이 풀릴 시기를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싶다·
하지만 그가 왜? 누구길래?
“그는 누굴까요? 우리를 알고 있는 자일까요?”
화령자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모든 상황은 철저히 의도되었고 정신없이 휘둘리다 깨어나보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모르겠다· 누구인지· 왜 그런 것인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
“어린놈이 아주 안하무인에 개자식이라는 것· 건방지기 짝이 없다·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지 멋대로고 말이다· 날 갖고 놀아버리다니 개놈의 새끼·”
“하하하하하 맞습니다·”
화령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형이 달라진 것이다·
“정녕 미친 새끼가 아니냐· 내 살다살다 그런 놈을 보게 될 줄 몰랐구나·”
죽었다가 살아나서 그런 것일까·
사형이 변했다·
사람이 규격이 사라진 듯 거침이 없다·
화령자는 그래서 웃음이 났다·
“그렇습니다· 그자는 미친 새끼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화령자의 뒷말을 목령자가 이어받았다·
“고마운 놈이다· 진심으로·”
“하하하하! 그것도 틀림없습니다·”
***
그런 사람이 있다·
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
보고 있기만 해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
지금도 그렇다·
보고 있으니 월령자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사형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헝클어진 머리 피로 얼룩진 옷· 얼굴도 며칠 새 수척해졌기에 월령자는 돌아온 목령자를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다·
“허허 장문인 어찌하여 우십니까· 노고라니요· 다 끝났습니다· 이 피도 어디 제가 흘린 피겠습니까·”
“알지요 알다마다요· 하지만 어찌 수고로움이 없었겠습니까·”
“장문인 그런 말 마십시오· 기다리는 이가 더 수고로울 때도 있는 법입니다·”
“이 장문인은 사형이 있어 너무 좋습니다· 사형을 보면 괜히 눈물이 나려 합니다·”
“허허····”
월령자는 울면서 웃었다·
이 사람이 너무 좋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이유는 알고 있다·
병신 같기에·
이 머저리는 언제나 이런 식인 것이다·
내가 죽였는데 내가 가족을 몰살하라고 청부했는데 무한한 신뢰를 보내온다· 늘 따뜻한 시선을 보내온다· 그뿐인가· 가서 싸우라면 싸우고 입을 닥치고 있으라면 닥치고 움직이지 말라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기르는 개 같다·
그러니 좋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너무 좋아서 그렇게 되고 만다·
“사형 고생하셨습니다· 정녕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어서 돌아가 쉬십시오·”
*그 시각·
화령자는 장로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말을 마쳤을 때 여섯 장로들은 충격에 휩싸여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화령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밤 월령자를 끌어낸다· 그의 죄를 묻고 그를 죽일 것이다· 너희 중에 뜻을 따르지 않는자가 있다면 오늘 밤 월령자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화령자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백광이 맺혀가더니 이내 하얀 구슬이 되었다· 하얀 구슬은 손바닥 위에 둥실 떠올라 다시 일곱 개의 작은 구슬이 되었다·
떠 있는 채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장로들 중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다·
소요관환·
일곱 구슬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주검뿐·
그렇기에 장로들의 안색은 일순 굳어졌다·
화령자는 차분한 어조로 덧붙였다·
“너희만이 아니다· 사형과 나는 소요파를 멸문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존속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없앤다·”
추령자가 눈을 빛내며 나섰다·
목소리가 컸다·
“사형 왜 그렇게 서운하게 말씀하십니까· 전대 장문인이셨던 사숙께서 누굴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이 자리에 누가 있습니까· 또한 본문에 두 분 사형을 존경하지 않는 이는 또 누구입니까· 저희가 사람의 도리조차 모르는 사람입니까· 월령자의 일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짓입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맡겨주십시오·”
소요관환을 거둔 화령자가 미소 지었다·
“좋다· 기대하마·”
여섯 장로는 곧바로 물러났다·
**
잠시 후·
추령자는 월령자 곁에 있었다·
“장문인 일이 잘못되었습니다· 목령자와 화령자가 현혹되어 돌아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장문인을 모함하며 이 밤 끌어내린다고 합니다· 심지어····”
추령자의 말이 끝났을 때 월령자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내가 무극살부 부주에게 살인 청부를 하였다?”
“확실히 그리 믿고 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단단히 미쳤습니다·”
“후후 의외군· 아까 대면했던 모습은 그럼 연기인가? 그랬던 것인가?”
월령자가 여유롭게 웃었다·
왼쪽 손목의 장문영부 소요환을 어루만졌다·
“현혹은 멈출 것이다· 소요파는 그들에게 있어 전부다· 소요환이 떠올라 빛나면 그것이 곧 소요의 법· 이번에는 아무래도 두 사람에게 더 큰 제약을 가하여야겠구나·”
“물론입니다· 오직 장문인께서만 장문영부로만 그들을 멈출 수 있습니다·”
“소요의 모든 제자를 한자리에 불러모으라·”
“서두르겠습니다·”
···그 밤·
두웅 두웅 두우웅·
멀리 퍼져나가는 종소리 속에 소요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연단이 신속하게 마련되었다·
그 위로 장문인의 보좌가 놓였다·
앞쪽으로 수뇌부와 각주 대주들이 도열했고 그 뒤로 천여 명에 달하는 소요의 제자들이 좌우로 끝도 없이 늘어섰다·
그럼에도 고요했다·
누구 할 것 없이 진중한 표정이며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어느 누구 하나 듣지 못한 이가 없다·
그 가운데 월령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목령자 화령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내 목령자와 화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로 나뉜 대열 속 비어둔 중앙의 길이 통로가 되었다· 목령자와 화령자는 먼 끝자락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왔다·
앞서 걷는 목령자와 화령자 주위로 다섯 검수가 에워싸듯 그 옆과 뒤를 따른다· 목령자와 화령자는 월령자 앞쪽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월령자가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은 광오한 말을 하였더군· 너희는 소요의 율법을 잊었느냐? 그래 잊었다면 다시 들어보라!”
월령자가 좌수를 들어 장문심법을 운용하니 손목에 휘감긴 소요환이 녹색 빛을 발하며 원반 형태로 떠올랐다·
월령자 곁에 선 추령자가 크게 외쳤다·
“소요의 제자들은 들어라· 소요의 율법은 무엇인가!”
모두 외쳤다·
“소요의 길은 변치 않으며 소요는 영원하다!”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이니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어졌다·
“소요의 도는 천변만화이나 소요의 마음은 오직 하나의 길· 소요환이 떠올라 빛나면 그것이 곧 소요의 법도이다!”
다시 찾아든 정적·
월령자는 흡족히 여겼고 이내 근엄히 명했다·
“소요의 제자들은 소요의 장문인 앞에 모두 무릎 꿇으라·”
처억 척!
천여 명에 이르는 이가 일제히 무릎 꿇었다·
당연하게도 월령자 곁 추령자도 그리하였고 화령자조차 몸을 낮춰 두 무릎을 땅에 댄 채 경의를 표했다· 그 곁에 서 있던 다섯 검수도 무릎 꿇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목령자만이 서 있었다·
그는 무릎 꿇지 않았다·
아니 꿇을 필요가 없었다·
소요의 모든 제자가 그를 향하고 있음이다· 그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음이다· 그는 그저 경의를 표하는 이들을 지그시 둘러볼 뿐이다·
“무··· 무슨···· 왜 모두가···?”
월령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월령자의 당혹에 찬 목소리는 소요파의 제자들의 외침에 이내 묻혔다·
“소요는!”
천지가 진동하는 외침·
“지난 과오를 되돌린다!”
땅이 흔들려간다·
“소요는 이십 년 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선다· 소요를 능욕한 월령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며 소요는 원래 맞이하였어야 할 장문인을 오늘 맞이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너 너희는 이 장문영부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월령자가 뛰쳐나와 소리쳤다·
하지만 모두는 그저 목령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릴 뿐·
월령자는 모른다·
간과했다·
목령자에게 소요파가 전부이듯
소요파에게도 목령자가 전부와 같음을·
이 밤·
얼마나 많은 전음이 오갔는지 모른다·
소요의 제자들은 놀랐고 탄식했다·
살아온 바가 있다·
드러내보인 바가 있다·
모두가 존경해마지 않는 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침묵을 깨고 말을 하였기에 그가 힘을 사용하기로 하였음을 들었기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월령자는 미칠 듯이 왼손을 휘저어대며 소요환을 내보였다·
“이 이걸 보아라! 내가 내가 소요파의 장문인이다! 이것이 법도이며 내가 곧 소요의 법이다!”
월령자는 다섯 개의 칼날이 쇄도해 그의 몸을 뚫고 지날 때까지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소요파는 전서매를 날렸다·
진주언가로 향해 날아가는 전서매를 바라보며 목령자가 미소를 머금었다·
‘저 새는 도착하면 말하는 새를 만나게 되리라·’
끝냈기에
목령자는 연락을 취했다·
고마움을 실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