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아홉 개의 재앙, 네 개의 행운· (2)
그때 주란은 닿아 있었다·
아니 닿아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열린 천장에서 쏟아지는 액체는 가히 폭포수·
삽시간에 무릎이 잠겼고 허리가 잠겼다·
머리 위까지 차올라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녹지 않아·’
일으켰던 호신강기는 무용지물·
어떤 물질인지 강기를 지나 스며들었다·
그러나 천롱삭은 촘촘히 당겨졌고 침투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천롱삭이 금을···?’
몸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의 몸 안에 깃든 오행 중 금의 기운이 강대하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놀란 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천롱삭이 원하고 있었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천롱삭이 금빛 광채로 빛나기 시작했다·
주란은 그 광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기이한 액체가 줄어든다·
천롱삭이 먹어치운다·
소멸시키고 있어!
금의 기운은 점점 더 강대해진다·
그렇기에 염려되기도 했다·
‘후공····’
후공은 이 산(酸)을 견뎌낼 수 있을까?
후공은 견뎌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금극이 쏟아져내리는 산을 모조리 분해하고 먹어치우는 중·
주란이 오행초를 통해 단번에 오행을 이루고 균형을 갖췄다면 후공이 취한 오행은 독립적이며 형태를 갖췄다·
단지 목(木)을 취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 오행의 목이 없어 생기는 불균형은 삼악이 붙들어 조화를 맞춰주고 있었다·
그러니 주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몸이 잠길 틈이 없었다·
쏟아져내린 액체는 바닥에 닿지도 못했다·
닿을 기회조차 없이 기화되었고 그 수증기를 금극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금극의 작용은 거의 광기였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이주··· 삼주····’
창안해 둔 금극의 공법이 결국 극의에 이르렀는데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먹어치울 액체도 없어졌지만 금극은 끝을 모르고 나아갔다·
그러던 한순간
스아아아아아아악!
후공은 이런 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스며든다· 스며든다·
내면 깊은 곳으로·
손을 내려다보니 두 손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후공의 눈빛도 황금 광채로 번쩍였다·
그 광채가 천천히 줄어들면서 후공은 의식의 깊이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각인·’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금극이 마음에 새겨졌고 의식에 새겨졌다·
영혼에 새겨진 것도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오행의 극의·
만약 다시 환혼을 하여 몸이 달라진다 해도 혼에 새겨진 금극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환혼할 일은 없다·
그건 후공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궁·
천장이 닫혔고 석실은 다시 이동했다·
이번에는 우측으로 이동·
그러다 다시 멈췄다·
좌측 벽면이 열리면서 검붉은 벌레들이 쏟아져나왔다·
끼리끼리끼리·
기이한 소리를 냈고 작았다·
후공은 갸웃했다· 자세히 보니 거미들이었다·
거미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천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침음성을 끝맺기도 전에 후공은 거미들에 뒤덮였다·
환명을 띄울 새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신검들이 날아갈 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후공은 저절로 떠오르는 호신강기조차 두르지 않았다·
그저 두었다·
이번엔 화극이었고 삼악이었다·
삼악이 미쳐 날뛰었기에 그대로 두었고 그런 삼악보다 화극은 더 빨랐다·
이 거미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보았기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 또한 선물이라는 것·
선물이 쉬질 않는다·
거미들의 몸이 부풀었다·
검붉은색이 아예 붉은색으로 변해가더니 여덟 개의 다리로 꽉 붙들어 달라붙은 채 입을 벌려갔다·
콰악!
일제히 입을 박고 물어뜯었다·
후공은 몸을 내어준 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를 흡수하는 거미라니·’
진기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었기에 정녕 기괴한 거미가 아닐 수 없었다·
강호에는 흡성대법이 있어 타인의 진기를 흡수하는 이가 있다·
천금서고의 선우진이 그런 경우·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지만 서두르고 싶은 자는 위험을 무릅쓰게 되어 있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한데 거미를 통해 진기를 흡수하다니·
만약 이 거미를 다룰 수만 있다면 꽤 근사하고 유용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후공은 기회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거미들이 진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을까· 거미들이 치른 댓가는 처절했다· 조금 뿐이었는데 거미들은 빨려 나갔다· 화극이 덮쳐 거미들의 기운을 흡수했고 그에 뒤질세라 삼악은 거미들의 체액을 흡수했다·
벌레 충· 혹은 기이한 독·
삼악이 그런 식의 이름이 붙은 것들에 광분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한데 화극은 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짐작가는 건 있었다·
이 거미들이 오행 중 목(木)의 성질을 띤 것이리라·
목생화(木生火)· 목은 화를 생한다·
그 결과
우우우우우우웅·
이미 극의에 닿은 화극이 금극과 같아졌다·
각인·
의식과 혼에 각인을 이루어갔다·
동시에 삼악이 호응하니 후공은 솟구쳐오르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중(中)·’
이미 현경을 뛰어넘었던 후공은 생사경의 중을 돌파했고 생사경의 극을 향해 나아갔다·
은혼로의 아홉 겁화는 실은 준비된 아홉 가지의 선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다음으로 찾아온 건 실망스러웠다·
기운이며 체액까지 모조리 빨린 거미들이 먼지처럼 흩어져나간 후 맞이한 네 번째 겁화는 조여듦이었다·
쿠르르 쿠르르르·
천장이 낮아지고 바닥은 높아졌다·
사방의 벽도 밀려들며 다가왔다·
후공은 밀려드는 한쪽 벽에 손을 가져갔다·
기운을 끌어올려 가볍게 밀었다가 이내 기운을 거둬들였다· 아직은 무리· 석벽의 반탄은 유효하다·
이제 천장은 머리를 눌러왔다·
벽은 더 가까워져 두 팔을 벌리면 좌우 벽이 닿을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압착되는 건 시간 문제·
주란도 같을까?
그럴 테지·
하지만 천롱삭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뚜드득 뚜드드드드득·
후공은 교릉을 펼쳤다· 삽시간에 크기가 작아졌다· 옷은 커졌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면서 다섯 살 정도 어린아이의 크기가 되었고 더 좁아졌기에 거기에서 더 작아져야만 했다·
뼈가 뒤틀리고 살은 뭉쳐갔다· 내부 장기들도 축소되어갔다· 심장도 작아졌다· 신체를 완벽히 통제하며 움츠러들며 점점 더 작아져 작은 항아리 크기가 되었을 때였다·
뚜득 두득·
‘···?’
이미 줄어들면서 모습은 바뀌었다·
화공신타가 작아진 격이었다· 한데 작아진 손이 통제를 벗어나 뒤틀리고 있었다·
비록 작아졌다곤 해도 당장에라도 뼈가 튀어나올 것 같은 형태였는데 고운 손이 되었다· 그런 변화는 손만이 아니었다· 다리가 어깨가 머리가 뒤틀리면서 변해갔다·
등이 굽지 않고 다리도 올곧다·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흉악한 모습에서 벗어난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왜?’
그런 의문과 함께 후공에게 답이 들려왔다·
토극이었다·
신체가 극단적으로 작아진 가운데 토극이 발현하며 균형을 잡으려 하면서 증폭하고 있었다·
매만지듯· 가다듬듯·
흐트러짐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듯 흩어진 진흙을 다시 빚어가듯 토극이 몸의 조화를 강요하면서 매만지고 있었다·
석실의 조여듬은 작은 상자 크기로 조여들었고 후공은 조금 더 작아졌기에 그것이 토극을 더 자극했다·
후공으로선 뜻밖의 행운이었다·
애초 토극의 공법은 창안하지도 않았기에 별 기대가 없었는데 지금의 자극이 토극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금극이 새겨져 간 길·
화극이 각인된 길·
그 길을 토극이 나아가고 있었다·
후공은 더 작아졌다·
작은 항아리 크기에서 다시 절반의 크기·
그렇게 됐을 때
쿠궁· 석실의 밀려듦은 멈췄다·
하지만 토극은 멈추지 않았다·
나아가고 나아가면서 영혼에 새겨져가니 후공은 작아진 채로 기운이 폭주했다·
붉은 토양이 빛나듯 작아진 후공의 전신에서 그와 같은 광채가 뿜어졌다·
석실은 다시 제 위치로 밀려나갔다·
그에 따라 후공의 신체도 커져갔다· 거칠게 뒤틀렸지만 온전히 제 체격을 찾았을 때까지 흉악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후공이 오행 중 세 번째 각인을 이루었을 때····
“왜···· 왜···?”
단예령은 당혹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은혼의 아홉 재앙 중 네 번째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운부산은 사형을 위한 장소였다·
세상사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천 년의 약속이 값진 만큼 그만한 시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준비한 장소가 이곳 운부산이었다·
오랜 시간 준비했고
무엇이든 막아내고 싶어 만든 것이 만상은혼로·
그 누구도 내게 닿을 수 없다·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한편으로 즐거운 상상도 했었다·
사형이 올 때 사형에게도 시험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사형 나를 갖고 싶다면···
나를 만나고 싶거든 만상은혼로를 돌파해보세요·
강함을 제게 보여주세요·
제가 우러러 볼 수 있는 사람인지 보고 싶어요·
물론 사형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겠죠·
그런 말을 하는 상상을 했었다·
한데 돌파하고 있는 이가 사형이 아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네 번째·
두 번째에서 끝날 것이라고 보았다·
그 겁화가 난파산(亂波酸)이었기 때문이었다·
화골산은 결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난파산에 비하면 화골산은 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쇠를 순식간에 녹이고 진기조차 관통하는 것이 난파산·
오백 년 전 난충(亂蟲)이라 불리는 독충을 길러 뽑아낸 충액이었다·
나의 제자는 버틸지도·
천롱삭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생각을 했는데 천화서고 대공자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왜··· 왜지···?’
왜 강해지고 있는 것인가·
경악스러움은 그 부분이었다·
난파산을 지나면서 강대해졌고 흡성지주를 지나면서는 더 강해졌다·
줄어드는 석실에선 반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제자는 간신히 버텨내고 있음을 감지했는데 천화서고 대공자는 저항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또 강대해졌다·
그렇기에 묻게 된다·
괴물이었다·
이 시대의 괴물이라면 후공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애송이에 불과한 천화서고 대공자가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단예령은 입술을 매만졌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입술이 바짝 마른 것을 느낄 수 있어 언짢았고 매만지는 손끝이 떨고 있는 것도 언짢았다·
‘사형 서둘러주세요· 만약 늦는다면 사형은 저를 잃을 수도 있어요· 그걸 바라진 않겠죠? 우리가 천 년을 기다렸는데··· 온갖 시련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는데 말이에요·’
그때는 다섯 번째 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후공은 이번에도 기대했다·
‘단예령 다음 선물은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