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나의 아미를 건드리지 마라!
“으으으으····”
짓눌리는 멸화사태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한가득이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대공자의 경지가 높은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왜 갑자기?
왜 천화서고 대공자가 나를 죽인다는 건가?
부처님을 불러 보라니?
하지만 그녀만 몰랐다·
청성 장문 운학진인은 이해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대공자의 말에서 의미를 알아차렸다·
대공자가 정말 죽이려는 것이겠는가·
부처님의 뜻?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해골에 고여 있는 물은 상황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그 어떤 물보다 청량감 넘치는 물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의 구원?
내가 온 것이 우리가 아미에 온 것이 부처님의 뜻이란 생각은 왜 못하는가?
대공자는 그렇게 추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운학진인은 만류할 수 없었다·
아니 만류할 이유가 없다·
대공자가 옳다·
대공자가 스스로 백혼곡 마두들의 표적이 되어 전면에 나섰다 해도 아미만큼은 영원히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이 일의 종결은 백혼곡이 끝나든 아미가 끝나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파멸을 맞아야 하는 일·
한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당사자가 이리 한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백혼곡 여섯 마두 중 하나만 남아도 아미는 소멸될 수 있으니·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크으으으으으으····”
어쩔 수 없이 운학진인은 아미 멸화사태의 신음 소리에 속이 시원해졌다· 속이 터져 나갈 것처럼 답답하던 마음을 대공자가 대신 나서서 풀어주는 느낌·
‘좋구나 좋아·’
하지만 당명은 운학진인과는 달랐다·
이해도 되고 시원하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정말··· 패버렸어···?’
머리가 어질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래 조금만·
밖에 있던 무흔신투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감지했기에 대공자가 올 것이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며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생각했는데
벽을 날려버리고는 패버렸다·
아미파 장문인을 말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같아·’
대공자가 조금만 늦게 왔다면 자신이 패버릴 생각이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보고 싶은 광경을 보았다·
···같다·
대형과 대공자가 성향까지 똑같다·
대형의 방식 우리의 방식·
사람을 파묻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이게 뭔가 싶었는데 어떻게 된 게 폭주의 시점과 타당성까지 대형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대형은 한번 결정하면 뒤가 없었다·
이 새끼 묻어야겠다면 그냥 묻히는 것이었다·
이놈 패야겠다면 뒤늦게 용서를 구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풍제도 많이 맞았다·
그렇게 들었다·
그러다 어째서인가 감화되어서 쫓아다녔다고 했다·
‘정녕··· 대형의 환생인가?’
환생이 아니다·
환혼·
그저 후공일 뿐·
후공이 멸화사태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끌어올렸다·
멸화사태의 눈동자가 미칠 듯이 요동쳤다·
이미 그녀는 항거불능 상태·
맥문이 틀어잡혔고 어느샌가 점혈도 되었다·
내력을 운용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당가주 운학진인··· 어찌 그대들은····”
보고만 있는 것인가?
멸화사태는 그 말을 끝내지 못했다·
벽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싶을 때
콰앙!
얼굴이 벽에 찍혔다·
얼굴 윤곽이 남겨질 정도로 벽이 파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콰앙 콰앙 콰앙!
후공은 연달아 멸화의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내력을 운용하지 못하니 머리며 얼굴이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멸화사태의 머리가 깨져나가고 얼굴은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멸화 늦게 오시는구나·”
콰앙 콰앙 콰앙 콰앙!
한쪽 벽이 거의 허물어져 갔기에 후공은 다른 벽으로 옮겨 다시 때려박았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벽이 부서지고 바스러지는 가운데 멸화사태는 더욱더 처참한 몰골이 되어 갔다·
처음엔 통괘해했던 청성의 운학진인도 이젠 움찔거렸다·
콰앙 하고 멸화사태의 안면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크으으윽··· 그만··· 이제 그만·”
멸화가 애써 입을 열었다·
입술은 진즉에 터졌고 진득한 피가 입을 벌릴 때마다 흘러나왔다· 퉁퉁 부어오른 눈도 힘겹게 뜨며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콰앙 콰앙!
“멸화 너무 늦지 않느냐?”
콰앙 콰앙!
“너의 부처님은 언제 오는 거냐?”
콰앙 콰앙 콰앙!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후공이 손목을 틀어 멸화를 돌려세웠다· 퉁퉁 붓고 피범벅이 된 눈을 겨우 떠 실눈같이 멸화가 바라봤기에
“말해 봐라·”
“····”
“너의 부처님은 어디로 갔지?”
멸화는 말이 없었다·
힘겹게 숨을 내쉬며 바라봤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건 무심한 눈동자·
살기는 없다· 원망도 분노도 볼 수 없는 대공자의 무심한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심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주륵·
멸화사태가 눈물을 흘렸다·
이제야 대공자의 의중을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 부처님은 오시지 않는구나·
이 자리에서 자신이 죽는다 해도·
그러니 백혼곡의 마두들이 와도 부처님은 오시지 않을 것이다·
아미가 피로 물들어 모두가 죽어나가도 부처님은 오시지 않는다·
자비로운 부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이미 오셨다·
이미 부처님은 아미파에 자비를 베푸셨다·
당가주를 보내주었고 청성 장문인을 보내주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멸화사태는 힘겹게 눈을 감았다 뜨며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천화서고 대공자도 보내주셨지·
더 무엇이 필요한가·
더한 자비는 무엇인가·
그런 뒤늦은 깨달음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하지만 눈물은 늦었다·
후공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신형이 짓쳐들고 있었다·
이 소란에 아미파의 고수들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
백혼곡의 마두들을 대비하고 있던 아미는 내부에서 들려온 굉음에 놀라 분분히 날아들었다·
하지만 다가올 순 없었다·
부서진 전각 앞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천공단에 가로막혔다·
“늦어! 하지만 거기까지!”
“더 다가오면 누구든 죽인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기운을 한껏 끌어올린 천공단이 낄낄거렸다·
천공단 생활이 하루 이틀인가·
천공단이 단주의 성향을 모를 수 있는가·
그 숨겨진 의중을 모르기가 더 어렵다·
아니 아니다·
숨겨진 의중 따위 없다 해도 상관없었다·
진심으로 단주가 아미를 쓸어버린다는 결정을 내리면 군말 없이 따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세상이 뭐라 하든
강호의 지탄을 받든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미 천공단의 강호는 천공단주요
천공단주는 세상 그 자체·
천공단은 그 세상을 따라 돌아갈 뿐이다·
천공단의 경고대로 아미는 다가오지 못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 무슨···?”
“이게 어찌···?”
“허어····”
천공단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무너진 벽 너머로 훤히 보였다· 아미의 눈동자에는 한 사람만 보였다·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었지만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아미 장문인의 의복이 보이고 피로 물들어 있다·
목에 걸린 백팔염주 장문 영부도 보인다·
장문인이다·
장문인이 당했다·
백혼곡의 마두를 경계하고 있었거늘 정작 내부에서 사달이 났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천화서고 대공자가 장문인을 급습했다·
“천화서고 대공자! 그대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팔성니(八聖尼)라 불리는 아미의 장로 중 수장인 멸관사태가 크게 소리쳤다·
이어 멸관사태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당가주와 청성 장문인 운학진인이었다·
둘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사방 벽이 무너지고 장문인이 피투성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건만 두 사람은 그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느냐는 태도로 태연히 앉아 있을 뿐인 것이다·
“당가주! 청성 장문인! 그대들도 천화서고 대공자와 한패인 것이오! 아니면 그대들이 대공자의 배후인가! 백혼곡의 마두는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면 둘의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다·
멸관사태의 말에 아미가 동요하면서 술렁였다·
‘설마····’
‘백혼곡의 마두는 애초에 나온 적이 없었던 거라고?’
‘모두 거짓말이었어?’
효진의 죽음이 꾸며진 것이라면····
휘파람 소리는 원래 대공자였던 것인가?
살아 돌아온 효경은 누구인지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고 했으니 둘러대도 알 길이 없다·
아미의 술렁임에 청성의 운학진인이 쓰게 웃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다니 그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청성은 대공자와 한패가 맞소이다· 하지만 백혼곡의 마두는 사실이오·”
뒤이어 몸을 일으킨 당명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클클 난 처음부터 천공단이라·”
그 말과 태도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기에 아미파의 눈에 불길이 솟구쳤다·
칠십이관음(七十二觀音)이 일제히 기운을 끌어올리니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때였다·
“모두··· 경··· 마라· 대공··· 청ㅅ··· 당가··· 실이다· 백··· 들은··· 있다· 내가··· 다· 나의··· 어리··· 치려··· 것·”
장문인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아미의 눈과 귀가 그곳으로 쏠렸다·
모두 경거망동하지 마라·
대공자와 청성 당가주의 말은 진실이다·
백혼곡의 마두들은 아미를 노리고 있다·
내가 어리석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대공자가 깨우쳐주려는 것이다·
운학진인과 당명 그리고 천공단은 정황을 알고 있기에 띄엄띄엄 들려오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하지만 아미는 아니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그렇기에 곡해했다·
도리어 말조차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된 장문인의 참담한 모습에 분노는 더할 나위 없이 치밀어올랐다·
후공은 그저 우스울 뿐·
아미의 분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 멸화 너의 아미가 분노하고 있구나· 하지만····
– ····
– 네가 내 손아귀에 있는데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
전음을 들으며 멸화사태가 힘겹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건 가르침이다·
대공자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해되었다·
아미가 얼마나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정파를 공략하는 것이 얼마나 손쉬운 일인지·
아미의 칠십이관음·
소림에 백팔나한이 있다면 아미파에는 칠십이관음·
소림에 사대금강이 있다면 아미에는 사대연화가 있다·
또한 장로들인 팔성니가 울분을 토한다 한들 자신이 사로잡힌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공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똑같다고·
백혼곡의 마두들이 오면 똑같아진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내··· 한··· 석었구나·”
대공자의 말이 옳다·
내가 한없이 어리석었다·
대공자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전대고수인 것 같은가·
왜 자신을 향해 ‘멸화’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이리도 자연스러운가· 어찌하여 천하를 평정한 천하제일인과 같은 위엄이 서려 있는가·
그때 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 멸화·
– ····
– 그들이 오는구나·
– ···?
– 이 하루를 너의 마음에 깊이 새겨주마·
흠칫 멸화사태가 몸을 떨었다·
그들이 온다고?
백혼곡의 마두들이?
하지만 그녀가 정작 놀라야 할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
마음에 새겨주마!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했다·
목을 틀어쥔 후공이 아미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아미는····”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갔다·
“오늘····”
아미의 모두가 그 입술을 주시했다·
그건 비단 아미만이 아니었다·
미칠 듯이 달려오는 파양마군과 극진마군의 귓가에도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나 천화서고 대공자에 의해··· 피로 물들 것이다·”
아미파의 모두가 경악에 차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 경악은 두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안돼!”
“제발··· 제발!”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것인가·
파양마군과 극진마군은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가장 맛있는 요리·
지상 최고의 요리인 아미가····
천화서고 대공자에 의해 사라지려 한다·
그렇기에
“천화서고 대공자아아아아아! 나의 아미를 건드리지 마라아아아아아!”
“제발 제발! 우리의 아미를 죽이지 마라아아아아아!”
삼백년을
그 긴 세월을····
온통 아미만 생각하며 살아온 두 남자가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