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여인의 귀곡성은 멈추지 않았다·
귀신의 웃음소리였지만 귀신은 아닐 것이다·
‘악인곡·’
회영팔존 공령존은 그렇게 생각했고
회영십존 환비존도 같은 생각이었다·
‘악인곡···· 한데 기이하군·’
거기에 더해 환비존은 한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웃음소리에 담긴 정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즐거워하는 것도 같고 한이 서린 것도 같으니 기묘할 따름· 즐거움과 한은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공존한다 해도 함께 드러나기는 어렵다·
한데 지금의 귀곡성은 기묘하게도 각각의 정서가 깊고 진하게 우러나오니 대체 어떤 삶을 지나온 여인인지 모를 일이었다·
– 악인곡 중 셋· 넷은 오지 않았군·
환비존은 기감을 확장해 셋을 감지했다·
악인곡은 총 일곱·
그중 셋이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공령존은 고개를 저었다·
– 셋이 아니다·
– 아니라고?
– 넷·
환비존의 낯빛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감지해내지 못한 자가 있다는 건 결코 유쾌한 소식이 아닌 것이다·
그때 공령존이 우수를 들어 올렸다·
벽 쪽으로 뻗은 순간
콰앙!
벽이 날아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 사이로 두 사람은 발길을 옮겨 나아갔다· 그러면서 볼 수 있었다·
장원의 지붕 위마다 서 있는 그림자들·
달빛을 등져 음영이 드리웠지만 공령존과 환비존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잔혹하고 끔찍한 외모·
‘···?’
‘흐음····’
바라보며 환비존이 동요했고 공령존도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외모는 더 흉악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제라면 숫자·
총 일곱·
하나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려 넷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환비존은 등줄기가 서늘해졌고 공령존도 셋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그렇게 마주한 눈길에서
“너는 환비존이란 놈이겠고 넌 뭐하는 새끼냐?”
검존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이곳 반양장에는 서른 명이 넘게 상주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는 환비존이 확실했다·
지난날 태언장에서 풍제의 섭혼을 통해 회영십존의 정보는 낱낱이 얻어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터·
공능과 외모의 특징까지 고스란히 알고 있었다·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중년인·
그리고 적홍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은 회영십존 중 십존인 환비존이 틀림없었다· 환비존의 특징은 마치 환영인 듯 신법이 뛰어난 이·
한데 문제는 환비존 곁에 있는 자였다·
보고 있음에도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독응 이 멍청한 새끼야! 딱 보면 모르겠냐?”
대답은 곁에서 들려왔다·
검선 아니 흡혈악이 혀를 끌끌 차며 아는 체했다·
“뭐? 넌 안다고?”
“답답하네· 작은 키에 점잖게 생긴 얼굴· 딱 봐도 은령존이란 놈이 아니냐!”
바로 소악녀도 동의했다·
“흡혈악 눈썰미가 있군· 제법이야·”
제법이 아니라 틀렸다·
풍제와 당명만은 내심 코웃음 쳤다·
두 사람은 공령존임을 알아보았다·
보자마자였다·
지금 공령존은 개방 방주 곤오신개의 모습·
과거 곤오신개의 참모습을 두 사람은 본 적이 있었기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대형이 곤오를 강가로 끌고 가 깨끗하게 씻어버렸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대형 원래 개방은 이런 놈들입니다·
원래 거지들은 더럽습니다·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대형은 듣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씻고 다녀야 한다면서 열심히도 씻어버렸다·
더러워진 강물이 흘러내려가 강 하류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들의 원성 소리도 들었다·
오늘 빨래는 다 했다며
누가 강에 더러운 오물을 뿌렸냐면서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형도 그 목소리를 듣고는 잠시 난감한 표정이 되었었다·
어쨌든 그 결과 곤오신개는 거의 새로 태어난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때 본 모습이 지금의 모습·
그렇기에 당명은
“멍청한 새끼들아 저건 은령존이 아니라 공령존이다!”
진실을 말했다·
곧바로 반박이 쏟아졌다·
“뭐? 그럼 저놈이 개방 방주라고?”
“만악귀 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드는구나!”
“클클 미친 새끼가 개소리를 잘도 하는군·”
검존과 검선 현음신녀가 반발했다·
공령존이 개방 방주의 몸을 빼앗은 것은 알고 있었고 환혼 후 깨끗하게 씻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지금 보는 광경은 깔끔해도 너무 깔끔한 것이다·
“너흰 태언장에서 뇌극파가 실토한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보군· 어떻게 저놈이 은령존이란 말이냐! 혈종마군 내 말이 틀렸냐!”
“맞아!”
그럼에도 다시 개처럼 반발했다·
은령존이다· 아니다· 공령존이다· 그렇게 서로 대치하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황망해진 건 정작 공령존·
‘이런 미친····’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었다·
누구냐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했다·
공령존이라면 곤오신개이기에 악인곡으로서는 살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악인곡의 다툼을 끝낸 건 화공신타였다·
“조용·”
모두가 한순간 입을 닫았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호오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현이신녀는 내내 웃고 있었고 조용히 하라고 해도 조용히 하지 않았다·
“마희!”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그만 웃어!”
“호오오ㅇㅇ····”
현이신녀가 멈추고는 손을 들어 머릿결을 쓸어넘겼다· 그 모습에 화공신타가 고개를 절레거렸다가 이내 모두에게 전음을 발했다·
– 저놈은 공령존이다·
– 몸을 보전한다· 쓸데가 있을 테니·
곡주가 그렇게 말하니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의미는 이해했다·
쓸데가 있다는 건 다시 환혼시킨다는 의미·
이 와중에도 대공자는 철저히 악인곡의 곡주로서의 언어를 쓰고 있음이다·
또한 대공자가 말하니 의심이 들지 않았다·
공령존인 것도 같았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음이 이어졌다·
– 한 놈이 더 있다·
– ?
– ···?
검선과 검존이 이내 미간을 좁혔다·
그건 현음신녀도 마찬가지·
은밀히 기감을 확장해 주변을 다시금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유의미한 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 신타 한놈이 더 있다니?
– 곡주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화공신타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전음을 발했다·
– 멀리 아주 까마득히 멀리·
그러면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악인곡·”
손끝으로 환비존을 가리켰다·
“공격·”
명이 떨어진 순간 여섯 개의 그림자가 환비존을 향해 쏘아져 갔다·
“클클클!”
“환비존은 내 것이다!”
검선 검존 등은 전력을 다했다·
대공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한 놈이 더 있노라고·
속전속결로 끝내야만 다음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머뭇거리지 않았다·
환비존은 망연자실·
공령존이 화공신타를 향해 나아갈 때 환비존은 그 자리에 굳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쏟아내던 자들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인곡 여섯의 기운은 강대한 것이다· 다가오기 전부터 이미 밀려드는 기운데 전신이 뜯어져 나갈 것 같은 압박감에 혼이 떨릴 지경이었다·
회영구존인 뇌신존과 회영칠존인 흑야존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도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데··· 회영십존인 내가 어떻게?’
먼저 다가온 건 한기·
한기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고 마기도 느껴졌다· 거의 회영일존에 버금가는 마기였다·
‘내가··· 이렇게 죽음을 맞는가·’
그 한편 화공신타를 향해 짓쳐드는 공령존도 죽음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은 악인곡 일곱을 확인한 후로 이미 접었다· 그저 바라는 바라면
‘함께 가자·’
동귀어진·
그것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면 된다·
팔이 떨어져나간다 해도 목을 그어버리면 그만·
자신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타인에게조차 고통을 안겨주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상대가 눈을 뽑아낸다 해도
상대가 자신의 심장을 뽑아낸다 해도 아무렇지 않게 그 앞에서 웃을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다·
한 순간이면 돼!
‘화공신타 나와 함께 가자!’
그건 큰 착각·
화공신타는 함께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의도적으로 왼쪽을 무방비로 비워두고 짓쳐드는 공령존은 왼쪽 어깨가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맥없이 뜯겨나간 순간 목을 그을 생각이었다·
닿지 않아도 된다· 근처에만 이르면 된다·
호신강기가 떠오르겠지만 일점에 모든 기운을 쏟아부으면 뚫지 못할 건 없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무방비의 왼쪽 어깨는 공격을 받지 않았고 화공신타는 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
‘왜지? 뭘 보고 있지? 무슨 자신감이지?’
공령존의 머리로 순간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광경이었다· 자신은 왼쪽을 노출했다면 화공신타는 전신을 모두 노출하고 있었다·
‘이놈도 설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아마 그럴지도·
아니 그게 아니어도 이젠 상관없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죽어!’
공령존이 그으려던 손을 직선으로 뻗어냈다·
단 일격· 모든 힘을 쏟아부어 목을 꿰뚫는다·
그렇게 닿았을 때
출렁!
손에 이상한 감각이 찾아왔다· 마치 물속에 손을 집어넣은 것만 같은 감촉이었다·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실패·
물과 같은데 왜 빼낼 수 없는지 모를 일·
‘이 이게 대체?’
도대체 어떤 경지인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
남은 좌수를 들어 머리를 향해 장력을 발출하려 할 때
척!
손이 잡혔다·
이제 두 손이 모두 붙들린 상태·
그제야 화공신타가 시선을 내려 바라봤다·
“공령존·”
“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지?”
“느끼게 해주마·”
순간 머리 위에 손이 놓였다가 떨어졌다·
교릉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교릉의 일곱 기운이 폭주하면서 공령존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을 모른다고?
그건 교릉을 당해보지 않아서다·
그렇게 말하듯 교릉은 공령존을 구겨갔다·
비명은 또 다른 곳에서도 들려왔다·
“크윽 끄으윽!”
환비존이 널브러진 채 피를 울컥거렸다· 몸에 뚫린 구멍만 서른 개가 넘어 이미 몸 전체가 피범벅이었다·
그런 가운데 후공은 다시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멀리 까마득히 멀리·
밤하늘 높이·
시선은 구름을 지나 그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독수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독수리를 타고 있는 노인의 눈·
노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방금까지 지켜본 광경을 믿을 수 없어서였고
마치 상대의 눈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쇄후존 넌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지?”
화공신타의 도발에
회영육존 쇄후존이 갸웃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