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확인, 그리고 확신·
모두가 전서를 확인했다·
그 결과 맹의 군사를 비롯 칠단주 구당주 십이대주 등은 조용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검증이 끝난 것이다·
흑전의 경매에 참여한 여러 부유한 가문들이 보내온 내용은 대동소이·
하나의 서신이었다면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서가 십여 통이 넘는다·
여러 전서는 각각의 시선에서 겪은 바를 풀어내고 있어 모든 전서를 읽고 나니 누구 할 것 없이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허어····’
‘이건 직접 겪지 않고는···’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내용들·
‘천공단을 활용해 지하 통로를 열고 들어갔다니···· 처음부터 천화서고 대공자는 모두를 구할 생각이었구나·’
천화서고 대공자를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그의 선한 의지를 확인했고 또 그가 얼마나 치밀한 자인지도 알게 되었다·
임기응변도 놀라웠다·
경매품으로 나온 보물 천년자패를 망설임 없이 즉석에서 활용한 것도 강호의 신예라고는 보기 힘든 대처였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치밀한 자일 뿐 아니라 무언가를 진행함에 거침이 없는 자·
그러니 전서에 담긴 의미는 검증 이상이었다·
가문들이 소리 높여 외친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자신들의 은인이라고·
그리고 각 가문들은 그런 사실이 온 천하에 알려지길 원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전서마다 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무림맹이 이 일을 모르게 되는 걸 걱정하는 마음이었고 그들의 은인 천화서고 대공자가 드높은 찬사를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모두가 알아주길
모두가 그의 진가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
요로선인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침묵이 이어져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이미 모두의 표정이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콜록 콜록··· 얼굴들이 가관도 아니로군· 콜록 콜록! 또 검증에 대해 떠들어 보지 그러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검증은 끝·
검증보다는 도리어 의아함만 떠오른다·
“천화서고 서생 말입니다· 정녕 기이한 사람입니다·”
감찰단주 철혈냉안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점이 기이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따라오는 건 동조의 말들·
“거참!”
“사람 이상하네· 그는 왜 전부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요?”
“점창파의 일은 솔직히 점창 장문인의 친서가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이 말재주가 없는 걸까요? 이야기를 모조리 축소해 들려주면 어쩌자는 건지 원·”
의아함은 오직 하나·
왜 천화서고의 천재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는가였다·
요로선인이 대공자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내용 그리하여 요로선인이 다시 들려준 이야기에는 빠진 내용이 수두룩했다·
점창 장문인의 딸이 납치된 것도 지천주의 아들을 납치해 교환하고 역공을 펼쳤던 내용들까지 서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보통은 이야기를 부풀리지 않나?
조금은 더 멋지게 더 돋보이게·
한데 천화서고 대공자는 이야기를 모두 빠뜨렸고 그저 운좋게 지천과 흑전을 상대했다는 식이었다·
대체 왜?
다들 투덜거렸지만 이유를 모를 순 없다·
그렇기에 알고 있기에 누구 할 것 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젠장·’
‘뭐하는 놈이야!’
‘짜증나는군·’
‘제깟 게 뭔데!’
‘고작 스무 살 언저리에 있는 서생 놈 따위가····’
그런 여러 짜증과 불평이 모두의 마음을 휘젓고 그런 불평의 끝에는 같은 한마디가 동일하게 마음을 울렸다·
‘···멋진 놈이잖아·’
***
회의 결과는 곧바로 후공에게 전해졌다·
‘신검은 되었는데····’
전한 이는 맹의 신임 군사인 모용곽·
모용세가의 자제이자 모용진의 친형이었다·
과거 맹의 안휘 지부장인 몽연몽으로부터 제갈혜의 후임으로 모용곽이 군사로 발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후공 입장에선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크흠····”
하지만 불편하다·
후공은 매우 불편했다·
“크흠····”
불편한 기색에 맞은편에 앉은 모용곽이 도리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뭐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삼십 대 초반인 모용곽은 자신이 나이가 한참 많음에도 특별히 기분 나쁜 말은 한 적이 없는 것 같음에도 스스로를 돌아봤다·
대공자가 신검을 회수한 과정이 경이로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천룡대전의 일을 아버지와 아우로부터 들었던 터·
그는 천룡대전 당시 남궁세가에 없었지만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기에 자신에게 있어 대공자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대공자가 없었다면 당시 참석했던 아버지 어머니 아우 그리고 모용세가의 여러 장로들과 가솔들도 영영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도 얼마나 많은 주의사항을 들었는지 모른다·
대공자를 만나면 집안의 어른을 대하듯 해라·
대공자를 만나면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모자라다·
향후 대공자가 무엇을 청하든 토 달지 말고 그리하겠다고 해라·
귀에 못이 박일 정도였다·
심지어 아우가 천공단의 일원이 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런 대공자이니
대공자의 심기가 불편하면 안된다·
이건 무림맹 문제가 아니라 집안 일이자 은인에 관한 일·
“선생··· 아니 대공자···· 어디 불편하신 일이라도···· 말씀 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늘 마음속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터라 하마터면 그리 말할 뻔한 모용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군사께서 잘못하신 건 없습니다·”
답은 그렇게 돌아왔어도 대공자의 안색이 풀리지 않았기에 모용곽은 그제야 퍼뜩 한 가지가 떠올랐다·
“혹시 지귀객의 처분 때문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맹이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닙니다· 맹의 뇌옥에 십 년을 투옥한다 이십 년을 투옥한다 여러 말이 나오고 있지만 제가 최대한 힘을 써 보겠습니다·”
그 짐작은 틀렸다·
후공은 지귀객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바깥 쪽이었다·
“일동 일배!”
밖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천공단이었다·
장소는 원래 자신이 머물던 맹주의 처소 그러니까 지금은 비어있는 무림맹주의 전각 앞에서 천공단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요란스럽게 나서는 소리가 들려 저것들이 또 뭘 하려고 저러나 귀를 기울였더니 제사·
후공으로선 보지 않고 있음에도 보이는 것 같은 상황·
과거 천잠육도가 초상화와 큰 상을 들고 다니며 찾아다니는 조문을 하는 자리에서도 열을 맞춰 절을 올리려고 했던 놈들이라 줄 똑바로 맞추라고 떠들더니 이미 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에휴··· 망할 놈들!”
살아있는데 저승에선 극락왕생하라면서 목소리가 우렁차기 그지 없었다· 대체 왜 전각에 대고 절을 하는 건가!
“네?”
그런 마음을 알 길 없는 모용곽이 놀라 눈이 커졌다·
“크흠 군사께선 저 소리가 안 들립니까?”
“아아!”
그제야 모용곽이 상황을 이해하고 근심을 내려놓았다·
일동 이배 라는 우렁찬 소리가 막 들려온 것이다·
“하하하하! 천공단 때문이었군요· 저는 또····”
저는 또가 아니라
네 동생 놈도 절하고 있어· 이 모자란 놈아!
천재란 것들은 왜들 이렇게 모자란 건지·
후공이 못마땅하게 바라보자 모용곽이 이내 웃음을 거두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후공은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제갈혜가 문 앞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려던 참이라 붙잡았다·
“제갈 소저 어디 가십니까?”
“두 분이 이야기 중이시니 마치면 다시 오겠습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함께한 자리·
전임 군사와 신임 군사는 무림맹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들로서는 그저 천재 서생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직 무림맹주가 입을 열었다·
“두 분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모용곽이 씩씩하게 답하고 제갈혜는 갸웃하며 바라봤다·
“강호를 주유하면서 후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없던 관심이 생기더군요· 그러니까 크험 후공은 덕망과 인품이 뛰어나고··· 허엄 강호에 많은 친구들을 두고 있어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맹주의 죽음에 다른 비밀이 있을 듯한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는 뻔했다·
무림맹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을 것인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살피고 또 살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결이 아니란 걸 밝히려 했겠지만 답을 찾진 못했을 터·
역시나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제갈혜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것도 예상했던 모습·
하지만 제갈혜는 어두워진 안색 속에서 눈빛만큼은 이채를 발했다·
“대공자 뭔가 짚이는 것이 있나요?”
“그저 궁금할 따름입니다· 강호의 일은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니까요· 보이는 것과 진실이 다른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갈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그녀라면 무슨 의미인지 몰랐겠지만 최근 반년 사이에 겪은 바가 많다·
화산 폭발 속에서 불꽃이 되어 솟아오르는 사람을 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기억을 잃은 반로환동한 절세고수가 어린 소녀가 되었고 얼음벽에 구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여인이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일들·
백부의 죽음도 그와 같을 수 있다·
백부 또한 상식을 초월하는 상황을 맞이한 건 아닐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라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다시 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백부의 죽음의 비밀은 꼭 밝혀내고 싶었기에 제갈혜로선 기대감이 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저 군사· 혹시 진법은 살펴보았습니까?”
“물론이에요· 특이사항은 없었어요·”
“그렇군요·”
제갈혜의 대답에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환혼이 진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시전하는 쪽에서 어그러진 것이면 맹의 진법과는 무관할 수 있다·
그건 이미 모산파와 흑전이 영기를 탐지하는 방식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다·
그때였다·
“흠···· 진법을 말씀하시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이 있다고 보기에는····”
모용곽이 머뭇대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맹에 온 후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진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맹주님의 처소를 크게 두르고 있는 진법이 오류를 일으켜 살펴보게 되었는데 다섯 개의 흑주석 중 둘은 금이 가고 나머지 셋은 모두 깨져 있었습니다·”
제갈혜의 눈이 빛을 뿜었다·
“어떤 문제였나요?”
“진법을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발동하고 멈추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식으로 깨져 있던가요?”
“그게 묘했습니다· 흑주석의 외부에 타격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터져나간 형태였지요·”
“흑주석이 깨질 수 있던가요?”
“그게 저도 아직까지 의문입니다·”
흑주석은 오행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영석(靈石)·
진법을 설치함에 반드시 필요한 돌이며 희귀함은 말할 것도 없고 단단함은 쇠를 능가하고 강기로도 단번에 자를 수 없다·
한데 그 흑주석이 깨졌다니?
제갈혜의 시선이 옮겨졌다·
“대공자 어떻게 생각하나요?”
“크흠···· 애매하군요· 흑주석이 단단하긴 하나 드물게 지력에 의해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오행의 기운에 토의 기운이 왕성해지면 가끔 예기치 않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건 그저 후공이 둘러댄 이야기일 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흑주석이 파괴된 건
영기의 충돌이 일어난 증명이었다·
환혼은 가능성이 아니다·
이제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