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현이신녀님은 바보 멍청이!
태언장 내·
한 전각의 삼 층 창가·
모두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각각 흩어져 있을 때 현이신녀는 혼자 있었다·
심문하는 소리와 비명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대화 소리조차·
각각의 처소마다 기막이 펼쳐져 있는 탓이었다· 기막 안에서는 대화가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외부의 소리도 차단된다·
그렇기에 들리는 소리라곤
공동파 인사들의 대화 소리· 긴 한숨· 조금씩 안도하며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색관조와 금섬의 소리·
[야 노랑 눈깔아! 지금이라도 도망쳐·]
[그윽 그윽!]
금언장 위에 떠 있는 노란 눈동자의 새에게 도주를 권하고 있었다·
[이 녀석 보게 의리 쩌네·]
[큭큭!]
금섬이 웃으며 폴짝 뛰어 새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극극극!]
금섬이 빨리 가라고 시안조의 몸 위에서 몇 번이나 뛰었다· 그래도 시안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쳇 고집 봐· 금섬아 놔두고 가자·]
[그윽!]
금섬이 다시 색관조의 등에 올라탄 순간 색관조는 이미 창가· 현이신녀 앞에 있었다·
현이신녀가 미소 지었다·
“넌 왜 그렇게 애쓰지? 저 새가 마음에 들었니?”
[까르르르르르· 현이신녀님 저는 별생각 없답니다·]
“그래?”
[네 이건 비밀인데요· 저 새가 도망치면 따라가 잡아오려고 그러는 것이어요· 주인님께서 죽이라면 죽이고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절대로 도망칠 수 없어요· 얼마나 빠르게 도망치든 제가 더 빠르고 어디에 숨든 저는 찾을 수 있거든요· 향기가 나니까·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너 무서운 새였구나·”
[당연하죠· 이거 몰라요? 화공신타! 무섭! 천화서고 대공자! 멋짐! 까르르르르르!]
무섭다고 할 때는 색관조가 두 날개를 가슴께로 모으며 오들오들 떨었고 멋지다고 할 때는 날개를 활짝 펴며 웃었다· 금섬도 앞발을 들어올리며 따라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현이신녀가 소리 내 웃었다·
“하하 처음 듣지만 맞는 말이야·”
[신녀님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글쎄····”
현이신녀는 잠시 고민했다·
대공자는 추혼자를 살려둘까 죽일까· 노란 눈동자의 새는 어떻게 될까? 색관조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화공신타라면 죽일 것 같고
대공자라면 살릴 것 같았다·
“살려둘 것 같구나·”
지금 대공자의 모습이 화공신타가 아니어서?
아니다· 그보다는 쓰임새 때문이었다·
추혼자는 새가 듣는 것을 듣고 새가 보는 것을 보는 이·
“넌?”
[저는 반반· 주인님의 생각은 도통 모르겠거든요· 이랬다저랬다 무섭다가 상냥하다가 한심하게 보셨다가 칭찬했다가 또 다정하다가도 웃기고· 까르르르르르르르르!]
“하하 그렇긴 하지·”
현이신녀도 동감이었다·
대공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신녀님 저 새는 주인이 죽으면 따라 죽으려나 봐요·]
그 말에 현이신녀가 노란 눈동자의 새를 바라봤다·
새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눈동자에는 드러났다· 불안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의 빛을 띠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포자기·
그렇게 보였다·
그만큼 주인과의 유대가 깊은 것이겠지·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듣는다· 연결되어 있다는 건 간단치 않다· 서로 간에 감응한 희로애락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렇기에 상실감도 클 것이다·
그래 함께 죽으려 할지도·
그 생각에 이르자 현이신녀는 색관조와 금섬이 궁금해졌다·
“너흰 어떠니?”
[저요?]
[그윽?]
색관조와 금섬이 동시에 올려다봤다·
영특하기에 바로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도 같은 생각이냐고 노란 눈동자의 새와 같이 주인을 잃게 되면 그 죽음에 따라갈 거냐고·
색관조가 날개를 끌어와 사선으로 교차했다·
[저는 죽지 않아요! 절대 절대로!]
[그윽! 그윽!]
금섬도 단호함이 말로 할 수 없었다·
현이신녀는 갸웃·
대답이 너무도 의외인 것이다·
색관조와 금섬이 대공자와 이어진 유대는 노란 눈동자의 새와 추혼자보다 훨씬 더 깊다고 보았는데 어찌 된 게 색관조와 금섬의 대답에는 고민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
왜 같이 죽지 않느냐 다그치는 건 말도 안 된다·
“너희 말이 맞다·”
[신녀님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내가?”
[네!]
“뭘 착각했을까?”
[처음부터 틀렸어요· 주인님은 죽지 않아요! 절대로 절대로! 까르르르르르르르! 그러니까 우리도 안 죽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다 죽여버릴테다아아아아!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극극! 큭큭큭!]
색관조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금섬도 떼굴떼굴 굴렀다·
그것도 잠시 금섬이 색관조의 등에 올라탔다· 색관조가 날아올랐다·
[현이신녀님은 바보 멍청이! 얼음 마녀는 아무것도 몰라!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극극!]
그 모습에 현이신녀는
“··········”
입술만 깨물었다·
우문현답이었다·
어떻게 된 게 새와 두꺼비가 자신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것 같은가·
[오래오래 살 거야· 주인님과 언제까지나!]
[그윽 그윽!]
[천공단도 함께하지! 언제까지나!]
[극극극!]
그 말이 대답이었다·
그 말이 영물들의 소망이었다·
현이는 자신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얼음마녀는 바보 멍청이! 오늘은 싫어할 거야! 오늘은 미워할 거야! 개똥구리! 말똥구리! 소똥구리!]
[큭큭큭!]
[왜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슬프게·
하마터면 눈물 날 뻔했잖아·
그치?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
추혼자의 구술은 이어졌다·
천천히 느릿하게·
그렇게 어느덧 일식경·
구술하는 중에 추혼자는 의문이 떠올랐다·
‘왜 대공자가 더 어른 같지?’
사천당가주와 함께 있는 자리·
암향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암향야의 시선은 대공자를 향하고 있는 상황·
수하의 위치다·
지시가 떨어지면 움직일 것만 같았다·
어떻게 봐도 암향야가 아랫사람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추혼자는 기이할 따름이었다·
의문은 더 있다·
‘대공자는 이해가 된다는 건가?’
대공자가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천천히 말하고 있긴 해도 이게 이해의 영역인가? 가능한 일인가?
물론 한 번 듣고도 기억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천재로 이름 높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하지만 이해의 영역은 차원이 다른 문제·
‘이해되는 척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추혼자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태연히 표정과 억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구결을 왜곡했다· 혈도의 순서를 바꿨고 혈도의 위치도 다르게 말했다·
진기의 운행을 몇 번인가 역행되게 했다·
만약 대공자가 고스란히 기억했다고 해도 그 기억을 끄집어내가며 수행을 쌓아간다면 반드시 막히게 되어 있다·
거기까지 이르기에도 많은 세월이 걸린다·
결코 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공법이 아니다·
최소 10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영초들도 사전에 구해야 하고· 그러니 기적적으로 단축시킨다 해도 8년이나 9년·
그런 가운데 추혼자는 표정을 살폈다·
대공자의 표정이 달라진 점이 없어 추혼자는 내심 미소 지었다· 눈썹을 꿈틀하거나 갸웃하지 않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해할 리 없지·’
틀리게 말하길 잘했다·
언젠가 물어올 때가 있겠지만 그때 가선 구결을 잘못 들으신 것 같다고 하면 그만·
또 대공자는 그럴 때를 대비하고 싶겠지·
구결을 확인하고 싶어질 때면 내가 필요할 터·
난 살 수 있다·
이미 살려준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그런 생각 속에 추혼자는 이후 몇 차례 더 왜곡했다·
그럼에도 대공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니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역시 역시!’
하지만 그건 추혼자의 착각·
눈 앞에 있는 이는 후공·
천하제일인!
‘양문혈··· 결분혈··· 염천혈····’
그중 결분혈이 생략되었다·
그렇게 되면 눈 밑 염천혈로 기운이 이어가지 못한다· 빛처럼 빠른 운행이 순서를 따르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많다· 이 경우엔 자칫 시각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 뒤로도 경맥의 전환이 뒤바뀌고
진기의 역행이 일어나는 구결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끄덕 끄덕·
지적하지 않고 경청을 이어 갔다·
애초에 익히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럼에도 들어보려 한 이유라면 두 가지·
첫째는 적을 알고 싶어서였다·
환혼을 다루는 이들이니만큼 무학의 정교함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려는 의도·
이 부분은 인정하게 되었다·
어떤 천재인가?
경각심이 절로 떠오를 만한 수준이다·
두 번째 이유는 참고를 위해서였다·
연결이라면 이미 검연과 천향오주의 공법이 있다·
검연의 이어짐은 마치 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고 천향오주는 향의 선만으로 탐지와 추적이 가능하다· 영역 안이라면 연결된 이들의 위치는 눈에 보이는 것 같아진다·
그리고 천향이 오주로 나아가면
현재 천향사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될 터·
그땐 향선을 통해 전음을 훔칠 수 있다·
은밀한 대화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울림은 소리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천향으로 연결된 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 주변의 소리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의식을 극대화하면 향이 이어진 자의 시선을 통해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렇기에 추혼자의 구결은 그저 참고용·
몇몇 분을 취사 선택해 천향의 공법에 결부시켰고 중도에 왜곡된 부분이 있었지만 의미 없었다·
그건 멀지 않았다·
무림맹에 쏘아올려진 열섬망과 이곳에서 만난 혼종의 벌은 삼악만 증대시킨 것이 아니다·
천향의 공법은 삼악이 기반·
삼악이 강대해지면서 천향의 공법도 이제 천향오주의 벽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대공자님 여기까지입니다·”
드디어 모든 구술을 마친 추혼자가 바라보았다·
미진한 부분을 다시 듣고 싶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추혼자의 기대는 어긋났다·
“잘 들었다·”
“혹여 다시 듣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후후 그럴 일은 없지·”
“네?”
추혼자가 멍하니 바라봤다·
정녕 다 이해했다고?
아니 그보다····
‘왜 한기가 들지?’
대공자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할 뿐인데 추혼자는 서늘함이 느껴지니 덜컥 겁이 났다·
대공자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시는?
추혼자가 멍하니 바라볼 때 들려왔다·
“명아·”
“네 대형·”
“천천히 나와라·”
“후후·”
‘대형?’
추혼자의 눈동자가 미친 듯 흔들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암향야가 대공자를 왜 대형이라고?
‘설마··· 설마····’
후공?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이라고?
너무도 경악스러워 추혼자는 자신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당명이 피식 웃었다·
“추혼자·”
“···?”
“공동파에 시신이 많더군·”
“···??”
“공동파를 장악할 땐 쾌재를 불렀을 테지? 공동파 제자들이 죽어갈 때 넌 아무 감정도 없었을 테지? 아니 웃었으려나?”
그랬다·
유도되듯 그때 그날의 광경이 떠오른 추혼자는 그 광경과 함께 암향야의 비웃음을 볼 수 있었다·
겹쳐 보이는 그 광경 속에 날아드는 빛줄기도·
그건 생애 마지막 빛·
죽음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