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지존께서 왜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것 같지?
악인곡 일당은 서안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서안의 한 장원·
온평장·
순식간이었다·
서안에 진입했음에도 누구도 칠대 악인을 볼 수 없었다·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의 온평장도 그건 마찬가지·
그저
“아버지 따분하지 않으세요?”
“따분?”
연못 위 팔각정에서 온평장주와 그 딸이 한가하게 찻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고·”
“정말요?”
“으음···· 한 사람이 궁금하긴 하다·”
“누구요?”
“천화서고 대공자·”
딸은 탄성을 발한 후 미소를 머금었다·
양 뺨에 앙증맞은 보조개를 드러낸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온통 강호가 그 사람 이야기로 떠들썩하니 도리어 헛소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잖아요·”
“뭐 헛소문이면 어떻고 진실이면 어떠냐·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찾아가 만날 생각도 없는 것을·”
“그럼 대산은 어떠세요?”
대산(大山)이란 말에 온평장주의 눈이 깊어졌다·
딸이 말을 이었다·
“천마신교 서열 칠십 위· 온평장주가 아닌 천마신교 섬서지부장 마환수로서는 언제든지 다시 발을 딛고 싶은 곳일 것 같은데요?”
“후후 가려면 갈 수 있겠지· 한데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사 년 오 년은 지나야겠지·”
“그때쯤이면 괜찮을까요?”
딸은 의미를 이해했기에 다시 물었고
아버지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시간이 지난다 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더 지나야 할 지도·
천하제일인의 죽음은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이니·
지존이 잊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니·
아니 아니다·
지존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부름이 있으면 모를까 대산을 가야 할 때가 아니었다·
“과거의 어느날처럼 불쑥 찾아오시지도 않겠죠?”
“후후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
“조금 더 일찍 태어날 걸 그랬나 봐요·”
멋진 구경을 놓쳤잖아요 라며 딸이 말을 마쳤기에 온평장주는 다시 웃었다·
딸의 말 때문에 과거의 어느 날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루는 밤이었다·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일어나라· 그런 전음이 들려 화들짝 깨어나 바라보니 지존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었더라?
어떤 지시를 받았더라?
생각이 바로 떠오르진 않지만 한 가지는 선명했다· 지존께서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는 것·
또 하루는 두 사람과 동행하여 오셨다·
지금처럼 오후의 햇살 아래·
웃음소리가 들려온 뒤에야 지붕을 딛고 서 있는 후공과 암향야를 알아보았다·
모두가 놀라 바라보았다가 적으로 오인·
몰라본 수하들이 공격을 감행했다가 채 다가가지도 못하고 추풍낙엽인 양 쓰러졌다·
손이 닿은 것도 아니고 무언가가 발출된 것도 아니었다· 기이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 그건 당연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지존께서 찾아오신 건 두 번·
그날의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온평장주는 시선을 들어 한 전각의 지붕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이었지·”
“하하 알고 있어요· 저곳에 후공이 서 있었고 또 저쪽에는 암향야께서 서 있었다고 말씀하셨잖···· 어?”
웃으며 말하던 딸의 눈이 커졌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말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지붕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못생긴 사람이었다· 입이 심하게 돌출된 사내였다· 아니 이건 돌출이란 말로는 모자랐다· 입이 코보다 더 앞에 와 있는 사람을 그녀는 여태 본 적이 없었다·
눈은 또 왜 축 처져 있고?
“아 아버지?!”
당연히 온평장주도 이미 보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을·
온평장의 각 지붕마다 한 사람씩· 일곱·
본 적이 없는 이들이고 누구할 것 없이 흉악하게 생긴 이들이었다· 외모만으로 경각심이 치솟았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들이 지닌 무공의 경지·
자신이 화경의 극에 이르러 감에도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설마 교의 지부라는 것을 알고 온 건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적당해야지· 이 정도면 살아온 나날이 짐작 가는 용모가 아닌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면 얼굴이 저 지경인가·
이쯤이면 외모가 말을 해 온다·
결코 좋은 뜻으로 온 것이 아니라고·
이미 수하들이 대응할 태세를 갖추었지만 쓸데없는 짓· 온평장주는 경거망동하지 말라 손짓한 후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본 장원과는 인연이 없는 자들 같은데 무슨 일이지?”
“낄낄낄!”
“호호호호호!”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웃음·
그 웃음소리를 따라 훑어보다가 온평장주는 내심 갸웃했다·
‘···어설퍼?’
전부는 아니었다·
일곱 중 두 사람의 웃음 소리에서 뭔가 애쓰는 느낌을 받았다· 억지로 쥐어짜내는 느낌에 가까웠다·
“외워라· 우린 악인곡이다·”
온평장주는 시선을 돌리며 반문했다·
말한 건 곱추에 가장 흉악하게 생긴 자였다·
“이런 벌써 외웠네? 너 이 새끼 똑똑하구나·”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냥 왔어· 왜 오면 안 돼?”
“무 무슨····”
“아참 나는 특별해· 난 악인곡주다· 이것도 외워!”
대체 무슨 말을 떠들고 있는 것인가·
온평장주의 미간은 더 찡그려졌다·
“한데··· 너 뒤에 있는 건 네 딸이냐?”
“클클 딸이 무척 예쁘게 생겼네·”
온평장주가 발끈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상황에 딸이 거론되면 아버지는 그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건 착각·
후공은 진심이었다·
오랜만에 본 마환수가 딸을 가졌고 딸이 예뻐서 나름 칭찬했을 뿐·
“예쁘게 생겨서 예쁘다고 한 건데 화를 낸다고?”
“악인곡주 이쯤에서 곱게 물러나라·”
“너흰 결코 후환을 감당할 수 없거든·”
“클클 여기가 마교 섬서 지부라서?”
온평장주가 놀라 눈이 커졌다·
이미 알고 왔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이는 곧 온평장의 파멸을 의미했다·
“온평장주 아니 마환수·”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아까 말했냐 안 했냐? 우린 악인곡이라고! 왜 기억했다가 잊었다가 그러냐! 뇌가 비뚤어졌냐? 대가리 열어 줘? 뇌 제대로 맞춰줘?”
“대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이유? 잠깐만· 이유가 뭐였더라?”
악인곡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선 건 혈종마군이었다·
“하여튼 미련한 새끼·”
화공신타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훌쩍 신형을 내려섰다· 그 모습만으로 검수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혈종마군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검수들을 향해 나아가니 검수들이 차마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를 걸어 지나며 혈종마군이 입을 열었다·
“하나씩 하나씩 죽일 생각이거든·”
“이미 죽이기도 했고·”
이미?
다가오는 혈종마군을 바라보며 온평장주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자의 보행이 경이로운 것이다· 천천히 걸어오는데 땅을 딛지 않고 있었다·
“화산의 검선을 죽였고·”
“무당의 검존도 죽였지·”
“후후 그리고 사천당가의 가주도·”
쿠웅·
암향야까지 죽임을 당했다고?
온평장주는 심장이 주저앉고 이제 손을 덜덜 떨었다·
암향야가 누구인가·
지존의 아우다·
이쯤이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이제 악인곡과 천마신교는 돌이킬 수 없다·
“후후 그뿐일까· 북해빙궁 궁주와 그 사저· 그것들은 죽었으려나 살았으려나·”
북해빙궁의 궁주까지?
“거기에 천화서고 대공자까지··· 낭떠러지로 떨어졌으니 아마도 지금쯤 까마귀 밥이 되었겠지·”
이내 걸음은 연못에 이르렀다·
연못 위로도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에 온평장주는 연신 주춤 물러났다· 발이 닿을 때마다 그 지점마다 연못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러니 생각하게 된다·
이쯤이면 끝은 정해져 있다·
죽음·
복수는?
자신의 몫이 아니다·
복수는 지존의 것·
암향야가 죽음에 이르렀으니 볼 것도 없었다·
아쉽긴 했다·
악인곡의 최후를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온평장주의 생각은 거기까지·
어느새 연못의 중간·
“마환수 기억해라·”
이어진 목소리에 온평장주 아니 마환수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풍제는 죽었다·”
마환수가 눈을 부릅떴다·
뒤쪽에서 딸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마환수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혈종마군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이다·
‘역용?’
연못을 디딜 때마다 확연히 바뀌어갔다·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모습·
분명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다섯 걸음 너머·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젠 명확해졌다·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환수는 다른 의미로 몸을 떨었다·
“지··· 지존!”
풍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환수 오랜 만이구나·”
“지 지존··· 어찌하여?”
마환수가 더듬거렸다·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너의 지존은 죽었다· 풍제는 죽었다·”
듣고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마환수는 마른침만 삼켰다·
“나는 혈종마군· 기억해라·”
정녕 지존이 맞는 것일까?
악인곡의 혈종마군이 지존의 모습으로 역용한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피어났을 때
화아아악!
검은 연기가 피어나면서 하나의 염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서야
“지 지존을 뵙습니다!”
마환수가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뒤를 온평장의 검수들이 이었다·
“천마강림 만마앙복!”
“천세천세 천천세! 만세만세 만만세!”
“마의 지존을 뵙습니다!”
모두가 엎드려 경배하며 예를 표했다·
한 사람만 예외였다·
마환수의 딸·
그녀만은 처음 보는 광경에 멍하니 입만 벌리고 서 있었을 따름이었다·
염혼이 그런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마치 어른이 귀여운 아이를 들어 올리듯·
염혼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졌다·
– 너의 이름이?
– 온양···입니다·
– 그래 네 모습처럼 예쁜 이름이구나·
– 아까 악인곡주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후후 그래도 미워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은 아버지가 대신했다·
온양은 얼떨떨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혈종마군 적당히 하고 가자!”
어느 지붕에서 들려온 쇠 긁는 소리에 염혼이 온양을 내려놓았고 염혼은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풍제가 마환수를 내려다봤다·
“마환수· 대산에 연락하여라· 내가 죽었다고·”
마환수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제 아는 것이다·
지존께서 계획하시는 바는 따로 있다·
소문이 그렇게 나야 하고 또 날 것이다· 천마신교는 그 소문에 흔들리면 안 된다·
이내 사방은 고요해졌다·
“아버지····”
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환수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 어떻게 떠나신 건지 지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지존과 함께 온 이들의 모습도·
그들은 누구일까?
그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지존이 거론한 이들·
‘암향야 천화서고 대공자 검선과 검존 북해빙궁의 궁주와 그녀의 사저·’
모두 모습을 바꾸었음이 아닌가·
그럼 대체 적은 누구인가?
지존은 누굴 상대하시려는 것인가?
그 의문과 함께 다른 의문도 피어났다·
‘근데 악인곡주는?’
왜 지존께서 곡주가 아닌걸까?
뭐 상관없겠지·
그보다 그보다····
마환수는 멀리 허공을 바라봤다·
‘왜지? 지존께서 왜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것 같지?’
그때처럼·
후공과 암향야와 함께일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