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화· 천둔공망(天遁空亡)·
분신이 넷·
모습은 같다· 모두 엽불이었다·
귀기를 두르고 끔찍한 미소를 머금고·
“키키키!”
“키키키키!”
“키키키키키키키키!”
다른 점이라면 웃음소리였다·
지면을 뚫고 나온 분신들은 빛살처럼 날아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였다·
쿠쾅 쾅!
분신들의 이동 속도에 공기가 찢어지면서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르르르릉·
그 뒤를 네 마리 용이 바싹 추격했다·
닿지 않는다·
원래라면 닿아야 했다· 한데 잠깐 사이에 달라졌다·
이유라면 귀기 때문·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죽음은 귀무에 흡착되며 엽불의 귀기로 치환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왕성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풍제와 검선 등에게 자리를 벗어날 여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보았을 땐 이미 눈앞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이곳에서 지켜봤다· 머리가 뽑혔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도 보았다· 한데 몸을 회복한 정도를 넘어 아예 여럿이 되어 나타났다·
정녕 귀신인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가?
실존하지 않는 영체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천마임천(天魔臨千)!’
‘난영류(亂影溜)!’
풍제와 당명이 신형을 날려 마중 나갔다·
풍제의 천마임천에 더할 나위 없이 짙은 마기가 주변을 잠식해 들어갔다· 동시에 열여섯 염혼이 마기의 영역에서 분신들을 맞이했다· 당명은 혼란한 그림자가 되어 강기를 두른 수만 개의 암기를 발출했다·
검선과 검존도 반응했다·
의문은 같았다· 실존하지 않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멀리서 왔다· 이동해왔다·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 시간의 흐름 안에 엽불도 머물고 있다· 그러니 엽불은 실존한다· 귀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멸될 것이다·
존재하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음양증층(陰陽增層)!’
‘유엽붕박(柳葉鵬博)!’
무당과 화산·
도가의 현기가 담긴 비검이 엽불의 두 분신을 향해 쏘아져갔다· 검선의 비검은 더없이 무겁게 검존의 비검은 서른여섯 개로 나뉘었다·
분신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더 커졌다·
“키키키키키키!”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
풍제의 마기에 짓눌리지 않았다·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흩어졌다 나타났다 하면서 당명이 쏘아낸 수만 개의 암기와 장력에도 그 미세한 틈을 타고 유영했다· 검선의 비검도 분신들에겐 느릴 뿐이었다· 검존의 검이 서른여섯 개로 분화되었지만 한껏 넓은 공간이었다·
“키키키키키!”
“키키키키키키키키키!”
빙궁의 한기도 의미 없었다· 죽음에는 온기가 없다· 얼음이 차다고 할 수 있는가· 죽음에 비할 것인가· 죽음을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는 자는 알 것이다· 죽음은 영혼을 얼린다· 죽음을 바라보는 자가 맞이하는 한기는 형용할 수 없다·
키키키키· 그러니 빙공이 무슨 소용인가·
신경 쓰이는 건 오직 하나·
오직 네 마리 용·
용은 스치는 것만으로 충격으로 다가온다· 다가올 뿐인데 귀기가 흔들린다· 관통되면 분명 소멸될 것이다·
키키키 본체가 아니니까· 키키 분신이니까·
그러니 저 용들만 없다면 좋겠다·
귀기가 조금 더 차오른다면 좋겠다·
키키키키키 그렇게 되겠지· 되고 있으니까· 그래 힘이 차오르고 있다· 귀기는 지금 이 순간도 왕성해지고 있다·
키키! 그러면 모조리 죽일 수 있겠지!
그 전에 약한 자 약한 자 약한 자 약한 자· 약한 자 약한 자·
약한 놈부터 죽인다· 찾았다! 찾았다!
하나·
분신들의 붉은 눈에 검존이 보였다·
둘·
현음이 보였다·
‘삼만 칠천·’
엽불은 죽음에 이른 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누가 또 얼마나 죽었는지 그저 알 수 있었다·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죽음의 길로 돌아섰다· 귀기를 보내온다·
그렇기에 엽불은 더 빨라졌다·
용이한 도주를 위해 땅속의 흙과 돌들이 저절로 길을 만든다· 거리는 유지된다· 느낄 수 있었다·
슈웅 슈웅 스으으윽!
천화서고 대공자가 쏘아 보내고 있는 수천 개에 달하는 강기의 화살이 머리 위를 지나쳐간다· 발밑을 지나간다· 어깨와 좌우 옆구리로도 간발의 차이로 흘러간다· 엽불은 아래로 꺼졌다가 급격히 위쪽으로 향했다가 좌로 우로 틀기도 했다·
하나만 관통되어도 감당할 수 없다·
그럴 것 같다· 그래서 화가 났다· 두려웠다·
무섭다!
‘흐흐·’
두려움을 느낀 것이 우스워 엽불은 웃었다·
나는 죽음인데 두려움을 느끼다니·
생이 죽음을 위협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삼만 구천·’
깨어난 시대의 천하제일인이 이 정도라니· 계산에 없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천 년 전의 천하제일인이 고금을 통틀어 제일 강하다고 생각했다· 월하노인이라 불린 사부였고 사부가 떠난 뒤엔 자신이었다·
그래서 엽불은 우스워지는 것이다·
천 년 전의 천하제일인이 천 년 후의 천하제일인에게 쫓기다니 두려워하다니· 그래도 웃자·
잠시만· 조금만 더·
응원받고 있다· 열렬히 성원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세상이 보인다·
온 세상의 소리가 들려온다·
비명과 절규가 없는 곳이 없다· 세상이 처절하게 응원을 보내오고 있는 중이다·
울음을 토해낸다· 슬픔에 창자가 끊어지는 자가 있고 슬픔에 숨이 멎는 자도 있었다· 공포에 질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도 있었다· 울면서 울면서· 흐흐 죽기 싫다면서· 고맙다·
더 울어라· 더 죽어라· 더 잃어라· 더 부르짖어라· 더 큰 상실의 슬픔에 빠져라· 너희가 피눈물로 응원하니 난 기쁘다· 너희의 응원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너희를 잊지 않으마·
‘삼만 구천구백··· 사만····’
후공도 알 수 있었다·
확장된 의식이 천하를 탐지하니 들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생명이 빠르게 저물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생이 시작된 이·
그래서 더 소중한 이·
또는 이제 막 피어난 꽃·
보고 싶은 것이 많고 두근거리고 싶은 것이 많은 꽃들이 무참히 꺾이고 있었다·
들판에 핀 꽃이라고 아름답지 않을 것인가·
보아주는 이가 없다고 소중하지 않을 것인가·
삶은 모두 다 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멈춰야 했다·
멈추고 싶었기에 진법을 떠올렸다· 진법을 의식에 실어 천지에 펼친다· 가능한가? 방법을 찾자· 진법에 통달한 천재적인 두뇌가 도왔다·
‘녹야조로 화엽연화 수옥암장 태법괴강 소양상화····’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태법 염살 합화 일록·
아니다· 아니다·
수많은 진법이 떠올랐고 떠오른 즉시 떨쳐냈다·
그러다 찾아냈다·
‘천둔공망·’
엽불이 일으킨 검은 안개를 걷어낼 순 없다·
전력을 다 쏟아내면 귀신의 안개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쏟아낸 다음은? 엽불을 막지 못한다·
그렇기에 찾은 것이 천둔공망(天遁空亡)·
늦춘다· 정지시킨다· 공망시킨다·
대상은 살아있지 않은 것들· 시체들·
각인된 오행에서 음양을 추출· 팔괘를 띄우고 구궁을 배열했다· 배열된 구궁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행을 결부시켰다· 완성된 순간 진법을 의식에 실었다· 온 사방 천지에 날려 보냈다·
쩌어어엉!
다락이었다·
좁고 냄새나는 다락방 안에서 여인은 딸아이를 안고 있었다· 이미 얼굴은 눈물바다였다· 이제 다섯 살인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시체들이 앞다퉈 다락을 오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몸이 떨리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시체들이 다가오면 떨쳐내려 몽둥이를 들고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울음은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다락문이 뜯겨나갔다· 시체들이 보였다· 푸르스름한 얼굴에 핏발이 선 눈동자 흉포한 이빨을 드러내며 밀려들었다·
아이는 외치며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휘두르려 했다·
그때 무언가 스쳐 가는 것 같았다· 바람이 스쳐 가는 것도 같고 순간 따뜻한 온기가 머물다 사라진 것도 같았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휘두르지 못했다·
아니 휘두를 이유가 없었다·
시체들이 멈춘 것이다·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정지했다· 눈동자도 돌리지 못했다· 모든 시체가 같았다·
“멈 멈췄어요?”
아이가 큰 목소리를 냈지만 시체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딸아이가 물어왔다·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지?
이곳에 계속 있는 것도 무섭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답이 들려왔다·
“시체들이 멈췄어!”
“살았어!”
“이제 살았어! 살았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골목에도 변두리에도 산에도 강가에도·
감숙에도 안휘도 섬서도·
아직 괴이한 안개는 그대로였지만 모든 시체들은 달려들던 동작 그대로 멈췄다·
이상한 날이었다·
괴상한 광경이 보이고 들려오는 밤·
시체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상한 밤이었다·
따스한 온기가 스쳐 간 밤·
모든 시체들이 정지했다·
하지만 괴상한 광경은 여전히 겹쳐 보이고 있었다·
귀무는 그대로·
귀무가 전해왔기에 엽불도 변화를 보았다·
세상 모두의 눈을 통해 보았다·
한없이 충만해져 가던 귀기의 증폭이 그쳤다·
‘멈췄다고?’
엽불이 지면을 뚫고 솟구쳐올랐다·
흙더미가 길을 열어주었다·
파앙!
하늘 높이 솟구쳐오르는 엽불을 수만 개의 강기 수만 개의 백색 광채가 뒤쫓았다·
그 강기 속에서 엽불은 춤췄다· 연기가 미칠 듯이 바람에 살랑이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엽불의 연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춤추며 엽불은 웃었다·
‘의식에 진법을 실었다·’
놈의 약점은 명확하다·
놈은 지키는 자·
그런 신념이 뿌리내린 자·
그것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놀랐고 의식으로 조화해낸 진법을 천지에 적용했다는 점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흐흐····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그때 좌측 허공에서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에 엽불은 시선을 주었다·
붕대에 휘감긴 인영이 보였다·
붕대 줄기가 창처럼 뻗어오고 있었다·
‘주란·’
사매· 언젠가 사랑했던 여인·
천 년을 약속한 여인·
나를 만나려 천 년을 기다린 여인·
내 존재를 멸하려고!
내 존재를 말살하려 기괴한 붕대를 감고 나타났으니
‘죽여주마!’
엽불은 뻗어오는 천롱삭에 귀기를 내뿜었다·
콰아아앙앙!
과격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주란은 날아든 속도보다 빠르게 지면에 처박혔다·
뿌옇게 피어난 흙먼지 속에서 주란이 꿈틀거렸다· 엽불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가 한순간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방금까지 엽불이 선 허공에 금빛 뇌전이 일었고 뇌전 사이로 후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란 쪽을 일견했다·
주란은 괜찮다·
천롱삭은 기물 중의 기물·
이어 후공은 미간을 찡그렸다·
신검들이 미칠 듯이 울고 있었다·
그 사이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후공은 빛줄기가 되었다·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