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화· 만상은혼로·
일행이 위층으로 올라섰을 때
마주했다·
탁 트인 넓은 공간·
천장은 높았고 열두 개의 기둥이 이곳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쿠구구궁····
바닥이 흔들렸다·
돌가루가 기름이 튀듯 튀어오르고 천장과 벽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 사이사이로 금빛이 흘렀다· 금빛 광채는 더 찬란해지면서 아예 하얗게 보일 정도로 변해갔다·
“역시 비슷하군·”
당명이 혼잣말하듯 뇌까렸다·
호수 아래 단혼각에서 마주했던 정십육면체의 거울진을 떠올렸다· 그때와 거의 흡사한 것이다·
“그럼 이제 거울이 나타나는 것인가?”
검선이 동조했다·
하지만 현음신녀는 생각이 달랐다·
“아예 똑같다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태평한 생각이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것이라면 천롱삭 안쪽 단혼각주 주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지 않을 테니·
스승은 온화하지만
제자인 단예령은 지독하다·
모두가 단예령의 잔악함을 떠올릴 때 몸이 돌았다·
아니 몸이 돈 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뒤바뀌었다· 천장이 아래로 휘어져 내려오고 딛고 있는 바닥이 뒤집혀 위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쩌어어어엉!
기음과 함께 눈부신 백색 광채가 사방에서 폭사했다·
조각조각 빛의 파편들이 쏟아져 왔기에 각자는 신형을 날려 흩어졌다·
그 움직임도 빛이었다·
각자가 딛고 선 바닥에는 빛의 파편이 꽂히면서 바닥이 뚫리고 허물어지기도 했다·
제각각 신형을 바로 했을 땐 혼자였다·
풍제도 당명도·
검선과 검존도· 현음신녀도 현이신녀도·
그렇게 각자가 혼자가 된 공간은 어느샌가 변해 있었다·
놀랍게도 주루·
천롱삭을 두른 주란이 선 장소는 주루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루의 이 층 창가에 서 있었다·
창밖은 화창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평온한 풍경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도 있었고 허리가 굽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노인도 보였다· 마차도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기도 했다·
“손님·”
갑작스런 목소리에 주란이 돌아섰다·
점소이가 빙긋 웃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무엇이 있지?”
“참수가 있고 사지절단도 있습니다· 맛이 깔끔합니다· 손님의 내장을 꺼내 요리를 해드릴 수 있지만 뒷맛이 그리 좋지 않아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을 원하신다면 독을 이용하시면 좋습니다· 그럼 매우 천천히 죽게 됩니다· 물론 고통은 극심합니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말하는 내내 점소이는 해맑게 웃었다·
해맑게 어떤 죽음을 주문할 것이냐 물어온다·
무엇이든 극단은 공포스럽다·
단것도 하염없이 먹게 되면 고통스러워진다·
짜고 매운 것보다 더한 괴로움이 된다·
점소이의 미소는 그 정도로 달았다·
치사량을 넘을 정도로 단 미소였다·
그 해맑은 미소에서 주란은 제자를 떠올렸다·
예령 과연 너로구나·
너를 보는 것 같구나·
만상은혼로의 묘용은 제자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배반하기 직전까지 표정을 진심을 숨겼던 제자의 모습이 이랬다·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미소 안쪽에 머물고 있던 건 번뜩이는 칼날·
결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칼날을 보았을 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또한 칼날이 잊히지 않아 괴로웠고
한동안 그 미소도 잊을 수 없어 괴로웠다·
그걸 다시 본다·
점소이가 웃음에서 점소이 너머 주루 안에 자리하고 있는 손님들의 미소에서·
모두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싫다면?”
“헤헤 손님· 반드시 주문하셔야 합니다·”
“그럼 너의 죽음으로 하지·”
그 말에 점소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색한 건 점소이만이 아니었다·
점소이 너머 주루 이 층에 자리하고 있는 손님들의 얼굴에도 표정이 사라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바깥쪽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죽음으로 하지·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길을 걷던 행인들도 굳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루의 이 층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란은 괴로워졌다·
이 표정들을 보는 건 괴롭다·
웃음기를 거둔 제자의 본색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주문해·”
점소이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을 주루 안 손님들이 따라 했다·
표정도 없이 입술만 달싹였다·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였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들도 창밖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 말을 멈추지 않았다·
주문해· 주문해· 주문해!
안에서도 밖에서도 입을 맞춰 말하니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그 소리가 울렸다·
주란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진법과 닮은 것이다·
이건 십육면체의 거울 진법과 같았다·
다르기도 했다·
다른 점이라면 거울 진법은 모습을 비추는데 이 진법은 마음을 비춘다·
마음의 상처를 비추고 마음의 고통을 모든 방향에서 비추고 있었다·
점소이가 한 걸음 다가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문····”
스악!
점소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천롱삭 한줄기가 점소이의 목을 스치면서 점소이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툭·
떼구르르르·
점소이의 머리가 굴렀다·
떨어져 나간 채로 점소이가 웃었다·
입을 열었다·
“주문하게 될 거야·”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르릉 스릉·
주루 안의 손님들이 도검을 빼들고 짓쳐들었다·
“주문을 해야 합니다·”
“주문을 도와주겠습니다·”
“주문을 하게 될 겁니다·”
창문으로도 인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아이도 느리게 걷던 노인도 마차 안에서 솟구쳐오르기도 했다·
“하하 주문해!”
수십 줄기의 천롱삭이 뻗어가고 휘감아갔다·
한 줄기에 십여 명이 갈려 나갔고 두 줄기에 스무 명이 절단되었다·
그래도 끝이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몰려와 주문을 요구했다·
“주문해!”
주문의 말과 주검이 난무하는 가운데 주란은 하염없이 빠져들어 갔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한줄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미쳐버렸을 것이다·
당명도 거울과 마주했다·
마음속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었다·
밤이었고 숲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가 난 건 저만치 앞쪽에 있는 동굴이었다·
‘환청이야·’
목소리는 손자들이었다·
당초 은소소 당청 당령 그리고····
이건 마음의 공포를 비추는 거울·
자신의 약점과 마주하고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은 이는 두려운 것도 많은 법·
재물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것이 아끼는 사람이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라면·
“살려주세요! 으아아아아아악!”
‘환상이다·’
당명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소중한 목소리였고 기꺼워하는 목소리여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잠재울 수 없었다·
나는 꿈을 꾸었던가·
운부산에서 대형과 함께한 것은 꿈이었을까·
아니면 이것이 꿈인가?
‘환상이다! 이는 만상은혼로의 작용일 뿐·’
그런데 왜 멈출 수 없는가·
왜 당장 잃을 것처럼 두려운가·
모든 것이 현실 같고 때를 놓치면 손자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떠나지 않아 당명은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너의 손자들은 죽는다·”
동굴로부터 끝도 없이 복면의 검수들이 쏟아져나와 떠들고 있는 소리 때문에
생생한 손자들의 절규 때문에
숲을 스쳐 가는 바람과 풀벌레 울음소리 때문에
당명은 멈추지 못했다·
복면인들을 죽이고 또 죽여갔다·
‘나는 꿈을 꾸었던가?’
현실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휘말린 당명에게도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이신녀는 빙벽 안에 있었다·
다시 갇혔다·
70년을 빙벽 안에서 보낸 그 세월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
‘왜···? 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순간은 빙벽의 세월·
빙벽에서 나온 후에도 한 번씩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나온 것이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맞아준 빙궁의 환대를 잊을 수 없어서·
빙벽 너머에서 허공에 떠오른 채 말을 걸어온 천화서고 대공자의 전음이 실재라는 것이 가끔 믿어지지 않았기에·
현이신녀 얼마나 외로웠습니까·
그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터졌었다·
빙벽을 녹여내던 대공자의 푸른 불꽃을 잊을 수 없고 현음을 깨우치던 모습도 생생한데····
그 모든 게 꿈이었다고?
‘아니야!’
긴 꿈을 꾼 것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 빙벽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라보는 눈빛이 있었다·
북해빙궁의 어린 제자들 셋이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깨어나면 어쩌지?”
“끔찍한 소리 마·”
“그래 현이신녀가 깨어나는 날엔 빙궁은 그날로 끝이야·”
“으으으 무서워·”
현이는 몸이 차갑게 식었다·
‘꿈이었구나·’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였어·
내가 꾼 꿈이었어·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인물도 현음의 반로환동도·
천공단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래 천공단 같은 사람들이 존재할 리 없지·
빙궁이 큰 목소리로 자신을 맞이했던 밤도····
나의 소망이었을 뿐이로구나·
현이는 두려움의 크기만큼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현이신녀에게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음은 추락했다·
그녀가 결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날은 반로환동을 맞이했던 밤이었고 기억을 잃었던 밤이었다·
풍덩·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모 몸이····
숨을··· 숨을 쉴 수가 없어·
사저를 만나야 해·
사저의 본심은 달라·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사저를 사저를····
물속에서 꿈틀거렸다·
진기가 뒤틀려 다룰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나는····
그때 현음의 귓가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현음신녀·
‘이 목소리는?’
풍제도 들었다·
검선과 검존도·
단혼각의 삼 호법 섬악도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가 들었다·
– 풍제 나는 살아 있다·
엄청난 인파가 모여든 무림맹에서 대형의 죽음에 망연자실하고 있던 풍제였다· 모여든 인파가 자신을 살인자로 지목해 달려들었기에 상대하고 있었다·
잠시 긴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대형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꿈에서 환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나타나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말해 온다·
– 풍제 나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되어 너와 함께하고 있다·
주변 모두는 같은 말만 할 뿐인데
“풍제가 살인자다!”
다른 목소리가 대형의 목소리가 일깨워 왔기에 비로소 거울에서 벗어났다·
그때 후공은 들판에 있었다·
노랗고 하얀 꽃이 자라난 곳을 그저 거닐고 있었다·
꽃과 꽃에 나비와 벌이 옮겨 다녔다·
바람은 선선했다·
그곳을 후공은 천천히 걸었다·
그 곁에 아우가 있었다·
제갈유가 함께 걸었다·
“널 다시 보니 좋구나·”
“대형 저도 좋습니다·”
제갈유가 웃었고 후공도 웃었다·
후공의 거울 속에서 제갈유는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