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교릉에 당할 후보자
경탄스러우면서도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왜 하필이면 이란 생각이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육각망의 냄새만으로도 당장 입이 썩을 것 같고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육각망과 나란히 하는 풀과 벌레라니·
그렇지만 또 그 막대한 효능을 알게 되니 그저 흘려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경지를 회복함에 있어 기한을 단축시킬 수만 있다면 그깟 악취가 문제인가· 다만 나머지 두 개를 구할 수 있는지가 염려될 뿐이다·
바로 윤을 불렀다·
도망쳤던 윤이 어디 지옥에라도 끌려온 것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들어왔다· 후공은 육각망의 껍질을 건넸다·
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형님 제가 뭔가 크게 잘못했습니까?”
“아니·”
“그런데 왜 저에게 굳이 이걸 버리라고 하시는지요·”
송화를 부르시지 라는 뒷말이 흐릿하게 흘러나왔다·
억하심정이 없이는 이럴 수 없다 싶은 것이다· 육각망이 피를 빨려죽으면서 오전 때보다 더 심한 악취가 천화서고를 휘돌고 있고 그중에서도 이곳이 제일 냄새가 심했다· 그런데 악취 덩이인 껍질을 버리라는 건 거의 원한을 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무슨 소리냐! 이 귀한 걸 왜 버려!”
“네?”
“이 육각망의 껍질을 정성껏 햇빛에 4일 그늘에 7일 동안 말리도록 해라· 그 후 수십 등분으로 잘게 나누어 비고에 보관해두어라· 고서에 기록되길 몸살이 날 때나 기가 허해졌을 때 이보다 더 좋은 특효약이 없다고 했다· 무공을 익힌 자가 일시적으로 기운이 쇠할 때도 빠르게 기운을 북돋는 효력이 있다· 또 독상을 입었을 때 복용하면 독을 중화시키고 몸에 상처가 난 자리에도 껍질을 물에 짓이겨 펴바르면 금세 아물고 상처 자국도 온데간데없어진다고 했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느냐·”
“···네·”
이는 모두 범항의 기억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었다· 참으로 온갖 것을 연구하고 탐구한 녀석답게 구구절절 육각망에 대한 것조차 지식이 넘쳐났다·
윤은 울상이었다·
그 정도 효능이라면 다른 대체제가 널렸는데 이걸 꼭 말려야하냐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우거지상으로 검은 포대기에 껍질을 담아 봉하는 것을 보며 후공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고에 들렀다가 나올 때 오 일 분량의 벽곡단을 가져오너라·”
“벽곡단은 어디에 쓰실는지요?”
“고서에 이르길 육각망의 효과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는 약효가 스며들 때까지 음식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약효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되어 있다· 최소 닷새는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거라·”
“네·”
방금 말은 지어낸 것이었다·
그저 후공으로선 육각망의 녹혈이 몸에 잘 깃들 수 있게 운기행공에 몰두하고 싶을 뿐이었다·
윤이 나간 뒤 송화를 찾았다·
코와 입을 겹겹이 천으로 감싼 채 들어온 송화에게도 닷새 동안 왕래를 자제하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거기에 한 가지 지시를 추가했다·
“내 지금 몸의 악취가 심하니 할아버지께는 네가 대신 말씀드리거라· 그리고 내가 무엇을 구해 달라 청하라 했지?”
“영악초와 독양충입니다·”
“오냐 할아버지께 그리 말씀드리면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실 게다· 그만 가 보거라·”
가주 또한 고서의 기록을 알 터·
바로 송화의 대답이 들렸다 싶은 순간 후공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송화가 바람을 일으키며 휭하니 사라져버린 것이다·
“····”
다들 빨라도 너무 빠르다·
***
5일째를 맞은 처소·
번쩍·
가부좌를 틀고 좌정하고 있던 후공이 눈을 뜨자 두 눈에서 신광이 번뜩였다·
‘2성에 이르렀구나·’
악취를 견뎌낸 보람이 있었다· 육각망의 공능으로 과거 4년여에 걸쳐 이룬 성취를 단번에 이루게 된 것이다· 물론 이미 지나온 길이고 무학의 깨달음과 지고한 의식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안력을 돋아 저만치 벽면을 바라보았다· 벽에 수놓아진 세밀한 무늬가 확장되어 낱낱이 드러나고 벽에 파인 흠 안에 깃들어있는 먼지의 형태까지 볼 수 있었다·
청력도 높아져 바깥의 동태도 눈에 선했다·
전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곤거리는 대화까지 선명히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윤과 부몽이 대화중이었다·
“형님 배가 너무 고파 뱃가죽이 등에 붙었습니다· 뭐라도 먹으면 안 될까요?”
“부몽 누가 네게 밥을 먹지 말라고 했느냐?”
“그건 아니지만 큰형님께서 벽곡단만 드신다고 형님까지 따라 그러시니 저 혼자 어떻게 식사를 할 수 있나요·”
“그럼 조금만 참아라· 오늘이 닷새째니까·”
‘허허 아니 이런 미련한 놈들을 봤나·’
후공은 어처구니가 없어 내심 너털거리고 말았다· 육각망은 자신이 먹었는데 복용도 안 한 두 놈이 왜 따라서 벽곡단만으로 버티고 있는 건지·
말년에 새로 생긴 아우 놈들은 어찌된 게 볼수록 엉뚱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안광에 이는 신광을 갈무리한 후 거울을 찾아 전신을 비췄다· 먼저 보인 건 검게 물든 흰옷이었다·
5일 내내 검은 물이 전신 모공에서 흘러나와 매번 흰옷이 검게 물들었다· 기억의 전이로 정기신의 합일을 이룬 때로부터 더 나아가 혈관과 내부 장기들에 내재된 독소와 노폐물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탓에 물이 든 것이다·
신체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정갈해졌다· 몸은 가벼워지고 정신도 맑아졌으며 피부도 더욱 윤택해졌다·
‘신기하단 말이지·’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이십 대 청년·
제법 키가 있고 외모는 반듯하다·
언제까지나 낯설 것 같았는데 이제 이 모습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물론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은 너무 마른 편이다·
매일 잘 먹었음에도 시작점이 해골이었던 탓에 통통해지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누군가는 군살 없이 어찌 이리 몸을 관리했느냐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후공은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손도 통통한 맛이 없다· 곱기만 한 것이 별로다·
장력을 뻗어낼 때 손이 두툼하면 얼마나 매력적인지····
“크흠·”
시험해 볼 대상이 있다면 좋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떨쳐냈다· 모두 놀라워하면서도 의문에 사로잡힐 건 뻔한 일·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걸 일일이 해명하는 것이 귀찮았다·
시험해 볼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성취를 확인하는 데는 ‘교릉’만 한 것이 없다·
즉시 교릉의 심결을 되뇌며 운용했다·
‘우선 오른팔만 해보자·’
– 두드득·
뼈마디 소리가 터지고 오른팔이 틀어지면서 줄어들었다·
두둑 두드득·
뼈가 굴절되고 피부가 접히고 말려 이내 팔 길이가 원래의 삼분의 이 정도로 축소되었다· 곱던 손도 우그러들어 모양은 흉측하면서도 아이 손만큼이나 작아졌다·
통증은 전무했다·
뼈를 축소하는 축골공은 신체를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척도였다· 이는 뼈뿐만 아니라 혈도와 경맥 피부 복원까지 복합적인 요소가 모두 감안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축골공의 일종인 교릉은 본시 작은 바위틈이나 비좁은 곳으로 들어갈 때 유용하다 싶지만 그는 이제껏 그런 용도로는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비좁으면 부숴서 넓히면 되는 것이지 그걸 왜 몸을 구겨 들어간단 말인가· 실제로 교릉의 활용 또한 어딜 통과하기 위함에 있지 않았다·
교릉은 타인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더 크다·
– 두드득 뚜둑·
오른팔이 다시 요란한 뼈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속도가 느릿느릿한 것이 2성 수준다웠다·
‘그러고 보니 어찌 지내려나·’
축골을 한 탓인지 후공은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라 웃고 말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천진난만하던 이·
밀교의 파골법사·
기괴함으로 따지자면 이 천하에 밀교만 한 곳이 있을까·
7년 전쯤이었다·
당시 파골법사는 새로운 술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대체 어떤 술법이냐고 묻자 대답이 놀라웠다· 신체를 순간적으로 연기로 화해 창틀이나 문의 조그만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환술 종류라는 것·
– 맹주 이건 축골공 같은 류와는 차원을 달리하지요· 신선의 술법과 비견할 만하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떤 곳에 갇히더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파골법사는 순진무구하게 눈을 반짝거렸다·
파골법사가 의기양양 ‘맹주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당시 후공은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파골이 왜 의아해하느냐고 묻자 후공은 갸웃거리며 답했다·
– 법사 꼭 갇혀야 하오? 갇히기 전에 다 죽여버리면 되지 않소?
파골은 멍하니 쳐다보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는 이내 침울해졌다· 쉬운 방법을 알려줬음에도 파골법사는 아마 지금까지 연구 중일 것이리라· 밀교의 무수한 법사들도 추구하는 방향이 파골법사와 고만고만했다·
***
그로부터 이틀·
천화서고 호위대의 수장이 송화를 불렀다·
벽력수(霹靂手) 천규인으로 그는 총관과 함께 있던 자였다·
송화가 나아가 공손히 예를 갖췄다·
“대주님 부르셨습니까?”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내 너를 부른 건 최근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대공자께서 과거와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는 있으나 난 그 변화가 워낙 급작스러운 점이 마음에 걸린다·”
송화가 놀라 눈이 커졌다·
“대주님께선 아직 공자님이 염려되시는지요?”
“아니라고 믿고 싶다만 모두가 마음을 놓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 호위대만은 결코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네·”
송화는 듣고 보니 갑자기 불안해져 심장이 마구 뛰었다·
최근 들어 지나치게 안심하고 마음을 놓고 있기도 한 것이다· 벽곡단만으로 지내시며 명상 중일 때도 고작 한두 번 확인하는 정도였다·
“어느 순간 마음을 놓고 있었습니다· 경계를 강화하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송화가 예를 취하며 물러났다·
송화의 기척이 사라지는 걸 확인한 벽력수의 눈이 가늘어지고 음산한 빛을 띠었다·
‘후후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다만···· 만약 이 모든 것을 대공자가 꾸며내 연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대공자는 도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체력단련 정도는 최근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외출한 것도 놀라운데 이후 안휘의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들과 교류했고 근자엔 육각망의 피를 복용하기까지·
가주가 기뻐하고 모두 기대하는 이때 대공자가 자결한다면 그 충격과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천화서고의 파멸이겠지·’
호위대주 천교인의 뇌리로 총관과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 대공자의 지독함은 말로 할 수 없지요· 허허 세상 모두가 바뀐다 해도 대공자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공자를 지지하는 입장이지요·
– 현재의 변화조차 대공자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대공자는 그런 사람이지요·
‘어쩌면 연기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총관이 도착하는 날이 곧 다가온다·
그 전에 끝내야겠지·
벽력수 천규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