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천공단이 단주를 뵙습니다!
구르르르르르·
그 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산을 다섯 개나 넘은 제금존은 행방을 놓치고 우두커니 섰다·
‘또 다시 기척이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어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소리가 사라진 건 분명 이곳·
이곳에서 멈췄다·
이곳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십여 마리의 새가 보였다·
특이점은 없었다· 무리를 지어 나는 새들과 그 무리를 힘겹게 쫓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보일 뿐·
“머저리 같은 새 같으니·”
제금존은 괜히 뒤처진 새에게 한마디를 건넨 후 이내 지면을 바라봤다· 땅을 파고드는 재주가 있는 놈이 새처럼 날아갈 수 있을 리가·
땅속에서 숨죽이고 있다면?
그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또 그런 것이라면 숨을 어떻게 죽이고 있어도 자신이 찾아내지 못할 리 만무했다·
비릿하게 웃은 제금존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시간을 지체했다· 빠르게 두 놈을 찾아 인질로 삼아야 한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 광경을 색관조가 보았다· 금섬이 들었다·
그 전에 머저리 같다는 말도·
‘까르르 머저리가 대체 누구야·’
색관조는 힘겹게 나는 모습을 보인 덕분에 머저리 같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분은 한없이 좋았다·
‘그윽 극!’
‘뭐? 개새끼라고?’
‘그윽!’
‘두꺼비면 고운 말을 써야지· 일단 더 멀리 따돌리자· 감히 천공단을 건드려? 개자식 내 오늘 혼쭐을 내주겠어!’
‘그윽?’
‘어이쿠 욕을 해버렸네· 까르르르르·’
이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무리를 지어 날던 새들 곁을 스쳐 지나니 광풍이 불어 새들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몇은 잠깐 정신을 잃을 정도·
겨우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온 거야?
이 방향은 안 되겠어·
무리를 이룬 새들이 방향을 바꾸어 날 때 제금존이 튀어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깊이 파고들었고 갈지자 형태로 샅샅이 누비며 탐색했음에도 종적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때 멀리서 들려왔다·
“영감 방금 이상한 소리 못 들었소?”
“할망구야 소리는 무슨 소리야· 노망이 났나·”
“땅이 살짝 흔들렸는데도? 어? 봐! 지금····”
“지 진짜네?”
‘어느새?’
노부부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 제금존은 위치를 가늠했다· 그 주변에 다른 소리는 없었다· 그저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산기슭에 지어진 한적한 모옥이리라· 제금존은 그대로 땅을 뚫고 나아갔다·
잠시 후·
푸욱·
땅을 뚫고 나온 제금존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으으····”
산기슭·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하지만 모옥은 없었다· 노부부도· 아예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새와 두꺼비다·
어느새 구름 위로 날아오른 색관조는 천천히 다음 유인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엔 아이들 목소리를 내볼게·’
‘그으으윽~~·’
‘응? 너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건 주인님께 부탁해보자· 주인님이시라면 방법을 찾아주실지도·’
‘그윽 극극!’
– 왜 안 오냐?
– 진짜 간 건가?
– 안 오는 척하는 것이겠지·
– 맞아· 방심은 금물이야·
오행기 안에서 신투와 지귀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색관조와 금섬이 도왔다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하니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 괜찮겠지?
– 선배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쿠궁 쿠콰앙!
반양장 쪽에서 거대한 충돌음이 연신 들려왔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떠올랐다·
– 너 이 새끼 많이 컸네?
– 뭐래· 원래 컸어!
–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것 좀 봐·
무흔신투가 지귀객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러면서 반양장 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이동한다· 장소를 옮기고 있어·
– 그렇네· 대공자님을 지켜야 하니·
폭음이 들려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서로의 결전이 반양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자칫 반양장이 휩쓸리면 의식을 잃고 있는 대공자님까지 쓸려나갈 것을 우려한 풍제와 검선 등의 의도된 움직임이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공자님은 괜찮겠지?’
‘대공자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후공은 늑대가 되어 달리고 있었다·
여인이 쫓아온다· 다시금 숨바꼭질이었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랐다·
무작정 도주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후공은 차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달리는 길·
늑대의 네 발이 지면을 딛고 지날 때마다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났다· 처음에는 하얀 꽃· 더 나아가면서는 노란 꽃 붉은 꽃도 피어났다·
가히 꽃을 피우는 늑대였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나니 어찌 보면 그 광경은 꽃이 늑대를 뒤쫓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산을 오르고 산을 가로지르고 산을 내려오니 온 산이 꽃으로 뒤덮였고 꽃향기가 진동했다·
‘굉장해·’
그 뒤를 따르며 여인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자신의 세상·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
한데 자신 외의 존재가 자신의 세상에서 창조를 일으키고 있음이니 놀랍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화하고 있어·’
처음에는 단순히 몇 송이 꽃이었다·
또한 하얀 꽃이었다·
한데 이젠 그야말로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울긋불긋 여러 색의 꽃을 피워내고 향기까지 뿜어낸다·
‘왜 꽃이지?’
내게 아부하는 건가?
그 생각이 떠올라 여인은 웃었다·
다른 형태를 시도할 만도 한데 자신을 찾아온 이 젊은 손님은 오로지 꽃만 피워낸다·
이 세계가 그녀의 세계였기에 여인은 마치 마음에 수백만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고 꽃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내가 피워내지 않은 꽃을 보게 되다니·
내가 피워내지 않은 꽃향기를 맡게 되다니!
늑대의 발길은 이제 번화가로 향했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어났다·
“늑대야!”
“꽃이 피네?”
“왜 꽃이 피어? 아니 꽃이 늑대를 쫓아가는 것 같은데?”
“와아 이 향기· 너무 좋아!”
주루에서 반점에서 사람들이 나와 길에 핀 꽃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 모든 사람은 그녀가 언젠가 만난 사람들·
그 어느 땐가 보았던 사람들·
이곳에서 말하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엄밀히는 그들 또한 그녀의 의식에서 만들어진 것· 모두가 그녀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인은 감탄도 했지만 욕심도 생겼다·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아! 후후 가둬볼까?’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길다란 쇠막대기들이 늑대를 향해 쏟아져내렸다·
푸욱 푸욱! 푹!
쇄도한 쇠막대기들이 늑대를 감싸는 형태로 꽂히면서 쇠창살이 되었고 이내 늑대는 쇠창살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차차창 차장!
창살의 천장도 순식간에 쇠막대기로 촘촘히 가려졌다·
한적한 들판·
늑대는 쇠창살에 갇혀 천천히 다가오는 여인을 바라봤다·
[선배·]
새가 되었을 때와는 달랐다·
늑대가 된 지금 후공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여인이 순간 갸웃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늑대가 말을 하다니 기이한 일이 다 있군· 나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너의 세계는 특이하구나·”
[그보다 서운하군요·]
“뭐가 서운할까?”
[저는 선물을 드린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마음에 들어서 그랬다면 답이 되려나?”
[아····]
후공은 바로 이해했다·
꽃 선물로 마음을 돌려놓으려 했는데 도리어 여인은 더 붙잡아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모양·
엉뚱한 짓을 했다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앞발 하나를 들어 긁으려다 균형을 잃고 몸만 휘청였다·
[아 손이 없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에는 여인이 박장대소했다·
“아이야 넌 정말 재밌구나·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곳에서 1년· 1년이 되면 널 보내주겠다· 밖의 세상에선 고작 하루가 지나는 것이니 너도 수긍할 만하겠지?”
[1년은 너무 긴 세월입니다·]
“하루인데도?”
[태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제가 많이 양보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사흘· 그 이상은 안 됩니다·]
“후후 양보라니· 양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 텐데···· 넌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양보입니다·]
“그래? 거기에서 나올 수는 있고?”
[이 쇠창살 말입니까?]
순간 여인의 눈이 커졌다·
쇠창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주르륵 쇳물이 되어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는 건 너무 큰 충격이었다·
“어 어떻게?”
[제가 매순간 성장하고 있다는 걸 보셨을 텐데요?]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쇠창살도 녹아내려 늑대의 몸에 닿아 푸스스 털이 타들어갔지만 늑대는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노려보기만 했다·
이미 보긴 했다·
하얀 꽃에서 울긋불긋 여러 꽃들로·
향기로도·
하지만 이 쇠창살은 자신이 작정하고 만든 것이었다·
자신의 의식을 침범해 교란시키고 오히려 뒤덮었다는 점에서 그녀가 받은 충격은 간단치 않았다·
그것도 잠시
쇠창살이 사라지고 그 안의 늑대의 모습이 변해갔다·
이윽고 젊은 서생의 모습이 되었기에 여인은 진정 할 말을 잃었다·
이제 확실해졌다·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완전히 독립적인 의식을 갖춘 데다 도리어 자신이 영향을 받는 지경·
“너는··· 누구지?”
후공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여인이 시선을 따라갔다가 보았다·
거짓말처럼 네 줄기 자줏빛 광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아앙!
울부짖으며 주인의 몸 곁을 맴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를 이어 여러 인영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야호오오오오오!”
“우리가 간다!”
“두목이 누구냐고?”
“형님이 누구냐고 물은 거야?”
“하하하하하하하 기억해· 드높은 이름·”
“천!”
“공!”
“단!”
“주!”
삐리리리 삐리리삐~~~~·
천공단이었다·
금적자와 항마삼협 무산쌍웅 낭인왕이 먼저 내려왔고 바로 뒤따라 천공단의 젊은 세대가 지면에 착지했다·
모두가 천공단주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천공단이 단주를 뵙습니다!”
이어 여인을 향해 돌아섰다·
“누나는 누구야? 와아 엄청난 미인이야· 난 소천개라고 해·”
“험험 난 은앙개올시다· 만나서 반갑····”
“야이 거지새끼들아 미모에 홀리면 어떡해! 이제 싸울 판인데!”
무산쌍웅이 호되게 야단친 후 여인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이! 거기 너· 왜 우리 형님께 시비냐?”
“죽고 싶냐?”
항마삼협과 낭인왕도 가세했다·
“후후 요즘 좀 조용하다 싶었지·”
“꼭 심심하다싶으면 시비 터는 놈들이 있더라·”
“어이 여자! 누군데 감히 형님께 시비냐? 이름이 뭐야? 말을 해! 말을!”
그 말에 곁에 선 남궁연과 언교운 등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근데 여기 너무 근사한 곳이야·]
[그러니까·]
[응?]
색관조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소리가 등 위에서 들려온 것이다·
[금섬아 너 말하는 거야?]
“우리 두꺼비가 말을 한다고?”
“우와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잔치 벌여야 하는 것 아니야?”
모두 놀라 금섬을 바라봤다·
금섬이 머리를 긁적이다 눈웃음쳤다·
[독학했어요·]
“하하하하하하하 천재 두꺼비였어?”
“으하하하 골때리네·”
그 말에는 여인도 웃었다·
그리고 이제 여인은 온전히 이해하기도 했다·
자신만 창조하는 건 아니었다·
천공단주·
이 청년도 상상하는 모든 걸 불러올 수 있었다·
이곳이 자신의 공간이란 점에서 더 대단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이 시대에 있을 줄이야·
스승님과 사형 그리고 사매 외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정겹다·
나타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겹다·
심지어 새와 두꺼비까지·
천공단주는 바깥세상에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겠지?
‘부러운걸·’
여인은 자신의 세계에 초대한 첫 손님이 이처럼 대단한 사람이어서 기뻐 한참이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