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환혼 성공·
‘나를 환혼시킨다고?’
일비신수가 놀라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잔인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그게 될까?”
“되게 해야지·”
“대단한 자신감이군· 넌 천화서고 대공자겠지?”
이제 일비신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젊은 나이에 지금의 경지라면
한 사람뿐이다·
강호를 뒤흔든 놈에 대한 소문은 극히 축소되고 과소평가된 것이었다· 대체 누가 화경의 극에 이르렀다고 떠들고 다닌 건가·
화경의 극?
헛소리다· 현경의 예에 이른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 붙잡은 자가 화경의 극이라니·
그래 대공자여·
네가 대단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클클 미안하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순순히 시킨 대로 할 것 같은가·
오산이다·
어떤 고문이 와도
어떤 고통이 와도 일비신수는 굴복할 생각이 없었다· 고문 따위에 무너질 만큼 심지가 약하지 않다· 그건 자신의 수하들도 마찬가지· 고문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다·
대공자여 넌 어떤 수단을 발휘할 것이냐!
그렇게 말하듯 일비신수가 바라볼 때
후공은 무심한 시선 속에 좌수를 들어 일비신수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정수리 백회혈을 타고 교릉의 일곱 기운이 스며들었다·
발현은 즉시·
두드드드드드득 두드드드드드드득·
목이 잡힌 채로 일비신수가 요동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머리며 팔다리를 미친 듯이 팔랑거리고 허리가 꺾이고 관절이 접혀 들어가고 살이 뭉쳐가면서 작아졌다·
교릉이 선사하는 고통은 팔다리가 잘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 누구든 교릉 앞에선 장사 없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그만··· 그만! 뭐든 하겠다· 제 제발····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일비신수의 각오는 한순간에 소멸·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고문이 세상에 이런 고통이 존재하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작은 항아리 크기가 되면서는 이제 비명도 내지르지 못했다· 그저 몸 어딘가에 파묻힌 눈을 겨우 떠 간절함을 담아 바라볼 뿐이었다·
간절함은 통했다·
이내 두드득 소리와 함께 몸이 펴지기 시작했다·
다 펴졌을 땐 이미 너덜너덜·
후공은 아무렇게나 땅에 던져놓고 시선을 돌렸다·
풍제와 검선 현음신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풍제의 염혼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염혼들은 각기 검수들을 안아들고 오는 중·
그리고 그중에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매향자도 있었다·
“대공자 역시 놓치지 않았군요·”
검선과 현음의 말에 후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풍제를 바라봤다·
이제 풍제의 차례·
풍제의 의식에 연동된 염혼들이 검수들을 하나씩 들고 풍제 앞에 섰다·
눈을 마주할 수 있도록 세워진 검수가 풍제의 눈을 들여다본 순간 풍제의 눈동자 테두리를 따라 금빛이 원을 그리며 한 바퀴 회전했다·
쩌어엉!
마령안(魔靈眼)에 사로잡힌 검수의 눈이 꿈을 꾸듯 몽롱해졌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 과정을 거친 검수들의 표정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드러나지 않았다· 무심한 듯 몽롱한 듯 차분한 시선이 되었다·
‘섭···섭혼· 마교 교주··· 풍제구나·’
그리고 지켜보던 매향자는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땐 이미 매향자도 염혼의 손에 들려 풍제의 눈과 마주쳐가고 있었다· 마음속 호칭은 이내 바뀌었다·
‘주인님·’
풍제가 입을 열었다·
“매향자입니다·”
“들어보자· 너는 왜 이렇게 되었지?”
“화산파 장문인과의 환혼을 준비하며 저기 저자가··· 저자는 일비신수라고 합니다· 그가 제 팔다리를 뜯어냈습니다· 그 전에 단전도 파괴했습니다· 환혼 후 무공을 발현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고 화산파 장문인에게 절망을 안겨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듣는 건 체감이 달랐다·
풍제가 화산의 검선을 바라봤고 현음도 검선을 바라봤다· 환혼 대상이 화산파 장문인이었으니 검선은 당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검선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 섭혼에 녹아든 건 추굉자·
추굉자 다음은 일비신수가 섭혼에 빠져들었다·
“주인님!”
현경의 예에 이른 일비신수였지만 섭혼에 어떤 저항조차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릉에 너덜너덜해진 건 몸만이 아닌 것이다· 정신까지 쇠약해졌기에 섭혼에 버틸 의지력 따윈 존재하지 않게 된 터·
“묻겠다· 넌 화산파 장문인을 환혼한 후 어떻게 하려고 했지?”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고막을 터뜨리려 했습니다·”
“무섭군·”
“무서운 일입니다·”
이후 풍제는 섭혼을 최종 확인했다·
한 검수를 가리켰다·
검수가 예를 취했다·
“명을 기다립니다·”
“기쁘게 죽어라·”
“영광입니다·”
검수가 검을 빼들어 역수로 쥔 후 그대로 자신의 심장에 찔러넣었다·
푸욱!
고통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느껴지는 건 기쁨뿐· 희열뿐· 주인의 명을 따를 수 있어 영광이었다·
검수가 맥없이 허물어졌다·
확인은 끝·
풍제가 염혼을 거둬들인 후 입을 열었다·
“환혼진을 설치한다·”
“존명!”
모두 크게 외친 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땅을 평평하게 다졌고 흑주석을 땅 속에 깊이 박아넣었다· 여러 색의 깃발이 배치되고 깃발들은 천잠사로 이어졌다· 그 사이 사이 지면에 물길을 내듯 여러 도형 형태로 그려내기도 했다·
환혼진이 완성되었을 땐 거대한 원·
기이한 기운이 진 안에 아른거렸다·
후공이 그 앞에 섰다·
“제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내 집중해 바라봤다·
진법에는 문외한·
후공은 따로 공부한 적이 없어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바라봄이 시작이다· 잠시 후 범항의 천재적인 두뇌가 분석을 시작했다·
‘건태리진 손감간곤· 팔괘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만물의 다섯 근본인 오행이 그 너머· 더 나아가 음양이 위치· 역행의 형태· 음양이 하늘과 땅을 지탱· 양 끝단에는 두 개의 태극· 오행과 팔괘 사이사이에 구궁이 연결·’
머리에 떠오름과 동시에 후공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주변에 대한 인지가 사라졌다· 후공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온전한 몰입 속에서 더 깊이 깊이 내려갔다·
태극은 천지만물이 생기기 이전의 혼돈·
그 태극으로부터 음양이 나뉘고 음양의 강약에 따라 오행· 오행은 만물의 다섯 걸음걸이· 만물의 실질은 팔괘의 괘상의 체현· 한편 팔괘는 오행에 수렴한다· 시간이 오행이고 공간이 오행· 팔괘 역시 오행에 속한다·
‘···천지의 역행· 역천의 술(術)·’
이내 환혼진에 대한 분석을 마쳤다·
결론은 역천의 술법이며
천지의 역행이었다·
시간과 공간은 그때 그때 팔괘의 변형을 통해 구현하게 됨도 알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소리도 다시 들려왔다· 산야의 밤 풍경 산야의 소리·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었다·
풍제와 검선 현음이었다·
검선과 현음이 멀찍이 앉아 있었고 풍제는 아예 팔을 괴고 모로 누워 있었다·
‘쯧쯧· 건방진 놈이 잠시를 못 참고·’
후공은 내심 혀를 찬 후 인내심 없는 아우를 추궁했다·
“풍제 아예 주무실 참이었습니까?”
“후후후·”
풍제는 웃기만 했다·
답한 건 몸을 일으킨 검선과 현음신녀였다·
“대공자 전혀 모르나 보군· 이미 사흘이 지났네·”
“대공자 살아 있었군요· 선 채로 죽은 줄 알고 묻을 뻔했답니다· 배는 안 고픈가요?”
후공은 잠시 뚱해졌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믿을 수 없어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봤다·
‘이런····’
달의 형태가 달라졌고 별들도 위치가 바뀌어 있었기에 그제야 사흘이 지났음을 받아들였다·
“풍제 환혼을 진행하시죠·”
“후후 그럴까?”
말이 끝나기도 전 풍제는 검수들 곁에 서 있었다·
“매향자와 일비신수를 환혼한다·”
“영광입니다!”
검수들이 예를 취하고 매향자와 일비신수는 기쁨에 찼다· 매향자는 환혼진 중앙에 놓였다·
이어 풍제가 하나의 염혼을 불러냈다· 염혼이 일비신수를 옆구리에 끼우고는 신형을 솟구쳤다· 까마득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염혼을 후공이 추격했다·
또한 시안조도·
염혼은 산봉우리를 넘고 또 넘었다·
다섯 번째 산봉우리에 이르러 멈추었고 일비신수를 땅에 내려놓았다·
[앉아·]
일비신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염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려다보다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멀리 가진 않았다· 그저 환혼이 교란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멈춰 지켜봤다·
그곳은 후공의 곁이기도 했다·
일비신수의 머리 위로는 시안조가 하얗게 물든 눈동자로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추굉자도 보고 있었고 좌표를 읊조렸다·
“동북방(東北方)· 천구백(千九百) 백칠십이(百七十二)·”
시안조와 연결되어 있다·
시안조를 다룸에 있어 이 공법을 운용함에 있어 시안조의 이동에 따른 거리와 높이 측정은 기본 중의 기본·
그 말에 따라 검수들이 환혼진의 팔괘를 조정했다·
이어 원형의 환혼진의 끝과 끝· 태극 문양이 수놓아진 두 개의 깃발의 위치를 바꾸었다·
우우우우웅·
옅은 기운이 환혼진에 요동치면서 바람이 없는데도 깃발들이 나부꼈다· 이어진 이중 삼중 첨잠사의 줄이 팽팽히 당겨졌다가 풀어졌다 하면서 매향자를 중심으로 깃발이 저절로 움직이며 방위를 바꾸었다·
파아아아아앙!
공간이 출렁임과 동시에 백색 광채가 번뜩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으읍!”
매향자가 눈을 부릅떴다·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건 일비신수도 마찬가지였다·
백색 광채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가 사라질 때
“허업!”
격정적으로 몸을 출렁였다·
이내 일비신수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환 환혼!”
이젠 일비신수가 아니었다·
매향자가 깃든 터·
팔과 다리를 잃었던 매향자는 손이 보이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가 보였기에 자신이 환혼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와 환혼된 거지? 이 몸은 누구지? 설마 화산파 장문인?”
환혼이 일어나면서 섭혼에서 벗어난 터·
매향자는 섭혼에 빠져 있을 때의 기억이 없었다·
“아니 아니다· 화산파 장문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래 풍제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지· 그리고 풍제의 손에 잡혔는데···· 한데 이 옷은?”
어딘가 낯익은 옷이었다·
그때 들려왔다·
[그건 일비신수다·]
매향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염혼이 소용돌이치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매향자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 괴물을 뭐라고 부르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풍제의 수하인 건 생각났다·
“으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된 건가? 일비신수와 환혼된 것인가! 하하하하하! 일비신수가 내 몸을 갖게 된 것이란 말이지· 으하하하하하! 내 염원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하하하하 이제 당장 죽어도 원이 없다· 하하하하하하!”
[그래?]
“하하하····”
[그럼 죽어·]
매향자가 바라볼 때 염혼이 머리를 부숴버렸다·
매향자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때 일비신수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신을 차려보니 환혼된 것이다·
팔다리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매향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조금 시끄럽군·”
그런 일비신수를 검선이 환혼진에서 끄집어냈다·
시끄러웠기에 턱을 꽉 움켜잡았다·
잡혀 벌어진 입으로 일비신수가 요동쳤지만 요동칠 수 있을 리가·
검선이 웃었다·
“화산 장문인을 어떻게 한다고?”
“으으으····”
일비신수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검선이 그런 일비신수의 눈을 뽑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두고·
무심히·
이어 입 앞쪽으로 손을 가져가 거리를 두고 살짝 그었다·
스윽· 스윽·
혀를 조금씩 절단했다·
“으으읍 으읍!”
두 눈은 피투성이 입 안에도 피가 솟아났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비신수의 양쪽 귀를 검선이 타격했다·
고막이 터지면서 귀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볼 수도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된 일비신수가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소리라곤 이이이이이잉!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명뿐·
남아 있는 감각은 이제 둘·
촉각과 후각뿐·
당장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너무나 두려워 비명을 내질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서로 죽여라·”
풍제는 검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섭혼 상태인 검수들이 서로의 몸에 검을 박아넣고 쓰러졌다·
이내 자리를 수습한 후
일비신수를 남겨두고 떠났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제발 죽이고 가· 날 죽이고 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그리고 죽음은 천천히 찾아올 것이다·
검선이 일비신수 주위로 기의 장벽을 두르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틀 혹은 사흘·
그 뒤에야 야수를 만날지도·
그 뒤에야 까마귀를 만날지도·
···하루가 영원같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