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지금 이 순간이 영원·
산서 북부·
복회산(復回山)·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모산 장문인 허월의 외침에 곁에 있던 이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찾았다· 찾았어!”
“하하하! 장문인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렇게만 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천화서고의 천재들이었다·
윤과 부몽·
노가주도 있었다·
노가주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들의 눈앞에는 수백 개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깃발의 형태와 색이 각양각색이었고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정교함으로 가득한 모산파의 영기를 탐지하는 진법이었다·
지면에 꽂힌 안쪽의 푸른 깃발 하나가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는 중· 이는 그만큼 강대한 영기가 해당 좌표에 있다는 의미였다·
“하하 역시 천화서고입니다· 모산이 크게 은혜를 입었고 정녕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달았소이다·”
허월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행초를 찾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나선 가운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화서고에 도움을 청했었다·
천화서고가 마다할 일인가·
이 일은 원래 천화서고의 일·
가족의 일·
그 천화서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탐지 진법을 개선한 것이었다· 이동이 용이하도록 극히 간소화했고 탐지 가능한 영역과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늘린 것이다·
그게 된다고? 가능해?
모산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냈다·
전혀 똑똑해 보이지 않은 천화서고의 셋째 부몽이 한 달여를 끙끙대더니 해내버렸다·
허어 뭐하는 녀석이지?
어떻게 봐도 바보 같았는데····
그 덕에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설치와 해제가 간단해졌고 탐지 범위와 정밀함이 말로 할 수 없이 늘어 뜻하지 않게 여러 영초와 영약을 발견하기도 했다·
노가주도 큰 도움을 주었다·
오행초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는데 노가주는 고대 문헌을 다시 파고들어 오행초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가져온 것이다·
오행초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오행초가 영기를 발하는 시간·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
알아볼 수 있는 건 고작 일다경·
지금이 그 시간이었고 해당 위치를 가리키는 깃발은 더 강렬히 빛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틀림없다·
찾은 거야!
그렇게 좋아하고 있을 때였다·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인가·”
또 다른 청년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수많은 칼날이 맑은 눈빛 위로 새어나올 것 같은 이·
그가 암향야였기에 모산 장문 허월은 쪼그라들었다·
무려 사천 당가주다· 암향야의 어깨 위에 금두꺼비가 있다고 해서 안 무서울 수 있겠는가·
그 잠깐 머뭇거렸다고 사방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망할 놈의 새끼야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허월! 당장 좌표를 말하란 말이다!”
검선과 검존이었다·
현음신녀도 뾰족하게 다그쳤고 현이신녀도 초조함을 드러냈다·
허월의 목은 더 움츠러들었다·
“바 방금 말씀 드리려고····”
“너 진짜!”
“으어억 좌표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에 광풍이 일었다·
삽시간에 무리가 그곳에서 사라졌다·
‘우리도 데려가지·’
남은 건 허월과 모산의 장로들뿐이었다·
검존이 노가주를 안고 움직였고 윤과 부몽은 검선의 양손에 각각 붙잡혀 이동했다·
순식간에 도착했다·
산의 골짜기·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은 아직 골짜기에 닿지 않았다·
햇살이 이 골짜기에 닿을 때면 늦는다·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
“금섬 찾아라·”
수많은 화초와 풀들이 보일 뿐이다·
어느 것이 오행초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금섬이 다리를 쭉 뻗으며 뛰어올랐다·
공청석유를 지키는 영물인 금섬은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금섬을 뒤따랐다·
금섬이 멈춘 건 큰 암벽 앞이었다·
어디에도 잡초조차 볼 수 없어 모두가 갸웃했다·
그냥 암벽이었다·
특이할 것이 없었다·
알아차린 건 금섬이 앞발 하나를 들어 가리켰을 때였다·
[극극극!]
금섬이 가리킨 곳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제야 누구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허허 감쪽같군·”
“거미인가요?”
거미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가히 수천만 마리의 암벽색을 띤 거미 떼가 한 지점에 모여 있었다·
무언가를 막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오행초라는 건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이 거미들은 오행초를 지키는 영물·
암벽색과 똑같을 뿐 아니라 움직임도 없어 금섬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금섬아 잘했다·”
당명이 칭찬하고는 다가갔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거미 떼를 몰살시키려 할 때였다·
“암향야 잠시만요·”
현이신녀가 멈춰세웠다·
당명이 갸웃했다·
현이가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하죠· 거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무슨 의미인가?
순간 의문을 품은 당명이 현이신녀의 눈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답이 있었다·
현이는 이 거미들이 고마운 모양이다·
바라봄이 달라지면 옳고 그름이 뒤바뀌는 법·
이 거미들은 오행초를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동안 오행초를 보존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랍니다·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을 못했다·
당명은 기쁘게 설득당해 순순히 물러났다·
현이가 거미 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미들에겐 침입자의 손길·
쏴아아아아·
밀물처럼 현이의 손을 타고 이동하며 물었다· 뒤덮었다·
순식간에 뒤덮인 현이는 몸으로 스며드는 독을 얼려 차단하고 이어 거미들까지 얼어붙게 했다·
투둑 투드득·
꽁꽁 얼어붙은 거미들이 떨어져 내렸다·
죽인 것이 아니었다·
해동 시간은 한 시진 후·
저절로 해동될 것이다·
그런 다음 볼 수 있었다·
거미 떼가 사라진 다음 드러난 건 작은 동혈·
그 안쪽에 오행초가 보였다· 다섯 개의 잎사귀가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오행에 해당하는 색을 머금은 채였고 비로소 영기도 뚜렷히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오행초를 거두었다·
‘이것이라면····’
현이가 들고 있는 오행초를 모두가 넋이 나가 바라봤다·
당명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이가 오행초를 노가주에게 건넸다·
노가주가 감격에 차 오행초를 받아들었다·
‘이것이라면 큰아이의 기억을 찾게 할 수 있다·’
성취의 기쁨도 잠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큰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엽불을 만나기 전부터 경이로운 경지에 오른 큰아이였다· 엽불과 마주했을 때는 아예 다른 차원에 닿은 것만 같았다·
그런 큰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오행초를 찾았지만 더 어려운 탐색이 남아있다고 봐야 했다·
“누구?”
현이신녀가 미간을 좁혔다·
뒤를 이어 당명도 시선을 돌렸다·
현이신녀가 고개를 돌린 쪽이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절로 경각심이 들 정도·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이내 검선과 검존 현음도 얼굴이 굳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오행초를 찾았습니까?”
모산 장문인 허월이 장로들과 뒤늦게 달려왔지만 그쪽을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나타났다·
분명 볼 수 없었는데 나타났다·
창공의 한 공간을 찢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흐릿해졌다·
흐릿함이 다시 떠올랐다가 맺혀간 건 일행의 앞쪽·
형체가 뚜렷해지며 한 청년을 볼 수 있었다· 죽립을 깊게 눌러 쓴 이도 볼 수 있었다·
죽립을 눌러쓴 이의 손이 붕대에 감겨 있고 죽립 아래로 보이는 턱과 목도 붕대였다·
크르릉·
그런 죽립인 뒤에서 푸른 늑대가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붉은 눈으로 훑어보던 늑대의 눈은 당명에게서 멈췄다· 눈을 떼지 못하고 꼬리를 살랑거렸다·
모두가 알아차렸다·
풍제 그리고 후공·
누군가에겐 풍제와 대공자·
또 누군가에겐 큰손자 혹은 큰형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해야 좋은가·
아는 척해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나·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노가주와 윤과 부몽은 연신 침만 꿀꺽 삼켰다·
나선 건 당명이었다·
풍제를 향해 태연히 인사를 건네고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가 바로 물었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입니까?”
“이번에 새롭게 내가 형님으로 모신 분이다· 오늘부터 너에게도 형님이다·”
“존함이?”
“없다· 곧 찾게 되겠지·”
그 말이면 충분했다· 모두 이해했다·
새롭게! 그리고 이름이 없다!
대형은 아직 기억을 찾지 못했다·
후공은 기억을 찾아 나선 것이로구나·
대공자는 아직 기억을 잃었다·
큰아이를 모른 척해야 한다·
큰형님을 불러선 안 돼·
그런 무리를 후공이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바라봤다·
그 눈빛이 지날 때 몇은 입술을 떨었고 몇은 주먹을 움켜쥐기도 했다·
윤과 부몽은 감당할 수 없었다·
입술이 울려고 해서 고개를 바로 떨굴 수밖에 없었다·
후공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풍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풍제 다 아는 사람들이냐?”
“네 소개 드리겠습니다· 이쪽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될 때마다 후공은 죽립을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내심 우습기도 했다·
‘다들 너무 긴장하는군·’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이런 모습이 아닌가·
이름도 없고·
무엇보다 마교 교주의 형님이기도 하다·
후공은 분위기를 풀어주고 싶었다·
“뭔가 대단한 걸 찾고 있었나 봅니다· 좋은 것이면 제가 빼앗고 싶은데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농담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 싶어 겸연쩍어진 후공이 뚱하니 바라볼 때였다·
풍제가 입을 열었다·
“천화서고 가주·”
노가주가 놀라 반문했다·
“방금 형님이 하신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내가 험악하게 빼앗길 바라는 건가?”
노가주는 비로소 이해했다·
멍청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큰아이에게 오행초를 건네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후공이 가로막았다·
“풍제 농담을 진담으로 들으면 곤란해·”
그 말에 도리어 노가주가 힘을 냈다·
걸음을 디디며 나섰다·
“아니오· 난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소· 이건 오행초라고 하오·”
“왜지?”
“이유라면 나는 기억을 잃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오· 그리고 그대는 기억을 찾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오행초는 기억을 찾게 해주는 묘약이오·”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막연했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자면 오행초뿐·
“아깝지 않나?”
노가주는 큰 손자에게 오행초를 더 내밀었다·
과거 어느 때 그는 큰손자에게 독약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날 손자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은 영약을 건넨다·
그날 찾았던 것처럼 오늘 다시 손자를 찾고 싶었다·
“한데 그대는····”
후공이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려 노가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손을 떨고 있지?”
“늙어서 그렇소·”
그 말이 우스워 후공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에 왜 눈물이 나는지 윤과 부몽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뚝뚝 눈물을 흘렸다·
후공이 오행초를 받아들었다·
“기쁘게 받지· 물론 보답도 하겠다·”
“기대하리다·”
노가주가 답했다·
보답은 돌아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후공이 오행초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섯 기운이 스며든 순간 삼악이 폭주했다·
죽립이 떨어져나가며
우우우우우우웅웅!
삼악의 폭주 속에 후공의 두 눈이 자줏빛 광채로 붙타올랐다·
오행의 조화에 영혼이 흔들려간다·
그 충격을 삼악이 버텨냈고 조율했다·
팔을 휘감은 붕대가 풀려갔다·
스륵 스르륵·
몸을 휘감은 붕대가 풀려나갔다·
이어 한 겹 한 겹·
후공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후공의 모든 기억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후공· 그리고····’
노가주를 바라봤다·
이어 윤과 부몽을 바라봤다·
‘···천화서고 대공자·’
풀려난 천롱삭이 허공에 너풀거렸다·
천롱삭도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았기에 휘날리며 붕대 줄기로 문장을 만들어냈다·
– 나는 천롱삭·
이내 흩어졌다가
–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이다·
모두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격정에 휩싸였다·
맞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이었다·