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마치 살인청부처럼·
진주언가를 나섰다·
목적지는 섬서 북동쪽에 위치한 장북산·
무극살부의 본거지였다·
“보물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있을 겁니다·”
천산신녀의 말에 후공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보물은 있다·
그저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일 뿐·
상황이 일방적인 탓이다·
이쪽은 보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무극살부 부주는 절박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후공은 천산신녀에게만 권한 것이 아니라 목령자며 산동악가 가주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하여 동행 중·
단주가 장담하니 천공단도 기대에 부풀었다·
있다면 있는 거다· 의심은 쓸데없는 짓· 또 설령 없으면 어떠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천공단은 신형을 쏘아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없었다·
언교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교운은 한참이나 뒤처졌다·
“헉헉····”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신입인 탓에 무극살부 부주를 업고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헉헉···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잖아· 아니 돌아가면서 업으면 얼마나 좋아· 하아 내가 이러려고 천공단에 들어온 게 아닌데 돌겠네·”
지난 밤 단주의 말이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그저 불만에 찬 청년이 있을 뿐· 이미 얼마나 앞서갔는지 천공단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흐흐 요놈 봐라·’
그런 언교운의 불만은 당연하게도 무극살부 부주에겐 한줄기 희망이 되었다·
부주가 처연히 말했다·
“언 공자 미안하네·”
“당신이 미안할 건 아닙니다·”
“내가 어찌 미안하지 않겠나·”
“하아··· 솔직히 당신의 덩치가 커서 힘들긴 힘듭니다·”
“허허허··· 미안하네· 미안해·”
도착하여 보물을 확인하고 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부주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반반이다·
그렇기에 그 전에 기회가 온다면 잡아야 했다·
“언 공자 조금 쉬어가는 건 어떤가· 기운을 회복한 다음 힘을 내서 달리는 게 나을 것 같네만·”
“당신은 지금 내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언교운이 콧방귀를 뀌며 일축했다·
그러곤 보란 듯이 더 빨리 신형을 날렸다· 그것이 무리가 되었나보다· 언교운은 얼마 못 가서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만 구덩이에 빠져 뒹굴고 말았다·
“하아···· 씨ㅂ 되는 게 없네·”
“그러게 내가 쉬어가자고 말하지 않았나·”
둘은 구덩이에서 숨을 골랐다·
언교운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지만 부주는 처음부터 마혈이 점혈되어 있던 터라 넘어진 그대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운도 좋군요· 소요파에서도 살아남고 다시 천공단주 앞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말입니다·”
“허허····”
부주가 웃음을 머금었다·
그 와중 미묘한 변화도 알아차렸다·
호칭이 변했다· 두목에서 천공단주로·
이는 불만의 표출·
“자네 말대로 운이 좋은 듯하네· 심지어 이 노부는 언 공자 자네의 등에 업혀가는 행운까지 누리고 있으니 말일세·”
“어쩌면 운이 아니라 당신의 재주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나 말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하하 칭찬으로 받겠네·”
부주가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언 공자···· 이리 해보는 건 어떤가?”
“···?”
“천공단주가 이미 날 살려주기로 약속한 마당이네· 자네가 굳이 힘들게 날 업고 갈 이유가 없다 싶군· 나도 업혀가는 것이 미안하니 혈도를 풀어주면 어떤가· 같이 달려가면 서로 편하고 좋지 않나·”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요· 당신은 저를 바보로 여기는 겁니까?”
“흐음··· 날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
부주는 더는 권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둘 사이에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언교운이 부주를 힐끔거렸다·
부주는 하늘로 시선을 두고 있으면서도 언교운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애송이 녀석·’
산전수전 다 겪은 그다· 언교운 따위는 차려놓은 밥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애송이는 곱게 자란 순둥이· 스스로는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막상 힘든 일이 닥치면 못 견뎌한다·
게다가 눈에 안 보이는 천공단을 향해선 불만을 표하면서 눈앞에 있는 자신에겐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것만 봐도 심약함을 엿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당신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난 이미 모든 걸 내려놓았네· 나 혼자 살아남은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산야에 묻혀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게 내 유일한 바람일세·”
삶의 허무함이 진하게 배어나는 목소리였다·
언교운이 공감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언교운이 다가가 해혈하기 시작했다·
부주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희열이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혈도가 풀리는 순간 죽여버린다· 그리고 도주다·
하지만
“부주 이상합니다· 해혈이 안 됩니다·”
“하하 그럴 리가· 장난 말게· 진주언가의 후계인 자네가 해혈을 못 해내다니·”
“다시 해보겠습니다·”
언교운이 다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안 됩니다·”
“안 된다고?”
부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다·
“자네 그리 안 봤는데 너무하는군· 사람을 가지고 놀면 재밌나?”
“갖고 놀다니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천공단주의 점혈법이 기이해 본가의 해혈법이 안 통하는 걸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부주 당신도 그가 뛰어난 자란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언교운이 쌍심지를 돋웠다·
기세가 험악했기에 부주는 얼른 안색을 풀었다·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였다·
“미안하네· 내가 오해했네·”
“오해라고? 시발놈이 말을 함부로 하고 오해?”
언교운이 눈을 악독하게 떴다·
욕설까지 내뱉을 줄은 몰랐던 터라 부주는 잠시 멍해졌다·
‘고작 이런 놈이었나?’
비난을 못 참는 성격이 있다·
뭐든 다 받아주는 환경에서 자란 놈들이 그렇다·
자존심만 세다·
하지만 부주는 이런 놈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오해일세· 자네의 재주가 하찮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내 깜박했지 뭔가· 천공단이라고 모두가 뛰어난 건 아닐 텐데 다 같다고 생각했으니 내가 미안하네·”
“뭐 뭐가 어째?”
언교운이 분노를 감추기 어려운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부주가 껄껄 웃었다·
“하하! 이러다 날 죽이겠군· 그리하면 천공단주가 참 좋아하겠군· 안 그런가? 어디 기분대로 손을 써보게·”
언교운이 주춤했다·
갈등하는 듯하더니 공손히 머리를 숙인다·
“제 언행이··· 경솔했습니다·”
천공단주가 무섭긴 한 모양·
부주는 내심 혀를 찼다·
하지만 이쯤하기로 했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했고 해혈을 못하는 것이야 아쉽지만 능력 부족이니 탓할 수 없었다· 다른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괜찮네· 나도 말이 심했으니 사과함세· 나야 업혀 가면 편하고 좋지·”
언교운이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부주를 등에 업었다·
그러면서 말한다·
“방금 나눈 대화는 단주께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성격이 드러나니 꼴사납긴 했지·”
“부탁드립니다·”
부주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다·
“생각해 보겠네·”
걸음을 떼려다 말고 언교운의 몸이 굳었다·
부주가 미간을 좁혔다·
“어허 또 왜 그러나?”
“당신 말이 웃기잖아·”
“그래서 안 가겠다는 건가?”
“그건 아니야·”
“그럼 가세·”
“생각 좀 하고·”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겐가!”
부주가 역정을 냈다·
“생각 다 했다·”
“그래서?”
“안 가·”
“응?”
“안 간다고· 시발놈아!”
그러면서 바로 내동댕이쳐버렸기에 부주는 땅에 나뒹굴었다· 부주는 당혹스러움에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거 뭐하는 새끼야?’
“자네 보기와 달리 정말 성격 있구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참인가? 날 여기 버려두고 진주언가로 돌아가겠다는 건가? 천공단주가 알면 무사할 것 같나?”
“끄응····”
언교운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모습이다·
그러다
“제가···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후우··· 다시는 이러지 말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언교운이 정중히 머리를 숙였기에 부주는 이내 흐뭇해졌다· 감춰진 성격이 고약하긴 해도 아주 막돼먹은 놈까진 아니다 싶었다·
그때
언교운이 고개를 들었다·
눈은 어째서인지 다시 악독해져 있었다·
“근데 너 아까 뭐라고 했지?”
“···?”
부주는 다시 멍해지고 말았다·
“방금까지 죄송하다고 해놓고 왜 또 그러는 건가?”
“무사할 것 같냐니? 말이 심하잖아· 시발놈이 날 겁줘?”
그러면서 언교운이 몸을 일으켜 검을 빼들었다· 검 끝이 복부에 닿았기에 부주는 사색이 되었다·
“내가 미 미안하네· 실언했네·”
“확실해?”
“물론이네·”
“좋아·”
“자 진정하게· 진정하고 가던 길 가세· 이 늙은이가 주책이었네· 내가 잘못했어·”
“젠장 엉망진창이네· 원래 이러려던 게 아닌데·”
언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거린다·
그럼에도 이제 부주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이랬다저랬다 완전 미친놈인 것이다· 그래 분위기를 전환하자· 기분도 풀어줄 겸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뭘 풀죽어 있나· 이러면서 사람을 알아가는 거지·”
“근데 말이야·”
“어···?”
“웃음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니냐?”
“그게 무슨?”
“비웃는 것 같잖아·”
“아니네· 그럴 리 없잖는가·”
“확실해?”
“물론이네· 내가 왜 비웃는단 말인가·”
“흐음 내가 예민했나 보네· 미안하다· 기분이 지금 뒤죽박죽이라·”
언교운이 검을 아래로 향하며 예를 취했다·
그 모습이 사뭇 정중했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반말이라서 부주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젠 웃는 것도 쉽지 않다·
“훌륭한 가문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법인데 자넬 보니 알겠네·”
그저 아부했다·
하지만 언교운의 고개가 삐닥해졌다·
“근데 아까는?”
“···!”
꿀꺽·
부주가 다시 긴장했다·
“아까는 왜 그랬냐! 재주가 보잘 것 없다며?”
“그 그 말은 내가 이미 미안하다고····”
“이 새끼야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
“····”
부주는 동공만 흔들어댔다·
그 모습이 또 안타까워 보였던 걸까·
언교인이 고개를 저어댄다·
“당신 말이 맞아· 화가 나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
이제 부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도 조심히 쉬었다· 크게 쉬면 그걸로 트집을 잡을 놈이었다· 그저 어서 빨리 천공단과 합류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교운의 안색이 또 안 좋아졌다·
“당신 생각은 어때?”
“뭘··· 뭘 말인가?”
“천공단이 날 함부로 대하는 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배려해주지 않는 점 말이야·”
“잘못되었다 생각하네·”
“그렇지?”
“당연하네·”
“후우··· 난 또 내가 이상한 줄 알았어·”
“결코 이상하지 않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것이네·”
“맞아· 위안이 되는군·”
“아무렴·”
“아무렴이라고?”
언교운이 쏘아봤기에 부주의 심장은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이 새끼 또 왜 이래?
“감히 내 앞에서 아는 척을 해?”
“···?”
“살수 우두머리 따위가?”
순간
푸욱!
뭔가가 몸을 파고들었다· 부주가 눈동자를 내려 자신의 복부 쪽을 내려다봤다· 검이 틀어박혔다·
“이 이게 무슨····”
부주는 눈을 부릅뜨고 언교운을 바라봤다·
언교운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저질러버렸네· 그래도 이걸로는 죽지 않아· 아직 희망은 있어·”
“····”
“놀랐지?”
진심 놀랐다· 이런 미치광이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건 물론이고 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자신을 죽인단 말인가·
“근데 이렇게 하면 죽어·”
검이 뽑혔다가 이내 다시 파고들었다·
이번엔 심장이었다·
부주는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너··· 네놈 이 사실을 천공단주가 아는 날엔 널····”
“칭찬하겠지·”
“그 그게··· 무슨?”
“하하하하하하!”
언교운이 한참이나 웃다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겠냐? 이 구덩이를 누가 팠을 것 같아?”
“····”
‘설마 내 무덤?’
천공단주의 지시였다고?
머리를 강타당한 듯 부주는 멍해지고 말았다·
‘정녕?’
그때 하늘을 날던 붉은 새가 내려와 언교운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언교운이 다정하게 물었다·
“두목은?”
[주인님이랑은 다들 계곡에 계셔· 얼른 묻고 가자·]
말하는 새·
구덩이는 무덤이 맞았다·
그렇게 경악에 차 있는 부주를 언교운이 거만하게 내려다봤다·
“당혹스러운 죽음 믿기지 않는 죽음의 선사· 마치 살인청부처럼·”
“·······”
“부주 기분이 어때?”
언교운이 히죽 웃었다·
제법이었다·
*후공은 승곡을 경유했다·
소요파를 방문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대운루 루주를 만났다·
이번 일에는 하오문의 공로도 컸기에 함께 가자고 청하여 동행에 추가시켰다·
하오문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후공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