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추적·
하북성 구웅산·
노인은 산야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산을 지나던 이들이 사내를 바라봤지만 노인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틀 연속 산을 오른 약초꾼이 노인을 지나쳐 가려다 갸웃했다·
“이보오 거기 뭐가 있소? 아 그보다 뭘 먹긴 한 거요?”
어제 그 자리였고 어제 보았던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기에 약초꾼은 기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혹시?
“설마 죽었··· 그건 아니군·”
선 채로 죽었나 싶어 약초꾼이 가까이 다가갔다가 또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이 버젓이 한 번씩 눈을 깜박이고 있는 것이다· 시선은 그대로 하늘· 미소 짓고 있기도 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하늘을 올려다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을 뿐이었다·
‘기이한 약초를 발견한 것일지도 몰라·’
불쑥 욕심이 생긴 약초꾼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다가갔다·
“혹여 곤란한 일이면 내가 도와드리리다·”
“꺼져라·”
약초꾼은 꺼지지 않았다·
대신 노인 주변을 살피며 어슬렁거렸다·
그때는 이미 노인의 눈빛에 살기가 일렁였지만 등을 돌리고 있는 약초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귀찮게 하는군·”
약초꾼이 돌아봤을 때는 이미 장력이 쇄도하고 있었다· 백색 광채였다· 채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약초꾼의 시야가 흐려졌다· 세상이 빠르게 돌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약초꾼은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 뒤편의 나무가 가루가 되어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누군가의 손길에 옮겨진 터·
‘은인····’
자신을 붙든 이가 아니었다면 흩날린 건 나무가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그래 강호의 고수로구나· 살았다· 그리고 살게 된다· 저 해괴한 노인보다 더 대단한 고수인 것 같으니· 그런 자각으로 약초꾼이 감사를 표하려 할 때 들려왔다·
“주군을 뵙습니다·”
우두커니 서 있던 노인이 잠시 갸웃하며 바라보는가 싶더니 공손히 예를 표했기에 약초꾼의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같은··· 편이었어?’
약초꾼은 울고 싶어졌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아예 버리진 않았다·
죽일 거라면 왜 자신을 살렸겠는가· 주군이란 이는 성정이 온화한 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으로 약초꾼이 올려다봤다가
“히이이이이익!”
거의 숨이 넘어갔다·
은인의 얼굴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이런 무서운 얼굴은 약초꾼으로서는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붉은 빛으로 일렁이는 눈은 더 치명적이었다·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
그럴 만했다·
상대가 악인곡의 혈종마군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사 살려····”
“내가 왜 널 살려주어야 하지?”
그런 이유 같은 건 없을 것 같았기에 약초꾼이 몸만 덜덜 떨었다·
“근데 살려준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좋거든·”
“그 그러신가요?”
“가 봐·”
몸이 놓인 약초꾼이 와다닷 달려갔다·
멀리까지 뛰어갈 때 들려왔다·
“잠깐 멈춰 봐!”
“살려줬는데 왜 존성대명을 안 물어보냐?”
“조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는····”
“그걸 니가 왜 궁금해해!”
약초꾼의 동공은 다시 지진을 일으켰다·
그것도 잠시 이내 은인이 시선을 거뒀기에 약초꾼은 다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때 이미 풍제는 노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명을 기다립니다·”
모습이 달라졌지만 추굉자는 풍제를 주군으로 인식했다· 풍제가 혈종마군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다시금 섭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닷새 전까지의 일은 잊어라·”
“잊겠습니다·”
“네가 겪은 진실은 이렇다· 일비신수와 매향자는 악인곡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악인곡의 면면은 화공신타 혈종마군 흡혈악····”
말이 이어지는 중에 추굉자는 한 번씩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악인곡 화공신타를 따라 읊조리며 되새기기도 했다·
“그리고 환혼진은 빼앗겼지·”
“악인곡의 소행이로군요·”
“그래 그들은 영원한 삶을 꿈꾸고 있다· 회영부를 노리고 있기도 하지· 그 와중 풍제와 암향야 검선 등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짐작됩니다·”
“너는 운이 좋았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겨우 팔 하나만을 잃었을 뿐이고 살아남았다·”
추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말을 마치며 추굉자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어깨 부위를 움켜쥐었다·
“저는····”
그대로 자신의 왼팔을 뜯어냈다·
고통은 느낄 수 없었다· 도리어 뜯어낸 왼팔을 들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팔을 바닥에 내던졌다·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혈·”
“존명·”
명에 따라 추굉자가 스스로 지혈했다·
쏟아져내린 피가 차츰 멎어갔다·
“네가 당한 건 기운의 여파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너도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서둘러 도망쳐라· 악인곡으로부터· 살아남아라· 반드시 복수해라·”
“존명! 반드시 살아남아 복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가 끝나면 넌 나를 잊게 된다·”
“주군의 뜻이라면 기꺼이·”
추굉자가 예를 취한 후 신형을 날렸다·
방향은 서쪽·
각인된 기억이 의식에 깊게 스며들면서 비로소 그는 팔의 통증을 느꼈다·
“으으으으····”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고 두려움에 떨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악인곡이라니! 그런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늘·’
끔찍한 자들이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매향자와 일비신수의 비명을 듣지 않았는가·
환혼진을 발견하고 낄낄거리던 웃음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어! 반드시 복수하고 만다· 반드시·’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이 떠올라 멈출 수 없었다·
‘놈들이 대단하다 해도 회영십존 앞에서는 먼지와 같은 존재들일 터· 악인곡이여· 지금은 맘껏 즐거워하라· 곧 너흰 처참한 몰골이 될 테니· 화공신타 혈종마군 흡혈악 만악귀····’
악인곡을 떠올리며 추굉자는 바삐 신형을 옮겼다·
그 뒤를 만악귀가 된 당명이 뒤쫓았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하북 북서의 어느 동굴·
입구가 막혀 있는 동굴 위로 시안조가 날고 있었다·
잠든 주인이 깨어나지 않으니 시안조도 떠날 수 없었다· 그저 한 번씩
[끼이이이이!]
어서 일어났으면 하고 울었다·
왜 주인은 깨어나지 않지?
왜 주인은 이토록 깊이 잠든 거지?
그런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들여다볼 요량으로 시안조가 동굴을 향해 하강할 때였다·
[야 멍멍이!]
갑자기 곁에서 소리가 들려왔기에 시안조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쫓았다· 바로 옆· 눈동자가 푸른 보석처럼 빛나고 휘황찬란한 깃털색을 하고 있는 새였다·
이건 또 뭐야?
시안조가 달려들어 발톱으로 새의 머리를 찍어갔다·
[으악 무서워! 사람 살려 아니 새 살려!]
새가 기민한 동작으로 벗어나 달아났기에 시안조가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하늘을 날다가 순식간에 숲에 이르렀고 또 강이 나왔다·
빠른 속도에 시안조도 놀랐다·
금방 따라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 또 분명 가까워졌다 싶으면 이내 멀어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다시 숲속으로 파고들어갔기에 따라 들어갔다·
[왜 계속 쫓아오는 거야?]
사람의 말을 하는 새라니·
주인께서 본다면 좋아할 것 같았다·
깨어나게 될 주인에게 선물하자·
그렇게 일 장여 간격을 두고 숲의 나무를 스쳐 지나갈 때였다·
앞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고 바라보니 금두꺼비·
이건 또 뭐지? 그 곁을 빠르게 지나갈 때 금두꺼비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파악!
머리를 가격당한 시안조는 그대로 혼절·
맥없이 땅에 처박혔다·
금섬이 훌쩍 뛰어내려 그 곁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좋다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윽 그윽 극극극극!]
[야 그렇게 세게 때리면 어떡해!]
색관조가 내려와 타박해도 금섬은 상관없었다·
[그윽 극극극!]
[죽은 건 아니라고? 멍청아 당연히 죽이면 안 되지·]
[그으으으윽·]
[금방 일어날 거라고? 금방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하는 소리잖아! 조금 있다가 일어나야 하는데 하루 종일 기절해 있으면 어쩌냐고!]
[그으으으윽!]
금섬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는 색관조가 깔깔거렸다·
[맞다 맞아! 내가 깜박했네· 네가 깨물면 싹 낫고 바로 일어날 테지·]
상처나 외상에는 금섬이 깨물면 금방이었다·
[어쨌든 재밌었다! 까르르르르르르!]
시안조가 혼절했을 때
동굴에 보관된 추영자는 깨어나고 있었다·
“으아아아함~~·”
깨어나며 길게 기지개를 폈다·
그러다 멈칫·
생각난 것이다·
시안조를 통해 보았던 소림에서의 일·
회영십존인 뇌신존과 흑야존이 죽음을 맞이한 광경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기에 숨을 멈췄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생각났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화공신타·
화공신타가 곧 천화서고 대공자·
그 놀라운 무위에 경악하여 도주하고 있었다·
쫓겼다· 분명히 쫓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왜인지 졸음이 쏟아졌고 간신히 기어들어온 곳이 바로 이 동굴·
추영자는 동굴 입구를 바라봤다·
동굴 입구가 무너져내려 막혀 있었다· 사이사이 틈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광경이었기에 갸웃· 자신이 들어올 때는 분명 동굴 입구가 무너져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내 짐작했다·
‘시안조·’
그래 시안조가 날 지키려 동굴을 무너뜨렸구나·
‘어디에 있지?’
곧바로 시안조와의 연결을 시도했지만 실패·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갔나 보군·”
“아니·”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볼 때 보았다·
눈동자 테두리가 금빛으로 회전한 순간
쩌어어어엉!
풍제의 섭혼에 걸려들었다·
“추영자입니다· 주군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림에서 무엇을 보았지?”
“화공신타를 보았습니다· 천화서고 대공자를 보았습니다· 그가 회영십존 중 뇌신존과 흑야존을 멸살했습니다·”
“틀렸다· 화공신타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아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화공신타는 화공신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악인곡의 곡주이기도 하지·”
“악인곡의 곡주·”
“너희를 쫓던 검선과 검존 그 일행들은 악인곡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일부는 큰 부상을 당했고· 악인곡의 면면은····”
그들의 잔혹함은
그리고 그들이 노리고 있는 건·
추영자가 따라 말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 회영부를 노리고 있습니다·”
“너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겨우 살았습니다·”
“허리를 조금 다쳤을 뿐이다· 뜯겨 나갔지·”
추영자가 자신의 허리를 틀어쥐고 뜯어냈다·
추굉자처럼 흡족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서둘러라·”
추영자가 예를 취했을 때 풍제는 동굴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돌벽들이 튕겨 나가며 열린 입구로 추영자가 신형을 날렸다·
‘시안조는?’
이내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올려다보니 바로 머리 위 하늘·
허리에서 고통이 밀려들었고 공포심도 솟아났다·
‘악인곡··· 화공신타···· 화공신타가 악인곡의 곡주였다니· 놈이 회영부와 대적하다니! 서둘러야 해·’
고통을 참고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그런 추영자를 악인곡이 뒤따랐다·
유유히
여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