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쏟아지는 별빛이 눈물인 것만 같다·
귀무(鬼霧)는 그대로·
귀심(鬼心)도 그대로·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은 볼 수 있었다·
붕대에 휘감긴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었기에 심장이 주저앉았다·
“왜···?”
“왜··· 그러는 거지?”
“설마 대공자가··· 당했다고?”
“아니야···· 아니야·”
붕대에 드러난 대공자의 눈이 보이는 것이다· 대공자의 눈을 처음 본다· 여태까진 자줏빛 광채가 불을 뿜고 있어 볼 수 없던 눈이었다·
자줏빛 광채가 없어져서는 아니었다·
광채를 잃은 대공자의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혹과 불신에 찬 눈이었고 두려움마저 드러내고 있었기에····
죽어간다!
“안돼!”
“안돼에에에에!”
“죽지 마! 제발 죽지 말아요!”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약속했잖아! 영웅이 되어 주겠다고!
그러니 먼저 가지 마요· 제발 떠나지 마요·
산서에서 섬서에서·
절강에서도 안휘에서도·
그리고 천공단도·
“두 두목····”
“형아! 형아아아아!”
“닥쳐라! 불길한 소리를 내면 죽여버린다!”
울부짖는 은앙개와 소천개를 항마삼협이 윽박질렀다· 그런 항마삼협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도 이미 눈물은 맺혀갔다· 형님의 저런 눈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천공단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떤 위험에도 의연한 모습·
죽음 앞에서도 무심한 눈동자를 내보일 뿐이었다·
그러니 눈물이 난다·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
얼마나 상심하고 있는 것인가·
낭인왕이 통곡하고 남궁연과 언교운이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제갈혜가 덜덜 떨었다·
천화서고도 눈물에 젖었다·
인연이 닿아 만나본 모든 이들도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울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풍제는 아니었다·
당명도 아니었다·
검선과 검존 현음과 현이신녀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단혼각 삼 호법 섬악도 상황을 알아차렸기에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하늘 위
영특한 색관조와 금섬도 이해했다·
[으아아아···· 화 환혼하셨어·]
[그으으으으으으윽·]
온 세상은 천화서고 대공자만 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엽불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허공에 떠 있는 엽불의 주위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날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자줏빛 광채를 두른 네 자루의 신검들이 용의 형상을 벗고 엽불 주위를 호위하듯 맴돌고 있었다·
그러면 모를 수 없다·
환혼!
다른 걸 상상할 수 없었다·
이미 들었지 않았던가·
오행을 이룬 자는 환혼진이 필요없노라고·
의식의 영역 안에서 진을 펼칠 수 있노라고·
단혼각주 주란이 하려고 했던 환혼이 대공자를 통해 나타났다·
과연 기뻐할 일인가·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대로
아는 이들은 아는 대로 불안에 떨었다·
풍제와 당명은 더했다· 대형은 이미 환혼하였고 재환혼이 가능한 1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입술이 떨려온다·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리고··· 돌아온다 해도 기억은?
해내겠지·
아무 일 없겠지·
풍제와 당명은 자신도 모르게 으스러지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 엽불은
“으으으····”
당혹을 지나 분노로 치닫고 있었다·
환혼당한 것을 믿을 수 없어서였고 천화서고 대공자의 손이 움직이고 있어서였다·
“멈춰라! 천화서고 대공자!”
후공은 멈추지 않았다·
귀기의 원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귀심이라 불리지만 후공에게 무엇이라 칭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몸에 손을 밀어 넣었다· 심장을 움켜잡았다·
귀심이 검은 불꽃을 발하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대로 뽑혀 나왔다·
후공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몸부림쳤다·
천 년이다· 하나의 죽음 또 하나의 죽음· 하나씩 더해진 죽음을 축적한 귀심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멸의 두려움에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벗어날 수 없었다·
파지지직· 오행의 금이 일어나 가두었고 오행의 수가 귀심을 가라앉혀갔다· 토가 금을 돕고 화가 토를 북돋웠다·
귀기가 천 년·
하지만 오행은 만물의 시작과 함께였다·
오행에 갇힌 귀심의 불꽃은 천천히 꺾여갔다· 죽음의 결정체가 줄어갔다·
엽불이 다시 외쳤다·
“멈춰라! 너도 너도 죽게 된다!”
귀심이 줄어가는 만큼 엽불의 상실감도 커져갔다·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귀심이 소멸되고 나면 결국 천화서고 대공자도 소멸되는 것이다·
왜 이런 결정을 하는가?
누구를 위해?
자신이 죽는다면 세상이 남아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세상이 기억한다한들 몇 년이겠는가·
그저 누구라도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 번뜩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설마 돌아온다고? 이 몸으로?
재환혼·
그렇구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이대로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재환혼이 가능하다면?
‘온전한 몸이 되게 하지 않겠다·’
이 몸을 부숴버리겠다!
돌아온다 해도 엉망이 되게·
살아가는 내내 고통스럽게·
오늘의 결정을 한 번쯤 후회하도록!
먼저는 두 눈·
‘파내주마!’
엽불은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들어올릴 수 없었다·
천롱삭 한 줄기가 눈앞을 스치며 날았다· 글자를 띄웠다·
– 이미 약속했다·
– 지켜줄 것이다· 돌아올 때까지 돌아온 후에도·
“으으으으····”
미칠 듯한 분노에 엽불이 신음을 흘렸다·
손가락 하나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분노했고 다시금 환혼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방법을 방법을 찾아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포기할 순 없다· 느껴지는 것이다· 이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 천 년 전 자신조차 이 정도의 기운을 담고 있지 못했다·
이 기운이 나의 것이 된다면·
정기신을 이룰 수 있다면·
엽불은 정기신의 일치를 위해 의식을 집중했다·
그에 내부를 휘도는 삼악이 거부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원래의 의식이 아니다·
깊이 가라앉았다·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할 만큼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엽불의 좌절도 깊이 가라앉아갔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입장은 바뀌었다·
이제 시간이 없는 건 엽불·
그리고 귀심은 소멸되기 직전·
오행에 갇혀 줄어가던 귀심이 소멸에 이르기 직전 울부짖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이나 짐승의 소리와는 달랐다· 귀신이 운다고 하면 이런 소리일까· 그만큼 기괴하고 끔찍한 소리였다·
귀심의 원념과 사념의 죽음이었고
원혼들의 해방이기도 했다·
후공의 두 눈이 흩어져나가는 귀심을 눈에 담았다·
귀무가 서서히 옅어져갔다·
이 몸도 흩어져가려 한다·
늦으면 곤란하다·
“대공자 어서!”
어느샌가 부근으로 다가온 풍제와 검선 현이신녀 등이 재촉하고 있기도 했다·
[주인님! 얼른요! 얼른! 멋진 몸으로 어서요!]
[극극극극!]
날아내려온 색관조와 금섬도 애가 탔다·
그런 모두를 후공이 엽불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으로 드러났지만 그곳에 있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깊은 안쪽의 모습·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풍제와 당명은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일 때도 내내 대형으로 바라보았고 여우 가면을 쓰고 있을 때도 바라보는 내내 주인으로 보고 있던 색관조와 금섬이었다·
검선과 검존 현음과 현이도 같았다·
화공신타의 모습일 때도 변함없이 그 안쪽의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엽불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들 다를 것이 없었다·
후공이 오행을 운용 의식에 환혼진을 띄웠다·
가슴 부위로 오색광채가 떠오른 한순간
천롱삭이 견고히 붙들고 있는 그곳으로·
스아아아아악· 어디론가 엄청난 속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은 직후
붕대 안쪽의 감겨진 두 눈이 천천히 열렸다·
눈동자가 드러났다·
무심한 눈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눈빛이기도 했다·
또한 깊은 눈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귀무가 서서히 걷히는 상황·
온 세상은 아직 천화서고 대공자를 볼 수 있었다·
잠깐 사이에 크게 달라졌기에 영문을 몰라하며 서로 묻기 바빴다·
이상한 건 아까부터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던 걸 떠올렸다·
붕대에 휘감겨 있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자신이 자신을 부르면서 멈추라고 말했던 것이다·
환혼대법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만 비로소 이해했다·
“두목이··· 환혼한 것이었어·”
“으아아아····”
“환혼에 환혼을····”
천공단이 환호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멍청해졌고 환혼대법에 대해 들은 바 있고 겪은 바 있는 이들도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이제 귀무는 완연히 옅어졌다·
밤하늘의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온 세상의 겹쳐 보이는 시선도 희미해져갔다·
시선이 이동·
하나의 손이 보였다·
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검은 연기가 흐르는 듯한 손이었지만 손의 형체를 띠고 있으니 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엽불이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바라봤다·
손가락이 흩어지고 이어 손바닥도 흩어져갔다·
다리도 이미 흩어져가고 있었다·
엽불이 시선을 옮겼다·
후공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화서고여···· 너의 승리다·”
팔이 사라지고 어깨도 흩어져갔다·
이제 별은 더 많아졌다· 밤은 더 선명해져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저 아련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엽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겠지· 너의 몸에 머물 때··· 보았다· 나오며··· 보였다· 기억을 잃은 너의 모습··· 존재를 망각한 너의 모습···· 너는··· 정처 없이 온 세상을 떠돌게 되겠지· 그리하여 너는 파멸하겠지···· 멀지 않다·”
엽불은 허리가 흩어졌고 이어 가슴이 사라져갔다·
둥실 머리만 남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너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있다면··· 너를 알아본 자가 있다면··· 너의 자아는 파멸하게 될 테····”
그 말이 끝이었다·
엽불의 머리가 흩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천하 각지의 시체들이 부서져 내렸다·
마치 원래 흙이었던 것처럼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꿈같은 풍경은 또 있었다·
동굴에 호수에 다락방에 산 위에 있던 이들이 밤하늘을 바라보니 모든 별이 돌아와 있었다·
그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잊지 못할 영원 같은 광경이었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눈물인 것도 같았다·
흐릿해 보이고 뭉개져 보이기도 했다·
들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들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에 볓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기억을 잃을 것이라고·
자신의 영웅이 기억을 잃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