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검성을 조각내다
의문이 중요한가·
후공은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고 속도를 올렸다·
콰콰콰콰····
음험한 기운이 점점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멀리서 광소와 함께 검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소림의 백팔나한을 도륙했거늘 고작 십객 중 너희 둘이 날 막아서겠다는 것이냐!”
십객은 천하십객을 칭하는 말이었다·
무림맹 열 개의 기둥이라 불리는 이들·
그들의 무위는 구대문파 장문인 수준을 상회한다· 각각의 역량만으로도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을 만한 존재들이었다·
“검성 정신 차리시오! 천하제일인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강호에 당신을 흠모하는 이가 넘치거늘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단 말이오!”
“그래 맞다· 나는 겸손하고 자애로운 자·”
“당신의 인품은 천하제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거늘 어찌 이리되었단 말입니까!”
청우자가 울부짖었다·
남아 있는 건 네 사람뿐이다·
십객인 청우자와 소향객·
그리고 소림장문인 릉인과 그의 사제 릉참·
주변에는 백팔나한진을 펼쳤던 소림승들이 처참하게 찢겨나가 온통 피와 살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검성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맞다· 맞는 말이다· 나는··· 겸손하지· 겸손하고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고 겸손하고 겸손하고오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이곳에 서 있는 건 검성이었지만 또 검성은 없었다·
광기에 젖은 미치광이가 있을 뿐·
그의 모습도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그를 뒤덮고 있었다·
연기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형태였다·
연기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매서운 눈과 웃고 있는 하얀 이가 아니라면 우연히 연기가 사람 형상처럼 보이는 거라고 생각할 모습이었다·
“그 볼품없고 뚱뚱한 후공은 멋대로지· 천하제일인이라 칭송받으면서 모두를 내려다볼 뿐이다· 얼마나 기고만장한가· 놈은 나를 추켜세우면서도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을 테지· 한 줌도 안 되는 자가 검성이라니 우습군 하고 말이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난 겸허해야 하지· 겸허하게 있어야만 하지· 흐흐흐 난 겸허한 자니까· 그래서 언제까지나 겸허하고 겸허하고 겸허하고 겸허하고 겸손한 자여야만 하지·”
검성의 광기가 점점 더 난폭해졌다·
“누군가는 말한다· 내가 그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니 겸허한 척한다고· 과연 그러한가! 나의 자질이 재능이 근골이 무골이 지식이 내 지혜가 내 예법이 그보다 그보다 그보다 그보다 그놈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나 검성은 돼지 놈을 무릎 꿇리고 겸손함을 가르치리라· 후공 돼지 돼지 놈 돼지 새끼· 크하하하하!”
“····”
“····”
“····”
“····”
남은 네 사람은 검성의 광기에 질려버려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 내가 천하제일인이다! 내가 천하제일검이다! 천하제일인이 된 내 앞에 모두가 머리 조아리고 존경을 보여야 한다· 경배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돼지놈을 뛰어넘으려 뼈를 깎아온 이를 갈아온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감내해 온 치열한 나날을 보내온 인내의 인내의 인내의 인내의 결실인 나를 경배해야 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나무관세음보살··· 검성 지금 당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오· 어찌 이리 미쳤단 말입니까!”
소림방장 릉인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얼빠진 중놈! 토끼처럼 채소나 뜯는 주제에 내가 미쳐? 내가 미쳐어? 내가? 내에에에가! 크하하하하!”
검성의 광소에 따라 검은 연기가 격렬히 춤췄다·
“이제 내가 내가 내가 천하제일인이다· 누구도 날 막을 수 없다· 누구도 내 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무엇이든 파괴할 거대한 힘이 내 안에서 용솟음치고 있으니·”
검성의 기세가 들끓어 칼날처럼 뻗쳐올랐다· 폭풍처럼 검은 연기가 소림 방장 릉인을 포함한 네 사람에게 뻗어 나갔다·
‘끝이다·’
절망이 네 사람의 얼굴에 드리웠다·
피할 수도 피할 엄두도 나지 않는 어느 신병보다 더 가공할 위력을 담은 흑무였다·
바로 그때였다·
콰광!
자줏빛 광채가 검은 연기에 직격했다·
광채는 연기를 휘감아가면서 가뒀다· 회오리처럼 빙글거리면서 완전히 봉쇄해가니 그 안에서 연기가 소멸해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두 광채가 본체인 검성에게 쏟아져내리니 안개 형상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악!”
찬연한 빛이 뿜어지고 이내 가라앉았을 때는 더 이상 검게 타오르는 연기는 없었다·
대신 그곳엔 낭패한 몰골의 노인이 서 있었다·
검성이었다·
그의 두 팔은 떨어져 나갔고 너덜거리는 살점 아래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가슴도 휑하니 뚫려 그 사이로 바람이 오갈 정도였다·
검성이 자신의 구멍 난 가슴을 내려다 봤다·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지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어억····”
선혈을 한 움큼 뿜어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몸 주변을 요란하게 휘감아 도는 자줏빛 광채 너머 창공에 신선처럼 한 사람이 떠 있었다·
검성이 중얼거렸다·
“후공····”
검성이 웃었다·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멋지군· 멋진 비무였어· 후후 난··· 어떻게 해도··· 그대에게··· 닿을 수 없나 보군·”
검성이 울컥 피를 게워내며 비틀거렸다·
“이리도··· 허망할 줄이야· 분명히···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는 거였어· 하지만 후공··· 그대도 영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보았거든· 그것이 내 망상인지··· 꿈인지··· 그대가 모든 걸 잃는 걸····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이 되는 그대를··· 그랬으면 좋겠소· 그것이 그대의 파멸이었으면····”
“말이 많군·”
탁!
후공이 손가락을 튕겼다·
스악!
자줏빛 검광이 검성을 향해 휘몰아쳤다· 번뜩이며 휘도니 검성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몸이 사분오열되었다· 검성은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이 조각나 흩어졌다·
그 순간 릉인이 무너져 내렸다·
소림 방장은 여태 겨우 버티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척·
한 줄기 빛으로 화한 후공이 어느샌가 릉인을 붙들었다·
릉인의 붉은 가사는 찢기고 안색은 먹물이 스며든 것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 후공이 그를 눕히고 정수리에 장심을 가져갔다·
곧 릉인의 정수리에서 검은 안개 덩이가 흘러나왔다·
안개 뭉치는 후공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듯 꿈틀거렸다·
화르르·
후공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일고 안개는 단번에 소멸되었다·
소림방장 릉인의 혈색이 서서히 돌아왔다·
“맹주 고맙소이다·”
“····”
후공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말이 진심일 리가·
백팔나한·
소림승들의 주검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그들의 혈향 속에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을 다행이라며 고맙게 여길 릉인이 아니었다·
릉인은 먼저 죽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후공이 시선을 돌렸다·
“청우자·”
“네 맹주!”
청우자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맹의 십객 중 일인·
“너의 명원결이면 되겠지· 검성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라·”
“존명!”
“소향객·”
“하명하십시오!”
“너는 바로 무당으로 가서 도움을 청하라·”
“존명!”
“나는 검성이 머물렀던 곳으로 다녀오겠다·”
후공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창공을 가로지르며 아득히 멀어져갔다·
천하십객과 소림의 릉인 릉참이 하늘을 우러러봤다·
***
그날로부터 반년 후·
새벽녘·
맹주의 처소·
팟!
열 평 남짓한 방에 백광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너무 순식간이라 거짓말 같았다·
침대 위 맹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순간
“허업!”
그가 격하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번쩍 떴다·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겨우 한 호흡을 쉰 듯 격정적이어서 이불이 크게 들썩였고 침대가 요동쳤다· 몸을 일으켜 몇 번인가 더 숨을 빠르게 내쉬고 나서야 안정을 찾았다·
맹주가 이불을 젖혀 몸을 움직이자 육중한 몸에 침대가 삐거덕거렸다·
“···꿈?”
맹주는 갸웃하고는 도톰히 살이 오른 오른손을 들어 바라보다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만져보았고 이어 얼굴을 매만졌고 가슴과 배를 만지던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동자에 짙은 의문이 떠올랐다·
‘하룻밤 사이에 내 몸이 뚱뚱해졌을 리 없다· 이 몸은 누구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방도 자신의 처소가 아니었다·
‘여긴 또 어디고?’
침대에서 둘러 본 방 안의 광경은 처음 낯설기 짝이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거닐었다·
왼쪽으로부터 도자기가 놓인 장식장을 쓰다듬고 벽면에 걸린 벽화를 보다가 오른쪽 벽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세 자루의 검이 걸려 있었다·
석 삼(三) 자 형태·
위로부터 중검 단검 장검의 순서였다·
검집과 검병(검의 손잡이)에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회오리 문양이 세 자루 모두 동일하게 새겨져 있었다·
벽 모서리 쪽에 자리한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거울 안에서 뚱뚱한 노인이 갸웃하고 있었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
“꿈은 아닌데· 설마 몸이 바뀐 건가? 아니 혼이 바뀐 것이라고 해야 하나· 기이하군···· 흥미롭고····”
맹주의 몸에 들어온 이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송화는 어디에 있느냐?”
대답은 없었다·
이제 그의 눈이 웃기 시작했다·
“송화는 오지 않는군· 아 올 수 없는 것이겠군· 만약 환혼이라면 도대체 누가··· 아니 이유 따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가 새롭게 얻은 거구의 몸을 이끌고 진열된 검 쪽으로 향했다· 가운데 자리한 단검을 집어 들었다·
검을 뽑자 자줏빛 광채가 번쩍였다가 은은해졌다·
“후후····”
그가 목에 단검을 가져갔다·
날 선 보검은 살짝 대었을 뿐인데 살을 파고들어 목에 피가 맺혔다· 순간 검이 광채를 발하며 웅웅거렸다·
그가 다독였다·
“울지 마라· 난 너의 주인이 아니다·”
검을 꽉 붙잡았다·
“소원을 이리 이룰 줄이야· 죽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가· 이대로····”
그는 검을 목에 박아넣었다·
푹!
“돌아오지 않길··· 영원히····”
꿰뚫린 목에서 피가 울컥대며 흘러나왔다· 그는 검이 꽂힌 채로 그대로 목의 오른쪽까지 그어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고 맹주의 몸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그의 머리맡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서서히 전신을 적셔갔다·
***
“꺄아아아악!”
아침 시간 맹주의 침실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맹주의 주검을 발견한 건 맹주의 방을 청소하던 전담 시녀였다·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듯 헐레벌떡 제갈혜에게 달려갔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뒤죽박죽 말하기 시작하니 십 대 후반 꽃다운 나이의 시녀는 머리만 풀어헤치지 않았을 뿐 영락없이 정신 나간 모습이었다·
“그만 그만!”
제갈혜는 손을 내저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추궁했다·
“잠을 못 잔 거냐? 아니면 어디가 아픈 것이냐?”
백부가 죽었다니· 그것도 처소에서·
세상에 이보다 황당한 말이 어디 있을까·
“아닙니다· 분명 제 눈으로····”
“됐다·”
제갈혜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도 시녀가 흐느끼면서 말하다가 결국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넌 오늘 하루 아무 일도 말고 쉬어라· 맹주께는 내가 가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