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주인이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단 일격·’
일격에 엽불을 멸한다·
후공은 그러길 바랐다·
어려운가? 아니 가능하다·
오행이 완성되면서 상생의 길로 회전하고 있었다·
수가 목을 생하고 목이 화를 생하고 있다·
화가 토를 토가 금을 금이 다시 수를·
끝없이 증폭된다·
멈추지도 않는다·
만물의 다섯 근원이 서로를 생하며 돕고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엽불을 향해 날아가는 오행이 깃든 네 마리 용의 기운은 증폭되었고 엽불의 눈앞에 이르렀을 땐 하나가 되었다·
거대한 용이었다·
용의 두 눈은 자줏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비늘은 형형색색 색을 달리했다· 금빛이 되면서 금룡이 되고 묵빛이 되면서 흑룡이 되었다· 푸르게 변하면서 청룡 이내 적룡과 백룡이 되기도 했다· 용의 입에서는 푸르고 붉은 불꽃이 증폭되고 있었다·
엽불의 눈을 통해 세상은 그렇게 보았다·
엽불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천지가 덮쳐오는 것 같군·’
태산이 덮쳐오는 정도가 아니다·
만물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맞닿기도 전 엽불은 이미 압박을 느꼈다·
그럼에도 엽불은 웃었다·
“죽음과 함께 천 년을 보내온 나다·”
천 년의 귀기·
다가오는 것이 만물의 소생이라면 자신은 만물의 죽음과 함께 했다·
죽음과 생·
그 가운데 무엇이 근원인가·
그 답을 보여줄 때였다·
온 천하에 이 세상에·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이제 닿아온다·
엽불이 어느샌가 금빛 용이 된 만물의 힘을 향해 우수를 내밀었다· 그건 완전한 어둠이었다· 죽음이었고 원혼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생과 사는 그렇게 충돌했다·
용이 스러져갔다·
엽불의 어둠도 흩어졌다·
단지 그뿐이었다· 어떤 소리도 없었다·
소리가 사라졌다· 이 순간은 분명 찰나인데 영원이 된 것만 같았다· 소리 없는 세상이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바람조차 느낄 수 없었다·
수십만의 시체들이 입을 열었다·
“죽은 자의····”
“산 자의 염워····”
그 말을 끝맺기도 전에 멈춘 시간이 돌아왔다·
만물의 순환하는 생과 겹겹이 쌓인 죽음의 파장은 뒤늦게 나타났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물결이 퍼지듯 공간이 출렁이며 춤을 췄다· 거대한 폭풍이 뒤따랐다· 부딪히며 응축된 가공할 기운이 비로소 폭발을 일으키니 모든 것이 쓸려나갔다·
시체들이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폭풍의 여파에 산도 쓸려나갔다· 운부산의 봉우리만이 아니었다· 산 자체가 날아갔다· 그중 회영부의 수많은 진법들도 한낱 먼지가 되었다·
그 폭풍은 천여 장 밖까지 뻗어 나갔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고 있던 풍제와 검선 등은 그 폭풍을 간신히 버텨냈다·
괜찮냐· 어떻게 된 거냐·
오간 대화는 없었다·
그저 질려버려 바라볼 뿐이었다·
물러서 있으라는 대형의 말이 맞았다·
단혼각주와만 상대하겠다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뜻이 옳았다· 비로소 이해했다·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 아니다·
신과 귀신의 싸움이었다·
여태 귀신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는데 두려워졌고 신의 위엄을 본 적이 없었는데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야 어디 가!]
먼 하늘에서 바라보던 색관조도 훨훨 날아갔다·
금섬은 아예 정신을 잃고 떨어져 내렸기에 색관조가 낚아채 흔들었다·
[정신 차려!]
[그으으으····]
금섬은 머리를 흔들었고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태풍이 불어와도 네 다리를 땅에 지탱하고 있으면 버틸 수 있고 태풍 중에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인데 기절이라니·
주란도 열 걸음이나 물러났다·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주란이었다· 천롱삭이 충돌의 파장을 상쇄하지 않았다면 훨훨 날아갔으리라·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바라봤다·
사형은 소멸되었나?
아직이었다·
하지만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검붉은 귀기가 불안정하다·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란이 본 대로였다·
엽불은 웃었다· 예상 밖의 충격이었다· 순간 귀기가 통제되지 않았다· 아래를 보았다·
‘놈은?’
없다·
어디에? 위쪽이군·
머리 위·
엽불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그곳에 후공이 있었다·
후공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손은 뻗어가고 있었다·
엽불의 머리를 붙잡았다· 검붉은 귀기가 후공의 손을 빠르게 휘감았다· 화극이 일었고 천람이 화극과 호응하며 귀기를 불태웠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엽불의 머리를 뜯어냈다·
머리를 잃은 엽불의 몸이 추락해갔다· 후공은 엽불의 머리를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잃고 떨어져 내리는 엽불의 몸에 소용돌이치는 삼악의 기운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엽불의 몸이 조각 나 흩날렸다·
팔이 어떻게 된 건지 다리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를 정도였다· 몸통만 남은 채 떨어져 내려 땅을 파고들었다·
터뜨려진 머리가 뒤따랐다·
얼굴의 반도 남지 않았고 눈도 하나뿐이었다·
그 얼굴이 웃었다·
분명 입이 없는데 말했다·
“생은 모른다· 삶은 모른다·”
빙글빙글 돌며 추락했기에 온 세상도 어지러움을 느꼈다· 땅이었다가 하늘이었다가 계속 돌고 있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왜 그런지 알아차렸다· 머리가 떨어져 나갔어· 방금 몸통이 보였어!
그러면서 엽불의 목소리를 들었다·
“죽음을··· 죽일 수 있을 리가·”
목소리마저 끝내려 다시 네 마리가 된 용들이 엽불의 머리를 산산이 흩어버렸다·
그럼에도 들려왔다·
“죽음을 죽일 수 있을 리가·”
하염없이 땅을 파고들던 엽불의 상체의 한 살점이 벌어졌다 닫혔다 하면서 말했다· 이어 꿈틀꿈틀 팔이 나왔다· 다리가 만들어졌다·
“삶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 결코 항거하지 못한다·”
파묻혀가면서 목이 생겨났다· 머리가 새로 나왔다·
그 머리에서 입이 만들어져 길게 그어졌다· 엽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살아있음은 슬픔을 위한 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길·”
언제 머리를 잃었냐는 듯·
언제 팔과 다리를 잃었냐는 듯 엽불은 온전히 몸을 회복했다· 파고듬을 멈추고 빙글 돌아 몸을 세웠다·
그 움직임에 지하의 흙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듯 밀려났다·
온 세상은 다시 엽불의 시야를 공유했다·
땅속이라서 볼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시야가 겹쳐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주 죽지 않았어·’
‘몸이 떨어져 나갔는데····’
뼈를 파고드는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엽불의 말이 이어졌다·
“매일 같은 삶· 산 아래에 있는 바위를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삶· 바위를 굴려 산의 정상에 올려 놓지만 내일이면 그 바위는 다시 산 아래· 다시 힘겹게 바위를 굴리는 하루·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그런 인생에 평온을 선사하는 것이 죽음· 나의 선물· 죽음만이 위대하다·”
쿠르르르르·
카르르르르릉·
엄청난 굉음에 엽불이 위를 올려다봤다·
온다·
용들· 신검들·
“흐흐····”
그 자리에서 꺼지듯 엽불은 이동했다·
엄청난 속도로 땅을 이동하면서 천지에 내려앉은 귀무에 염을 보냈다·
새로운 죽음이 필요하다·
싱싱한 한(恨)과 원(怨)·
많을 수록 좋다·
그 염(念)에 죽음이 답했다·
감숙 섬서 하남 하북 안휘· 천축 절강까지·
천하 각지에서 죽은 자가 일어났다·
관을 부수고 무덤을 파헤치고 튀어나온 시체들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죽은 눈동자로 응얼거렸다·
귀황이시여!
예를 표한 후 민가로 향했다·
시체들은 연못에서도 튀어나왔고 강가에서도 뛰쳐나왔다· 낚시터에 있던 넋을 잃고 겹쳐보이는 놀라운 광경에 굳어 있던 이들이 시체들을 보고 놀라 달아났다·
몇 걸음 옮겼을 뿐이었다·
시체들은 너무 빨랐다· 다리가 없는 시체조차 두 팔로 기는데도 다가오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물어 뜯겼고 시체의 손이 가슴을 파고들기도 했다·
장례를 치르고 있는 곳도 있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있던 이들은 경악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산야에 버려진 시체들이 모여들었다·
멀리 불빛을 보며 맹수처럼 달려갔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많았다·
그 부모들도 자식을 눈에 담고 죽음을 맞았다·
사랑하는 이가 죽고 그 죽음에 절규하는 이도 곧이어 죽었다·
원통함이 귀무 속에 스며들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귀무 속에 물들어갔다·
새로운 한이었고 새로운 원이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오천 명·
그 모든 죽음과 죽음에 담긴 원망이 귀무를 타고 엽불의 귀기가 되었다·
‘흐흐 만 명····’
엽불이 환히 웃었다·
귀기는 무궁하다· 힘이 차오른다·
‘흐흐흐 삼만····’
생은 죽음을 넘지 못한다·
죽음을 넘는 건 죽음뿐·
“크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안 돼!”
“아가! 내 아가!”
비명이 들려온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비명이고 절규이며 울부짖음·
듣기 좋다· 노래다·
죽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름답다·
“어머니!”
“안 된다· 안 된다아아아!”
“가가! 죽지 마요· 날 두고 죽지 마요!”
흥겨운 노래·
아름다운 광경· 차오르는 힘·
저항하는 이도 보인다·
막아내려 애쓰는 놈들이 있다·
이 시대의 강호인들· 시체들을 썰고 썰고 또 썰어가면서 막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팔다리를 잘라!”
“머리를 날려!”
“젠장 끝도 없어!”
천공단이 사람들을 지키려 노력했고 각대 문파와 강호의 고수들이 각지에서 분전했다· 마교도 녹림도 소림승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모든 격돌이 시체들과의 싸움·
시체들을 쓸어넘기면서도 혼란이 왔고 몇을 쓸어넘겨도 영광스러울 것이 없었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싸움·
죽은 자들은 너무 많았다· 오래된 죽음도 새로운 죽음을 찾아 나섰고 새로운 죽음마저 곧 죽은 자의 대열에서 산 자와 맞섰다·
귀기가 넘쳐난다·
엽불은 날 듯 땅속을 헤집으며 넘치는 귀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순간
쿠콰광!
굉음과 함께 불현듯 눈앞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후공이었다·
엽불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더 이상 후공의 눈빛은 무심한 눈이 아니었다·
의식은 한계를 지나 더욱 깊어진 터·
그렇기에 천하 각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본 것처럼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가루를 만든다·
죽음을 죽인다·
두 번 다시 재생이 불가하도록·
머리가 잡힌 엽불이 히죽 입을 찢었다·
“흐흐 너의 표정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넌····”
약점이 명확하지·
지금 너의 분노가 말해준다·
그러니 네게 선물해주마· 슬픔을·
‘귀분(鬼分)·’
네가 아끼는 것을 앗아주마·
순간 엽불이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연기는 다섯 뭉치였다·
나누어진 연기는 순식간에 형체를 갖춰 각각 엽불이 되었다·
분신·
후공은 그중에서 본체를 구별해냈다·
네 개의 분신이 흩어져 땅을 헤집고 사라졌고 본체가 솟구쳤기에 후공은 본체를 추격했다·
신검들은 방향을 틀어 맹렬히 분신을 추격했다·
주인의 염려를 알고 있다·
주인은 아우들을 염려하고 있었다·
일행을 걱정하고 있었다·
주인이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신검들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분신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