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화· 세상이 멈춘 밤·
슈아아아악!
바람이 찢어진다· 공간이 갈라진다·
그렇게 엽불은 가공할 속도로 나아갔다·
발 아래는 산이었다가 순식간에 멀어졌고 큰 강을 건너뛰었다·
도심이었다가 어느샌가 또 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기도 했다·
엽불의 눈에는 그 모든 지나는 풍경이 뚜렷히 보였지만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찌된 일인지 현실의 광경과 겹쳐 보이는 광경·
대체 왜 공동묘지가 보이지?
왜 나와 있는 게 시체들 같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풍경이 달라진 터·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광경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니
쿠웅 쿵·
길가에 멈춰 선 이들 중 태반이 현기증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휘청이다 주저앉았다·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식탁을 붙잡아야 했고 침상에서 막 몸을 일으킨 자들은 다시 침상으로 쓰러졌다·
어지러움이 극심했다·
멀미가 날 지경이라 구토를 하는 이도 속출했다·
공유된 시선·
아기들도 다를 건 없었다· 머리가 빙빙 돌고 어느 땐가는 아래로 푹 꺼지듯 추락하는 느낌에 또 어느 땐가는 솟구쳐오르는 느낌을 받아 울음을 터뜨렸다·
분명 엄마의 품에 안겨 있음에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아기들을 어머니들이 품에 꼭 끌어안았다· 어서 이 기괴한 상황이 끝나길 바랐다·
“사형 나만 어지러운 거 아니지?”
섬서 안강의 천공단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래· 돌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고!”
어지러움에 몸을 흔들어대는 소천개를 은앙개가 어깨를 감싸며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
“이동하고 있어···· 이게 사람의 움직임인가?”
항마삼협은 혀를 내둘렀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이동 중이란 건 알 수 있었다· 풍경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는 명확한 것이다·
“이 정도면 아예 신(神)인데?”
“만약 신이라면 귀신일 테지·”
무산쌍웅의 말을 금적자가 받았다·
천공단 모두가 공감했다·
그렇다· 귀신!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었다·
음산함이 말해주고 있었다·
귀신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저 느껴지는 이 사악함은 귀신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어둠에 있는 것만으로 몸이 떨릴 지경이고 모두가 같은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에는 소름이 돋는 것이다·
그건 이 밤에 놓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 누구도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멈춘 밤이었다·
천축까지·
동쪽 너머 바다까지·
모두가 두려움에 젖은 밤·
예외는 있었다·
단예령이었다·
보호막을 치듯 서른 개가 넘는 석실의 천장과 바닥 벽들을 끌어다 자신의 석실에 겹겹이 포개 방패 삼고 있던 그녀만은 환한 웃음꽃을 피워냈다·
“사형···· 듣고 있었던 거로군요· 나를 위해 시간을 당겨오신 것이로군요·”
웃으며 울었다·
그녀는 느껴지는 것이다·
사형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느낄 수 있어 전율이 일 정도였다·
천 년 만의 재회이건만 사형은 자신을 향해 따뜻한 말조차 걸어오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던 거죠? 그만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테죠? 사형이 가장 아끼는 저를 해치려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울분을 금치 못하셨을 테죠? 사형 이해해요· 그러니 사형 어서 오세요· 우리의 만남을 우리의 사랑을 훼방 놓는 천화서고 대공자를 죽여요· 그리고 우리 함께 웃어요·”
그런 한편
천롱삭을 두른 주란은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사형·’
사형은 없다·
사형은 잡아먹혔다·
귀기에 대해 연구하면서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형이 귀기를 흡입한 것이 아니다·
귀기가 사형을 삼켜 숙주 삼은 채 그 존재를 드러냈을 뿐이다·
그런 사형을 막을 수 있을까·
만약 사형이 본연의 자신을 찾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사형과 환혼해야 한다·
환혼하여 사형을 천롱삭에 가둔다·
천롱삭은 사악한 기운을 남김없이 말살할 것이다·
‘환혼은 실상··· 지금을 위한 것이었을까·’
주란은 말로 할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혔다·
사형을 다시 만나기 위해 창안했던 환혼대법이었는데 깨닫고 보니 사형을 멸하기 위한 안배가 된 것이다·
‘사형과 환혼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도 귀기에 삼켜지게 되는 걸까?
귀기에 잠식당하기 전에 난 죽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반드시 죽어야 한다·
환혼 후 귀기에 잠식당한다면 환혼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숙주만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이 세상의 악이 사형이 아닌 자신이 될 뿐이었다·
– 단혼각주·
들려온 전음에 주란이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니 후공은 더 말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아래 쪽으로 향하니 주란이 곧바로 뒤따랐다·
목표는 달라졌다·
엽불이 나타난 이상 단예령을 잡는 건 의미 없는 일·
운부산을 빠져나가 일행과 합류했다·
“어!”
“대공자 괜찮나요?”
일행이 반기는 소리에 후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내 거리를 가늠했다·
후공도 엽불이 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시선을 통해 드러난 주변의 풍광을 보고 위치를 짐작하는 한편 의식을 넓게 퍼뜨려 재확인했다·
‘곧·’
거리는 멀었지만 속도가 놀라웠다·
이대로면 고작 열 번의 호흡 만에 도착할 터·
아니 그보다 더 빠를지도·
“모두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풍제를 보았고 현이를 보았다·
반발은 없었다·
다들 느껴지는 것이다·
단예령을 상대할 때도 쉽지 않았는데 엽불은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
벌써 바람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샌가 음산함이 시시각각 짙어지고 있기도 했다·
모두가 명을 받들 듯 신형을 날려 멀어졌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전음조차 발하지 않았다·
그 침묵의 물러섬이 도리어 그 어떤 간절한 염원보다 더 큰 응원이었다·
후공 곁에 남은 건 주란뿐·
‘다섯·’
주란이 한 방향을 응시하며 숫자를 세었다·
이제 곧 보게 된다·
사형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기대는 엽불도 같았다·
‘넷·’
희미한 미소와 함께 더 맹렬히 나아갔다·
자신의 귀기가 말하고 있었다·
머리에 소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위협이 되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쉴 새 없이 외친다·
그를 죽여! 놈을 죽여! 가장 먼저!
놈부터 없앤다· 놈을 죽여야 한다!
그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찌 젊은 나이에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무인이 된 것인가· 모를 일이다· 관심 없다· 분명한 건 놈이 천하제일인이란 것· 또한 약점이 많다는 것·
냉정함· 선함· 따사로운 마음· 자애로움·
놈은 지키는 자· 지키는 자· 지킬 것이 많은 자·
아픔을 아는 자· 그리움을 아는 자·
약점이 많다·
지키는 자는 약점이 많다·
그러니 쉽게 끝날 것이다·
어느새 지척·
‘일어나라·’
마음으로 부른 순간
발 아래 땅에서 시체들이 튀어나왔다·
“산 자의··· 영광이시여····”
“귀황(鬼皇)이시여···!”
가히 수천 구의 시체들이 튀어나와 뒤따랐다·
노인이 있었고 여인도 있었으며 어린 아이도 있었다· 또 어떤 시체는 너무 오래되어 뼈다귀로 튀어나왔다가 열 걸음도 딛지 못하고 다리가 부서져내렸다·
그래도 나아갔다·
두 팔의 뼈로 땅을 기면서 그 뒤를 쫓으려 했다·
“귀황이시여···· 반드시 따라····”
그러다 턱의 뼈가 빠져 말을 잇지 못하였음에도 안간힘을 쓰며 따라갔다·
시신들은 계속 늘었다·
동쪽에서 서쪽에서 앞쪽에서도 튀어나와 귀황을 반겼고 귀황이 스쳐 지나는 길에 동행했다·
그 광경을 모두가 보았다·
엽불의 시선에 들어찼기에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었기에 온 세상이 경악에 차 눈을 부릅떴고 입을 틀어막았다·
시체들이 가히 수십만 구·
해골이 말을 하고 뼈가 뛰는 것이다· 외다리로 뛰는 시체도 보여 몸을 떨었다·
이거 꿈이지?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이럴 순 없는 거잖아!
어떻게 봐도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꿈을 꿀 수 있을 리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곁에 자리한 가족이 보고 친구가 보고 있으니 꿈이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 할 것 없이 각자가 선 곳에서 새파랗게 질려갔다·
‘거창하군·’
후공도 보고 있었다·
놀랍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보단 엽불과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는 현실이 언짢았다·
스아아아악!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엽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채로 엽불은 자신의 붉은 눈에 한 사람을 담았다·
“천화서고 대공자·”
사이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엽불이 보았기에 모든 세상도 보았다· 들었다·
“천화서고 형님!”
사천의 은소소와 당초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안강의 천공단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단주···!”
“두목!”
“형님!”
“형아!”
제갈혜도 거칠게 숨을 삼켰다·
‘배 백부님····’
또 화산파가 보았고 무당파가 보았다·
마교 소교주 도운연이 숨을 토해내듯 외쳤다·
“대공자 형님!”
남궁세가가 보았고 십대 세가도 보았다·
녹림이 장강수로채도 보았다· 동정용왕이 놀라 소리쳤고 수로채의 모두가 숨쉬는 것도 잊고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왜··· 왜····”
천화서고 노가주도 볼 수 있었다·
“왜 큰아이가····”
마치 눈앞에 큰손자가 있는 것 같아서 노가주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을 수 없었기에 몸을 덜덜 떨었다·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노가주를 가족들이 붙잡았다·
“아버지!”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부몽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이 노가주에게 위로가 될리 만무했다· 시체들이 나오는 걸 본 것이다· 뼈가 달리는 걸 보지 않았는가·
이 어둠을 만든 자는 죽음의 주인·
그렇게 부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늘 어찌 큰손자가 저자 앞에 있는 것인가·
“대공자님!”
“우리 대공자님···!”
송화가 울음을 터뜨렸고 천화서고의 전 가솔들의 눈도 붉게 물들어갔다·
엽불이 그 모든 목소리를 들었다·
가족이 누구인지 누가 염려하는지·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엽불의 미소는 짙어졌다·
운부산 위로 한 신형이 튀어올랐다·
녹색 광휘에 휘감긴 신형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엽불을 향해 날아갔다·
“사형!”
그녀도 본 것이다·
즉시 은혼로를 해제·
환한 미소를 머금고 나아갔다·
“사형! 우리의 약속이 이렇게 이뤄지는 군요·”
엽불이 그런 단예령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눈앞에 이른 단예령의 목을 틀어잡았다·
“크윽!”
붙잡힌 채 단예령이 몸부림쳤다·
“사 사형··· 가가··· 나는····”
우드득·
단예령의 목을 비틀었고 좌수는 이미 단예령의 복부에 파고들었다·
단예령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엽불이 보았고 온 세상이 보았다·
엽불은 단예령을 내던졌다·
피를 울컥대며 떨어져내리는 단예령은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나는··· 주란· 한데··· 왜··· 왜···?’
땅에 처박혀 피를 울컥대면서도
단예령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