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짙은 악의 속에서·
연향이 눈물을 흘렸다·
맹주님이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몰래 하품을 한 것도 아니었다·
너무 웃어 눈물이 났다·
이 새는 왜 이렇게 노래를 잘하지? 원래는 꾀꼬리인가? 두꺼비는 춤을 잘 춘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연향은 두꺼비가 아니라 작은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봄이 오면 새싹들이 삐쭉빼쭉·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은 활짝 웃지· 거길 날아· 우리가 날아· 새와 두꺼비가 꽃을 향해 손을 흔들어· 봄이 오면 새싹들이 삐쭉빼쭉· 금빛 찬란한 두꺼비는 엉덩이를 실룩샐룩·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이 활짝 웃지·]
신기하기도 했다·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을 노래할 땐 새의 깃털이 노랫말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웃고 박수치는 와중 연향은 대공자를 바라봤다·
‘대공자님은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지?’
난 아무것도 아닌데·
시녀일 뿐인데·
왜 내게 손을 내밀어주지?
그 시선에 후공이 바라봤다·
“연향아 너도 춤을 춰봐라·”
“저는 춤을 못 추는데요·”
“잘 춘다고 하던데?”
“누가요?”
“제갈 군사가·”
거짓말이었다·
연향에 대해선 혜에게 들을 것도 없었다·
실제 연향은 춤을 잘 췄다·
후공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보았다·
가끔 우울한 척하면 볼 수 있었다·
연향이 말했다·
맹주님 제가 노래를 불러드릴까요? 춤도 추면서요·
그럼 대답했다· 뭐 노래를 들으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지도·
그렇게 보았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작은 위로· 나의 작은 기쁨·
그것이 후공에게 있어 연향이었다·
그 마음이 번쾌친에게 전해졌다·
연향!
늘 닦아주던 손길·
정성껏 손질해주던 손길·
그렇게 부르듯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일제히 반가운 소리를 냈다·
검령은 뭣도 모르면서 따라 울었다·
“대공자님 검이 울어요·”
“웃는 거다· 네가 마음에 드나 보다·”
“그럴까요?”
“틀림없지·”
“대공자님 춤을 추는 대신 제가 검들을 닦아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나야 고맙지·”
벽면에 기대어진 신검들 중 번이 첫 번째·
‘번아 오랜만이야·’
연향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크릉!
번이 박력있게 답했다·
느낄 수 있었다·
늘 닦아주던 손길·
정성껏 손질해주던 그 손길·
“하하하!”
연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와 같아· 달라지지 않았어!’
번은 늘 이렇게 반겼다·
이런 소리를 냈다·
그래서 연향은 잠깐 착각했다· 맹주님께서 아직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무심결에 돌아보았지만 맹주님은 없었다·
함께 있는 이는 대공자뿐·
코끝이 시큰해진 연향은 애써 눈물을 삼켰다·
그 감정을 읽은 번이 위로했다·
철컥 철컥· 검집에서 슬쩍 나왔다가 들어갔다· 주인이 여기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도 얼마 전에 다시 만났다고·
‘날 위로해주는 거야?’
우우우웅·
‘고마워·’
우우우우우우웅·
‘내가 말했던가? 넌 언제나 멋지다고·’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번이 좋아했다·
그다음은 쾌·
크르릉!
그리고 검령·
‘넌 처음 보네· 하지만 너도 자줏빛이었지· 그날 그 밤 멋졌어!’
크아아아앙!
연향의 호의에 검령이 화답했다·
‘너희가 여기 오랫동안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연향은 대공자가 건네준 친까지 정성껏 손질했다·
“연향아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네가 이곳저곳 안내를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안내는 지난번에 제갈 군사께서····”
“또 하면 좋지 않느냐·”
“네! 맞아요!”
후공은 무림맹을 천천히 거닐었다·
거닐며 의식을 퍼뜨렸다· 무림맹 전체를 의식의 영역 안에서 살폈다· 들려오는 목소리 작은 움직임들까지 감지했다· 그중에서 분류했다·
무림맹 십이 대주와 십육 각주들·
그리고 소향객·
전각을 스치듯 거닐며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동시에 천향 사주를 운용했다·
천향은 삼주에서 사주가 되면서 손을 들어 허공을 타점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예향(預香)!
운용한 순간 오십여 개의 천향의 선이 사방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후공만 볼 수 있었다·
천향의 선은 멀리 뻗어 나갔고 각 전각으로 스며들었으며 닿고 또 부딪혀 굴절하면서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슬며시 깃들었다·
선이 닿았고 이어졌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천향의 무향·
무언가 벌어졌다면 즐거운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만약 아무 일도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최상의 결과·
“대공자님 벌써 목련이 피었어요·”
“그렇구나·”
“목련에는 비밀이 있는데 알고 계실까요?”
의식을 나누어둔 채로 후공은 연향에게 갸웃해 보였다·
연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고 있었다·
“목련에 비밀이 있었나?”
“목련은 꽃이 나오고 저문 다음에야 잎사귀가 나온답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하하하하하!”
열여섯 소녀 연향은 또 웃고 말았다·
천화서고 대공자님은 재밌는 사람이었다· 천재로 이름 높으니 그걸 모를 리가 없는데 모른 척이라니·
“신기하죠?”
“너무 신기하구나· 난 왜 목련을 보고도 몰랐지?”
“관찰력이 부족하셔서 그래요·”
“흥 넌 관찰력이 뛰어나서 좋겠구나·”
“하하하 근데 있잖아요· 진짜 목련의 비밀은 그 뜻에 있어요·”
“뜻?”
“이건 비밀·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나중에 꼭이다·”
“하하 그럼요·”
그땐 천향의 선이 움직이고 있었다·
맹의 군사 모용곽이었다·
소향객의 처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후공은 조금 더 거닐었다·
천향의 선을 유지했기에 미세한 움직임까지 읽을 수 있었고 대화 또한 더욱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소향객께선 어찌 두문불출이십니까?”
“두문불출은 무슨·”
이어 의자를 빼내는 소리·
찻잔은 없다·
소향객이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인가?”
“대공자가 무척 만나고 싶어 합니다·”
“날?”
“물론이지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명망 높은 맹의 천하십객 중 한 분이시니까 말입니다·”
“내가 뭐라고· 명망이라면 대공자가 더 대단하지·”
“그래서 기이합니다· 평소 제가 알고 있는 소향객님은 제일 먼저 달려가 대공자를 만나볼 분이니까요·”
“흐흐흐·”
소향객이 웃는다·
어설프다·
“군사 왜 그런 줄 알려줄까?”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비싼 척하려는 거네· 몸값을 올린다고나 할까·”
어설프다·
후공은 이번엔 콧방귀를 뀔 뻔했다·
모용곽이 말한 의미가 확실히 와닿았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하하 농담일세· 오늘 밤에 보자고 전해주게·”
“후후 좋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대공자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화는 거기까지·
모용곽에 닿은 천향의 선이 다가왔고 가까워졌다·
모용곽이 이야기를 건넸다·
후공은 귀담아듣고 맹을 나섰다·
느린 걸음이었고 연향이 함께했다·
산의 소로를 따라 걸었고 천향은 유지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향의 선이 움직였다·
이번엔 넷·
네 개의 향선은 소향객의 거처로 들어섰다·
대화는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대화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뻔한 말들· 의미 없는 대화일 뿐이다· 진정한 대화는 전음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터·
후공은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무향이라도 각각의 향은 다르다· 향주(香主)는 모든 향을 구별할 수 있다·
비룡재천대주·
항마적성대주·
유성건곤대주·
공옥대주·
**
소향객의 처소·
허허로운 대화 아래 은밀히 전음이 오갔다·
– 결행은 오늘 밤·
– 서두르는 느낌이군·
원래 정한 날짜는 사흘 뒤였다·
– 묘해· 놈이 거슬려·
– 누구?
– 대공자·
– 하긴 태평하긴 하더군·
– 놈이 바로 떠날 것 같지도 않지·
– 방법은?
– 계획대로· 거기에 하나 더·
소향객의 시선이 대주들을 훑었다·
– 놈의 약점이 선명해·
– 정(情)?
– 그렇지· 화설난 연향·
– 하찮은 시녀에게까지 다정하게 구는 놈을 상대하는 건 쉽지·
– 화설난은 내가 잡지·
– 연향은 내가·
– 두 명으로 끝?
– 모용 군사까지·
– 좋군· 천공단에 군사의 아우가 있다고 했으니·
– 그렇게 셋·
– 셋이면 넘쳐나지·
– 내가 놈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진행하도록 해·
– 무림맹은 오늘 밤 사라진다·
– 영원히·
– 그 전에 피로 물들 테고·
네 명의 대주가 몸을 일으켰다·
비룡제천대주·
공옥대주·
금마적성대주
유성건곤대주·
소향객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기대되는군·’
창문 너머로 무림맹을 눈에 담았다·
오늘 밤 이곳은 피바다로 변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전에 저 하늘에 폭죽이 터질 것이다·
독의 폭죽· 살포된 독에 누구 할 것 없이 각혈을 토해내면서 비명이 난무할 테지·
열섬망(熱纖網)·
열(熱)의 그물· 독(毒)의 그물·
타들어가듯 몸은 뜨거워질 것이고 피부는 녹아내리게 된다· 열기는 물을 마셔도 가라앉지 않는다·
‘흐흐흐····’
녹아내리는 살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흐흐 그걸 주워 담는 놈이 있긴 하려나?
하지만 몇몇은 독에 버틸 테지·
유력한 자라면 천화서고 대공자·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다룬다고 했다·
정녕 놀랍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설마 놈이 후공인가?
후공과 환혼된 건가?
그래서 신검을 다루는 건가?
낄낄낄낄낄!
그럴 리가· 개소리를 해버렸다·
천화서고는 안휘에 있다·
너무 멀다·
하지만····
하지만····
설마 대공자가 환혼을 알고 있다면?
아니겠지·
그럴 순 없다·
누가 있어 환혼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알고 있다면?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달라질 건 없다·
놈은 정이 많은 놈이니까· 상대하기 쉽다·
베푼 것이 많은 놈이니 쉽게 무너질 것이다·
화설난·
그래 화설난이다·
암부의 부주·
분명 사전 정보에는 늙은 할망구라고 했는데 젊어졌다· 놈이 도와주었다· 백혼곡에서 영과를 취했다고? 그걸 왜 줘 미친 새끼야!
천화서고 대공자·
정녕 미친 새끼가 아닐 수 없다·
저도 언젠가는 늙을 텐데 그걸 준다고?
낄낄낄!
그래 아깝긴 하다만 그게 너의 약점이다·
사람은 베푼 만큼 마음도 가는 법·
화설난을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테지·
그리고 또 한 사람·
시녀 연향·
하찮고 쓰레기 같은 고작 시녀에게 한없이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놈은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말하겠지·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겠지·
난 좋은 사람이야· 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야·
그것이면 충분해·
낄낄낄· 미친 새끼 같으니라고·
그 한심함이 널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뭐 죽어도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놈이라 그것으로 만족할 테지만·
그래도 보여주마·
천화서고 대공자·
네 눈앞에서 연향을 찢어주마·
화설난을 뜯어내주마·
왜냐고?
소향객이 몸을 돌려 앞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두 눈이 꿈틀거렸다·
악의가 번들거렸다·
‘비밀·’
낄낄낄낄낄!
**
“이제 돌아가자·”
“네·”
산길을 걷던 후공은 다시 맹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향이 작게 노래를 흥얼거렸고 색관조와 금섬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날아올라! 천화서고로!]
[큭큭큭!]
천화서고로 간다고?
왜 갑자기?
그럼 대공자님도?
연향이 갸웃하며 물었다·
“대공자님 천화서고로 가시려고요?”
“그럴 리가· 색관조의 말은 무시가 답이다·”
“그런가요? 하하하!”
색관조는 천화서고로 가지 않았다·
그저 주인이 소곤소곤 명을 내렸기에 일행에게 향한 것뿐이었다·
**
짙은 악의 속에서
연향은 처소로 들어가 작게 노래를 불렀다·
춤도 추었다·
‘대공자님은 멋있어· 그리고 떠올라·’
우울해하는 맹주님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서 연향은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