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언젠가의 약속, 언젠가의 다짐·
날아가는 유성이 보았다·
후공은 보았다·
듣기도 했다·
눈물 범벅이 된 모습·
소리는 찢어질듯한 절규였다·
후공에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현음신녀가 운다· 검존이 운다·
“안 돼에에에에!”
“제발 제발····”
도와줘· 누가 도와줘· 아무라도 좋으니 제발!
현음과 검존은 결코 울 수 없는 이들이었다· 마음의 평정이 하늘에 닿은 절세고수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엽불의 네 분신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신검들이 쫓고 있었고 검선과 현이신녀 단혼각의 섬악이 마지막 분신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키키키 키키키!
분신의 웃음소리가 현음과 검존의 울음을 비웃듯 흘러나왔다·
그런 가운데 풍제와 당명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풍제는 얼굴 절반이 날아갔다· 남겨진 얼굴도 핏물에 젖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풍제를 현음신녀가 끌어안은 채 도움을 청하며 울었다·
자신 때문인 것이다·
죽어야 할 건 자신이었다·
풍제가 막아서면서 자신이 살고 풍제가 죽어가고 있으니 그녀의 마음은 찢겨나갔다·
풍제는 하나 남은 눈으로 막연히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 그러다 후공을 보았다· 풍제의 눈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대형····’
애써 웃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풍제는 조금 더 힘을 냈다· 입을 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그런 말을 내뱉었지만 응얼거릴 뿐이었다·
누구라도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 어쩔 수 없었다·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갈유를 잃은 다음 오 년인가 지났을 때였다·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면서 풍제는 당명과 한 목소리로 약속 했었다·
약속해라· 너희가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깊은 밤 오랜 침묵 속 술잔만 채우고 술잔만 비워가던 그때 불쑥 대형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약속했다·
우리가 먼저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거면 됐다는 대형의 말과 함께 술잔을 부딪혔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기에 풍제는 미안함을 담아 대형을 바라봤다·
당명도 같았다·
위중한 상태가 같았다·
어깨가 없었다· 다리가 뭉개졌다·
검존을 지키려 한 결과였다·
‘시끄럽네·’
검존이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대형이 들을 것 같아 슬퍼할 것 같아서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는데 검존이 서럽게 울고 있으니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가는 것이 좋은데····
그래야 멋진데····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의 광경이 대형의 슬픔에 찬 얼굴이 아니길 바랐는데····
글렀다·
자신있게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는데 이게 뭔지·
대형의 시선이 풍형에게서 자신에게 옮겨졌기에 당명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원래라면 ‘난 괜찮다’라고 말해야 했다·
대형은 천화서고 대공자니까· 다정하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생의 끝자락에서 건넨 마지막 말이니까· 마지막 인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잘 안 되겠지만 그때처럼 제갈 형님이 떠났을 때처럼 그 뒤로 허전함을 채우려 많이 먹지도 말고· 또 다시 뚱뚱해지는 건 그렇잖아·
뚱뚱한 천화서고 대공자가 되면 곤란해·
후공의 안광이 폭주했다·
슬픔과 분노만큼이나 자줏빛 광채가 사방을 물들여갔다·
쿠르르릉!
천둥이 일고 낙뢰가 비처럼 쏟아졌다·
키키키 웃음을 흘리던 엽불의 마지막 분신이 낙뢰를 피해 선회하다 네 마리 용을 마주했다·
“크아아아아악!”
분신을 소멸한 후공은 풍제에게 향했다·
풍제의 눈이 맑게 빛났다·
대형에게 의연함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눈빛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했고 생의 마지막 불꽃인 회광반조이기도 했다·
죽게 두지 않는다·
다시 잃을 순 없었다·
어느 날인가 두 아우에게 건넨 그 말은 스스로에게 말한 것이기도 했다·
마음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울렸다·
‘약속하마· 난 너희가 먼저 떠나지 않게 하겠다·’
그러니 보낼 수 없다·
그날의 약속을 지킬 때였다·
후공은 품에서 생령과를 꺼냈다·
백혼곡의 마두들은 소생했다·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던 몸이 소생했을 뿐 아니라 젊어지기도 했다· 늙어 부서져 가던 피부는 생기를 찾았고 흩어져가던 힘없이 빠져나가던 백발은 윤기 넘치는 흑발이 되었다·
그러니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생령과는 두 개·
후공은 풍제의 입 안에 생령과를 밀어넣었다·
멀리에서 극렬한 파공음이 연신 들려왔다·
엽불은 주란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주란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 싶었고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쿠웅! 쿵!
주란은 수차례 난타당해 몇 번이고 지면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때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주란 넌 어찌 날 대적하느냐?”
왜 죽지 않는가·
왜 상처 입지 않는가·
저 붕대는 무엇인가?
실상 엽불이 묻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이미 수십 번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거늘 주란은 불사신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있다· 저 붕대 때문이다· 두르고 있는 저 붕대가 철벽인 양 모든 치명적인 공격을 무마하고 있었다·
귀기의 흡수도 멈춘 상황·
죽음은 멈췄다· 귀무 속에 있음에도 일어서라는 말에도 더 많은 죽음을 원한다고 말하였음에도 정지되어 있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의식으로 전개하여 펼쳐낸 진법·
귀무가 닿아 있는 온 세상의 영역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하루? 반나절? 어림없다·
고작 반시진 정도· 아니 그보다 짧을 것이다·
파아앙 쿠쾅!
다시금 주란이 지면에 처박혔다가 뿌연 흙먼지 속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천화서고가 나의 세상을 멈췄다곤 하나 언제까지 멈출 수 있을까·”
주란은 말없이 허공에 떠 있는 사형을 올려다봤다·
무슨 말이지?
대공자가··· 후공이··· 세상을 멈추었다고?
당장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다
‘아!’
한순간 깨달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비명이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멀리 더 먼 곳에서도 들리던 비명과 기이한 울음이 멈췄다·
그것이 후공 때문이라고?
후공이 멈추었다고?
그런 자각은 주란만이 아니었다·
세상 전역 어디에 있든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귀에 들려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로소 이 상황을 이해했다·
“시체들이 멈춘 것이····”
“천화서고 대공자가····”
어떻게 천화서고 대공자가 그럴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는 네 마리 용을 날려보낸 이· 수만 개의 빛덩어리를 뿌려낸 이·
이해할 순 없지만 그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단주!”
“두목····”
천공단이 마음으로 크게 응원했다·
천화서고 식솔들이 모두가 듣고 마음을 보탰다·
세상 모두도 대공자에게 마음을 기댔다·
다시금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방금 듣지 않았던가· 시체들이 이대로 계속 멈춰 있지 않을 거라고· 멈추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언제까지?
“주란 고작 일식경(약 30분)이다· 죽음은 멈출 수 없다· 죽음은 끝없이 흐른다· 그러니 나와 함께하자·”
엽불의 말에 주란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고작 일식경·
더없이 짧은 시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긴 시간이기도 했다·
후공이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것 같기도 했다·
“사형 부디 자아를 찾아요·”
“자아?”
반문하는 엽불의 말은 웃음이 아닌데도 웃음소리처럼 들려왔다·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주란은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의 잘못이다·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나·’
나는 사형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르게 말했더라면····
사형이 영원한 삶을 꿈꾸며 길을 찾아보자고 할 때 달리 말했더라면····
비록 삶을 돌아보면 찰나같이 반짝이다 소멸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리 보인다 해도 그 찰나가 영원인 것처럼 아름답다면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러니 늦었지만 자신이 끝내야 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길은 없지만 여기에서 다시 죽음이 시작되게 해선 안 된다·
주란은 사형을 눈에 담았다·
환혼대법·
사형을 천롱삭에 가둔다·
환혼을 위해 거리를 가늠해 측정하고 이미 이룬 오행을 기반하여 의식 안에서 환혼진을 구성했다·
주란의 가슴 부위에 오색 광채가 떠올랐다·
두 눈은 흰자위가 사라지고 온통 검게 물들었다·
그 변화에 엽불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르는 붉은 광채가 멈추면서 주란의 가슴에 떠오른 회전하는 오색 광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험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경고음이 들려왔다·
소멸된다· 소멸된다· 소멸된다!
다가가야 하나? 물러서야 하나?
순간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다가갔다·
주란의 검게 물든 눈동자가 흐트러짐없이 담고 있기에 이내 허공으로 솟구쳤다· 하염없이 솟구쳐 올랐음에도 눈길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이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좌측으로 우측으로·
그럼에도 시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오색 광채는 더 밝아졌다·
‘위험해· 위험해·’
마음이 미칠 듯 외쳐왔다·
방법은 하나뿐·
“내 자아를 찾자!”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귀기를 내부로 흡수하였고 동시에 모습을 바꾸었다·
그런 다음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종이 조각처럼 실 끊어진 연처럼 흘러내렸다·
하늘하늘 떨어져 지면에 위태롭게 내려선 엽불이 주란을 바라봤다·
힘없이 입을 열었다·
“주란····”
주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검게 물든 주란의 눈에 가득 들어찬 엽불의 모습은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삼십 대 초반의 사내·
선 굵은 남자의 얼굴·
깨끗한 안색이었고 눈동자에는 강직함이 묻어나고 그와 함께 다정함도 엿볼 수 있었다·
“사 사형····”
주란이 더듬거렸다·
어느샌가 그녀의 눈동자는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천 년 전의 사형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 그 무엇에도 흔들림 없이 의지가 되어주었던 그 사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사···사형 돌아왔군요·”
주란의 눈이 붉어졌다· 눈물이 맺혀갔다·
“사형 저는··· 저는··· 사형이 이겨낼 줄 알았어요·”
“주란 미안하구나·”
엽불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한숨도 이어졌다·
“내가 큰 죄를 지었구나· 너에게도 세상에게도·”
“그래요· 사형· 우린 평생 속죄해야만 해요·”
“그러마· 그러마·”
엽불이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란 네 모습을 보여다오· 널 보고 싶다·”
스스스·
주란이 천롱삭을 거둬들였다·
온몸을 휘감은 붕대가 풀리면서 그녀의 왼쪽 팔목에 휘감겼다·
괜찮다· 걱정할 건 없다·
사형이다· 사형이 돌아왔다· 사형이 극복해냈다·
귀기는 느낄 수 없다·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사형은 무공을 모르는 사람처럼 그리되었다·
주란이 그렇게 환한 미소를 머금었을 때
주란은 떠올랐다·
주란의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주란은 보았다·
목을 날려버린 엽불이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